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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57화 (57/424)

00057  꿩 대신 닭.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나는 몰래카메라를 찍는 그 순간에도 놀이공원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이곳에 온 본분을 잊지 않았다. 반짝이는 전구와 환하게 켜진 회전목마 그리고 하늘로 쏘아올린 폭죽은 멋진 하모니를 이뤘다. 그런데 옆에서 그 장면을 같이 지켜보던 작가가 ‘사람 없는 곳에서 저런 식으로 프러포즈를 받았으면 참 좋겠다.’는 말을 하는 바람에 또다시 새로운 일을 벌였다. 이름 하여 프러포즈 이벤트 대행.

그날부터 나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프러포즈 이벤트에 대해서 알아봤다. 별의 별 프러포즈 이벤트가 다 있었다. 간단하게 식당에서 하는 프러포즈부터 아이스링크나 배를 빌려서 하는 프러포즈까지 규모와 가격이 각양각색이었다. 놀이공원에서도 프러포즈 이벤트를 하고 있긴 했다. 공식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는 것이 값이었다. 전구들이야 한 번 설치하면 끝이고, 폭죽 몇 방 터트려주는 것치고는 300만원이라는 돈은 너무 비쌌다. 찾는 손님들이 많아 그런 자잘한 이벤트는 신경도 안 쓰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내부에 숙소가 있기 때문에 늦은 시간에도 추가근무 수당만 지급하면 쉽게 인력 지원도 할 수 있고, 회전목마와 전구를 밝히는 데 사용되는 전기세만 들이면 된다. 폭죽도 불꽃놀이 축제처럼 비싼 것도 필요 없다. 오늘 준비한 폭죽 값도 10만 원 정도 비용이 들었으니 대략 150만 원의 가격만 책정해도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문제는 영업이다. 여자 친구나 예비 신부를 위해 그 정도 돈을 지불할 사람들은 꽤 있다. 그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이곳으로 끌어들이느냐가 문제였다.

나는 며칠 동안 그 일을 위해 골몰했다. 우선 달인 찾아 삼만리 작가에게 전화를 해서 몰래카메라 촬영 분량 전부를 부탁했다. 다행히 그 동안의 호감 때문인지 쉽게 자료를 보내줬다. 그 화면을 가지고 홍보팀 직원들과 함께 영상홍보자료와 사진홍보자료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자료들을 들고 각종 유명 중매업체를 찾아갔다. 그 정도 돈을 지급하기 가장 좋은 사람들은 그래도 중견기업 이상의 직장에 다니고 있는 직장인들이고, 그 사람들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결혼정보업체다.

전화로 결혼정보업체 직원과 간단한 설명을 하고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안녕하세요. 전화로 연락드린 마 동수대리입니다.”

“네. 어서 오세요. 우선 여기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여기는 저희가 준비한 자료들입니다.”

“네. 일단 보고 말씀 나누죠.”

오늘 나와 약속한 업체에서는 두 명의 직원이 나와의 미팅을 위해 회의실에 준비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관심은 있어보였다. 나는 준비한 영상과 사진을 일단 보여줬다.

“괜찮네요. 이 정도로 이벤트를 하려면 비용은 얼마나 드나요?”

“150만원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가격이 좀 비싸네요. 고객들이 관심을 가질지 모르겠네요.”

“요즘 직장인들은 바빠서 대행업체를 이용하는 분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곳에 결혼정보 등록을 한 분들 수준이라면 결혼을 위한 한 번의 이벤트 치고는 부담되는 가격도 아닙니다. 프러포즈를 위해 본인이 직접 알아보기도 하고 웨딩컨설팅 쪽에서 소개도 해주기도 하죠. 이벤트를 맡기는 분들 입장에서도 불안할겁니다. 그런데 저희는 동지 그룹에서 직접 운영하는 놀이공원에서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우선 믿을 수 있죠. 거기다가 결혼하는 분과 연결해준 고마운 커플매니저가 직접 추천을 한다면 안심하고 이용하실 겁니다.”

“그래서 소개료는 얼마나 생각하세요.”

우리가 직접 영업을 뛸 수 없으니 결국 소개료를 얼마나 매력 있게 제시하느냐에 프러포즈 이벤트 사업의 성공여부가 달려있다.

“15% 드리겠습니다.”

“23만 원요? 좀 더 올려주세요. 그래야 저희 커플매니저들도 열심히 홍보를 하죠.”

그렇게 티격태격 가격협상을 하다가 내가 미리 예상한 가격인 30만원으로 합의를 봤다.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래도 이정도 메리트를 줘야 열심히 홍보를 할 것이다. 중매로 만난 여자와 결혼을 하고 싶어서 커플매니저에게 도움을 청하면 가만히 앉아서 소개만 해주고 30만원을 번다.

