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천마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네놈도 본좌에게 대항해 보겠다는 것이냐?”
사황의 두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쏟아졌다.
구룡제는 그 눈길을 담담히 받아냈다.
“못할 것 같소?”
“어쭙잖은 광검만 믿고 잘도 설치는구나!”
“자존심이 짓밟힌 무인이 죽음을 두려워하겠소?”
“네놈이 짓밟혔더냐?”
“저들에게 하는 걸 보니 날 어찌 생각하는지도 알겠소.”
“흥!”
사황이 코웃음을 쳤다.
구룡제는 그 모습을 잠깐 지켜본 후에 다시 말했다.
“사황이라는 별호답게 갑시다. 죽일 거면 깔끔하게 죽이고, 할 말이 있으면 해보시오. 사람 불러놓고 자질구레하게 이게 뭐요?”
“지금 자질구레하다고 하였느냐!”
“농락하는 것이 복수는 아닐 거 아니오? 그리고 무슨 일로 우리들을 이렇게 모았는지는 모르지만, 저기 석상처럼 서 있기만 하는 어린 녀석 앞에서 창피하지도 않소?”
구룡제가 화운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사황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주둥이가 뚫렸다고 잘도 나불거리는구나.”
“나불거리는 게 듣기 싫으시면 죽이시오.”
구룡제가 검을 뽑았다.
“오냐! 그렇게 죽고 싶다면 죽여주마!”
사황이 차갑게 일갈한 순간 구룡제의 검에서 새하얀 빛의 광검이 폭발적으로 뿜어졌다.
쾅!
사황이 발출한 전륜멸천의 강기가 구룡제의 광검을 막았다.
그러고도 힘이 남아돌아 구룡제를 향해 뻗었다.
황급히 이검을 휘두르는 구룡제.
쾅!
구룡제의 상반신이 크게 휘청거렸다.
천하를 오시하는 구룡제였지만 사황의 전륜멸천의 강기에는 상대조차 되지 못했다.
뻐억!
어느새 코앞에서 뻗어오는 사황의 주먹에 구룡제가 뒤로 날아가 볼썽사납게 나뒹굴었다.
자존심이라도 지키겠다는 듯 상체를 벌떡 일으키던 구룡제는 이내 포기한 듯 벌러덩 누워 버렸다.
입과 코로 피를 쏟아내는 그의 얼굴은 잔뜩 짓이겨져 있었다.
“강해도 너무 강하군!”
구룡제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리는 순간 굉음이 들리더니 누군가가 그의 옆으로 나뒹굴었다.
고개만 돌려보니 적성대도황이었다.
“크윽! 진짜 강하군. 자네를 상대할 때 쓰려고 아껴둔 비기조차 아예 상대가 안 되는군.”
“실망할 것 없네, 우리가 진 건 시간이니까.”
“······?”
“우리도 백 년 더 정진하면 저만큼 강해질 수 있을 거네.”
“조금은 위로가 되는군.”
적성대도황이 짓이겨진 얼굴로 웃는 순간 또 한 사람이 날아왔다.
쿠당탕!
두 사람의 위를 훌쩍 날아가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 나뒹군 이는 태양존자였다.
“저 친구, 이런 것조차 따로 노는군.”
“이해하게. 우리와 함께 하면서도 늘 딴생각을 하는 친구잖나.”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오랜 지기는 자네와 저 친구인데, 뜻이 더 통하는 건 자네와 나이니 말이야.”
“때론 뜻이 맞지 않아도 친구가 되기도 하더군.”
“그런가?”
구룡제와 적성대도황이 나란히 뻗은 채 말을 주고받을 때였다.
“무슨 짓이냐!”
사황의 호통이 들려왔다.
“제게도 저만의 입장이라는 게 있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어르신이 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니 염려 마십시오.”
화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구룡제와 적성대도황이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는 동안 소림사 장문인이 쓰러져 있는 곳에서 경악성이 들려와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저 녀석, 또 무엇으로 놀라게 만드는 걸까?”
“저 아이가 그렇게 강하나? 분명 심상치 않아 보이긴 하네만, 도통 모르겠네.”
“사황 선배 못지않을 걸? 어쩌면 더한 괴물일 수도 있고.”
“믿기지 않는군.”
적성대도황은 화운을 이곳에서 처음 만났다.
몇 마디의 인사만 나누었을 뿐이라 화운의 진실한 무위에 대해서는 감조차 잡지 못한 상태였다.
바로 이때 저벅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두 사람에게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화운이었다.
“어째 한 방을 못 피하고 이 꼴이 됩니까?”
