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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99화 (99/424)

00099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전화를 마치고 서재에서 나오니, 팀원들은 현우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벌써 서로에 대한 소개는 끝난 모양이었다. 김 대리가 옆에 앉아 있어서 그런지 현우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녀석, 새벽에 잠이 깨서 와놓고도 그렇게 좋을까? 지극정성이 따로 없었다.

“이번 일 잘되면 우리 회사에서도 분명히 이득입니다. 철거비도 아끼고, 높이 제한도 없는 곳이니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절대 우리 수현씨 때문에 제가 여기 온 것이 아닙니다. 대승적 차원에서 서로 윈윈 하자고 온 거죠. 그러니 오해하지 마세요. 하하하.”

“네. 그러시겠죠. 절대 우리 김 대리님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으니, 자꾸 우리 수현씨, 우리 수현씨 하면서 솔로들 염장은 지르지 마세요. 호호호.”

“그럼 이제 일 이야기로 들어가시죠. 미래 백화점을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리노베이션을 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우리가 가장 궁금한 것이 그 점입니다.”

“요즘은 경기가 안 좋다보니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리노베이션과 리모델링이 인기입니다. 그래서 규모가 큰 공사의 경우는 우리도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미래건설에 오자마자 그것부터 공부했죠. 다행이네요. 제가 모르는 것을 물어 볼까봐 조마조마했는데. 올 봄에 10층짜리 대형 건물을 종합병원으로 리노베이션 한 적이 있습니다. 미래백화점보다 규모가 컸죠. 얼마 전에 공사가 마무리 되었다고 하니까 대략 6개월 정도 걸렸네요. 그걸 미루어보면, 겨울이라는 단점이 있다고 해도, 넉넉잡고 5개월 정도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거 반가운 소리네요. 공사비용은 어느 정도나 들까요?”

“잠시 만요. 자료를 좀 찾아볼게요.”

계열사를 옮긴지 얼마 되지도 않은 녀석이 의외로 큰 도움이 되었다. 팀원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의문점에 대해 질문을 하면서 보고서를 작성해나갔다. 한참동안 질의시간을 가진 후 현우를 보냈다. 김 대리 때문에 주저하자 그녀가 직접 현우를 배웅하는 대담한 모습을 보여 우리를 놀라게 했다.

녀석은 그런 김 대리의 모습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 문밖으로 나가면서 현우가 김 대리의 손을 잡았는데도 그녀는 전혀 거부하지 않았다. 저러다가 저 커플도 조만간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돌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균이도 그렇고 현우도 그렇고 친구들의 핑크빛모드에 내 마음까지 흐뭇해졌다.

“자. 그러면 대략적인 보고서는 완성된 것 같네.

“이 정도로 회장님을 움직일 수 있을까요?”

“내가 전에도 잠깐 이야기했지? 스페셜 원과 가야그룹 회장 사이의 앙금. 그래서 일부러 D&Y 휘트니스 클럽이 노블레스 짐(Gym)보다 빨리 오픈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강조한거야.  그 정도만 해도 회장님은 충분히 관심을 가지실거야.”

“팀장님 말씀처럼 두 분 사이에 앙금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죠.”

“어허. 속고만 살았나. 사실이라니까. 믿어봐. 게다가 잘만 협상하면 백화점건물 구입비용은 하나도 들지 않잖아. 그렇게 되면 부지끼리의 거래가 되는 거지. 땅값이 어느 정도 차이가 나니까 우리 회장님 실력이면 미래건설에 시공을 맡기는 조건으로 돈 한 푼들이지 않고 스포츠센터를 건립할 수 있을걸?”

“우와. 팀장님 말씀을 듣고 있으니 우리가 엄청 사기꾼이 된 기분인걸요. 정말 그렇게 되면 특별 상여금도 엄청나겠는걸요? 엄청나게 큰 이익을 회사에 안기는 거잖아요. 호호호.”

조 팀장님의 말씀에 정 주임은 벌써 대박 상여금을 받은 것처럼 좋아했다.

“좋아하기는 아직 일러. 아직 마지막 문제가 남았잖아.”