또는 결혼 결정을 하고 감사하다며 연락이 와도 ‘혹시 프러포즈는 하셨어요. 결혼을 하기로 했다고 해도 요즘은 프러포즈 정도는 꼭 해줘야 하는데.’라며 옆에서 살짝 부추기기만 하면 된다. 세상이 변해도 아직 한국 남자 중에는 프러포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꽤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대강 멋없이 결혼하자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때 커플매니저가 남자들을 잘 공략해주면 결혼정보업체는 쉽게 돈을 벌어서 좋고 우리는 일거리가 생겨서 좋다. 그 동안 수많은 고객들을 상대했던 그들에게는 굉장히 쉬운 일이다.

나는 홍보팀에서 만든 이벤트관련 안내책자를 50권정도 전해주고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열흘간 20곳의 유명 결혼정보업체와 30곳의 웨딩컨설팅업체를 찾아가 프러포즈 이벤트를 홍보하고 협의를 했다. 웨딩컨설팅업체의 경우 여러 이벤트회사와 연결되어 있었지만 직접 운영하는 경우가 아니면 선택은 고객이 하는 것이지 자신들은 추천만 한다며 나의 제의를 받아줬다.

정신없이 40일 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블로그를 통한 입소문과 공중파 방송의 파괴력 덕분인지 찾은 고객들이 꾸준히 증가했다. 퍼레이드에 참여를 신청하는 고객들의 숫자도 점점 늘었고, ‘접시가 깨지는 날’과 ‘우리는 무적의 솔로부대다.’ 할인 혜택은 네이버의 FunUp 키워드에 우연히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탄 덕분에 일부러 찾아오는 고객들도 조금은 있었다.

지난주에 개최한 인디밴드 페스티발은 기대보다 약간 못 미치는 성과를 보였다. 그래도 절반의 성공은 거뒀고, 앞으로 꾸준히 인디밴드들을 초대해서 공연할 기회를 주다보면 조금씩 발전해 나갈 것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프러포즈의 경우는 커플매니저와 웨딩컨설턴트의 활약 덕분인지 벌써 5건의 이벤트를 진행했고, 3건의 예약 이벤트가 대기 중이었다.

“윽, 여름이라서 그런지 졸리네요.”

“그러게. 그래도 예년의 방학기간보다 손님들이 많이 늘어서 안심이야. 주말 아침에 사진 찍기 위해 찾아오는 팀들도 꾸준히 있고, 프러포즈 이벤트를 한다는 사람들도 늘고 있고, 늦은 오후시간이라고는 하지만 땡볕에 야외 결혼하겠다는 용감한 커플도 등장하고 이대로만 쭈욱 가면 큰 걱정은 없겠어.”

“그거 아세요. 땡볕에 결혼한다는 커플. 여자가 벌써 임신 3개월이래요. 괜찮은 호텔예식장은 예약이 꽉 찼고, 결혼식은 급하고 여자가 제대로 된 결혼식을 안 해주면 결혼안하겠다고 버텨서 결국 여기서 하는 거잖아요.”

“컥, 그런 거였어? 땡볕에 위험하지 않겠어?”

“그래도 원래 거기가 좀 시원한 곳이고, 일부러 늦은 오후에 하니 나무그늘 덕분에라도 어떻게든 되겠죠. 몰라요. 여자 쪽에서 우겨서 하는 것이니 자기 몸 관리는 알아서하겠죠.”

“그래도 최대한 무리 안 가도록 신경 좀 써. 우리로서는 처음 하는 결혼식인데 괜히 사고라도 나면 소문만 안 좋아져.”

“네. 안 그래도 미리미리 준비해두라고 했어요. 혹시 몰라서 구급차도 준비시켜뒀다니까요.”

성과가 조금씩 보이자 나와 고 이사는 조금 한가해져서 종종 이런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내 능력으로는 여기까지였다. 중간에 가상결혼식을 진행할 때 고 이사가 시연이와 함께 해보라고 졸랐지만 단호하게 거절해줬다. 땡볕에 고생하고 싶지도 않았고, 신성한 결혼식에 연습 따위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재혼하는 커플도 아니고 단 한번뿐인 결혼식에 익숙해져서 뭐하겠는가 싶었다.

“쾅”

고 이사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한가롭게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갑자기 웬 미친 꼬마가 사무실 문을 발로 박차고 등장했다. 한여름에 덥지도 않은지 벙거지 모자를 깊게 눌러써서 누군지 알아보기도 힘든 꼴로 서 있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제정신은 아닌 듯 보였다.

“꼬마야. 여기 아무나 함부로 들어오는 곳이 아니야. 물어볼게 있으면 입구에 있는 안내실을 찾아가야지.”