“자질구레하게 도망치면서 싸우란 말이냐?”
“죽는 것보단 낫잖습니까?”
“아니, 그렇게 싸울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 그리고 이건 자존심 싸움이다. 자존심을 굽힐 순 없다.”
“맞아. 이건 자존심 싸움이지 사황 선배를 이기겠다는 기대 따위는 없다. 그저 자존심을 지키고 싶을 뿐이다.”
구룡제의 말을 옆에서 적성대도황이 거들었다.
화운은 피식 웃으며 구룡제의 얼굴 위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오색찬란한 신광이 쏟아져 나와 구룡제의 얼굴을 휘감았다.
“이, 이게 무슨······!”
구룡제가 경악성을 흘렸다.
짓뭉개진 얼굴이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화운은 경악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구룡제의 얼굴에서 손을 떼어 적성대도황의 얼굴 위로 옮겼다.
화운의 손바닥에서 오색찬란한 신광이 쏟아지더니 적성대도황의 얼굴 역시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몸을 일으킨 화운은 태양존자에게로 향했다.
이때 구룡제는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고 있었다.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고, 피도 사라지고 없었다.
상처가 치유된 것이 아니라 이전의 온전했던 상태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몸을 벌떡 일으켜 앉은 구룡제는 화운을 돌아봤다.
화운의 손바닥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오색찬란한 신광.
“설마 상단전을 연 건가?”
구룡제가 중얼거렸다.
화운을 살펴보니 상단전이 있는 머리 쪽에서만 활발한 기운의 유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네 말대로 사황 선배보다 더 한 괴물일지도 모르겠군.”
적성대도황 역시 화운을 응시하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휘둥그렇게 뜬 눈으로.
그러는 사이에 화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좀 전까지 석상처럼 서 있기만 하던 자리로 돌아갔고, 그 모습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태양존자가 구룡제와 적성대도황의 곁으로 달려왔다.
“저, 저놈 뭔가? 대체 정체가 뭔가?”
“괴물.”
“괴물.”
구룡제와 적성대도황이 동시에 대답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피식 웃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서 구룡제가 손을 뻗자 저만큼 날아갔던 그의 검이 날아와 손에 잡혔다.
적성대도황 역시 마찬가지였다.
발치에 뒹굴고 있던 커다란 대도가 둥실 떠올라 그의 손에 잡혔다.
“더 할 거요?”
구룡제가 사황을 향해 물었다.
승자가 패자에게 더 해보겠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이때 사황은 화운에게 시선을 못 박고 있었다.
“법보의 또 다른 힘을 찾아낸 것이냐?”
“제대로 쓰는 방식을 찾았습니다.”
“흥!”
미간을 찌푸리다가 코웃음 친 사황은 태사의로 돌아가 앉아 버렸다.
마치 흥이 다 깨져 버린 사람처럼.
그 모습에 구룡제와 적성대도황은 검과 대도를 갈무리하고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미타불!”
화운 덕분에 부상이 말끔해진 소림사의 장문인 역시 다른 칠대문파의 장문인들과 함께 자리로 돌아갔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참이냐!”
사황이 버럭 소리쳤다.
“아, 예! 갑니다!”
화운이 잽싸게 달려가 사황과 다른 사람들의 사이에 섰다.
그리고 사황을 향해 공손히 머리를 조아린 다음 사파 삼천의 지존들과 칠대문파의 장문인들을 향해 돌아서서는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렸다.
“선대의 일은 후대에 영향을 끼치기 마련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결국 선택의 문제이고, 그 선택은 후대의 몫일 겁니다. 무해곡과 칠대문파는 각자의 입장이 있을 것이기에 제가 감히 끼어들지는 못하겠습니다. 다만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자세히 알아보셨으면 합니다. 선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입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상당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화운은 그렇게 말한 후 잠깐 여유를 두었다.
다들 각자의 생각을 잠깐이라도 하도록 둔 것이다.
그리고는 천마와 천종천마교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경천보패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무영천의 이름을 앞세워 천종천마교를 오랫동안 살폈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런데 사황이 제동을 걸었다.
“그만!”
모두들 사황을 쳐다봤다.
화운 역시 돌아서서는 사황을 응시했다.
“다 이야기해라. 죽을 때 죽더라도 누구에게, 왜 죽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정도는 알아야 저놈들이 말하는 무인답게 죽는 것일 게다.”
사황이 구룡제를 힐끔 하며 말했다.
모두들 이건 또 무슨 말이냐는 얼굴로 화운을 쳐다봤다.
화운은 소림사의 장문인과 구룡제, 적성대도황 그리고 태양존자를 둘러본 후 입을 열었다.
