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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으로 무림지존-174화 (174/207)

#174. 무영자

천종천마교 북명전.

천마탑을 기준으로 북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지상만 오 층인 거대전각이다.

“누구냐?”

허공에서 갑자기 두 사람이 나타나자 북명사자들이 경계하여 소리쳤다.

화운과 무영투였다.

“전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화운이 말했다.

무영투는 대꾸도 않고 북명전 안으로 바람처럼 쏘아갔다.

“멈춰라!”

“베어 버려!”

북명사자들이 소리치며 무영투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화운이 휘두른 검력이 빛살처럼 뻗어가 모조리 베어버렸다.

검광이 번쩍 불을 뿜은 순간 무영투를 쫓아가던 다섯 사람이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풀썩 쓰러졌다.

그 광경에 화운을 경계하고 있던 세 명의 북명사자가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화운은 가차 없이 그들마저 베어버린 후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발아래 지하 형옥에서 소란이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무영투의 무위라면 간수들은 물론이고 북명사자들이 떼로 달려들어도 옷자락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지난 몇 년 동안 화운의 도움을 받아 공공무영비 구단공 무영비천까지 완성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큰 약점이었던 공격 무공인 십자곤법 또한 화운의 가르침을 받아 건곤무상을 접목시켜서 원래보다 월등히 강력해졌다.

강호명숙으로 활동하기에 전혀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무위를 지니게 된 것이다.

“죽고 싶어 환장한 놈이로군! 죽여라!”

전각 안쪽에서 차가운 명령이 들렸다.

화운이 돌아보니 이층으로 올라가는 안쪽 계단 위에 북명우사가 보였다.

그리고 그의 명을 받은 북명사자들 십여 명이 부챗살처럼 좌우로 펼쳤다가 화운을 향해 빗발치듯 쏘아져 오고 있었다.

화운은 수평으로 검을 그었다.

검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 새파란 광채가 번뜩였다.

북명사자들은 그 광채를 본 순간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쓸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 느낌과 동시에 지독한 어둠속으로 곤두박질 쳤다.

십여 명이 단 일검에 쓰러져 버리자 북명우사가 눈을 크게 떴다.

“보통 놈이 아니로구나!”

바로 이때.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통해 무영투가 바람처럼 솟구쳐 올라왔다.

등에는 무영자를 업고 있었다.

“이놈들!”

북명우사가 소리치며 무영투를 향해 쏘아갔다.

무영투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장원 밖을 향해 몸을 날렸다.

“어림없다!”

북명우사의 쌍장에서 강맹한 장력이 몰아쳤다.

콰앙!

북명우사는 무영투를 잡지 못했다.

화운이 휘두른 검이 그의 장력을 단박에 소멸시켜버린 탓이다.

그 사이에 무영투는 허공으로 솟구쳐 금세 사라졌다.

“쫓아라!”

북명우사의 명이 떨어졌다.

순간 북명전 이층에서 북명사자들이 벌떼 같이 쏟아져나갔다.

“······!”

명을 내린 북명우사가 눈을 치뜨며 놀랐다.

방금 전까지 북명전 입구에 서 있던 화운이 보이지가 않은 것이다.

쫓으라는 명을 내리는 그 찰나의 사이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놀란 얼굴로 북명전 밖으로 달려 나간 북명우사는 그제야 볼 수 있었다.

북명사자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는 화운의 모습을.

무영투의 뒤를 쫓아 질주하던 북명사자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놈!”

북명우사가 고함을 지르며 화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간 화운이 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번쩍!

멀리 청광이 번뜩인 걸 느낀 순간 북명우사가 쌍장을 뻗었다.

귀청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가슴팍이 썰리는 소름끼치는 느낌.

북명우사는 화운의 절대검력에 변변한 대항조차 하지 못하고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

멀리 천종천마교가 보이는 야산 중턱.

