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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으로 무림지존-184화 (184/207)

#184. 당문도 끝장을 내드릴까?

지부가 함락당했다고 하여 사천성의 하오문 전체가 넘어갔다고 볼 순 없다.

당문의 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하여 지부만 버리고 하부조직들을 거둬들일 수도 없다.

그 틈에 간자가 끼어들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기대를 할 만한 사람이 바로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천독왕은 당문의 독과 암기를 모조리 통달했다고 해요. 그가 내뿜는 숨결에도 극독이 실린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천옥당이 염려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천 문주님.”

“예.”

“지금 제가 하는 고민은 문주님을 어떻게 지켜드릴지가 아니라 독왕을 어떻게 할지입니다.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해도 살려줄 것인지 말지가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유일한 고민입니다.”

“······!”

광오해 보이는 말이었다.

천하의 사천독왕을 상대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구룡제나 적성대도황 같은 절대고수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정말 대단한 사람·······!’

사갈마희가 화운에 관한 정보를 가져왔을 때만 해도 놀라운 후기지수의 등장 정도라만 여겼다.

직접 대면했을 땐 무림천하의 판도를 바꾸어버릴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기꺼이 손을 잡았다.

천마와 천종천마교를 막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사실 크게 가슴에 와닿지도 않았다.

그러던 차에 사황이 등장했고, 무해로 향하던 장강수로왕과 녹림왕이 뱃머리를 돌렸다.

태양존자마저 발걸음을 되돌렸다고 했다.

그제야 천옥당은 깨달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화운에 대한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도와주세요. 사천성의 문도들을 버리고 싶지 않아요. 그들을 지키고 싶어요.”

천옥당이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화운 역시 걸음을 멈추고 천옥당을 바라봤다.

과거엔, 아니 다른 시간대엔 사천성의 문도들을 버렸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진심으로 그들을 지키고자 한다.

그 마음이 느껴졌다.

“그렇게 할 수 있을 겁니다.”

화운은 기꺼워하며 웃어주었다.

녹선다루.

당문의 무인들로 보이는 자들이 다루의 입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천옥당은 그들을 보자 가슴속에서 부아가 치밀었다.

그때 화운이 그녀의 어깨를 지그시 눌러주었다.

“싸우는 것도 제가 하고, 협상도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문주께서는 조직을 어떻게 재구성할지 그 생각만 하십시오.”

화운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들려오자 천옥당은 치밀었던 분노를 가라앉혔다.

“네. 그럴게요. 지금부터 화 공자께서는 본문의 태상호법이십니다. 임시지만, 그렇게 해주세요.”

“이런, 도와달라고 하시더니 제 코를 단단히 꿰어버리시네요.”

“제가 좀 이런 쪽으로는 약아요.”

천옥당이 배시시 웃었다.

계산된 것이 아니라 순간적인 재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기분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대단하게 보였다.

“문주님 말씀 받들어드리겠습니다.”

화운이 웃자 천옥당의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멈추시오! 오늘은 영업을 하지 않으니 걸음을 돌리도록 하시오!”

당문의 제자들이 두 사람을 막았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생각일 뿐이었다.

두 사람이 무방비인 모습으로 계속 다가갔음에도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화운의 의지가 담긴 기운이 퍼져나가 그들의 전신을 꿈쩍도 하지 못하게 옭아맸기 때문이었다.

화운과 천옥당은 당문의 무인들 사이를 아무런 방해 없이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녹선다루 일층.

그곳에도 당문의 제자들이 이십여 명이나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화운의 기운에 눌려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화운은 천옥당을 데리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엔 두 사람이 한가롭게 차를 마시고 앉아 있었다.

화운의 눈이 일순간 빛났다.

둘 다 아는 얼굴들이었던 것이다.

당화천과 당옥기 바로 그들이었다.

‘하오문의 사천지부를 찾아낸 건 당옥기의 작품이었군!’

당화천과 당옥기는 사천혈사 당시에 만났던 사람들이다.

그땐 천마가 보낸 마귀들을 막기 위해 함께 피 흘렸으나 지금은 그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화운은 그때 당시에 당옥기가 무척 영민하다는 걸 알았다.

“누군지는 모르나 시비를 걸려면 잘못 찾아왔다.”

당화천이 경고를 날렸다.

당옥기는 말없이 화운과 천옥당을 살펴보기만 했다.

당화천의 경고를 무시한 화운은 천옥당과 함께 두 사람을 향해 곧장 다가갔다.

“집주인이 강도한테 들을 소리는 아닌 것 같소만.”

화운이 말했다.

당화천의 눈빛이 예리해졌고, 당옥기의 얼굴엔 의구심이 번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화운은 천옥당과 함께 두 사람의 맞은편에 앉았다.

“지금 집주인이라고 했느냐?”

“이쪽은 하오문의 문주님이시고, 난 태상호법이오. 거기 두 사람은 우리와 격이 맞지 않으니 가서 독왕을 모셔오시오.”