“좀 전에 제가 한 건 다친 곳을 치료한 게 아닙니다. 크게 다친 몸 상태를 멀쩡했던 일각 전으로 되돌린 겁니다.”
“······!”
“······?”
화운의 말에 놀란 눈을 휘둥그레 뜨는 사람들.
화운은 그들을 바라보며 한 술 더 뜨듯 말했다.
“전 시간을 되돌리는 힘을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삼류에도 미치지 못하던 스물한 살 즈음의 시절이었습니다.”
화운의 이야기는 반 시진을 훌쩍 넘겨서야 끝이 났다.
천마와 마신 아수라를 막기 위해서는 천하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 말까지 마치고 나자 사황은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남은 사람들은 거대한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말문을 열지 못했다.
사파 삼천의 지존들도 칠대문파의 장문인들도.
모두들 충격에 빠진 얼굴로 숨소리마저 죽인 채 자리만 지켰다.
너무 놀란 나머지 공기마저 움직임을 멈춰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무겁게 가라앉은 침묵이 깨진 건 사황이 자리를 뜨고도 한 식경이 더 지나서였다.
“제가 생각하는 시간은 이 년입니다. 이 년 안에 마귀들을 상대할 전력을 구축해 놓아야 합니다. 사실 천종천마교의 고수들을 상대할 숫자는 이 자리에 있는 분들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수만에 달하는 마귀들을 상대하기엔 넉넉하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전면전을 벌인다면 마귀들을 없앤다 하더라도 이쪽의 피해가 너무 클 겁니다. 수만에 달하는 무인들이 죽는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화운이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
지금까지 줄곧 염려하던 바였다.
“그러니까 강기의 고수는 되어야 상대할 수 있는 마귀들이 오만에서 육만은 될 것 같다?”
구룡제가 물었다.
“예. 약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입과 눈을 통해 머릿속을 부숴 버리면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과감한 일격을 계속해서 펼칠 수 있으려면 강기의 고수는 되어야 합니다. 게다가 이쪽에도 확실한 약점이 있습니다. 내력의 양과 체력에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그렇겠지. 게다가 강기를 발현할 줄 아는 놈들도 천차만별일 것이라 한 식경을 버티는 놈들도 있고, 반의 반각도 버티지 못할 놈들도 수두룩하겠지.”
“내력이 고갈되면 당황할 테고 그러다 보면 위기를 맞을 겁니다.”
화운과 구룡제의 대화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화운은 그 모습들을 둘러본 후에 다시 말했다.
“사천혈사 때 사천과 섬서 무림의 일만으로 칠만의 마귀를 상대했었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때 오만에 달하는 마귀가 살아서 돌아갔고, 우린 절반이 넘게 죽었습니다. 각파의 고수들도 대부분 죽었고요. 그때 마귀들이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면 살아남은 절반도 전부 죽었을 겁니다. 그때까지 살아남은 태반이 강기를 펼치지 못해 후방에 있던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칠만을 상대로 일만이 전멸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그것도 천종천마교에서는 고수들이 나서지 않았음에도 그 같은 결과가 벌어졌다.
최소한의 피해로 이기려면 강기를 발현할 수 있는 무인들이 마귀들의 숫자와 비슷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제야 기재들을 모은 이유가 확실해졌군.”
구룡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건 무슨 소린가?”
적성대도황이 물었다.
“천하 기재들을 모은다며 설아를 데려갔다네.”
“설아를? 무결이는?”
“자질이 모자란다면서 설아만 데려가더군.”
“무결이의 자질이 모자란 것이라면 강이 녀석도 모자랐겠군.”
적성대도황이 사도강을 언급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을 때 태양존자가 끼어들었다.
“신풍영웅대 깃발이 보이던데 그걸 말하는 건가?”
“그런 모양이네.”
구룡제가 화운에게 시선을 돌렸다.
화운은 들었으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선택 받지 못한 자식들을 둔 부모의 심정이 조금은 눈치 보였던 것이다.
“아미타불!”
소림사 장문인이 구룡제와 적성대도황 그리고 태양존자를 향해 돌아섰다.
“아무래도 이 일은 화 시주에게만 떠넘기기에는 너무 큰일인 듯싶소. 칠대문파와 천사련이 머리를 맞대어야 할 것 같은데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본좌는 수련을 해야겠소.”
구룡제가 갑작스레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소림사 장문인은 물론이고 기대에 찬 얼굴로 응시하던 모두가 당황했다.
구룡제는 화운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무결이를 이리로 보내겠다. 아울러 본 성의 후기지수들 중 쓸 만한 놈들을 전부 보낼 테니 신풍영웅대를 더 키우도록 해라. 대사!”