대환단을 복용한 무영자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 중이었고, 무영투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북명우사를 죽인 후에 강시당으로 달려가 지하를 무너뜨리고 온 화운은 무영투 뒤쪽에 조용히 내려섰다.

무영자의 몸은 대환단의 약력으로 빠르게 치유되고 있었다.

화운은 입을 꾹 다문 채 무영투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무영투에겐 미안한 마음이 컸다.

위험하다는 핑계로 무영자를 구하는 걸 지금까지 늦췄기 때문이었다.

스승 무영자가 천종천마교에 갇혀 있다는 걸 알게 된 무영투는 화를 냈고, 지금까지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화운은 아무 말도 못하고 무영투의 뒷모습만 바라본 채 그 자리를 석상처럼 지켰다.

한 시진 후.

무영자가 눈을 떴다.

“꿈이 아니었구나!”

“사부님!”

“어찌 이리 늙었누? 그래도 죽기 전에 볼 수 있어서 참으로 좋구나.”

“죄송합니다. 제자가 미욱해서 이제야 왔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위험한 짓을 하였구나. 이 스승을 구하러 올까 봐 말하지 않았던 것인데, 어찌 알고 왔누?”

“이야기가 깁니다.”

“아직 위험한 것이냐? 그리고 저 잘생긴 공자는 뉘시냐?”

“나쁜 놈입니다.”

“나쁜 놈?”

“상종하지 마십시오. 그보다 몸은 좀 어떻습니까?”

“대환단을 먹였느냐?”

“예.”

“허어, 소림에 저지른 죄업만 늘어나는구나.”

“스승님······.”

“무공을 잃었지만 대환단 덕분에 죽지는 않겠다.”

“그럼 가시지요.”

“어딜?”

“사부님께서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지요. 이 제자랑 떵떵거리며 사셔야지요.”

“인석아, 그런 삶을 바랐다면 그 고생을 했겠느냐. 배곯지 않고 비바람 피하고 잘 수 있었으니 만족한 삶이었다. 그보다 그 긴 이야기가 궁금하구나. 저 공자와는 무슨 사이기에 그리 화를 내는 것이냐?”

스승님께서 궁금해하시거늘 어찌 입을 다물까.

무영투는 화운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낱낱이 들려주었다.

자신을 속여 공공무영비를 배워갔다는 말을 할 때는 사기꾼이라고 욕했고, 스승이 갇혀 있는 걸 알고도 이제야 가르쳐주었다는 부분을 이야기 할 땐 천하에 다시없을 나쁜 놈이라고 욕했다.

그 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무영자는 허허 웃으며 화운을 쳐다봤다.

화운은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공자가 죄송할 게 무에 있겠는가. 이놈이 미련한 것이거늘.”

“사부님!”

“그게 어찌 니놈이 화를 낼 일이냐?”

“사부님이 그토록 참담한 지경에 처해 계시는데, 전 그것도 모르고 저놈이랑 희희낙락했단 말입니다.”

“이 미련한 놈아! 천종천마교로 간다는 걸 이 사부가 왜 말하지 않았겠느냐! 네놈만은 자유롭게 시시덕거리며 살라고 그런 것이다. 그렇게 살았으면 이 사부 뜻대로 된 것이거늘 뭐가 어쨌다고 지랄이누!”

“사부님!”

“지금까지 희희낙락 살았다니 오히려 고맙다. 네놈이 이 사부를 구하러 올 정도로 강해진 것이 더 고맙단 말이다. 알겠느냐?”

“하지만······.”

“지랄 말고, 화 공자한테 화 내지 말거라. 화 공자, 고맙소이다.”

“어르신께선 제게 스승님 같은 분이십니다. 지하 감옥에서 저랑 만나게 되었을 때 제게 많은 걸 가르쳐 주셨습니다. 말씀 편하게 놓으십시오.”

