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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9화 (9/424)

00009  지랄이 풍년이다.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마 주임님”

이 목소리는 강소현이다. 또 뭘 부탁하려는 걸까? 이 여자는 입사한지 한 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일하나 제대로 못하고 여기저기 부탁하고 다닌다. 팀장이나 김 대리가 보는 앞에서는 안 그러다가 둘 만 보이지 않으면 도와달라고 징징거린다. 팀 내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편한지 벌써부터 파악한 것 같다. 이 대리와 최 주임은 물론 믿었던 과장님까지 넘어갔다.

처음에는 나도 몇 번 도와줬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악의로 대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런데 갈수록 뻔뻔해져갔다. 팀장이 강소현에게 기획안을 올리라고 지시했다. 뭔가 대단한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직 신입이고 우리 제품에 대해 제대로 파악도 못했는데 무슨 기대를 하겠는가? 그냥 노력을 한 번 해보라는 뜻이다. 우리 제품에 대해 고민도 해보고 다른 회사 제품도 찾아보고 그러다 보면 당연히 업무 능력이 늘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강소현이 도와달라는 부탁을 거절했다. 내 말을 듣던 이 여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마치 난 태어나서 한 번도 거절 받아 본적 없어. 어떻게 감히 나를 거절해? 뭐 이런 분위기였다. 한마디로 재수 없는 얼굴이었다. 자신도 자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갑자기 펑펑 울기 시작했다.

난 정말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질 팔자였나 보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 대리가 나타났다. 분명히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언제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뭐야? 무슨 일이야? 소현씨 왜 울어? 누가 울렸어? 야! 말똥 네놈 짓이야?”

‘망할 놈. 누군 소현씨고 누군 말똥이냐 이 개 대리야!’

저렇게 물어 오는데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네’라고 하면 신입이나 울리는 개자식이 되는 것이고, ‘아니요’라고 대답하면 저 얌체 같은 강소현이 그냥 넘어갈 것 같지가 않다. 그냥 하는 수 없이 어깨만 으쓱였다. ‘글쎄요’ 정도의 대답이 되겠다. 내가 울렸는지 아닌지 나도 모르겠다는 조금은 무책임한 의미를 담은 표현이었다.

나의 무성의한 대답에 이 대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 표정 다음에 나올 단어는 안 봐도 비디오다. 마음속으로 내 귓구멍을 막기 시작했다. 넌 짖어라. 난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겠다.

“이 대리님~ 그게 아니라요~ 마 주임님 때문이 아니에요~”

아주 목소리가 간드러진다. 그런데 왜 여기서 강소현이 나서지? 나를 옹호해주기 위해서? 에이 설마? 뭔가 불안하다.

“팀장님이 제게 기획안을 제출해 보라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제가 한 번도 기획안을 작성해 본적이 없어서요. 그래서 마 주임님에게 부탁을 드렸는데요. 마 주임님이 도와주시면 팀장님이 금방 알아볼 거라고 혼자 힘으로 한번 해보라고 하셔서요. 그런데 정말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라 갑자기 막막해져서 그래도 이건 제 힘으로 해야 하는데. 그냥 갑자기 눈물이 났어요.”

저년은 어디 산속에서 내려왔나? 말귀를 알아들을 수가 없다. 말 사이에 ‘소현이가요’ 이 단어까지 집어넣어서 이야기했다면 참지 못하고 싸대기를 날렸을지도 모른다. 저 말을 곱씹어보니 말은 돌려했지만, 결국 내가 도움을 거절해서 울었다는 이야기였다. 역시 넌 개년이다. 뭐라고? 내 이상형이 ‘개 같은 여자’아니냐고? 맞다. 내 이상형은 ‘개 같은 여자’지, ‘개년’이 아니다. 김 대리가 썅년이고, 강소현은 이제부터 개년이다.

“아구구. 그래서 지금 울고 있는 거야?”

이 대리의 물음에 강소현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고개만 가볍게 끄덕였다. 그 표정을 본 이 대리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주 이젠 둘이서 꼴값을 떤다.

‘아 내 인생은 이제 종반으로 치닫는구나.’

