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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160화 (160/424)

00160  소제목 미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형진이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면서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내가 나서는 게 친구를 도와주는 건지 쓸데없는 오지랖을 떠는 건지 나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형진이도 장희 집안이 어떤 곳인지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Rrrr

고민 끝에 나는 장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수야. 다시는 연락 안 할 줄 알았는데.”

“네가 예뻐서 전화한 거 아냐.”

“시연이 일은 정말 미안해. 나도 내가 이기적이었다는 거 알아. 너무 답답해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나 봐.”

“됐다.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 이미 지난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해봤자 뭐하겠냐. 다름이 아니라 한 가지 물어볼게 있어서 전화했어.”

“뭘?”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형진이와 다시 잘 되면 회장님 딸이라는 거 말할 거야?”

“그... 글쎄. 갑자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잘될 가능성이 있기는 할까?”

“그러니까 만약이라고 하잖아. 만약 그렇게 되면 말 할 거냐고?”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어. 언젠가는 말해야 하겠지만, 처음부터 털어놓기는 힘들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거짓말을 하겠다고?”

“거...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지. 혹시라도 물어본다면 솔직하게 대답할 생각은 있어.”

“그게 뭐가 다르다는 거야? 넌 이미 한 번 형진이의 신뢰를 깨트린 적이 있잖아. 그런데 시작부터 솔직하지 않으면 어쩌겠다는 거야?”

“그렇지만 솔직하게 털어놨다가 형진이가 날 부담스러워하면 어떻게 해? 시간을 두고 만나면서 좀 더 관계가 확실해지면 그때 말해도 늦지 않잖아.”

말은 저렇게 하지만, 믿음이 가지는 않았다. 저렇게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무슨 일이 터지고 나서야 사실대로 이야기할지도 모를 일이다.

“확실해지고 나서 언제? 너와 형진이 나이가 벌써 서른이야. 예전 스무 살처럼 소꿉장난을 하며 연애질만 할 나이가 아니라고. 너 설마 형진이와 그냥 가볍게 연애나 하려고 다시 찾아간 건 아니지?”

“아... 아니야. 그런 건.”

“그럼 솔직하게 털어놔. 서른이라는 나이는 슬슬 결혼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할 시기야. 진지하게 연애한다면 당연한 거지. 그러니 처음부터 솔직하지 못한 채 시작하지 말라는 말이야. 결혼에 있어서 사랑보다 중요한 게 신뢰야.”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솔직하게 털어놓으라니. 그리고 결혼은 무슨 말이고. 그러고 싶어도 형진이가 틈조차 주지 않는 게 지금 내 상황이야.”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딱 열흘 준다. 열흘 안에 네가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내가 형진이에게 사실대로 말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

“여... 열흘? 그렇게 빨리? 아니 그보다 형진이가 날 만나주기나 할까?”

“안 만나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머리 나쁜 녀석은 아니니까 내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곰곰이 한 번 생각해봐. 열흘이다. 잊지 마.”

“곰곰이 생각해보라니 그게 무슨 소리...”

장희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계속 들려왔지만, 그냥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열흘 안에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형진이에게 사실을 말할 생각은 없다. 단지 압박을 주고 싶었다. 솔직 하라는 압박. 그리고 자꾸 눈치만 보지 말고 형진이에게 가보라는 압박. 형진이가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도 포함됐지만 그걸 눈치 챌지 말지는 장희의 몫이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한 나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국민은행 박차장을 만났다. 전화 통화는 가끔 했지만, OO출판사 일로 내가 식사대접을 한 이후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마동수 고객님.”

“네. 덕분에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박 차장님은 갈수록 신수가 훤해지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래요? 그렇다면 그건 아마 마동수 고객님 덕분일 겁니다. 제가 마동수 고객님의 자산을 관리하면서 일이 술술 잘 풀리기 시작했거든요.”

“그건 저도 반가운 소식이네요. 박 차장님의 일이 잘 풀린다는 건, 곧 제가 투자한 상품이 잘 풀리고 있다는 의미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보자고 하셨습니까?”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건 지금까지의 실적보고서입니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박 차장은 몇 가지 서류를 내 앞에 내밀었다.

