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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92화 (92/424)

00092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건축 관련 법규부터 찾았다. 가능한지부터 알아야 팀장님에게 보고할 수 있다. 회사 도서관에 가서 관련 서적도 찾아보고, 구청에 전화를 해서 확인도 거쳤다. 다행히 어제 생각했던 것보다 가능성은 더 컸다. 구조상 안전만 확인되면 수직, 수평 증축도 가능하고 남는 부지가 있다면, 별동 증축도 허용했다.

“똑똑”

“네”

“과장님. 저 동수입니다.”

“그래. 들어와.”

“어제 집에 가서 생각을 해봤는데, 아직 확실하지는 않아도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팀장님과 자리에 앉자마자 애매모호한 어투로 본론을 꺼냈다.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자신 없게 이야기를 해?”

“스포츠센터 건물 문제 말입니다.”

“그래? 정말이야? 가능해?”

이러실 것 같아서 나는 분명히 애매모호하게 말을 꺼냈는데, 과장님은 당장이라도 가능할 것처럼 반색을 하셨다. 눈 밑이 퀭하신걸 보니 어젯밤에 꽤 많은 고민을 하셨던 것 같다.

“아뇨. 일단 방안은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아요. 너무 기대는 하지마세요.”

“어쨌든, 이야기해봐. 들어나 보자. 어제처럼 가야건설에 시공을 맡기자고 하면 죽는다.”

“하하하. 어제는 농담이었고요. 리노베이션에 대해서 좀 아세요?”

“리노베이션? 리모델링하고 비슷한 거 아냐?”

“네. 맞습니다. 리노베이션은 리모델링보다 넓은 의미죠. 건축법규에 따른 증·개축, 대수선, 용도 변경까지 가능해서 새로 짓는 것보다 훨씬 빠르면서도 새 건물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있습니다.

“그래? 그런데 마땅한 건물이 있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조건에 딱 들어맞아야 하잖아.”

“넓은 건물이 필요하겠지만, 꼭 우리가 생각하는 규모에 딱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증·개축이 가능하잖아요. 수직, 수평 증축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죠. 그리고 남는 부지만 있다면 별동 증축도 할 수 있으니 골프장은 통로만 연결해서 지어도 되고요.”

“그게 정말 가능해? 그럼 부지만 넓은 건물만 잘 찾으면 된다는 이야기네?”

“그렇죠. 그런 조건만 찾은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능성은 좀 더 높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안 되면 지금 짓고 있는 주상복합 건물에 찾아가서 입주 가능 여부를 확인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요.”

“흠. 보고는 어떻게 하지. 좀 애매하네. 보고하지 않고 찾았다가 안 된다고 그러면 난감하고, 보고했다가 못 찾으면 그것도 큰일이잖아.”

“그래도 지 이사님에게는 보고를 드려야죠. 나중에 못 찾아서 욕을 먹더라도, 괜찮은 건물이 있는데 안 된다고 하면 그건 정말 억울하니까요.”

“그래. 알았어. 일단 보고는 해야겠다. 너도 같이 가. 설명은 네가 해야지.”

조 팀장님은 나까지 대동해서 서둘러 총괄부장실로 향했다. 마케팅 총괄부장인 지혁권 이사님의 겉모습은 평범하다. 그러나 평범한 외모만 보고 만만하게 생각했다가는 정말 큰 코 다칠 수 있다. 우리 마케팅부가 회장님의 친위부대라면 지혁권 이사님은 행동대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회장님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고, 일에 있어서 단호한 성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일단 자리에 앉지. 그래, 무슨 일인가?”

지 이사님은 웃는 낯으로 우리를 맞았다. 저 미소에 속으면 절대 안 된다. 전형적인 소리장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저 양반에 의해 도산하거나 합병된 경쟁업체만 해도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고 하니, 그와 대면할 때는 항상 긴장이 된다.

“D&Y 휘트니스 클럽 문제로 보고 드릴게 있습니다.”

“그래? 일주일도 남지 않았는데, 무슨 방법이라도 생긴 건가?”

“방법이라고 하기에는 이르지만, 가능성은 찾았습니다.”

“가능성이라도 찾았다니 다행이군. 설명해보게.”

지 이사님의 말씀에 과장님과 나는 아까 논의했던 내용을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찾아봤던 관련법규에 관한 서류와 지금까지 리노베이션을 해서 성공한 사례를 보여주면서 가능성에 대해 최대한 어필을 했다. 지 이사님의 허락만 떨어진다면 윗선을 설득하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흠. 찾기만 한다면 우리가 더 빨리 스포츠센터를 오픈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군. 조인식이 다음 주 토요일인 것 알고들 있겠지? 다음 주 수요일까지 찾아내게. 무조건 찾게. 지금 가야호텔이 우리 뒤통수를 친 것에 대해서 회장님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그냥 재계 라이벌간의 신경전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다가는 팀이 공중분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실패하면 사표 쓸 각오로 반드시 찾아내야 하네.”

