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1 뛰어야 부처님 손바닥, 뛰어봤자 벼룩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래 대략적인 사항은 알아봤나?”
“네. 충분히 승산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보게.”
“제가 알기로 요즘 강남 쪽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돌잔치를 미리 예약해야하고, 좋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2~3년 정도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보통의 지역이라면 수익창출이 어렵겠지만 여기 고객들에게는 돈 보다는 믿을 수 있는 그리고 안전하고 좋은 시설을 갖춘 곳이냐가 더 중요합니다.”
“음. 그렇겠지.”
“일단 이곳에서 계신 고객님들에 대한 간단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자료 여기 있습니다.”
나는 설문조사한 결과를 윤 사장님께 건넸다. 시연이와 다른 직원과 함께 각 지역에 있는 스포츠 클럽과 외곽에 있는 컨트리클럽까지 찾아가서 설문을 받아온 내용들이었다.
“생각보다 아이가 있는 집들이 많구먼. 손자, 손녀까지 포함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보시는 것처럼 우리가 높은 수준의 전문적인 탁아시설을 운영한다면 이용하실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19%가 그렇다고 대답했고, 47%가 일단 상담은 받아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결국 66%의 회원들이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추고 전문적인 인력으로 운영만 한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21%의 회원들도 아직은 믿을 수 없다고 답하셨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유보적인 입장인데, 이 또한 우리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탁아시설을 만드느냐에 따라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음. 일단은 우리 윤 스포츠 센터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는 있다는 이야긴가 보군.”
“맞습니다. 의외로 전원주택에 살고 계신 컨트리클럽 회원들의 관심이 많았습니다. 자식들 대부분이 강남이나 서초에 살고 있으니 자연히 관심이 갔던 모양입니다. 안정성을 갖춘 최고급 시설과 경력이 우수한 직원들만 영입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제는 수익성입니다.”
“그래서 수익성은 어느 정도를 예상하나?”
“우선 출퇴근 때문에 매일 같이 아이를 맡기는 경우를 생각해봤습니다. 이곳에서 운영하게 될 탁아시설의 가장 큰 수입원입니다. 저는 생후 1년부터 생후 5년까지의 아이를 6개월 단위로 나누어 각각 5명씩만 받아 운영할 계획입니다. 그럼 총 50명의 아이를 모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반기별로 회원을 모집을 할 생각입니다. 회비는 1년의 비용을 한꺼번에 내면 2800만원, 6개월의 경우 1500만원의 금액을 받을 예정입니다.”
“도둑놈이구먼. 그냥 일 년에 2800만원을 받는다고 계산하면 총 14억이로군.”
“과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콘덴츠의 개발입니다. 스포츠 센터인 만큼 주가 될 것은 유아들의 건강한 발육을 위한 프로그램이겠지만 사고력 증진이나 지능 개발을 위한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할 생각입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부가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의 허영심을 자극하여 최대한 돈을 뜯어낼 생각이다. 짐보리에서 보고 깨달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나와 내 동생은 어머니께 신나게 두들겨 맞으면서 자랐다. 사고력 증진? 지능 개발? 그런 것 없었다. 그냥 동네 애들과 놀고, 흙장난 치고, 싸우고, 그러다가 어머니께 걸려서 두들겨 맞고, 그렇지만 어머니의 사랑을 먹고 자란 덕분에 웬만한 부잣집 아이들보다 잘 자랐다고 생각한다. 부자들은 바쁘다. 그래서 아이에게 가장 많이 투자하는 것이 돈이다. 난 그 돈을 조금 나누어 가질 계획을 짰을 뿐이다.
“방법은 있고? 우리 클럽 회원들에게야 그렇게 부담스러운 금액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만한 가치는 보여야 할 텐데?”
“맞습니다. 이곳 전문 트레이너가 유아행동 전문가와 함께 전문 스포츠 연구소에 의뢰해 그 나이 또래에 가장 적당한 운동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콘덴츠들은 유명한 외국 기관이 사용하는 프로그램들을 독점 계약을 맺고 직접 사와서 활용할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영국과 미국의 상류층 아이들이 받는 프로그램을 사와서 광고한다면 강남지역 부모의 성향 상, 적극적인 반응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비난을 받을 수도 있어?”
“물론 귀족 탁아소라고 비아냥거림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큰 광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하시는 사회사업의 규모를 확장해서 탁아소 운영을 통해 얻는 이익의 일부분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발표한다면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강남 부모들이 그렇게 한다고 하면 자기 자식에게도 그런 교육을 받게 하고 싶어 하는 평범한 부모들이다. 가끔 보면 부자들의 지갑을 털려고 만들었던 사업들이 오히려 허영심이 약간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더 큰 인기를 얻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 밖에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뭐가 있나?”