“어디보자. 음... 와, 그동안 금값이 많이 올랐나보네요.”

“그렇습니다. 지난 4월 말 금에 투자할 때만 해도 g당 35,000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g당 41,000원으로 올랐으니 꽤 괜찮은 수익을 올렸습니다. 퍼센티지로 따지면 대략 17% 이상 올랐다고 보시면 됩니다.”

내가 금에다가 30억 원을 투자했는데, 투자한지 1년이 조금 안 된 지금은 35억 원이 조금 넘는 돈이 되었다. 2009년 기준으로 정기예금 금리는 높아봐야 4%대 인걸 생각하면, 괜찮은 수익이 아니라 상당한 수익이다. 아니, 솔직히 대박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괜찮은 수익이라니요. 이정도면 대박이죠. 금융위기 이후 쪽박을 찼다는 사람들 이야기만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은행이자보다 조금만 더 벌자는 생각으로 투자했거든요. 30억 투자해서 1년 만에 5억을 벌다니, 이거 계속 직장생활을 해야 할지 고민 좀 해봐야겠네요.”

작년에 회장님이 지급하신 특별 상여금을 제외하고 내가 받은 성과급을 포함한 연봉이 7,000만원 조금 안 된다. 그런데 빌딩 임대료 수입이 1년으로 계산하면 2억이 넘고, 30억짜리 펀드하나로 5억을 벌었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의 10배를 가만히 앉아서 벌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좀 이상하긴 했다.

뭔가 허무하고 위화감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아등바등 일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사업을 할 깜냥은 되지 않더라도, 빌딩 한두 채 더 구입해서 거기서 나오는 수입으로 아무 고민 없이 편안하게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런 삶은 예순 살이 되어서 해도 충분하다. 벌써부터 그렇게 살면 나중에는 어떻게 살아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지금 일이 재미있었고, 회사에서 성공을 하고 싶다. 고 이사와의 약속도 있었지만, 그것이 아니라도 성공하고 싶은 이유는 많다.

특히, 조그마한 빌딩 몇 채 가지고 있어봐야 시연이 집안에 비하면 새 발의 피나 다름없다. 나는 모든 면에서 그녀에게 당당해지고 싶었고, 내가 생각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동지그룹에서 성공하는 것이다. 나라고 그룹 계열사 사장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고 이사의 말처럼 삼십 대에 이사로 승진하는 것은 조금 힘들지 몰라도, 사십 대에 이사 달고, 오십 대에 계열사 사장이 될 순 있다.

자기 사업을 하면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서 좋다고 하는데, 그건 정말 뭘 모르는 소리다. 회사 안에서는 큰소리 떵떵 칠 수 있을지 몰라도, 밖에서는 나약한 ‘을’의 신세가 되어서 남의 눈치나 보면서 살아야 한다. 그럴 바에는 호가호위가 되더라도 계열사 사장이 훨씬 낫다.

“마동수 고객님. 마동수 고객님.”

“아, 네.”

“갑자기 뭘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죄송합니다. 돈을 너무 쉽게 벌다보니 잠깐 엉뚱한 고민을 좀 했습니다. 휴, 돈이 정말 요물 같네요. 자꾸 귀에 대고 ‘고생하면서 살 필요가 뭐가 있어. 그냥 이자나 받아먹으면서 편안하게 살아.’라며 유혹해서 홀랑 넘어갈 뻔 했습니다.”

“그 마음 저도 이해합니다. 전에도 말씀 드린 것처럼 일은 가지고 있는 게 좋습니다. 편안하게 살다보면, 지루해지고 그러면 자꾸 위험한 일이나 자극적인 일을 찾게 되거든요. 그러다가 패가망신한 고객님을 몇 분 봤습니다.”

“이게 다 박 차장님 때문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제 자산도 잘 관리해주시고, 권해주신 빌딩도 그럭저럭 괜찮게 돌아가고 있으니 제가 자꾸 엉뚱한 상상에 빠지는 것 아닙니까? 하하하.”

