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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106화 (106/424)

00106  벼룩도 낯짝이 있다.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겨... 결혼이라도...”

“누가 결혼하래? 날강도 같은 녀석. 결혼은 대학졸업 이후의 일이야. 꿈도 꾸지 말어.”

결혼 이야기를 꺼내자 버럭 화를 내셨다. 그래도 결혼을 반대한다는 말씀은 안 하시니 마음은 놓였다. 한 때는 ‘상대방에서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 결혼 따위는 절대 안 해.’라고 큰소리 쳤었는데, 시연이라면 그래도 결혼하고 싶을 것 같았다. 어쨌든, 확실히 결혼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럼 뭘까? 혈서라도 쓰기를 바라시는 걸까? 아니면 약혼이라도 하라는 말씀인가. 음? 약혼? 그렇지 않아도 학교에 갔다가 시연이에게 꼬이는 파리 떼들을 확인하고 나자 왠지 마음이 불안했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당장 결혼이라도 해서 그 파리 떼들을 완전히 쫓아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 미리 약혼이라도...”

“흥. 그러든지 말든지.”

말투에 심술이 가득했지만, 좀 전에 꺼낸 결혼이야기처럼 화를 내지는 않으셨다. 윤 사장님은 정말로 나와 시연이가 약혼하기를 바라고 계셨던 것 같았다. 솔직히 이게 웬 떡인가 싶다. 내가 딸을 키우고 있는 입장이라면, 절대 약혼 따위는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도 이제 겨우 대학교 1학년인 딸이라면 어림도 없다. 사람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닌가? 확실히 상류층 사람들은 나와 생각하는 것이 다른 것 같다. 체면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때문인지는 몰라도, 내게는 정말 고마운 기회고 감사한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아니지 아버님. 저희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나서 정식으로 인사드리러 가겠습니다. 하하하.”

“아... 아버님?”

“그럼요. 공식적인 자리에서야 계속 사장님이라고 불러야겠지만, 약혼까지 허락해주셨으니 이제 아버님 아닙니까? 앞으로는 진짜 제 아버님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정말 약혼을 하면 반은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아마 내가 시연이와 결혼을 해도 윤 사장님과의 투덕거림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진짜 가족이라면 느낌이 다를 것이다. 윤 사장님과 시연이 어머님은 그녀를 세상에 존재하게 만드신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내 생명의 은인인 우찬 형님처럼 두고두고 은혜를 갚아도 모자랄지 모른다.

“크흠. 내가 언제 허락을 했다고? 자네가 약혼하게 해달라고 조르니 생각해보겠다는 의미였을 뿐이야. 나중에 정식으로 인사 오면 그때 생각해보겠네.”

은근히 약혼 이야기가 나오도록 유도하셔놓고는 저렇게 시치미를 떼신다. 그 모습이 왜 이렇게 귀엽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이것저것 준비하려면 빨라야 10월이다. 마음이 급해졌다. 약혼식도 있는데 100일 기념일은 그냥 넘어갈까? 아니지, 아니야. 그랬다가는 시연이가 정말 섭섭해 할 것이다. 얼마 전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잔뜩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20살처럼 아기자기한 이벤트는 준비하지 못해도 어느 정도 눈높이는 맞춰주고 싶었다. 회사 일은 이제 겨우 여유를 찾았는데, 100일 기념일과 약혼식을 준비하려면 또다시 바쁘게 돌아다녀야 한다. 역시 내 팔자에 여유로움은 어울리지 않는 모양이다.

◆ 시연이 집.

“여보 이것 좀 보세요.”

노 여사는 윤 사장에게 시연이가 쓴 책을 건넸다.

“이게 뭔데?”

윤 사장은 노 여사가 건네는 책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받았다.

“역시 모르고 있었네요. 그러게 평소에 책 좀 읽으라니까.”

“이거 왜 이래? 나도 책은 많이 읽어.”

“그렇겠죠. 허구한 날 경영관련 서적이나 스포츠관련 서적들을 읽으시니, 그동안 자기 딸이 무슨 책을 냈는지도 몰랐겠죠.”

“뭐? 우리 시연이가 책을 써?”

윤 사장은 노 여사의 말에 깜짝 놀라며 그제야 그녀가 건넨 책을 열심히 살폈다. 한참동안 책을 읽던 윤 사장의 표정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대체 뭐야? 이제 겨우 20살짜리 녀석이 이렇게 자신의 연애를 공개해버리면 어쩌자는 것이야. 마 대리 짓이지? 마동수 이 괘씸한 녀석을 당장.”

“진정하세요. 이미 엎질러진 물이잖아요. 그런데 여보. 마 선생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요?”

