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4 방귀 뀐 놈이 성낸다.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오늘은 여기 동지랜드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나를 보겠다는 의지로 일찍 온 줄 알았던 시연이는 지금 내 오두막(캐논 5D Mark 2)을 들고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주 신이 나셨다. 그냥 카메라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Dslr의 장점이 바로 찰칵거리는 셔터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묵직한 셔터감이다. 한번 저 손맛에 익숙해지면 일반 콤팩트카메라는 사용하기 힘들다. 낚싯대로 물고기를 잡는 것과 통발로 물고기를 잡는 정도의 차이라고 할까?
시연이는 전에도 내 카메라를 들고 몇 번 찍어보더니 그때 손맛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오자마자 내 손에 있는 카메라부터 대뜸 빼앗아 들고 저렇게 열심히 찍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래서 내가 함정을 준비했다. 바디만 배터리 합쳐 900g, L렌즈가 950g, 스토로브가 400g이다. 그리고 세로그립도 일부러 달았다. 다 합치면 대략 2.5kg이다. 말이 좋아 2.5kg이지 이것을 들고 몇 시간동안 사진을 찍으면 성인남자도 지친다. 그래도 나는 양심이 있어서 표준렌즈보다 더 무거운 망원렌즈가 든 가방과 삼각대는 뺐다.
“어때? 재미있어?”
“네. 선생님. 너무 재미있어요. 아직 완연한 가을도 아닌데, 아침이라서 그런지 날도 선선하고 벌써 가을이 온 느낌이에요. 히히”
“무게는 괜찮고?”
“음. 조금 무겁기는 해요. 그래도 아직은 괜찮아요.”
괜찮겠지. 암. 아직은 괜찮고말고. 콧등에 땀방울이 송송 맺혀있으면서도 아직은 괜찮지. 옆에서 두고 보기가 좀 안쓰러웠다. 혹시 오랜만에 볼링장에 가서 즐겁게 볼링을 쳤다가 다음날 곤란을 겪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큰 볼일을 보고 휴지로 닦으려는데 손가락이 부들부들 거리면서 잘 안 닦이는 느낌? 과장을 보태면 다음날 그런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남자는 몰라도 여자에게는 그만큼 버거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마음이 약해졌다. 저렇게 환하게 웃으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내가 괜한 심술을 부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세로그립과 스트로브는 분리했다. 그랬더니 더욱 신이 나서 놀이공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꼭 나비로 변해서 여기저기를 살랑거리며 노니는 것 같았다.
“헥. 헥. 그런데 선생님. 무겁기는 정말 무겁네요. 팔이랑 어깨가 너무 아파요.”
“그 봐. 내가 무겁다고 했잖아. 이리 와봐.”
지친 시연이가 숨을 할딱거리며 다가오자 괜한 장난을 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팔과 어깨를 정성껏 주물러줬다. 정말 다음날 화장실에서 곤란(?)을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 시원하다. 선생님. 우리 조금만 쉬었다가 가요.”
“그래. 사진 찍느라 고생했다. 그 카메라 괜찮겠어? 계속 사진 찍으려면 가방하고 삼각대도 들고 다녀야 하는데. 어때?”
“음. 크롭 바디는 시야가 좁아서 웬만하면 풀프레임 바디로 사고 싶었는데,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선생님은 등산도 좋아하시니까 카메라 들고 다니려면 아무래도 가벼운 카메라가 좋긴 할 것 같고. 어려워요.”
공부하라고 했더니 제대로 하긴 했나보다. 크롭 바디는 보통 우리가 눈으로 보는 모습보다 1.3배 ~ 1.6배 크게 보인다. 화질이 그만큼 떨어지고 풍경을 찍을 때 많이 불리하다. 대신 가격이 저렴하고 가벼워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많이 가지고 다니는 소형 Dslr은 그런 크롭 바디다. 처음부터 너무 좋은 카메라를 사용해봐서 그런지 욕심을 내는 것 같다.
“좋은 카메라를 사용해도 그냥 자동으로 놓고 찍는 사람들이 많아. 그냥 겉멋에 사는 거지. 그러니까 일단 저렴한 Dslr을 사서 셔터속도도 조절해보고, 조리개도 풀었다 조였다 해보고, ISO가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도 알아봐. 그렇게 연습하고 익숙해지면 그때 사자.”