화운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한 구룡제가 소림사 장문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본좌를 대신할 사람을 이리로 보내 놓을 것이니 칠대문파에서도 알아서 보내도록 하시오. 그들이 머리를 맞대보면 마귀들을 효율적으로 상대할 비책을 찾아내겠지요. 이번 싸움은 모두들 자신들의 몫만 해낸다면 얼마간의 피해는 있을지언정 막을 순 있을 거요. 아울러 내 몫은 명왕인 듯싶으니 본좌는 돌아가는 대로 폐관수련이나 하겠소.”
구룡제는 그 말을 끝으로 밖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성격답게 거침이 없었다.
“강이 녀석이랑 몇 놈을 보내겠다. 신풍영웅대를 더 키워라. 대사! 멸제는 내 몫이오.”
적성대도황 역시 구룡제를 따라 밖으로 향했다.
그러자 모두들 태양존자를 바라봤다.
“하여간 성질들 하고는. 쯧쯧!”
혀를 찬 태양존자는 칠대문파의 장문인들을 쓸어보더니 뒷짐을 지며 말했다.
“누군가는 남아서 의견들을 조율해야겠군. 본좌가 힘을 써볼 테니, 칠대문파에서는 마존을 상대할 자나 뽑아 놓으시오.”
속이 엿보이는 말이었으나 칠대문파에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천사련에서 명왕과 멸제를 맡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무량수불! 괜찮은 생각 같습니다. 다른 장문인들께서는 어떠십니까?”
무당 장교진인이 모두를 둘러보았다.
다들 고개만 끄덕일 뿐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에 잘되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장교진인은 화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태사백조, 무당의 일대제자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잘 가르쳐서 신풍영웅대에 힘이 되도록 해주십시오.”
화운이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신풍영웅대가 선봉에서 마귀들을 상대할 것인데 괜찮겠습니까?”
“무당은 천하의 안위를 지키는 싸움에는 늘 앞에 섰습니다.”
“알겠습니다.”
화운이 머리를 숙이며 대답하고 나자 장교진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때 소림사의 장문인이 다가왔다.
“화 시주.”
“예. 대사님.”
“소림과의 일은 나중으로 미루는 게 좋겠소.”
“소림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본사에서도 제자들을 보낼 터이니 선봉에 세우도록 하시오.”
“감사합니다.”
“선재, 선재로다! 암흑 속에서 하나가 되어 등불을 밝히니 참으로 선재로다!”
소림사 장문인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화산장문인과 청성의 장문인도 다가와 한 마디씩 했다.
“등불을 밝히는 일에 본파만 빠질 순 없지요. 천주, 화산에서도 제자들을 보내도록 하겠소.”
“청성 역시 보내도록 하겠소.”
“감사합니다. 반드시,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그래야지요, 그래야 하고말고요.”
화산장문인이 웃으며 말했고.
“그나저나 마신 아수라라니! 상대할 수나 있을지 모르겠소.”
청성장문인이 우려를 드러냈다.
이때 아미와 종남 그리고 점창의 장문인들만이 한 걸음 떨어져서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날 밤.
사황이 화운을 불렀다.
“내일 무해곡으로 돌아가겠다.”
“수련은 어쩌고요?”
“방향을 잡아주었으니 그놈들이 알아서 할 수 있다.”
“무슨 일로 가시는지는 모르겠으나 무해곡에 계신 분들을 전부 이리로 오시라고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네놈 말처럼 무해곡은 본좌의 약점이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노출시킬 수 없다.”
“그렇군요.”
화운은 이해가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서 말했다.
“천마를 만났습니다.”
“······?”
화운은 천마가 했던 말을 들려주었다.
천마 역시 마신 아수라의 강림을 원하지 않으며 함께 싸울 거라는 말이었다.
“멍청한 놈! 그 말을 믿는 것이냐?”
“아뇨. 믿지 않습니다. 다만 염두에 두고 있을 뿐입니다.”
사황은 화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분명 혼란스럽고 복잡한 표정이었다.
사황은 미간을 찌푸렸다.
“한심한 놈! 본좌가 사황이듯 천마는 천마다.”
“예.”
“출진할 때가 되면 사람을 보내라. 그때까지 무해곡에 머물 것이다.”
“알겠습니다.”
“물러가라. 내일 새벽에 떠날 것이니 그리 알고.”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화운이 공손히 읍하고는 물러갔다.
사황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표정은 무거웠다.
‘본곡의 무서들을 모조리 뒤져서라도 찾아야겠다. 더 강해질 방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