그 날 이후로 한동안 도와달라는 말이 없더니 최근에 다시 도와달라고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같은 직장에 있으면 맘에 들지 않더라도 칼로 잘라내듯 잘라낼 수 없다. 그렇게 징징거리면 뭘 부탁하는지 들어는 줘야한다. 듣다보면 한숨이 푹 나온다. 대학은 어떻게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좋은 대학을 들어간 것으로 보아 외우는 것 하나만큼은 잘하는 모양이었지만 창의력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인다. 리포트나 과제물은 대부분 남자 선배나 동기들에게 부탁했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 이딴 시답지 않은 것들을 들고 와 부탁을 하는 것이다.

“이건. 음. 잠깐만 있어 봐요. 이건 비슷한 건으로 예전에 내가 만들었던 문서들이예요. 찬찬히 읽어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올 겁니다. 가져가서 보세요.”

난 항상 이렇게 도와준다. 이게 바로 제대로 된 직장상사의 모습이다. 물고기를 잡아주기 보다는 잡는 법을 알려주는 참된 선배의 모습. 난 정말 맨땅에 헤딩하면서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라는 새싹을 위해 친절하게 내가 모아둔 자료까지 넘겨주지 않는가?

그렇게 도와주면 인사를 꾸벅하고 내가 준 자료들을 들고 총총 사라진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내가 준 자료가 도움이 되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료와 함께 음료수를 건넨다.

“마 주임님, 자료 잘 봤습니다.”

아주 잠깐 그렇게 개념이 없는 아이는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질투심에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는 이 대리와 최 주임을 보는 순간 아차 싶었다. 이런 식으로 나를 엿 먹이는 거다. 입사 한지 좀 되었으니 이들과 내 관계는 금방 눈치 챘을 것이다. 내 앞에서 귀염 떨어봐야 콧방귀도 뀌지 않으니 머리를 굴렸다. 아주 맹랑한 년이다.

그렇게 종종 나를 찾아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내가 만든 자료를 받아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속에서 천불이 난다. 마음 같아서는 자료도 보여주기 싫지만 그랬다간 이 대리와 최 주임에게 매정한 인간이라고 온갖 욕을 다 먹을게 뻔하다.

정말 내게 관심이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냐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저 년은 절대 내게 관심 없다. 주변 상황을 이용해 나를 굴복시키고 싶은 마음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에 대한 호감은 절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강소현의 꿈은 돈 많은 남자 만나서 편안하게 잘 사는 거다. 안 봐도 안다. 그게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남자가 미인을 찾듯, 여자가 능력 있는 남자를 좋아하는 것은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왜 하필 내 밑으로 기어 들어와서 내 직장 생활을 꼬이게 만드느냐는 것이다.

저렇게 살랑거리며 지낼 수 있는 것도 길어야 2년이다. 만날 도움을 받다보면 업무능력은 그대로일 수밖에 없다. 직장이라는 사회는 생각 이상으로 냉혹한 곳이다. 2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다보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려면 방법은 2가지밖에 없다. 노력하거나 몸을 이용하거나. 지금 꼴을 보면 노력을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몸을 이용해야 하는데, 자기가 예쁜 건 알아서 어느 정도 외모를 이용할 줄은 알지만 그렇다고 몸을 함부로 굴릴 스타일도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여기가 무슨 야만의 시대도 아니고, 몸을 굴려봤자 능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한계가 있는 법이다. 영악한 강소현이라면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아등바등 거리며 회사에 붙어있어 봤자 과장까지가 한계일 텐데 그 정도 미모면 능력 있는 남자 만나 사모님 소리 들으면서 사는 게 훨씬 이득이다.

2년이다. 2년이면 어떤 이유에서든 회사를 떠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 2년이 내겐 너무 긴 시간이다. 지난 2년도 힘들었는데 강소현까지 추가 되었으니 앞으로의 2년은 지옥과 다를 바 없을 것 같다. 이젠 정말 회사를 그만 둘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시기가 온 것 같다.