동호회에 나가보면 가끔 엄청 고가의 카메라를 들고 와서 그냥 오토로 놓고 찍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좋은 카메라인 만큼 웬만하면 잘 나온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자신의 느낌을 담을 수 없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창가에 앉아 있는 여인의 모습을 몽환적으로 표현하기도 힘들고, 빛이 물 흐르는 듯 늘어지는 멋진 불꽃놀이 사진도 찍을 수 없다. 카메라에 대해 어설프게 알다보니 자꾸 그런 안타까운 모습이 생각나서 시연이에게도 오지랖을 떨고 있다.
“네. 그럴게요.”
“그래. 잘 생각했어. 그래서 선물이야. 이거 받아.”
“우와. 이게 뭐에요? 어머. 카메라네요. 렌즈가 두 개나 있는 것을 보면 Dslr인데 이렇게 작은 카메라도 있어요? 예뻐요.”
시연이가 아직은 중급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이 무리일 것 같아, 미리 다른 카메라를 사뒀다. 올 7월말에 올림푸스에서 나온 ‘펜’이라는 제품인데, 하이엔드 카메라와 Dslr을 합친 하이브리드 카메라다. 나도 사용해보지 않아서 성능은 모른다. 평은 그런대로 괜찮고, 함께 나온 가죽 케이스에 눈이 꽂혔다. 우리 예쁜 시연이가 저런 귀여운 카메라를 들고 나와 같이 여행을 다닌다면 정말 즐거울 것 같다는 나의 사심이 이 카메라를 사게 된 가장 큰 원인이다. 거무튀튀한 흉기 같은 Dslr을 들고 다니는 것은 범죄다.
“이걸로 연습이나 하라고 산거야. 예쁘다니까 다행이네.”
아! 나는 정말 말을 왜 이렇게밖에 못하는 것일까? ‘너를 위해 준비했어.’ 이건 좀 느끼하다. ‘이걸로 사진 찍는 모습이 너무 예쁠 것 같아 샀어.’ 음. 이정도로만 말해도 되는데, 잘 안 된다.
“고마워요. 선생님. 그런데 너무 선물을 많이 해주시는 것 아니에요? 전 이 까르띠에 브레이슬릿만해도 너무 좋은데. 목걸이도 자주하지만 이 팔찌는 매일 해요.”
시연이가 팔을 흔들며 내가 선물해준 스웨이드 재질의 팔찌를 흔들면서 너무 좋아했다. 작고 귀여운 세 개의 펜던트에 달린 다이아가 아침 햇살을 받고 영롱하게 빛났다. 그녀의 길고 가느다란 손목과 너무 잘 어울렸다. 이래서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비싼 선물을 사주나 싶었다. 명품 선물을 원하는 여자들을 비꼬는 개그프로그램을 보면서 ‘저건 선물을 해주는 남자가 바보야.’라고 외쳤던 나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렇게 좋아해주니 내가 더 고마워. 앞으로 사진도 많이 찍어. 그리고 서울로 다시 가면 주말에도 여유가 생길 테니까 같이 서울근교로 데이트 겸 사진도 찍으러 다니자.”
“정말요? 이제 안 바쁜 거예요? 너무 좋아요. 히히히.”
내가 시간 여유가 생긴다고 하자, 선물을 줄 때보다 더 기뻐하며 내게 안겼다. 이 녀석이 요즘 와서 자꾸 덥석덥석 안겨서 큰일이다. 시연이의 고운 입술을 보니 예전에 맛봤던 딸기향이 생각났다. 다시 맛보고 싶었다. 나를 올려다보는 시연이의 눈이 감겼다.
“잘하는 짓이다.”
갑자기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놀란 시연이와 나는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고개를 내렸더니 장희 이 밤톨 같은 녀석이 언제 왔는지 내 옆에 서 있었다. 망할 녀석. 이 중요한 순간에 방해를 하다니.
“흠흠. 여긴 어쩐 일이냐?”
“어쩐 일이긴. 내가 못 갈 곳이 어디 있다고. 신성한 놀이공원에서 이런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려고 했단 말이지?”