“시설을 제외한다면 아이들의 먹거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 문제는 외주를 줘서 해결할 생각입니다. 지금 현재 강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어린이집에 납품하고 있는 업체에 문의를 넣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1층에 작은 매장을 만들어 직접 판매도 병행할 예정입니다. 그곳 매장에서는 아이들 먹거리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입을 수 있는 모든 스포츠 의류도 함께 판매하면 효과가 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명 스포츠 브랜드와 외국 명품 의류회사와 협의를 거쳐 진행할 계획입니다.”
“허허허. 아이들이 스포츠 의류를 얼마나 입는다고?”
“결국은 상술입니다. 아이들이 입으면 너무 예쁜 옷, 누구나 알아주는 명품 브랜드, 부모가 입는 스포츠웨어를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패밀리 룩 등을 이용한다면 부모들은 충분히 지갑을 열지 않을까요?”
“음. 비용의 가장 큰 부분은 인력에 들어가겠지?”
“저는 20명 정도의 직원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10명은 경력직으로 뽑고, 나머지는 계약직으로 채울 생각입니다. 만약 주말과 저녁 타임도 고객들이 원한다면 계약직 직원들을 더 뽑아 보충할 생각입니다.”
“그렇군. 그래서 얼마 정도의 순이익을 기대하고 있는 건가?”
“연간 4~5억 정도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매장 운영이나 주말, 저녁 타임 활용은 기대치만 있어서 제외했습니다.”
“당장의 수입보다는 사업을 안정화시켜 전 지점으로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겠군.”
“맞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래 뭔가?”
“능력 있는 책임자를 수배해야 합니다.”
“책임자?”
“네. 솔직히 제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 사업은 전문가와 함께 해야지 제대로 만들 수 있습니다. 사장님께서 이 스포츠센터를 세울 때 건물 구조 하나하나에 신경 쓰셨듯이 능력 있는 책임자를 찾아야 제대로 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게 선행되지 않고는 결국 공염불에 그칠 뿐입니다.”
“그것은 걱정 말게. 내가 이미 섭외해뒀어. 미국에서 대형 키즈센터 중간 관리자로 있던 후배 녀석인데 내가 슬쩍 떠 봤더니 오고 싶다고 하더군. 자네 보고를 듣고 가능성이 있으면 들어오라고 할 생각이었네.”
정말 능구렁이 같은 분이다.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하지 않았어도 됐다. 나는 고생고생 해서 책임자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더니, 이렇게 사람을 허무하게 만드신다. 그래도 다행이다. 사장님 후배를 간판으로 이용해서 잘 활용하면 좋은 광고가 될 것 같았다.
이미 계획은 어느 정도 짰다. 사장님 후배는 다음 주 쯤이나 들어올 예정이라고 한다. 회사에도 이것에 대한 보고는 했다. 과장님은 우리가 진출할 지역에서도 가능할지 기대를 하셨지만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강남 쪽이 조금 특이할 뿐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괜히 보고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진행했다가는 성공해도 실패해도 찜찜할 것 같았다.
탁아 시설에 관한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현우와 김 대리의 관계에도 조금씩 진전이 보였다. 헐. 정말 대박이었다. 까칠한 현우가 살랑거리는 것도 웃기고, 차가운 김 대리가 현우 앞에서 미미하지만 표정의 변화가 보인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짚신도 제 짝이 있나보다. 괜히 장난이 치고 싶었다.
“여. 현우야. 안녕하세요. 김 대리님. 요즘은 왜 저랑 같이 퇴근 안하세요?”
내 눈과 마주치는 순간 미미하게 움직이던 김 대리의 표정이 다시 굳었다. 그리고는 현우와 나를 두고 대답도 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이젠 사람을 유령취급을 한다.
“야 임마. 넌 왜 끼어들어?”
“친구야. 내가 진심으로 묻고 싶다. 정말 저 김 대리와 잘해볼 생각이냐? 난 정말 말리고 싶다.”
“이 자식아. 자꾸 이상한 소리할래? 망할 친구여! 제발 도와주지는 않더라도 방해는 말아줄래? 요즘 와서 내게 미소도 짓는단 말이야.”
“미소? 무슨 미소?”
이 녀석이 사랑에 빠지더니 드디어 실성을 한 것 같았다.
“왜? 넌 안보여? 수현씨의 저 아름다운 미소가?”
“푸하하하하. 미치겠다. 넌 지금 그 미미한 눈썹의 변화와 약간의 입술 샐쭉거림이 미소로 보인단 말인가 친구? 이거 돌아도 제대로 돌았구먼. 나와 함께 정신병원에 가보지 않을 텐가?”