“누가 마음에 안 든데? 매번 나이 많은 사람 이겨먹으려고 드니까 그렇지.”

“호호호. 아직도 그러고 지내요? 남자들은 그러면서 정이 든다던데. 그러다가 정말 각별해진 것 아니에요? 나야 든든한 아들 하나 생겨서 좋을 것 같은데.”

“정은 무슨. 그리고 당신이랑 마 대리가 같이 나가봐. 누가 장모 사위로 보겠어. 불륜이라고 오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지. 난 그게 마음에 안 들어.”

“불륜이요? 연인사이나 부부사이라면 모를까?”

“뭐?”

“말이 그렇다는 거죠. 설마 제가 어려 보여서 싫으신 거예요?”

“아니. 뭐. 그냥 그렇다는 말이지. 그래서 이제 어쩌려고?”

“글쎄요. 벌써 여자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꽤 났어요. 어린 애가 벌써부터 발랑 까졌다는 이야기도 들리고요.”

“뭐? 누가 그래? 에잇, 정말 할 일 없는 여편네들 같으니라고.”

딸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들린다고 하자 윤 사장은 버럭 역정을 냈다.

“그러게 말이에요. 원래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그래서 뭐?”

“두 사람 약혼시킵시다.”

“약혼?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우리가 그냥 평범한 서민이었으면 상관없겠지만, 보는 눈들이 많잖아요. 회원들 사이에 좋지 않은 소문이 나서 우리에게 득 될 것도 없고요.”

“그것 참. 돈이 많다보니 별 눈치를 다 봐야하네. 그런데 자존심 상하게 우리가 먼저 약혼 이야기를 꺼내자고?”

“그러니 당신이 좀 나서 봐요.”

“내가? 지금 나보고 마동수 그 녀석에게 우리 딸과 약혼해달라고 부탁이라도 하라는 말이야?”

“어머, 이이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역정을 내실까? 지금 제게 화내시는 거예요?”

“아... 아니. 당신한테 화를 내는 것은 아니지.”

“흥, 각방을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한가 봐요?”

“아니야. 절대 아니야. 내가 어떻게 하면 돼? 응?”

시연이 문제 때문에 노발대발하던 윤 사장은, 노 여사의 협박 비슷한 말에 결국 백기투항을 하고 말았다. 아직 피 끊는 건강한 40대인 윤 사장에게 각방은 너무 가혹한 형벌이었다.

“당신이 부탁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마 선생이 부탁하도록 만들면 되잖아요.”

“그게 될까? 그 녀석 잔머리가 보통이 아닌데.”

“그러니까 가능한거죠. 아마 우리 입장도 이해할 테니, 은근슬쩍 분위기만 만들어 놓으면 알아서 움직일 걸요?”

“그런데 꼭 해야 하나? 약혼 시키면 꼭 우리 딸을 빼앗기는 기분이 들 것 같은데.”

윤 사장의 망설이는 모습을 본 노 여사는 태도를 살짝 바꿨다.

“그래도 이상한 소문이 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여보~. 당신이 그러겠다고 하면 오늘부터 각방은 없었던 일로 할게용. 네?”

“흠흠. 정말이지? 그럼 뭐 내가 나서보도록 하지. 지금 당장 안방으로 들어갑시다, 노 여사.”

“그... 그럴까요? 호호호.”

노 여사는 얼굴을 살짝 붉힌 채 윤 사장의 손에 이끌려 안방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윤 사장은 평소보다 몇 시간이나 늦게 스포츠센터에 출근하고야 말았다.

“큰일입니다.”

어려운 일도 모두 끝났고, 며칠 후 윤 스포츠센터 직원들이 합류하면 본격적으로 D&Y휘트니스 클럽의 업무를 시작한다. 그래서 오랜만에 찾은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데, 준호 녀석이 갑자기 호들갑을 떨면서 사무실로 들어왔다.

젠장. 이제 저 녀석이 큰일이라고 외치면 겁부터 났다. 지난번에 큰일 났다고 했을 때는 가야그룹과 대박 스포츠센터 때문에 정말 개고생을 했다. 그 일을 겨우겨우 마무리했는데 이번에는 대체 무슨 큰일일까 짜증이 확 밀려왔다.

쾅.

조 팀장님도 준호의 목소리를 들으셨는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문을 박차고 나오셨다.

“이번에는 또 뭐?”

“그... 그게.”

“괜찮아. 큰일이 난 게 네 잘못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어서 말해봐.”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준호의 말에 김 대리와 정 주임의 표정도 심각하게 변했다.