“흐음······ 하긴 뭐 본문의 공공무영비를 이었으니 사제지연을 맺지 않았다 하도라도 남이랄 수는 없겠군.”

“예.”

“사문 정리는 더 고민해 보기로 하고, 일단 편하게 말 놓겠다.”

“감사합니다.”

“고마운 건 나고, 자, 이제 가자.”

무영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무영투가 재빨리 다가가 팔을 잡아 부축했다.

“어디로요?”

“어디긴, 닭고기 먹으러 가야지.”

“예?”

“오랫동안 갇혀 있다 보니 닭고기가 뜯고 싶어 미칠 것 같더라. 뭐 하냐? 얼른 가자니까.”

“아, 예.”

무영투가 재빨리 등을 보이고 돌아서자 무영자가 업혔다.

“화운이라고 했지?”

“예.”

“남은 이야기는 닭고기 뜯으면서 하자구나.”

“알겠습니다. 제가 사드리겠습니다.”

“좋구나.”

기분 좋게 웃은 무영자가 곧 이어 무영투의 머리를 가볍게 쳤다.

“공공무영비가 얼마나 대단해졌는지 보자. 실력발휘 한번 해 보거라.”

“히히히! 깜짝 놀랄 겁니다. 꽉 잡으십시오!”

“오냐, 가자!”

무영자가 소리친 순간 무영투가 땅을 박차고 솟구쳤다.

발 디딜 곳도 없는 허공에서 무영자를 업은 채 사방팔방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더니 금세 일섬이 되어 쏘아갔다.

***

“사부님 덕분에 봐준 줄 알아라.”

“예.”

“망할 놈!”

“죄송합니다.”

“더는 없겠지?”

“예?”

“또 날 속이고 있다거나 아직 말하지 않은 거 있으면 지금 말해라. 지금이라면 다 용서해 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음······ 제가 좋아한다고 말했던가? 그것 말고는 감춘 게 없을 겁니다.”

“봐준다니까, 금세 또 지랄하는구나!”

“우리 사이가 좀 돈독합니까. 히히히!”

“꼴사납게 그 웃음은 뭐냐?”

“영감님도 스승님께 이렇게 웃더만요.”

“내가 언제!”

“그렇게 웃었다.”

무영투가 발뺌하자 듣고 있던 무영자가 끼어들었다.

“사부님은 좀 제 편 좀 들어주고 그러십시오. 얼마만에 만난 제자인데, 그렇게 구박만 하십니까.”

“구박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인석아, 어른답게 굴어라. 운이가 아무리 대단해도 아직은 한참 어린 나이다. 무공은 네 녀석이 배울지언정 어른이 된다는 게 뭔지 정도는 네 녀석이 가르쳐 줄 수도 있잖느냐.”

아주 틀린 말은 아닌지라 무영투는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어깨를 늘어트렸다.

그 모습을 보며 슬며시 웃던 화운은 무영자를 향해 말했다.

“더 드시고 싶은 건 없습니까?”

“술이 간절하다만 아직은 참아야겠지?”

“며칠은 참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래, 뭐 어쩔 수 없지.”

대환단의 약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단 며칠 만에 온전한 몸 상태로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무영자는 자신의 몸 상태를 잘 알기에 입맛만 다시며 술도 다른 음식도 더는 시키지 않고 참았다.

“오늘은 이 객잔에서 주무시고 내일 출발하는 게 어떻습니까?”

화운이 무영투에게 물었다.

무영자의 몸 상태를 염려해서 서두르지 말자는 뜻이었다.

무영투는 고맙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구나. 한데 어디로 갈 생각이냐? 사부님을 어디로 모시는 게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제 부모님이 계시는 선우세가에 모셔도 되니까, 찬찬히 생각해 보십시오. 그 보다는 우선 소림사로 가는 게 어떨까 합니다.”

소림사 이야기가 나오자 무영자의 얼굴이 대번에 무거워졌다.

대환단을 훔친 것 때문이다.