“흠흠.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제가 드린 서류 뒷장을 보면 아시겠지만 나머지 60억 원에서는 큰 재미를 못 봤습니다.”

“그래요? 가만히 앉아 5억 원을 벌었다는 이야기에 눈이 뒤집혀서 아직 뒷장을 못 봤네요. 잠시 만요. 음...  어라. 유전펀드? 이건 오히려 손해를 보셨네요.”

“흠흠. 네. 유전펀드의 경우는 3억 원까지 5.5% 분리과세가 돼서 소액으로 한 번 투자해봤는데, 거의 반 토막이 났습니다.”

“그래도 3억 원만 투자한 게  다행이네요. 거기다 30억 원을 투자했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펀드라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군요.”

“면목 없습니다.”

“아닙니다. 괜히 분산투자를 하겠습니까? 그리고 뭐, 큰 재미를 못 보셨다는 말씀치고는 중국과 브라질 쪽 펀드에서 꽤 재미를 봤는데요? 너무 엄살이 심하신 것 아니세요? 저 그렇게 욕심 많은 사람 아닙니다.”

“엄살이요? 하하하. 그렇게 봐주시니 다행이네요. 투자 상품마다 수익이 다르고 가끔은 손해를 보기도 하는데, 어떤 고객님들은 그런 점에 대해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시기도 합니다. ‘이건 왜 손해를 봤느냐. 이건 왜 수익률이 높지 않느냐.’라고 하시면 저도 참 난감할 때가 있어서...”

“어휴, 저는 은행 이자보다만 높게 나오면 감지덕지입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어쨌든, 금 펀드를 제외한 나머지 60억 원에서는 총 3억 원 정도의 수익이 났습니다.”

“3억 원이라고 해도 5%의 수익은 났네요. 그럼 90억 원 기준으로 8억 원 정도를 벌었으니 9%의 수익이 난거네요. 90억 원이 1년 사이에 98억 원이 되었으니 전 만족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라니요, 별 말씀을요. 딱 10억 원을 채워 딱 100억 원을 만들어드리고 싶었는데 좀 아쉽습니다.”

“빌딩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가 한 달에 2천만 원 정도 수익이 생기니, 1년이면 2억 5천만 원입니다. 다 합치면 10억 원을 넘은 셈이니 초과달성을 한 셈입니다. 이게 다 박 차장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박 차장에게 처음 자산운용을 맡길 때 최대 10% 정도의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봤을 때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9%의 수익만 해도 나로서는 감지덕지였다.

“그런 계산법도 있었군요. 이것 참. 아, 그리고 이번에는 투자 방법을 조금 바꿨으면 합니다.”

“어떻게요?”

“우선 금 펀드 투자금을 조금 늘렸으면 합니다. 골드의 경우는 앞으로 최소 1년 이상은 낙관적이라는 게 저의 판단입니다. 35억 원을 지금 환매하지 마시고, 15억 원 정도 추가투자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음... 그렇게 되면 금 펀드만 50억 원을 투자하는 건데 괜찮을까 모르겠네요.”

“선택은 마동수 고객님이 하시는 것이지만, 향후 1년 정도는 괜찮아 보입니다.”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그리고 나머지 금액으로는 중국 쪽과 ETF(상장지수펀드) 쪽에 집중했으면 합니다.”

박 차장은 그밖에도 여러 가지를 설명해줬는데, 좀 복잡하긴 했다. 예전 같으면 꼼꼼하게 들었겠지만, 몇 가지 중요한 이야기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그냥 맡겨버렸다. 시연이를 통해 들어오는 로열티까지 합치면 일 년에 20억 원 정도의 수입이 생기는 셈이니, 왠지 돈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성공하고 싶다는 열망만 남았을 뿐.

============================ 작품 후기 ============================

명절에도 하루에 한 편은 꼭 올리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_(__)_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무덤덤해진다는 좀 더 늙으신 노총각님의 말씀에 왠지 힘이 나면서도 서글퍼지네요.. 게다가 쿠폰까지 ㅠ 감사합니다. 제 글을 읽으시는 모든 노총각분들 힘내세요!!!!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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