“그래서 더 매력이 있는 걸세. 나만이 볼 수 있는 수현씨의 매력.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나 혼자만이 독점할 수 있는 미소. 캬~.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을 해.”
“응 부럽다. 부러워서 죽을 지경이다. 난 차라리 울산바위와 사귀련다. 미친놈”
정말 사랑은 위대한 것이었다. 나보다 더 이성적이고 계산적이던 내 친구가 저렇게 팔푼이로 변해버리다니. 서른 살에 찾아온 사랑을 축하해 줘야할지 아니면 친구의 불행에 조의를 표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Rrrr
의사인 윤석이에게 전화가 왔다. 지난 봉사활동에 도움을 줘서 고마웠는데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에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응. 윤석아. 지난번 봉사활동은 정말 고마웠다. 내가 술 한 잔 샀어야 했는데 요즘 너무 바쁘다.”
“고마운 거 알면 됐어. 뭐 우리도 나름 재미있었어. 매일 같이 알콜향 가득한 여인네들을 만나다가 풋풋한 향이 나는 대학생들을 봤더니 의욕이 넘치더라. 다름이 아니라. 대철이 아버님이 돌아가셨어.”
“뭐? 언제?”
“나도 조금 전에 알았는데 우리 병원에 계셨다더라. 병원을 옮겨 급히 수술하느라 나한테도 연락을 못했나보더라. 어쩔 거야?”
“어쩌긴 가야지. 너희 병원 영안실에 있다는 말이지? 지금 갈게.”
대철이는 고향 친구다. 대학 다니면서 갈라지는 바람에 얼굴은 자주 못 봤지만 나와 마음이 많이 맞는 좋은 친구였다. 한동안 바빠서 연락을 못했는데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자주 연락하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마음이 안 좋았다.
시연이를 통해서 사장님께 보고를 하고 급히 세브란스 병원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오늘은 검은색 양복이었고 상가용 넥타이는 직장인들의 필수품이라 차에 항상 넣어가지고 다닌다. 넥타이만 갈아매고 친구를 만났다. 친구의 표정은 많이 초췌했다. 영정 앞에 절을 하고 친구와 친구 어머니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지금은 사람들이 많아 대화는 나중에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빈소 옆에 붙어있는 식장에는 이미 다른 친구 두 명과 윤석이가 있었다.
“왔냐?”
“뭐 일이 어떻게 된 거야?”
“심장 쪽에 지병이 있으셨나봐. 다른 병원에서 포기했지만 혹시 몰라 우리 병원에서 다시 수술에 들어갔는데 수술 도중 사망하셨어.”
“아니 그 자식은 아버님이 아프면 말을 좀 해주지. 문병이라도 갔을 것 아냐. 예전에 대철이 아버님이 우리를 데리고 바닷가에 놀러 간적이 있었잖아.”
우리는 그렇게 서로가 가지고 있는 대철이와 대철이 아버님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인을 추억했다. 문득 예전일이 생각났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불행이다 보니 내 주변 친구들 중에서도 그런 일을 겪은 친구들이 몇 있었다. 처음 내가 친구 아버님의 빈소에 찾아갔을 때가 고등학교 졸업식을 끝내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때는 우리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그동안은 우리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수 있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 동기들이 처음 맞는 큰일이다 보니 많은 친구들이 왔었다. 그런데 문상객들이 뜸해진 시간 즈음, 식당 구석에서 친구들이 몰려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가서 보니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나와 같이 그 광경을 본 대철이가 화가 나서 담요를 뒤집어 버렸다. 그리고는 우리끼리 싸우고 난리가 아니었다. 대철이는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일이냐며 따졌고, 고스톱을 치던 친구는 원래 상갓집에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며 우겼다. 결국 친구 문상 와서 우리끼리 싸우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우리들은 그 때 정말 철이 없고 한심할 때였다. 화를 내는 대철이의 마음도 이해가 가고, 어른들이 하니깐 호기심에 따라 해봤을 친구 녀석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무지에서 오는 결과이고 어리니까 하는 실수였다. 그래도 그 자리에서 화를 내며 싸움을 벌였던 대철이가 훨씬 정감 가는 것은 사실이다. 의협심이 남다른 좋은 친구였는데 안타까웠다. 그러면서 미리 부모님의 건강검진을 받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안심을 하고 있는 내가 한심해졌다.
============================ 작품 후기 ============================
아침에 일찍 일어나 글을 쓰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글을 다시 쓰고 있습니다. 제 글이 어느새 독자님들에게 스포츠센터 내 탁아 시설 설립을 설명하는 설명문으로 변해가더군요. 한글 파일로 5페이지가 넘게 설명을 하다 보니 제가 제 풀에 지쳐버렸습니다. 리얼리티가 사실적인 이야기지 사실을 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의사나 간호사가 의학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이유가 그래서가 아닐까요?