지금까지 모아 둔 돈이 2억이다. 그래도 난 운이 좋은 편이었다. 아버지께서 철강회사(생산직 주임으로 계신다)에 다니시는데 그 회사는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전액 지원해 준다. 다른 장학금을 받아도 상관없이 무조건 지원한다. 성적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았던 덕분에 회사에서 지원하는 4년 동안의 등록금은 고스란히 내 손에 들어왔다. 부모님도 내가 노력해서 얻은 돈이라며 스스로 관리하게 해주셨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할아버지께서 보증을 잘못 서셔서 큰 빚이 생겼고 부모님은 그 돈을 갚기 위해 결혼 초부터 상당한 고생을 하셨다.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나와 동생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어린 시절부터 경제관념이 꽤 투철했다. 나는 그래도 쓸 땐 쓰면서 모았지만 내 동생 같은 경우는 정말 지독할 만큼 열심히 저축을 했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한 달에 2개 정도의 과외는 항상 했다. 일주일에 8시간만 투자하면 한 달에 수십만 원의 돈이 생기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공부하기도 바쁜데 과외할 시간이 어디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시간관리만 잘하면 어려울 것도 없다. 주중에 한 번, 주말에 한 번 이런 방식으로 과외를 하면 대학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 자제력이다. 놀다가도 시간이 되면 책상에 앉아 공부할 수 있는 자기 절제가 필요하다. 그냥은 안 된다. 훈련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분명 힘들다. 놀면서 분비된 아드레날린을 진정시키는 것조차도 쉽지가 않다. 놀면 재미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학생이라면 한 번쯤 노력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운동을 하든 게임을 하든 시간이 되면 항상 책상에 앉아 책을 보는 연습을 하다보면 집중에 필요한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 그런 방법으로 꾸준히 훈련하다 보면 ‘저 자식은 같이 놀았는데 성적은 잘 나오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그래도 안 놀고 공부만 열심히 한 친구를 이길 수는 없다. 그건 과욕이다. 혹시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된다면 공부에 소질이 없다는 이야기다. 나야 잘할 수 있는 게 공부밖에 없어 열심히 공부했지만 인생은 공부가 전부는 아니다. 나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열심히 공부해서 회사 들어갔더니 아주 지랄같은 직장 동료들을 만나 결국 사표 쓸 고민을 하고 있다.

어쨌든 그 덕분에 나는 한 달에 60~80만 원 정도의 수입을 꾸준히 만들 수 있었다. 생활은 부모님께 받는 30만원의 용돈이면 충분하다. 밥이야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반찬이 있으니 밥만 해서 먹으면 돈도 거의 안 들고, 학교 식당 밥은 비싸봐야 2000원(지금은 얼마나 하는지 잘 모른다)이다. 알뜰하게만 생활하면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거나 겜방에서 놀아도 돈이 남는다. 물론 기욱 선배를 만나 반년 정도는 눈이 뒤집힐 정도로 미친 듯이 놀긴 했지만 그것도 한 때였다.

그렇게 과외로 번 돈을 꾸준하게 모으면 제법 큰돈이 된다. 돈을 좀 모으자 나도 누구나처럼 주식에 관심을 가졌다. IMF가 지나가고 경기가 다시 살아나는 상황이라 여기저기서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인간들이 나타났으니 나도 혹했다. 그래서 모아둔 돈의 일부를 가지고 주식을 해봤다. 책을 사서 읽어도 보고, 카페에 가입해서 주식고수의 알토란같은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단타로 열심히 주식을 해도 큰 재미를 못보고 수수료만 까먹었다. 역시 내게 일확천금의 운은 없었다.

그래도 완전히 주식을 접지는 않았다. 주식회사는 의무적으로 재무제표를 공시하게 되어 있다. 경영학을 전공한 덕분에 재무제표 정도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볼 수 있었다. 회사의 연도별 재무제표와 지난 뉴스들을 꼼꼼히 대조해서 살펴보면 최소한 이 회사가 알짜회사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런 회사들을 잘 파악해서 긴 안목으로 주식을 구입해두면 은행 이자보다는 나은 소득을 얻을 수 있다. 솔직히 재무제표도 제대로 볼 줄 모르면서 주식투자하겠다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결국 기본은 전혀 없이 뜬소문만 믿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인데 그러니 실패할 수밖에 없다.

주식투자와 펀드 그리고 저축을 병행해서 지금까지 모은 돈이 2억이다. 30살이 되기 전에 혼자 힘으로 2억을 모으는 사람은 잘 없다. 나 스스로가 기특하다. 그렇지만 이 돈으로 뭘 할지는 막막하다. 내가 결혼하면 부모님이 아파트 전세금으로 1억 정도 지원해주신다고 하셨으니 그 돈을 지금 받는다고 하면 3억이다. 큰돈이다. 문제는 내가 무슨 획기적인 사업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나를 너무 잘하는데 장사에도 확실히 소질이 없다.

