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 마신 아수라
천마대겁! 사황혈천!
백 년 전에 천마와 사황이 벌였던 혈사였다.
그때 이후로 사황은 천마와 무당검성을 필생의 적수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먼저 죽어버린 무당검성은 자신의 앞길을 막아선 벽에 불과했고, 천마는 더러운 음모나 꾸미는 상종 못할 종자에 불과했다.
그러니 지금은 대화나 문답이 모두가 부질없었고 무용했다.
그래서 사황은 천마를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공격했다.
검붉은 강기의 파도!
이 년 동안 강기를 더욱 가공할 파괴력으로 집약시킨 전륜멸천의 파도였다.
콰콰콰콰쾅!
지하세상이 무너질 듯 요동쳤다.
천마가 발휘한 거대한 악마의 손이 전륜멸천파를 막은 것이다.
콰앙!
또 한 번의 천붕지음!
사황에 이어 화운의 절대검력이 막히며 터져 나온 굉음이었다.
“좋아! 아주 좋아!”
천마가 크게 소리쳤다.
무척 흡족해하는 얼굴이었다.
한 번씩 공격을 한 후 사황과 화운은 기다렸다.
천마에게서 거대한 기의 유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기운이 지하세계를 꽉 채우고도 계속 불어났다.
화운은 물끄러미 응시했다.
이미 겪어보았던 일이었다.
콰콰콰콰콰콰!
천마의 기운이 마치 거인이 몸을 일으키는 것처럼 거대해지자 천장의 암벽이 쩍쩍 갈라지며 돌덩이들이 떨어졌다.
후두두둑!
천장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했지만 천마의 기운은 갈수록 거대해져 급기야 천장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적! 쩌저적! 쿠아아앙!
인간세상이 멸망이라도 하는 것처럼 천종천마교를 받치고 있던 대지가 갈라지고 찢어지다 어느 순간 폭발하듯 사방으로 날아갔다.
그 광활하던 천종천마교의 대지 전체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천종천마교는 성곽도시였다.
사방의 성곽만 남기고 까마득한 아래까지 땅이, 대지가 송두리째 터져 날아가 버렸다.
도시 하나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언젠가 마신 아수라가 이 땅에 강림했던 그날처럼.
“이제 진짜 시작이다!”
화운은 각오를 다졌다.
그의 눈에는 완벽한 악마의 형상을 현신시킨 천마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유마정.
화운은 천마의 발아래 유마정을 응시했다.
유마정 끝에서 이 땅으로 현신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마신 아수라를 떠올리고 있었다.
사황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도 천마에게서 유마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피할 수 없다면 여기서 끝장낸다.”
사황의 전신에서 전륜멸천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커졌다.
씨익!
사황의 모습에 입매를 비틀어 웃은 천마 역시 전신에서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마기를 활화산처럼 폭발시켰다.
악마의 형상이 두 손을 번쩍 쳐들어 천마가 뿜어내는 마기를 빨아들여 거대한 마기의 막을 만들었다.
화운은 시선을 돌려 천마를 응시하며 검을 치켜들었다.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절대검력.
번-쩍!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완전무결의 궁극에 도달한 절대검력이 새파란 섬광을 폭발시킨 순간 사황에게서도 가공할 거력으로 응집된 전륜멸천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쏘아갔다.
콰-아아아앙!
천지개벽의 대폭발.
천지간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켜버리는 어마어마한 대폭발이 일어났다.
우-우웅!
대폭발에 이어서 대지가 울었다.
마치 땅 속 저 깊고 깊은 곳에서 뭔가가 울부짖기라도 하는 것처럼.
“크크큭! 일만 년의 대계가 완성되었구나!”
그날 그때처럼 천마가 괴소를 터트렸다.
“온다!”
화운은 유마정이 터져버린 자리를 응시하며 소리쳤다.
순간 땅의 진동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더니 유마정이 있던 자리가 화산 폭발처럼 터졌다.
쿠-앙!
거대한 존재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화운의 시선이 거대한 존재를 따라 허공으로 향했다.
***
번-쩍!
구룡제의 검에서 새하얀 강기가 빛처럼 폭사했다.
콰앙!
구룡제의 광검을 막은 건 명왕이다.
천마파천권!
마도최강의 권공으로 천마지존의 사대절학 중 하나였다.
“천마의 권공! 과연 강하구나! 하지만 제왕의 검에 제왕의 숨결을 담았다. 결코 지지 않는다!”
구룡제가 다시 검을 휘둘렀다.
제왕심결!
그리고 북두제왕검!
구룡제는 천마도 아니고 그의 수족에 불과한 명왕에게 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필살!
반드시 죽일 것이고!
필승!
반드시 이길 것이다!
번-쩍!
빛의 광검에 패력을 담은 북두일광극!