화운은 무영자의 마음이 더 무거워지기 전에 얼른 말했다.

“그 빚을 청산할 방도를 알고 계시잖습니까.”

“······?”

무영자가 쳐다봤다.

“금강부동 말입니다.”

“아, 맞다. 그게 있었어!”

무영자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화운에게 들어서 알고 있던 무영투는 미소를 지으며 스승을 바라봤다.

무영자는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사부가 말이다. 용담호혈이라는 마교에서, 그것도 천마동까지 잠입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거 아니냐! 크흘흘흘흘!”

무영자는 천마동에 잠입하여 까마득한 과거의 천마가 소림사에서 가져간 석벽을 찾아내 그곳에 새겨진 금강부동을 모조리 암기해 버린 무용담을 한참 늘어놓았다.

무영투와 화운은 그의 무용담을 즐겁게 들어주었다.

다음 날 세 사람은 하남 소림사로 향했다.

무영자의 몸 상태는 날이 갈수록 좋아졌고, 일행은 이십여 일 만에 숭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소림사를 곧장 찾아간 무영자는 자신이 대환단을 훔쳤음을 이실직고한 후 무영투가 가지고 있던 남은 대환단 두 알을 내놓았다.

더불어 자신의 죄를 갚고자 천종천마교로 가서 소림 천년의 전설인 금강부동을 알아왔다면서 전날 객잔에서 직접 써둔 서책을 내밀었다.

소림사는 엄격한 곳이었다.

대자대비하신 석가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하여 용서와 관용이 넘치는 곳이라고 여긴다면 그건 착각이다.

“죄는 용서받을 수는 있으나 공으로 대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오. 게다가 시주께서 저지른 죄는 간단히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오. 그에 본 장문인은 시주께 한 가지를 명하고자 하오. 가슴에 쌓인 번민을 벗을 때까지 소림에 머물러 본사의 계도를 받으라는 것이오.”

소림에 남아 용서를 받으라는 것이다.

그에 무영투가 거세게 반발했다.

대환단이 대단하다고는 하나 금강부동에 비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림사 장문인은 단호했다.

그 어떤 죄도 공으로 대체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참을 고심하던 무영자는 그 자리에서 크게 절을 올렸다.

“장문인의 은덕에 미욱한 놈, 그저 감사드리나이다.”

그렇게 무영자는 소림에 남기로 결정을 내렸다.

무영투가 크게 반발했으나 결국은 사부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소림은 이 사부가 늘 경외하던 곳이다. 그런 곳에서 머물기를 허락해 주셨거늘 어찌 마다하겠느냐. 널 제자로 만나 즐거웠고, 죽을 날만 기다리던 차에 다시 널 보게 되어 기뻤다. 이제 늘 경외하던 곳에 안착하게 되었으니 이 사부는 더는 바라는 게 없다.”

“사부님!”

무영투는 대성통곡했다.

그런데 그런 무영투를 보듬어주던 무영자가 귓가에 대고 모기소리 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매달 말일이면 닭고기를 가지고 몰래 오너라.’

“······!”

무영투는 그제야 영원한 작별이 아님을 깨닫고는 울음을 그칠 수 있었다.

소림에서 나온 화운과 무영투는 곧장 남하했다.

“이제 백리세가로 가는 것이냐?”

“영감님은 백리세가로 가십시오. 전 따로 들릴 곳이 있습니다.”

“어딜?”

“구룡성입니다.”

“아, 그 녀석도 데려오게?”

“예.”

“납치라도 할 생각이냐?”

“스물네 살쯤 되었을 테니까 자신의 길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겠지요.”

“글쎄다, 구룡제가 애지중지 한다는 말이 있던데······.”

“가 보면 알겠지요.”

화운의 머릿속에 한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철의 심장을 가진 봉황처럼 아름다운 여인이라 하여 철봉황이라 불렸던 북궁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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