이건 또 무슨 날벼락 같은 말인지 모르겠다. 그냥 가능성만 타진해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큰일을 다음 주 수요일까지 무조건 성공하라니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오늘이 금요일이니 주말을 모두 반납해도 6일이라는 시간밖에 없다. 나도 조인식 안에 찾고 싶다. 그러나 그게 안 되더라도 시간을 두고 찾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당근은 없이 무시무시한 채찍질만 제대로 얻어맞았다. 조 팀장님이 우리 회장님과 가야그룹 회장 사이에 뭔가가 있다고 하더니 그 말이 정말 사실이었나 보다.

“휴. 이거 괜히 보고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 사표 쓸 각오로 일하라니. 원.”

조 팀장님은 총괄부장실에서 나오자마자 한숨부터 쉬셨다.

“그러게요. 욕 좀 먹더라도 가만히 있을 걸 그랬나 봐요.”

“그건 아니다. 가야그룹과 대박 스포츠센터가 조인식 하는 날까지 몰랐다는 것부터가 우리 잘못 아니냐? 회장님 성격이라면 확 물갈이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지. 지금부터 하던 일은 모두 중지하고 조건에 맞는 건물이나 찾으러 돌아다녀야겠는걸.”

“그래도 누군가 한 명은 남아서 조인식 행사 진행 체크해야죠.”

“그럼 김 대리에게 모든 일을 인수인계해. 인수인계가 끝나면 목동으로 출동이다.”

사무실에 가자마자 팀원을 다시 소집해서 회의에 들어갔다. 지 이사님과 나눈 이야기를 전해주고, 지금 하던 일은 전부 김 대리가 알아서 처리하기로 했다. 팀장님과 정주임, 나와 준호 이렇게 2조로 나누어서 목동 수색작업에 돌입하기로 결정했다. 소문이 나면 괜히 곤란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히 행동하기로 하고, 찾는 구역도 서로 완전히 반대쪽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주말은 당연히 반납이다. 건물을 찾는다고 끝이 아니다. 멀쩡한 건물을 때려 부숴서 새로운 건물을 짓는 일이다. 그러니 가격도 적당해야 한다. 새로 짓는 비용보다 리노베이션이 가격은 적게 들지만, 구입비용이 너무 비싸면 앞으로 D&Y 휘트니스 클럽의 행보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가격뿐만 아니라 건물 주인이 건물을 팔 의사가 있는지도 중요하다. 주인이 팔 의사가 있다고 해도 입주하고 있는 사람들 또한 설득해야 한다.

조 팀장님 쪽은 백석중학교에서부터 훑어나가고, 우리는 목동 구장에서부터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마음에 차는 건물이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마 대리님. 이거 쉽지 않은데요. 여기 올 때까지만 해도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래도 찾아야지. 주말은 괜히 반납했냐. 죽어라 찾아보는 수밖에 없어.”

“아우, 길이 왜 이래요? 일방통행이 많아서 자꾸 이상한 곳으로 빠지네요.”

준호에게 운전대를 맡겼더니, 이 녀석이 길도 제대로 못 찾고 해매기 시작했다. 나도 목동은 좀 어렵다. 계속 살던 사람들에게는 이런 방식이 오히려 편할지 몰라도, 자주 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차로 전체가 일방통행인 목동은 미로 같은 느낌이 들뿐이다.

“내비게이션 있잖아. 잘 보고 다녀봐. 3일 넘게 동안 돌아다닐 건데. 익숙해져야지. 아마 그렇게 다니면 여기 사람들보다 더 익숙해질지도 몰라. 애인도 안사는 남의 동네 차로가 익숙해질 만큼 돌아다녀야 하다니, 정말 별짓을 다하는구나.”

운전을 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서울 토박이들도 서울지리에 모두 빠삭한 사람은 드물다. 그러니 지방에서 올라온 나는 더욱 그렇다. 마포를 제외하고 지리에 익숙한 곳은 녹번동, 상도동 그리고 일산 정도가 전부다. 그 세 곳의 공통점은 내가 길게 연애했던 여자들이 살던 동네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잠원동도 익숙해졌다. 준호와 함께 목동 지리를 잘 몰라 고생하고 있자니, 왜 진작 목동에 사는 여자 친구를 사귀지 않았을까하는 엉뚱한 후회까지 들었다.

“저기 저 건물은 어때요?”

“어디? 저 상가? 에이, 좀 작은데.”