화운의 조언을 받아들여 이 년의 기간 동안 침식을 잊어가며 가다듬은 심득이 혼신의 검력으로 폭발하고 있었다.
이때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적성대도황이 멸제를 맞아 치열한 격전을 벌였고, 그곳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는 새파란 강환을 앞세운 조양신검 조극산이 마존을 연신 몰아붙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화산 장문인의 매화검과 무당 장교진인의 태극검이 도가의 선기를 강기로 뿜어댔고, 소림 장문인의 권장이 불가의 웅혼한 기운을 발휘했다.
그에 맞선 천종천마교의 마두들은 음산하면서도 포악한 마기를 줄기차게 뿜어댔다.
천하를 뒤흔들 절학들이 온 사방에서 폭발적으로 발휘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신공절학들의 각축장 같았다.
꽈-앙!
구룡제의 북두일광극과 명왕의 천마파천권이 필사의 격돌을 일으킨 순간.
쿠-앙!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거대한 존재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리고 곧 천마의 마기를 능가하는 엄청난 마기가 허공에서 온 천하를 짓눌렀다.
유마정이 터져 버릴 때의 천지간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켜 버리는 천지개벽의 대폭발에도 멈추지 않았던 구룡제와 명왕조차 격돌을 멈추고 돌아볼 정도로 엄청난 존재감이었다.
구룡제와 명왕은 물론이고, 산 자들은 모두 허공을 쳐다봤다.
그들은 곧 볼 수 있었다.
세 개의 얼굴에 여섯 개의 팔을 가진 마신 아수라의 현신을.
“저, 저게······!”
“마신 아수라!”
“맙소사!”
“사실이었어! 마신이 진짜 강림하고 말았어!”
넋 나간 사람들의 경악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가운데 한 사람이 허공의 마신 아수라를 향해 일직선으로 솟구쳤다.
사황이었다.
“내가 사황이다! 이 땅에서 꺼져라!”
허공에서 사황의 외침이 들렸다.
마신 아수라를 향해 전륜멸천파를 발휘하고 있었다.
사황의 당당함을 느꼈음인가.
잔혹함과 무자비함 그리고 오만함이 가득한 마신 아수라의 시선이 사황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곧 여섯 개의 팔 중 하나가 아래로 향했다.
슈-욱! 쾅!
아수라의 손끝에서 뿜어진 묵빛의 기운이 사황의 전륜멸천파를 꿰뚫었다.
지상을 뒤흔드는 폭발이 터졌고 그와 함께 사황이 튕기듯 떨어졌다.
순간 마신 아수라의 시선이 사황에게서 떨어져 나와 지상으로 향했다.
묵빛의 검을 들고 있는 화운을 향해서였다.
화운은 아수라의 시선을 받은 채 지상으로 떨어지고 있는 사황을 격공섭물의 수법으로 끌어당겼다.
쿨럭!
사황은 붉은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일격조차 상대하지 못한 것이다.
아수라가 내뿜은 묵빛의 기운과 충돌하기 직전에 화운이 절대검력을 펼쳐 거들어주지 않았다면 허공에서 온몸이 터져버렸을 것이었다.
절망의 눈으로 화운을 쳐다보는 사황.
화운은 말없이 손을 뻗어 오색의 광휘로 사황을 감쌌다.
사황은 일각전의 몸으로 되돌아가 멀쩡한 상태로 일어났다.
“좀 인정할 건 인정하십시오. 저 괴물은 제 몫입니다.”
화운이 말했다.
사황은 놀란 눈으로 자신의 몸을 살펴보더니 화운을 쳐다봤다.
“자신이 있느냐?”
“지금은 지난 번과는 다릅니다. 맡겨주십시오.”
사황은 화운을 지그시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해야 했다.
지금의 전쟁을 종결지을 존재는 자신이 아니라 화운이라는 것을.
“좋다. 천마는 내가 맡으마.”
사황은 그 말을 끝으로 천마에게로 향했다.
바로 이때였다.
우우우웅!
지저에서 강렬한 진동이 느껴졌다.
화운은 마신 아수라가 뚫고 올라온 곳을 돌아봤다.
유마정이 터져 버린 자리가 거대하게 갈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까마득한 아래에서 수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마귀들이 떼로 솟구쳐 오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신 아수라의 종복들이다. 나 천마를 상대할 시간이나 있을 것 같으냐! 크핫하하하하!”
천마가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순간 사황이 몸을 날렸다.
“저것들을 쓸어버려도 그렇게 웃는지 보자!”
사황은 마신 아수라가 튀어나오고 그의 군단이 솟구쳐 오르고 있는 갈라진 틈 속으로 뛰어들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싸움!
천마와 마신 아수라의 군단을 모조리 쓸어버리기 위해.
“무슨 짓이냐!”