나 같은 인간은 직장생활하면서 꼬박꼬박 월급 받아먹는 재미로 사는 게 제격인데 암울하다. 미국으로 MBA나 공부할까? 다행히 영어와 일어는 잘해서 유학이 무섭지는 않다. 그나마 영어와 일어 성적이 좋아서 우리 팀에 들어 왔다. 나 정도 학벌은 여기서 명함도 못 내민다. 그렇게 뽑혀 왔더니 정작 여기서는 영어와 일어를 쓸 일이 별로 없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요즘은 중국어 학원도 다닌다. 나 같은 인재가, 나 처럼 노력하는 인재가 직장 상사 잘못만나서 사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회사 오너는 알아야 한다.

MBA라. 상위권 대학은 꿈도 못 꾼다. 중상위권 대학도 최소 3년 정도의 경력은 있어야 하는데 우리 회사 근무 경력을 인정 해줄지도 알 수 없고, 3년 경력을 인정받으려면 1년 정도 더 일해야 한다. 게다가 거기서 공부하려면 2억 정도 든다는데 이래저래 쉽지 않은 일이다.

공무원 시험이나 볼까? 중학교에서 체육 교사로 근무하는 동생을 보면 부럽다. 예전에 유도 선수생활을 해 나보다 체격도 더 좋다. 요즘 애들 버릇하다고 하지만 동생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 신세다. 사립도 아니고 정식으로 임용 시험을 봐서 채용됐기 때문에 잘 보여야 할 재단 사람들도 없고, 여 선생님이 대다수다(공립은 70%가 여 선생이라고 한다)보니 남자 선생님들끼리는 가족같이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작년까지는 동생과 같이 살았지만, 여름에 같은 학교 여 선생님과 결혼해서 지금은 신도림에 살고 있다. 그 녀석은 어릴 때부터 나보다 훨씬 독하게 돈을 모으더니 그 돈으로 대학생 때 체대 입시 학원을 차려 돈도 꽤 벌었다. 자기 힘으로 신도림의 30평대 신축 아파트를 장만한 기특한 녀석이다. 결혼하게 되면 부모님께 도움부터 받을 생각을 하는 나와는 스케일이 다르다. 제수씨가 얼마 전에 임신해서 올해 말에는 조카도 생기는데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백수 큰아빠는 좀 민망하다.

제수씨는 올해로 27살이고, 단아한 외모를 가진 전형적인 한국형 미인이다. 동생의 불도저 같은 공세에 넘어가 사귄지 6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 친정 부모님이 서울에서 고기 집을 해서 나도 몇 번 가봤는데 불고기와 갈비탕이 일품인 곳이다. 차라리 모르는 집이었다면 친구들과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찾을 갔을 정도로 맛있는 가게지만, 나만 가면 무슨 대단한 손님이 온 것처럼 너무 공손하게 대해주시고 절대 돈도 받지 않으셔서 요즘은 발길을 끊었다. 속도 모르는 친구 놈들은 나만 빼고 지들끼리 몇 번 다녀왔다. 내 이름 팔아서 서비스도 잘 받았다고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요즘은 딸 가진 부모가 대우받는다고 하는데, 사돈어른은 옛날분이라서 그런지 정말 예의바르게 행동하신다. 차라리 내가 동생의 동생(?)이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내가 손윗사람이다 보니 거의 우리 아버지와 동급으로 대하신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서울에서 생긴 새로운 가족인데 내 입장에선 좀 아쉽다. 내가 좀 더 살갑게 굴고, 제수씨에게도 잘하면 좀 편안해 하실까? 이건 내가 시간을 두고 천천히 풀어야 할 숙제다.

내가 따로 부탁을 하지 않아도 제수씨는 가끔 소개팅을 주선한다. 우리 어머니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동생이 일찍 장가가는 바람에 졸지에 노총각 신세가 되어버린 내 입장이 서글프다. 소개팅에 나오는 사람의 대부분은 여 선생님인데 가만 보면 전부 제수씨보다 나이가 많다. 무언의 압박이다.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사람은 절대 안 된다는 뜻이다.

제수씨의 마음은 이해한다. 자기보다 어린 사람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거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나 조차도 나이 어린 김 대리나 최 주임이 내게 막말하면 울컥하는데 제수씨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그래도 제수씨가 나보다 세 살밖에 어리지 않으니 난 앞으로 한두 살 어린 여자만 찾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이런 쪽으로만 괜히 눈치가 빠르다보니 사는 게 피곤하다.

============================ 작품 후기 ============================

복권 당첨 이야기는 다다음회 정도에 나올 것 같습니다.

어려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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