나는 책상에 다리를 올린 채 비스듬히 누워 잡지책을 보던 자세 그대로 힐끔 쳐다보면서 꼬마를 내쫓으려고 했다.

“저건 또 무슨 개뼈다귀 같은 놈이야. 넌 조금 이따가 보자. 야, 누가 놀이공원을 이따위로 만들어버리래.”

“오랜만에 만났으면 인사부터 안하고. 그리고 내가 한거 아냐. 저기 저 친구가 했지. 난 아무 잘못도 없어.”

돌아가는 꼴을 보니 고 이사와 알고 지내는 눈치였다. 그런데 갑자기 내 핑계를 댈 것은 또 뭐람. 그리고 지금 놀이공원 꼴이 어때서 저러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꼬마여자아이가 가정교육은 어떻게 받았는지 어른보고 ‘야’라니, 이건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거다.

“뭐야. 진짜야? 저 개뼈다귀 같은 놈이 감히 우리 놀이공원을 이따위로 만들었단 말이지 너 거기 가만있어.”

고 이사에게 소리를 지르던 정신 나간 꼬마여자아이는 갑자기 화살을 내게 돌리더니 미친 황소처럼 돌진해왔다. 나는 갑작스러운 행동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기세로 나와 부딪치면 꼬마만 다칠 것 같아 녀석의 머리를 한 손으로 막아버렸다. 팔 길이가 워낙 차이가 나다보니 녀석이 손이며 발로 아무리 나를 때리려고 해도 발버둥에 지나지 않았다.

“이사님. 이 미친 꼬마는 누굽니까?”

“응? 그 꼬마? 내 여동생.”

“네에? 무슨 이렇게 작은 여동생이 있다고?”

“왜 이야기 했잖아. 미국에서 공부하는 여동생이 하나 있다고. 꼬마처럼 보여도 키가 150cm는 훌쩍 넘어. 너무 무시하지 말라고. 크크크, 미친 꼬마래. 아이고, 웃겨. 미친 꼬마 크크크.”

나는 고 이사의 이야기에 정말 깜짝 놀랐다. 키가 152~3cm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애들이나 입는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벙거지 모자를 눌러썼는데 누가 회장님 막내딸이라고 생각했겠나? 게다가 회장님 딸이라는 여자가 자기 오빠보고 ‘야’라니. 나는 놀란 마음에 머리위에 올린 손을 황급히 놓아버렸다.

“쿠당탕”

내가 손을 놓아버리자 나를 한 대라도 쳐보겠다고 덤벼들던 꼬마 아니지 회장 딸은 자기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의자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회장 딸이라는 여자는 다치지도 않았는지 벌떡 일어나 다시 나에게로 달려들려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어. 너 마탱이 아니야? 오. 마탱이 오랜만이다.”

“누구신데요?”

“나야. 나. 나 몰라?”

마탱이라니 군대 간 이후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별명이었다. 그리고 그 별명으로 나를 부르는 사람은 한 명 뿐이다. 자신의 얼굴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회장 딸은 눌러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며 나를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모자를 벗자 아이라고 착각할 만큼 귀엽게 생긴 외모가 눈에 들어왔다. 맙소사. 그녀였다. 대학 동기 중에 유일하게 나를 마탱이라고 부르던, 그리고 군대를 가자마자 사라져버려 소식을 알 수 없었던 고장희였다.

◆ 양지선 팀장실

양 팀장은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은지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앞에 있는 이 대리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이 대리.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이 대리가 팀원으로 대신 들어간 다음부터 윤 스포츠센터와의 협상이 진행조차 되지 않고 있잖아요. 자신 있다더니 이게 뭐에요?”

“면목 없습니다. 열심히 한다고는 했는데 만날 이상한 일만 시키고. 저도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마 대리가 어떻게 사람들을 구워삶아 놨는지 도무지 진척이 없습니다.”

“최선만 다하면 뭐해요. 성과가 없는데. 됐어요. 나가보세요. 이번일은 제가 처리하겠어요. 이 대리 때문에 내가 무리해서 일을 진행시켰는데 이런 꼴을 보이다니 정말 실망이에요. 뭐해요. 나가봐요.”

“네”

이 대리는 양 팀장의 타박에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결국 내가 나설 수밖에 없네. 무능한 이 대리 같으니라고. 아니지 어쩜 잘된 일일지도 몰라. 윤 사장만 유혹할 수 있다면 이번 프로젝트 자체를 내 성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 나이도 나보다 조금밖에 차이나지 않고 스포츠센터 사장이라서 그런지 체격도 좋으니 애송이 마 대리보다 더 매력적일지도 몰라. 아~, 생각만 해도 벌써 달아오르네.”

양 팀장은 살짝 걷어 올린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얕은 신음소리를 내며 요염하게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새로운 인물의 등장입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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