부유층이 이용할 탁아소에 대한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 친구는 부모님께 아이 두 명을 맡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달에 150만원의 돈을 드립니다. 물어보니 부모님이라서 오히려 적게 드리는 것이랍니다. 그 친구 집은 부자가 아닙니다. 그냥 평범한 맞벌이 부부입니다. 그런 곳에서도 일 년에 2000만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을 아이에게 쓰고 있습니다. 보모와 탁아시설은 다르지만 더 나은 서비스만 제공할 수 있다면 친구 부부보다 훨씬 많은 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윤 스포츠센터의 회원들입니다. 그렇다면 충분한 수익성이 날 것 같습니다.
스포츠센터 내 탁아소 설립에 대한 부분은 부자들이 이용하는 탁아소니 그냥 그런가보다 해주세요. :) 제가 회사를 다니고는 있지만 번쩍이는 아이디어는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기획안을 만들 때마다 머리를 쥐어짜고 있지요. 대머리가 없는 우리 집안에서 최초의 대머리가 될지도 몰라요 ㅠ 지금까지의 아이디어도 그렇지만 앞으로 나올 아이디어들도 대부분은 실현가능성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법하게 꾸며서 이야기를 만들어 갈 뿐이니까요. 그냥 소설이잖아요. 이럴 땐 리얼리티가 싫어지는 작가입니다. ^^;
그래도 최대한 납득할 수 있는 글을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걱정하던 댓글이 올라왔습니다. 제가 남자고 그리고 독자님 대부분이 남자들이다 보니 글을 달달하게 쓴다고 해도 결국 남성이 좋아할 만한 성향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님이 코멘트를 남겨주신 것은, 작가는 결국 이렇게 남성 성향을 보일 거면서, 그동안 은근히 주인공을 통해 여성을 굉장히 위하는 양 가식을 떨었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여주인공이 직장인이었다면 남자 경험이 많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경험이 있는 그런 사람으로 그렸을 겁니다. 바로 진희같은 여자죠. 아직은 먼 이야기지만 다음 작품의 여주인공은 아마 진희가 어느 정도 모델이 될 겁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제가 설정을 20살 여자로 했습니다. 공부만 한 20살 여자아이가 남자경험이 있다고 해놓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겠죠. 저는 단순히 순결의 문제로 이것을 본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30살 남자와 그 남자를 좋아하는 20살 여자의 모습을 과장되지만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20살 아이가 갑자기 쿨하게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진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은 이미 진희와 결혼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지난 과거보다는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캐릭터입니다. 과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주인공이라고 해서, 시연이에게 ‘넌 경험이 없어 부담스러워’ 이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여기서 흥미위주의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불행히도 투철한 작가주의가 있는 사람도 아니고, 조금이라도 독자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가끔은 자극적으로 가끔은 통속적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분들이 쓴 로맨스 소설을 봐도 남성의 순결보다는 여성의 순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보입니다. ‘아니 여자들도 그렇게 쓰잖아’라고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세태가 그런 모습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영화 ‘너는 내 운명’ 같은 글을 쓸 자신이 없습니다. 순진한 농촌총각과 창녀의 사랑. 보통 사람들의 엄청난 비난이 있을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을 주는 그런 명작을 쓸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니 보통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를 선택할 수밖에요. 작가 또한 매우 통속적인 인간일 뿐입니다.
이 글 속에 어느 정도 제 가치관이 녹아있습니다만, 그렇다고 제가 주인공은 아닙니다. 마 동수라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저와는 다른 가치관들도 많이 집어넣었습니다. 그 가치관이 정의로울 때도 있고, 속물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저는 주인공이 가진 정의로움으로 세속적인 사람을 비판하기도 하고, 속물스러움으로 비슷한 종류의 사람들을 풍자하기도 합니다. 주인공의 행동에 재수 없음을 느끼셨다면 ‘작가가 저런 식으로 풍자하고 있구나.’하며 너그럽게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의 코멘트가 싫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합리적인 비판은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양분이 되는 것 같습니다. 코멘트를 통해 저는 여러분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합리적인 비판이 아니라도 제게는 큰 채찍질이 됩니다. 가끔 보이는 과한 비난이 담긴 코멘트도 거의 지우지 않고 남겨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더욱 실력을 키워 그분들도 납득시킬 수 있는 글을 쓰고 싶거든요.
제가 이렇게 공지를 남기는 것은 딱히 제 생각을 여러분과 공유할 공간이 없다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남겨주신 말씀은 하나도 빼지 않고 모두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조언 해주세요.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