“선생님. 이 애는 누구예요? 너 몇 살인데 우리 선생님에게 반말을 하니? 중학생? 중학생이라고 하기에는 목소리가 좀 나이가 든 것 같은데. 고등학생이야? 아무리 아직 뭘 모르는 학생이라도 그렇지 우리 선생님 나이가 얼만데 그렇게 반말을 하니?”
갑자기 나타난 장희 때문에 당황을 해서 뭐라고 변명이라고 하려고 했는데, 난데없이 시연이가 끼어들었다. 그런데 시연이가 장희를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으로 착각을 했다. 얼굴이 시뻘게진 장희의 표정을 보니 웃음이 나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럼 넌 몇 살인데 반말을 해. 어린 것이 발랑 까져서 이런 공공장소에서 키스나 하려고 하고. 동수 애인이야?”
“어머머. 얘, 말하는 것 좀 봐. 20살이다 왜. 너 자꾸 반말하면 이 언니한테 혼난다. 선생님. 이 아이 누구예요? 자꾸 반말 받아주지 마세요. 버릇 나빠져요.”
“크흐흐흐. 그. 그게 그냥 아는 여자야. 신경 쓸 것 없어. 하하하. 아이고, 배야.”
시연이와 그녀보다 20cm는 작은 장희가 서 있자 정말 재미난 광경이 연출되었다. 시연이는 정말 어른이 된 것처럼 양 손을 허리에 올리고 장희를 나무라고, 시연이의 나이를 알고 있는 장희는 기가 막혀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배를 잡고 낄낄 거릴 수밖에 없었다.
“야! 마탱이. 자꾸 웃기만 할래? 빨리 상황정리 안 해?”
“아야. 이젠 발로 찬다? 어쭈.”
“선생님 괜찮으세요. 이 꼬맹이 정말.”
“악! 아파. 야! 지금 네가 내 머리를 때린 거야?”
장희가 화를 내며 내 정강이를 걷어차자 화가 난 시연이가 장희에게 꿀밤을 먹였다. 이러다간 정말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맞는 모습을 보고 시연이가 정말 화를 냈다. 우리 남자 동기들에게는 그렇게 깡다구 있게 덤비던 장희는, 시연이의 무서운 기세에 겁을 집어먹은 표정이었다. 아무리 덩치에서 차이가 난다고는 하지만 시연이보다 훨씬 덩치가 좋은 우리에게도 덤비던 깡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나는 두 여자 모두에게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특히 내게 한없이 천사 같던 시연이가 화를 내는 모습에 나도 많이 놀랐다.
“시연아. 진정해. 왜 그렇게 화를 내. 응?”
“예전에 남자들에게 선생님이 맞는 거 보고 가만히 있었던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됐어요. 그때는 그런 일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지만, 앞으로 선생님이 맞는 일이 생기면 저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 엉엉.”
말을 하던 시연이가 내게 안기면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사과는 나중에 하더라도 일단 시연이 부터 달래야 할 것 같아서 장희에게 자리를 피해달라며 고갯짓을 했다. 그래도 눈치는 있는 녀석인지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채로 자리를 피해줬다. 시연이의 우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그때 일에 대해 아무 말도 없어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그녀 나름대로 한이 맺혔던 것 같았다. 게다가 그날 나는 일부러 그녀에게 차갑게 굴었었다. 시연이의 예민한 반응이 이해가 갔다. 그리고 나를 이렇게 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나 따뜻해졌다.
“그래도 안 돼. 다시 그런 일이 있어도 시연이는 가만히 있어야 해. 내가 왜 그때 같이 싸우지 않고 맞고만 있었는지 알아? 혹시라도 네가 다칠까봐 그랬어. 괜히 선생님이 이성을 잃고 한 녀석에게라도 달려들었다가는 남은 놈들이 네게 달려들지도 모르는 일이었어. 그러니까 혹시라도 그런 일이 다시 생기면 절대 나서지마. 나도 네가 다치는 게 싫어. 알아듣지?”