화운이 거만을 떨었다.

당연하게도 당화천이 분노했다.

하지만 그는 그 분노를 터트릴 수가 없었다.

화운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를 본 순간 그의 심장을 미지의 기운이 단단히 움켜잡았기 때문이다.

당화천은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로 화운을 쳐다보기만 할 뿐 한 마디 말조차 할 수가 없었다.

“본문의 지부는 어차피 끝장이 났고, 어떻게······ 이참에 당문도 끝장을 내드릴까? 아니면 독왕을 데려와 사과라도 해 볼 거요?”

화운이 기운을 거둬들이며 물었다.

의자에 기대앉은 모습이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고수가 한참 아래의 하수를 대할 때나 보이는 자세였다.

당화천은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분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공격을 할 엄두조차 나지가 않았다.

“당문을 적으로 삼겠다는 것이오?”

당화천이 천옥당을 향해 물었다.

천옥당은 차가운 태도만 유지할 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문주로써의 위엄을 지키겠다는 태도로 보였다.

“문주님, 아무래도 당문으로 곧장 찾아가야 할 모양입니다.”

화운이 천옥당을 향해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순간 당옥기가 급히 입을 열었다.

“어떻게 보고를 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귀문의 문도들 중 단 한 사람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우린 그저 문주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을 뿐입니다.”

“대화 좋지. 그래서 우리도 당문으로 곧장 찾아가지 않고 이리로 온 거야. 그러니까 가서 독왕을 데리고 와.”

“본문의 문주님께선 자존심이 강하신 분입니다. 입 한 번 잘못 놀렸다간 한줌 혈수로 녹아내릴 수도 있습니다.”

당옥기가 경고했다.

하지만 화운은 코웃음 쳤다.

“당옥기, 똑똑한 줄 알았더니 잘못 알려진 건가? 독왕이 이 자리에 있으면 본문을 통째로 잡아먹을 수 있는 기회잖아. 그런데 왜 자꾸 미적거리는 거지?”

당옥기의 시선이 천옥당에게로 향했다.

아무래도 그녀가 정말 하오문주인지 의심하는 모양이다.

“무엄하다!”

화운이 호통을 쳤다.

순간 성난 폭풍 같은 기운이 폭발적으로 일어나 당화천과 당옥기를 반대편 벽까지 날려버렸다.

의자와 탁자들까지 모조리 날아갔다.

당화천과 당옥기는 크게 놀란 얼굴로 부서진 의자와 탁자들의 잔해를 밀쳐내며 몸을 일으켰다.

순간 화운의 차가운 말이 그들에게로 던져졌다.

“일다경 주겠어. 오지 않으면 우리가 찾아간다고 전해.”

당화천과 당옥기는 더 이상 쳐다보지도 못하고 아래층으로 서둘러 내려갔다.

“너무 막나가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당문 사람들은 자존심도 강하고 독하기로 유명하잖아요. 누를 거면 제대로 눌러야 해요. 쳐다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도록.”

“독왕도 그렇게 할 수 있어요?”

“독왕을 누르지 못할 거면 시작도 하지 말았어야죠.”

화운의 말에 천옥당의 눈이 잔뜩 커졌다.

하지만 곧 태양존자의 발걸음조차 돌려놓았다는 것을 상기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 전에 본 당옥기 말인데요. 그 사람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화운이 물었다.

천옥당은 갑자기 그에 대해 묻는 이유를 몰랐으나 우선 자신의 머릿속에서 당옥기에 대한 정보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일다경 후.

특이한 형색의 노인이 녹선다루에 나타났다.

회백색의 머리칼에 소맷자락이 큰 녹포를 입고 있는 노인이었다.

깡마른 얼굴은 잿빛이었고, 퀭하게 자리 잡은 두 눈은 죽은 자처럼 어두웠으나 깊이 자리한 동공은 선명한 초록빛이라 보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사천독왕 당후.

바로 그였다.

당후는 곧장 이층으로 올라갔다.

십대 중반의 아이와 이십이 겨우 되었을까 한 계집이 보였다.

당후는 곧장 두 사람의 맞은편에 앉았다.

녹빛이 번뜩이는 눈으로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듯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죽이기 전에 마지막 몸부림을 보겠다는 것 같았다.

“거두절미하고 말하겠소. 문주님께 사과부터 하시오.”

화운은 독왕의 앞에서도 거만을 떨었다.

반면 천옥당은 애써 위엄을 보이고는 있지만, 전신의 신경이 곤두설 정도로 긴장되는 것까지 막을 순 없었다.

‘괜찮아. 독왕이든 누구든 화 공자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야. 긴장하지 말자. 아니 쫄지 말자. 독왕이 아니라 그냥 독종일 뿐이야. 독종인 노인네일 뿐이다.’