“그렇죠. 두 거물이 협상을 하는 동안 어떻게 해서든 철거를 막아야죠. 그것도 만만치 않은 문제네요. 휴, 우리가 제대로 막지 못해서 협상 도중에 건물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으...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준호는 상상하기도 싫다는 표정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 또한 그런 상상은 하기 싫다. 정말 협상 도중에 건물이 무너지면 우리는 회사에 엄청난 손해를 끼치는 꼴이 된다. 전화로 대화를 나누더라도 그룹의 오너끼리 나누는 이야기가 가볍게 끝날 리는 없을 것이다. 건물이 철거되더라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땅에다가 다시 스포츠센터를 지어야 한다. 철거 잔해를 치우는 시간만 해도, 가야그룹보다 늦게 시작하는 우리에게는 정말 큰 타격이 될 것이다.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고 철거를 일시 중단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김 대리가 방금 한 이야기도 틀린 말은 아니다. 협상에서 손해를 보겠지만, 훨씬 안전하다. 건물비용은 건물비용대로 지불하고, 건설비용은 건설비용대로 지불해야 하는 단점이 있을 뿐이다. 기회비용까지 포함하면, 거의 천억에 가까운 손해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 판단이 쉽지가 않았다.

“그럼 손해 보는 비용이 너무 커요. 최소한 수백억을 아낄 수 있는데, 모험을 해볼 필요는 있다고 봐요. 회장님이 우리를 믿고 협상을 하실지 모르겠지만요.”

특별 상여금 이야기를 하더니, 정 주임 저 여자 돈독(?) 제대로 올랐나보다. 과감하게 모험을 하자고 주장을 했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정말 돈 때문에 저러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보다 배짱도 꽤 두둑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공감하는 표정이었다.

“휴,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면, 철거를 막으러가기 전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요.”

“그게 뭔데요?”

“일단 우리가 동지그룹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저쪽에서 알아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럼 바로 위로 보고가 들어갈 거예요. 보고가 올라가면 미래그룹에서도 우리의 의도를 알게 될 것이고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겠죠. 우리의 노력이 헛고생이 된다는 거죠.”

김 대리의 말이 맞다. 나도 그 생각은 못했다. 다른 그룹에서 자신의 일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바로 윗선으로 보고가 될 뿐만 아니라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무슨 수로 철거를 막아야 할지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문제가 있었네. 어쩌지. 뭐 좋은 생각 없어?”

“저기.”

“응? 좋은 생각 있어? 정 주임 말해봐.”

“좀 황당한 의견이라서요. 괜히 비웃음만 당할 것 같아서 조심스러운데.”

정 주임이 저렇게 주저한다는 것은 정말 황당한 의견이라는 소리다. 망설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무슨 어처구니없는 말을 할지 그게 더 궁금해졌다.

“괜찮아. 일단 말해봐.”

“건물을 철거하는 곳이 오목교 근처잖아요. 그러니까 안양천과도 가깝죠.”

“그래서?”

“안양천에서 도롱뇽이 나왔다고 뻥을 치는 거죠. 그리고 우리는 환경단체에서 나왔다고 위장을 하고, 철거 소음 때문에 도롱뇽이 죽을지도 모른다며 철거를 반대하면 어떨까요?”

“풉. 차라리 괴물이 나타났다고 하지?”

“팀장님! 비웃지 않는다고 하셨잖아요.”

어처구니없는 의견이다. 그런데 한 번 해볼 만은 했다. 환경단체에서 나왔다고 하면 윗선에 보고하지 않고, 현장에서 처리하려고 노력 할 것이다. 무조건 우기기다. 안양천에 도롱뇽이 어디 있냐고 화를 내도 무조건 우기고 보는 것이다. 좀 치사한 방법이지만, 우리부터 살고 봐야한다. 협상시간 동안만 시간을 끌면 된다.

“해보죠.”

“뭐?”

“정 주임과 준호를 환경단체에서 나온 사람들로 꾸미고, 저는 신문사에서 나온 기자로 꾸미면 함부로 대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기들끼리 해결하려고 하지 윗선에 보고를 하려고 하지는 않을 걸요?”

“그래서 있지도 않은 도롱뇽이 있다고 우기겠다고?”

“시간만 끌면 되잖아요. 우리가 발견했다고 무조건 우기면 어쩌겠어요. 알고 보니 개구리였다고 나중에 사과하죠 뭐.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철거를 막고 있을 테니까, 팀장님하고 김 대리님이 지 이사님을 설득해서 회장님을 움직여보세요.”

“걱정 마세요. 팀장님. 제가 목숨 걸고 막아낼게요. 호호호.”