“비서실에 있는 동기가 이야기를 해줬는데요. 내일 우리 팀 전체에 대한 시상식이 있다고 합니다. 간부급 직원들은 전부 모인다고 하는데요.”

“야, 이 자식아! 어휴, 저 자식 저거 지난번 일로 아주 재미를 붙였어. 그게 왜 큰일이야. 희소식이지. 내가 요즘 너희들 때문에 정말 제 명에 못살 것 같다. 그런 일이 있으면 ‘희소식입니다.’라고 말하면 어디가 덧나?”

조 팀장님은 또다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줄 알고 걱정을 하셨다가 겨우 안심하는 눈치였다. 정 주임 뿐만 아니라 표정변화가 거의 없는 김 대리의 얼굴에도 안도의 빛이 떠올랐으니, 지난번 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악몽 같은 사건이었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팀장님.”

“응? 마 대리, 뭐?”

“시상식 한다잖아요. 기쁘지 않으세요?”

“무슨 시상식?”

“방금 전에 준호가 우리 팀 전체에 대한 시상식이 있다고 했잖아요.”

이 양반이 정말 큰일이라는 말에 정신까지 놓은 것이 분명했다.

“뭐? 정말? 준호야, 그게 정말이야? 임마, 그걸 왜 지금 이야기해?”

“호호호. 그럼 특별 상여금이라도 주시려나? 얼마나 주실까요?”

“글쎄? 이번에는 꽤 큰 공을 세웠으니 천만 원 정도 주시려나?”

“어머, 어머. 정말요? 옷 벗은 보람이 있는데요. 호호호.”

“이봐. 정 주임. 아무리 그래도 다시는 그러지 말자. 그러다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면 시집가기 힘들어.”

정 주임의 돌발발언에 조 팀장님이 깜짝 놀라 그녀를 말렸다.

“에이. 저도 그렇게까지 생각 없지는 않아요. 그리고 그런 일 때문에 싫다고 하는 남자는 오히려 제가 사양이에요. 남자가 쪼잔하게. 그런 남자가 있으면 가위로 거시기를 잘라버려야지 그걸 가만 내버려둬요? 호호호.”

그 말을 듣는 순간 준호와 팀장님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남자가 동시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결혼하면 예쁨 받을 것이라는 말은 취소다. 언젠가 그녀가 결혼을 하면 나는 그 남자를 앞으로 열심히 존경할 생각이다. 정 주임의 배포를 감당할 수 있는 남자라면 나의 존경을 받아도 충분하다 못해 넘칠 것이 분명했다.

“그나저나 특별 상여금 받으면 다들 어떻게 할 거야?”

“저기 팀장님.”

“응? 왜 마 대리. 어디 좋은 투자처라도 있어?”

“그게 아니고, 이번 일을 하다 보니 진짜 환경단체에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강요까지는 아니지만, 상여금의 일정 부분을 기부했으면 좋겠는데.”

“저는 마 대리님의 말씀에 찬성이에요. 우리가 환경단체를 사칭한 것은 진짜 미안해해야 하는 일이죠. 얼마를 받게 될지 몰라도 받는 돈의 20%를 내겠습니다. 될 수 있으면 진짜 뇽이를 살릴 수 있는 곳이면 좋겠어요.”

정 주임이 가장 먼저 동의를 했다. 20%면 적당한 것 같았다. 세금 혜택도 있으니 계산해보면 아주 큰 손해도 아니었다.

“음. 천만 원의 20%면 이백만 원이네. 까짓것 좋다. 나도 20% 낸다.”

“저도 그럴게요.”

“저도 그러겠습니다.”

“그럼 모두 그러기로 했으니,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에요.”

조 팀장까지 나서자 우리 팀원들은 자신들이 받는 상여금의 20%를 기부하기로 합의했다.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하니 확실히 미안한 마음이 덜어지는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약혼할 것이라고 예상한 분이 계시네요. 그리고 프롤로그에 아주 잠깐 등장한 꼼수마케팅을 기억하시는 분도 계시고요. 대단하십니다.^^ 앞으로도 제 글에 많은 애정을 가져주세요.

그리고 설문조사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설문조사는 1000명이 목표입니다. 계속 열어두면 언젠가는 될거라 생각합니다. ^^;;

최근에 쿠폰을 선물해주시는 분들이 정말 많이 늘었습니다. 가끔 확인하러 들으갔다가 깜짝깜짝 놀랄때가 있습니다. 많은 성원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소제목 정했습니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입니다. 왜 이런 제목일지는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상상하지 마세요. 나중에 알고 나시면 정말 허무하실 겁니다.ㅠ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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