천마가 사황의 뒤를 쫓아 갈라진 틈 속으로 뛰어들었다.
사황의 생각대로 된 것이다.
화운은 과연 사황답다는 생각을 하며 자석에 이끌리듯 하늘을 쳐다봤다.
***
마신 아수라의 강림과 함께 모든 싸움이 멈췄다.
백리연은 불과 세 걸음 앞에서 송곳니를 드러내며 바짝 엎드려 있는 마귀들을 경계하며 하늘에 우뚝 솟구쳐 있는 마신 아수라를 봤다.
거인이라는 말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압도적인 육신.
여섯 개의 팔.
세 개의 얼굴.
그리고 온 천하를 짓누르는 섬뜩한 마기.
사황조차 일격에 날려 버리는 강력한 힘.
화운은 지금 그런 마신 아수라를 상대해야 한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멀리 마신 아수라를 쳐다보고 있는 화운이 보였다.
화운을 바라보는 백리연의 눈빛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정말 미안해서다.
매일 보슬비처럼 다가오겠다고 약속해 놓고는 그렇게 해주지 않은 것에 늘 서운했고, 실망했었다.
화운은 저런 말도 안 되는 존재를 상대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말로만 들었던 마신 아수라는 실로 상상 이상의 존재였다.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천하가 공포로 짓눌린 듯했다.
화운은 그런 초월적인 존재를 막아야 한다는 일념을 아주 오래전부터 가슴에 담아온 것이다.
“저 녀석, 세상에 존재하는 복들 중에서 가장 큰 복을 가졌다고 부러워했었는데······ 미안해지는군.”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백리명이 중얼거렸다.
그의 몰골은 처참했다.
옷자락이 넝마처럼 찢어져 나풀거렸고, 상반신이 온통 날카롭게 할퀴고 베어진 상처투성이였다.
북궁설과 담명을 따라 선두로 튀어나갔다가 뒤늦게 동생 백리연을 염려하여 뒤로 물러났고, 백리연과 선우유성 그리고 남궁현을 가까이에서 보살피며 마귀들을 상대하느라 상처가 하나씩 늘어난 것이었다.
“저 녀석이 너희들을 이 싸움에 끌어들이고 선봉에 세운 이유를 아느냐?”
담대후가 물었다.
담대후와 무영투는 신풍영웅대 전부의 안전을 책임졌다.
신풍영웅대가 싸우는 전장 곳곳을 누비며 위험에 처한 이들을 도와주곤 했다.
그만큼 마귀들과의 격전이 치열했고, 위험천만했다.
“그냥 우리가 필요해서가 아니었습니까?”
백리명이 모르겠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담대후는 멀리 화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해주었다.
“함께하고 싶어서다. 숨 막힐 듯한 이 두려움도, 이 싸움을 이겨내는 영광도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까지 모두 너희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다. 저 녀석은 영광까지도 자기 혼자인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떤 결과가 벌어지든 너희들과 함께 만끽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이 싸움을 준비해 왔다. 그러니······ 응원해 주거라. 너희들이 여기에 있으니 반드시 이기라고.”
백리명은 크게 감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곧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소리쳤다.
“운아! 아수라고 지랄이고 날려버려!”
백리명의 외침이 천둥처럼 울린 순간 마신 아수라의 눈길이 움직였다.
가공할 마기를 쏟아내는 눈빛이었다.
“억?”
백리명이 기겁하여 움츠린 순간이었다.
지상의 화운이 땅을 박차고 솟구쳤다.
일섬처럼 치솟는 화운.
바로 이때 사황을 일격에 날려 버렸던 마신 아수라의 손이 화운을 향해 움직였다.
슈-욱!
묵빛의 기운이 빛이 되어 화운을 내리 찍었다.
쾅!
화운은 사황이 그랬던 것처럼 맥없이 추락했다.
“안 돼!”
백리연이 놀라 부르짖을 때였다.
지상으로 추락하던 화운이 돌연 신형을 뒤집고 허공을 박차더니 다시 솟구쳤다.
“그래! 그거야!”
백리명의 응원이 터졌다.
그리고 곧 모두가 보았다.
마신 아수라의 손에서 다시 한 번 묵빛의 기운이 섬광이 되어 화운을 강타하는 것을.
슈-욱!
피하고 말고 할 새도 없을 정도로 빨랐다
콰앙!
지상이 터졌다.
이전과 다른 결과였다.
허공의 화운은 그 짧은 순간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
“금강부동!”
소림사 장문인이 놀라 소리친 순간.
화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신 아수라의 머리 위였다.
“아수라! 인간도에서 꺼져라!”
뇌성벽력 같은 일갈과 함께 화운이 묵검을 휘둘렀다.
절대검력!
그 가공할 궁극의 검력을 펼친 것이다.
마신 아수라를 상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