시연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내 등 뒤에서 움찔움찔하던 모습이 놀라서 그런 게 아니라 화가 나서 튀어나가려 했던 행동이라고 생각하니 식은땀이 주룩 흘렀다. 정말 큰일 날 일이다. 건장한 남자가 휘두르는 주먹은 여자에게는 흉기에 가깝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시연이를 구석에 막아놓고 그놈들에게 맞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런데 시연아. 아까는 선생님이 너무 웃겨서 말을 못했는데, 아까 그 여자애 사실은 내 대학 동기거든. 미리 말을 안 한 내 잘못이 큰데 그래도 이따 가서 같이 사과하자. 그 녀석 엄청 삐졌을 거야.”
“예? 저. 정말요? 아이, 선생님. 그걸 지금 말씀해주시면 어떡해요. 어쩌지. 그것도 모르고 반말에 꿀밤까지 먹였으니. 아우. 나 어떡해. 선생님 그 언니 많이 화났을까요?”
내 말에 놀란 시연이는, 품에 안겨 서럽게 울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얼굴이 빨개져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착한 그녀로 돌아왔다.
“괜찮아. 그냥 가서 미안하다고만 하자. 속 좁은 녀석은 아니니까. 금방 풀릴 거야. 안심해. 자 얼른 가자.”
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시연이의 손을 잡고 장희가 있는 사무실로 향했다.
◆ 홍대 OO출판사 옆 카페
카페테라스에 앉은 시연과 진경은 앞에 있는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즐거운 수다를 떨고 있었다.
“동수가 예전에 했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었어. 사람은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줘야 가장 완전한 존재가 된다고. 그래서 후배들이 동수를 부를 때는 항상 ‘동수 형, 동수 오빠, 동수 선배’라고 부르게 했지.”
“그래요? 멋있다. 우리 선생님.”
“으이그. 뭔들 안 멋있겠냐? 그리고 아이참. 이 이야기를 해야 하나.”
“뭔데요? 네? 말해주세요.”
진경이 뭔가 주저주저 하는 모습을 보이자 시연은 그녀를 재촉했다.
“에잇, 모르겠다. 나도.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만. 동수는 예전에 여자 친구도 사귀어봤어. 혹시 그런 이야기 싫어?”
“휴. 어쩔 수 없죠. 뭐. 선생님도 나이가 있으니. 그래도 지금은 저랑 만나잖아요.”
진경의 말에 잠깐 의기소침해졌던 시연은 금방 화색을 띠며 대답을 했다.
“그래. 그건 좋은 자세야. 남자든 여자든 상대의 과거를 가지고 찌질하게 굴면 그건 정말 한심한 짓이야. 지금 서로 좋아하면 되는 거지. 과거가 뭐가 중요해. 안 그래?”
“네. 맞아요. 선생님은 앞으로 계속 제 차지가 될 거에요. 히히”
“아무튼, 예전에 들었는데 동수는 연인사이에서는 꼭 이름을 불러야 한다고 그러더라. 그게 자신의 개똥철학이래나 뭐래나.”
진경은 ‘여자 친구들에게 그렇게 부르라고 시키더라.’라고 말을 하려다가 괜한 분란이 날까봐 말을 돌려서 표현했다.
“그래요? 저는 아직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
“사귄지 얼마나 됐어?”
“그게 언제 딱 사귀자고 말한 것이 아니라. 그냥 느낌으로는 두 달 정도 된 것 같아요.”
“어떤 느낌으로?”
“음. 제가요. 공원에서 같이 걷는데 제가 선생님께 팔짱을 꼈거든요. 선생님이 제 팔짱을 풀까봐 조마조마했는데 그냥 가만히 계시는 것 아니겠어요? 그때 ‘아, 선생님이 내 마음을 받아주는 거구나.’라고 생각했죠. 그 다음 만났을 때는요. 제가 팔짱을 꼈는데 갑자기 팔짱을 풀더니 제 손을 확 잡는 거 있죠.”
“어머어머. 정말이야? 꺄악. 생각만 해도 심장 떨린다.”
시연은 수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눈빛만은 초롱초롱 빛을 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듣던 진경도 흥미진진한 모습으로 시연의 대화를 경청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키스를 나눈 이야기까지, 여자들의 수다는 끝이 날 줄 몰랐다.