천옥당은 억지로 독왕의 존재를 무시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은 간담이 커졌고 긴장을 떨칠 수 있었다.

결국 당후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한 놈은 거만을 떨고 있고, 한 년은 당당하게 무시하고 있는 걸로 보여서다.

“하오문이 이토록 무지했었나?”

고개를 갸웃하는 당후.

그는 곧 손가락을 퉁겼다.

피-잉!

손톱 아래에 감추어져 있던 독이 쏘아갔다.

비백산이라는 극독이다.

막아도 소용없다.

분말로 터지면서 살갗의 숨구멍을 통해서도 중독이 되는 극독이라 실내에서 특히 효과적이었다.

퍽!

비백산이 터졌다.

시커먼 가루가 되었다.

하지만 일정 공간 이상을 침범하지 못했다.

‘강기막?’

당후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그와 동시에 그의 두 손이 동시에 뻗었다.

상대가 강기막을 간단히 펼칠 정도의 고수라는 걸 알았으니 곧장 성명절학을 펼쳤다.

화-악!

두 손에서 녹빛의 강기가 동시에 발휘되었다.

독강이다. 극독의 기운이 실려 있어서 스치기만 해도 즉사를 면키 어렵다.

하나는 화운을 향해 또 하나는 천옥당을 향해 빛살처럼 쏘아갔다.

콰앙! 쾅!

강기의 충돌로 인한 폭음이 터졌다.

놀랍게도 당후가 발출한 독강들은 독주머니처럼 터진 게 다였다.

화운과 천옥당의 몸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했다.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거였다.

당후가 펼친 독강을 아무렇지도 않게 막아낸 강기막이 불쑥 쏘아져 나가 당후를 후려쳤다.

당후가 반사적으로 쌍장을 뻗어 막은 순간 아찔한 충격이 그의 손목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당후는 상체가 뒤로 휘청거리면서 의자와 함께 뒤로 확 밀려나자 재빨리 몸의 중심을 잡으며 이후의 공격에 대비하고자 했다.

그러나 화운이 더 빨랐다.

화운의 몸에서 강렬한 기운이 튀어나와 새파란 용의 머리를 만들더니 당후를 급습한 것이다.

이때만큼은 천하의 당후조차 간담이 서늘해지고 말았다.

“그만!”

천옥당의 냉엄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 건 새파란 용의 머리 형상을 한 강기가 당후를 강타하기 직전이었다.

청룡의 머리는 마치 똬리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화운의 몸속으로 물러났다.

“문주님, 이참에 당문을 지워버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화운이 왜 막았냐는 투로 물었다.

천옥당은 사전에 모의한 대로 문주의 위엄을 과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

“태상호법님, 당문이 있어야 청성파와 경쟁이 됩니다. 늘 말씀드렸다시피 정파와 사파의 균형이 본문에 이롭습니다.”

그렇게 말한 천옥당은 당후를 향해서도 말했다.

“당 문주님, 계속해보시겠습니까 아니면 본문의 선처를 받아들이겠습니까?”

용서해줄 테니 달게 받으라는 뜻과 다름 아니었다.

당후는 이를 짓씹었다.

자존심이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보십시오. 당문은 자존심이 워낙 강하니까 한번 부딪치면 끝장을 봐야한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화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산 같은 장중한 기운이 휘몰아쳤다.

그 가운데 검자루를 잡아 뽑으니 새파란 기운이 검신에 강렬하게 응집하였다.

그제야 화운이 검객이고, 검을 뽑기도 전에 확연히 밀렸다는 걸 깨달은 당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당 문주님, 단언하건데 태상호법께서 계시는 한 천사련도 본문을 어쩌지 못합니다.”

구룡제와 적성대도황조차 아래로 본다는 말에 당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싸워보기 전에는 모른다고 했잖습니까. 그리고 그런 엄포는 당문에 통하지 않습니다. 나중에라도 뒤통수 맞기 전에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화운이 검을 들었다.

순간 검신에서 고리모양의 강환 수십 개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허공에 둥실 떴다.

천옥당이 허락하면 단박에 날아갈 기세였다.

당후는 수십 개의 강환을 보자 도저히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괴물이라는 걸 깨달았다.

가슴이 서늘해진 당후는 연배도 잊고 재빨리 외쳤다.

“원하는 게 무엇이오?”

***

하오문 사천지부는 그대로 두었다.

대신 지부장 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선임되었다.

당문의 당옥기였다.

천옥당은 사천 땅에 국한해서는 모든 정보를 당문에 제공해 줘도 된다고 허락했다. 그 대신 당옥기는 당문의 혈족이라는 신분을 완전히 버려야 했다.

사천 땅의 일을 해결한 화운은 천옥당을 본래의 자리로 돌려보낸 후 감숙으로 향했다.

마인들의 땅, 천종천마교의 본거지로 향한 것이다.

‘대체 누가 경천보패를 손에 넣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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