원래라면 현대 하이페리온 쪽으로 갔어야 했는데, 준호가 차를 이상하게 모는 바람에 목동 6단지로 들어왔다. 준호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생각보다 규모가 큰 상가가 하나 있기는 했다. 그래봤자 생각보다 큰 상가일 뿐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크기가 좀 작고 아파트 단지 안이라 공사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지금까지 발견한 곳 중에서는 제일 쓸 만한데요.”

“일단 후보에 넣어나 보자. 그래도 쉽지는 않을 거다. 공사한다고 쿵쾅거리면 동네 주민들이 당장 항의할걸? 빨리 현대 하이페리온이나 찾아. 여기는 내가 목록에 올릴 테니까.”

“네.”

나는 길을 찾는 것보다 자동차 유리창에 얼굴을 바싹 대고 건물을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운전이야 아무나 해도 되지만, 건물에 대한 판단은 내가 더 낫기 때문이다. 아까 같은 상가 건물은 정말 최후의 보루일 뿐이다. 그곳에 있는 상가들을 내보내는 일만해도 보통일이 아닌데 준호는 아직 그런 판단을 하기에 너무 경험이 부족하다. 눈이 토끼 눈처럼 빨갛게 변할 만큼 열심히 건물들을 찾고 있는데, 왠지 낯익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준호야. 여기 아까 왔던 길이다. 내비게이션 있는데 길 찾기가 그렇게 어렵냐?”

“그... 그러네요. 죄송합니다. 이런 길은 생전 처음이라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너는 건물은 보지 말고, 그냥 길부터 찾아. 건물은 내가 찾을 테니까. 길도 익숙하지 않은 녀석이 자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빼앗기니까 헤매는 것 아니냐. 의욕이 넘치는 것은 좋은데, 그래도 네가 할 역할은 운전이야. 운전하면서 건물을 찾을 수 있었으면, 뭐 하러 두 명씩 나눠서 다녀. 네 명이 찢어져서 다니는 게 낫지. 안 그러냐?”

“네”

이 녀석이 이렇게 지독한 길치인 줄은 정말 몰랐다. 거기다가 의욕이 넘쳐서 그런지 자꾸 주변 건물을 살피다가 엉뚱한 곳으로 빠져버린다. 준호와 같이 일하면서 처음으로 저 녀석과 함께 마케팅 1부 3팀에 들어온 형석이가 생각났다. 그렇다고 내가 운전할 수도 없다. 나 또한 여기는 그렇게 익숙하지 않고, 준호에게 건물을 찾도록 맡기기에는 믿음이 가지 않았다.

Rrrr

“네. 팀장님.”

“건물은 좀 찾았어?”

“아니요. 길도 제대로 못 찾고 있어요. 팀장님은 어떠세요?”

“정 주임 집이 이 근처라서 길은 잘 찾아다니는데, 건물들이 전부 손바닥만 하다. 조금 큰 건물은 병원하고, 공공기관밖에 없다. 찾는 것부터도 이렇게 어려워서야.”

“그러게요. 이 녀석아! 여긴 또 아까 거기잖아. 아, 팀장님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자꾸 길을 헤매서요. 아무튼 일요일까지는 계속 찾아보고 월요일에 모여서 다시 이야기하시죠.”

“하하하. 준호 녀석. 전에 리뉴얼 갔을 때도 창원으로 안가고 통영으로 갔다고 하더니만. 아무튼, 수고해라.”

준호도 물건은 물건이었다. 내가 건물을 찾느라 잠깐만 한 눈을 팔면, 자꾸 엉뚱한 곳으로 빠졌다. 그래도 내버려 둬야 실력이 는다고 생각하고 관심을 끊었더니, 잠시 후 우리는 작은 산이 있는 막다른 길에 도착하고 말았다.

“여긴 또 어디냐? 용왕산? 남쪽으로 가자고 했더니, 결국 북쪽으로 와버렸네. 너 임마. 오늘 밤에 자지 말고 지도책 꺼내서 길부터 달달 외워! 내일도 이러면 내비게이션을 네 눈에 내장 시켜버릴거야. 알아들어?”

주눅이 들어 내 눈치만 보고 있는 준호를 내버려 두고 오랜만에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길게 빨았더니 답답한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드라이기로 열심히 녹여서 보일러를 돌렸더니 좀 시워찮더군요. 그런데 알고보니 보일러가 문제가 아니라 미친 날씨가 문제였네요. 기록적인 한파라니.ㅠ 체감 온도가 아니라 진짜 영하 15도라니. 강원도는 영하 20도로 떨어진 곳도 있더군요. 군대 있을 때 한강에서 혹한기를 치뤘는데, 그때보다 더 추운 느낌이에요. 건강 조심하세요.

잠시 후 한편 더 올리겠습니다.

가시기 전에 선추코 잊지마시고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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