‘저... 정 주임! 목숨까지는 걸지 않아도 된다고.’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마치 독립운동을 하는 유관순 열사처럼 굳은 결의에 가득 차 있었다. 저러다 무슨 사고를 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나와 정 주임이 의기투합하자 조 팀장님도 그러라고 허락을 하셨다.

김 대리에게 보고서를 마무리하도록 맡겨두고, 근처에 있는 24시간 알파문구에 가서 시위에 필요한 피켓과 띠를 만들 준비물을 구입해왔다. 준비물은 모두 확보했다. 어이없게 쳐다보는 팀장님을 뒤로 하고, 우리는 시위도구를 만들기에 돌입했다.

[안양천에 도롱뇽이 발견됐다.]

[철거 소음이 우리 뇽이를 죽이고 있어요.]

[철거 결사반대, 도롱뇽을 살리자.]

[미래건설은 즉각 철거를 중단하라.]

대강 이런 구호를 피켓과 머리띠 그리고 어깨띠에 적어놨더니 어설프지만 시위대(?)의 행색은 겨우 갖출 수 있었다. 정 주임은 그것으로 만족을 못하는지 김 대리를 데리고 서재로 들어가더니 한참 있다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도 나중에 보면 안다고 알려주지 않아서 궁금해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무표정한 김 대리조차 웃음을 겨우 참고 있는 것을 보니 보통일은 아닌 것 같았다. 왠지 정 주임이 사고 한 번 제대로 칠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도 설마 큰일이야 벌일까 싶어 내버려뒀다.

시간이 7시가 가까워지자 조 팀장님과 김 대리는 지 이사님 댁으로, 나와 정 주임 그리고 준호는 목동 공사현장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주차장에서 서로 결의를 다지는 눈빛만 교환하고 임무 수행(?)을 위해 각자의 목적지로 떠났다.

AM 08:10

조 팀장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무사히 지혁권 이사님을 설득했다는 이야기를 전하셨다. 그 소식에 차안에서 공사현장을 지켜보던 우리는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AM 08:20

우리는 숨죽이고 공사장 입구를 지켜보고 있었다. 철거 문제 때문인지 인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금 나갈까요?”

“아냐. 아직 기다려. 지금부터 시간을 끌면 오히려 금방 끝날 수 있어. 주변에 사람들이 많을 때를 기다려야지. 그리고 철거 준비는 끝났겠지만, 아직 철거장비가 도착 안했잖아. 그때 나가도 늦지 않아.”

AM 08:30

조 팀장님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확실하게 막을 수 있냐고 다시 한 번 확인하셨다.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정 주임이 큰소리로 자신 있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우리를 믿고 바로 비서실에 지급으로 연락을 넣겠다고 하셨다. 더 급한 일이 없다면, 아마 9시 ‘땡’하면 바로 보고가 시작될 것이다. 묘한 긴장감이 차안에 감돌기 시작했다.

AM 08: 40

쿠구구구구궁.

어디선가 지축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거 중장비들이 이동하고 있는 소리가 분명했다. 조금 있으면 공사현장 입구에 도착할 것이다. 주변을 보니 돌아다니는 사람들과 차량도 제법 되었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

“소리 들리지? 이제 시작이야. 정말 잘할 수 있어?”

“맡겨만 주세요. 이 정지영이가 여장부다운 모습을 보여줄테니까요.”

“그래. 왠지 불안하지만, 믿을게. 절대 다치지 말고.”

“염려마세요. 마 대리님도 절대 나서지 마세요. 그냥 사진만 찍으셔야 해요. 괜히 들통 나면 지금까지 우리가 고생한 일은 말짱 도루묵이 되니까.”

“그래. 알았어. 나는 조금 이따 갈게. 건투를 빈다.”

차문이 열리고 정 주임과 준호가 내렸다. 두 사람은 손에는 피켓을 머리와 어깨에는 띠를 두르고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공사장 정문을 향해 뛰어갔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손에서 땀이 났다. 돈도 좋지만, 사람이 다치면 정말 큰일이다. 제발 아무도 다치지 않고 이번 일이 무사히 마무리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 작품 후기 ============================

흑. 이번 회에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쉽지가 않네요. 앞으로 2~3회 정도 더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신 조금 이따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

1시간 안에 올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가시기 전에 선추코 남겨주세요.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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