“그런데 요즘은 이상해요.”
“뭐가 이상한데?”
“키스도 잘 안 해주시고, 그냥 가볍게 뺨에만 살짝 뽀뽀를 하고 가세요. 왜 그럴까요? 친구들은 ‘마음이 변했네.’ 하면서 이상한 소리만 하는데 저도 점점 불안해져요.”
“호호호. 아. 이것 참. 어린 아기에게 이런 이야기까지 해야 하나 모르겠네.”
“언니이~. 저도 이제 안 어려요. 뭔가 알면 좀 가르쳐 주세요. 네? 저 정말 답답해요.”
진경의 음흉한 미소에 시연은 마음이 답답해져서 계속 조르기 시작했다.
“알았어. 너도 이제 성인이니 알 것은 알아야지. 최근에 포옹을 하면 동수가 갑자기 엉덩이를 빼거나 그러지 않아?”
“어머. 그걸 어떻게 아세요? 혹시 언니 우리 선생님이랑 사귀었던 것 아니죠?”
“얘는. 별소리를 다한다. 어린 소녀여. 남자들은 다 똑같단다.”
“어떻게요?”
“음. 남자는 여자를 만나면 말이다. 특히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면 성적으로 흥분을 하게 되어 있어. 그런 것은 성교육을 배웠지?”
“네? 그럼. 서. 선생님이 저를?”
진경의 이야기를 듣던 시연의 표정이 급격히 빨갛게 변했다.
“왜? 그런 게 싫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연인 사이인데, 남자가 여자에게 성적매력을 느끼지 못하면 그게 더 이상한거야. 그걸 나쁘게 생각하면 안 돼.”
“아. 아니요. 나쁘다는 게 아니라. 정말 선생님이 나를 여자로 봐주는 건가 싶어서요. 부끄럽기도 하고. 전 선생님이 키스도 안 해줘서 제가 매력이 없는 줄 알았거든요.”
“문제는 네가 동수를 자꾸 선생님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이지. 아마도 그게 그 녀석의 양심을 콕콕 찌르고 있을 걸? 그러니 자꾸 너를 피하는 거지.”
“그럼 어떡해요? 그런 상황에서 여자가 적극적으로 나가도 남자들은 싫어한다던데.”
“일단 ‘동수씨’라고 불러. 처음에는 어색할지 몰라도 자꾸 하면 익숙해질 거야. 네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니까 동수가 정말 선생님처럼 행동하잖아.”
“그건 좀 부끄러운데. 그냥 다른 선배님들처럼 오빠라고 부르면 안 돼요.”
“노! 절대. 네버. 그러지 말고 자꾸 해 버릇 해봐. 동수는 이름을 좋아해요.”
진경은 예전에 동수가 동기들과 술자리에서 여자 친구가 자신을 ‘오빠’나 ‘자기’로 부르는 것이 너무 싫다고 했던 말을 분명히 기억한다. 그때는 별 이상한 녀석 다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연이가 갑자기 그런 말을 꺼내니 화들짝 놀라 강하게 선을 그었다.
“부끄러운데. 그래도 선생님이 좋아하신다니까 노력은 해봐야죠.”
“그래. 그렇게 부르기 시작하면 동수도 널 진지하게 여자로 바라 볼 거야.”
“정말 그렇게 될까요?”
“그럼. 이 언니 말을 믿어. 알았지?”
“네. 믿을게요. ‘동수씨’ 히히히. 아이 간지러워.”
시연은 진경이 구경을 하든 말든 열심히 ‘동수씨’라는 단어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제 글이 ‘왜 퓨전이냐.’라는 질문이 올라와서 말씀드립니다. 판타지 요소가 아주, 아주 살짝 있긴 있습니다. 주인공 할아버지의 등장이죠. 사실 그것보다는 관심을 받아보려는 작가의 꼼수가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혹시 제가 예전에 후기에서 한번 이야기 한적 없나요? 그래도 죄송합니다. 작가가 관심을 받아보려고 영악한 짓을 좀 했습니다. ㅠ
그리고 그골목님과 Demodex님에게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쪽지와 코멘트를 통해 오타를 수정해주시는데, 그게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