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셋으로 무림지존-163화 (163/207)

#163. 반로환동

하오문.

점소이부터 시작해서 소매치기, 도둑질, 매춘업 등에 종사하는 최하류 인생들이 무인들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나로 뭉쳐 만든 방파다.

처음엔 그저 살아남기 위해 뭉쳤으나 그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 천하각지에서 올라온 정보들이 힘이 된다는 걸 알아차렸다.

천하의 모든 정보는 하오문으로 흘러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기에 이르렀으나 무력을 숭상하는 패도적인 기질의 무인들은 하오문을 무시하고, 배척했고, 심하게는 혐오하여 가만두지 않았다.

청해성이나 감숙성처럼 사파와 마도가 바글거리는 곳에서 하오문의 간자라는 게 알려지면 죽은 목숨일 수밖에 없다.

화운은 정무맹 신풍대주 시절에 천마와 마신 아수라에 관한 모든 정보를 구하고자 하오문 총단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때 천옥당을 만났다.

그녀는 귀빈을 맞는 접객당주처럼 굴었지만, 실상은 그녀가 문주였다.

화운은 당시 천옥당에게서 느꼈던 특유의 기운을 지금 사갈마희에게서 느꼈다.

동질의 내력을 익혔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기운에 민감하거나 화운처럼 대자연의 기운을 여의할 줄 아는 건곤입신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만이 간파할 수 있는 일이었다.

화운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갈마희를 내려다보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정체가 발각되었고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렸었다고는 하나 천종천마교의 앞마당에서 간자 노릇을 하는 이가 그 정도로 두려움에 떤다?

지나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알겠군. 네가 두려워하는 게 뭔지.”

“······!”

“네 역할은 천종천마교 내에서 활동하는 간자와 접촉하는 것이었어. 네가 죽으면 그자와의 연결이 완전히 끊긴다는 걸 의미하지.”

화운은 천옥당을 만났을 때 천종천마교 내에 하오문의 간자가 활동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것도 꽤 높은 위치에서.

하오문은 기본적으로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었다.

천종천마교처럼 대단히 위험한 곳에서 간자로 활동하려면 더더욱 그런 방식으로 운영했을 터, 그 연결 고리 하나가 끊기면 그 통로는 완전히 끝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화운이 거기까지 간파해 버리자 두려워하던 사갈마희의 표정이 돌처럼 굳더니 곧이어 체념으로 변해갔다.

“삶도 임무도 너무 쉽게 포기하는군.”

화운의 의미심장한 말에 사갈마희가 고개를 들었다.

“난 사천 땅을 내 발아래에 두고자 해. 그 시작을 천종천마교의 앞마당에서 하고 있으니 무척 위험한 일이지. 하오문의 정보라면 그런 내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때?”

“거래를 하자는 건가요?”

“아니 선택권을 주는 거야. 여기서 죽을 것인지 임무를 계속 수행할 것인지.”

“그쪽이 약속을 지킬 거라는 걸 어떻게 믿죠?”

“달라지는 게 있나?”

“······?”

“내가 약속을 어긴다고 하여 지금과 달라지는 게 없을 텐데.”

“······그렇군요.”

사갈마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화운을 빤히 응시하더니 물었다.

“한 가지 물어도 될까요?”

“뭐지?”

“나이가 어떻게 되요?”

“너보다 많아.”

“역시. 반로환동 한 고수였군요.”

“지분거리는 걸 싫어하니까, 마음 바뀌기 전에 가봐.”

“알겠어요. 다시 뵙겠어요. 아, 참. 예상하시고 계시겠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걸 거저 내놓기 싫어해요.”

“한번은 봐주지.”

“역시 다 예상하고 있었군요.”

더는 대화하기 귀찮다는 듯 화운이 먼저 돌아서자 사갈마희 역시 돌아섰다.

대청을 가로질러 밖으로 향하는 사갈마희.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떠올랐다가 사라졌으나 등 뒤의 화운은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동시의 순간에 화운의 입가에도 비슷한 종류의 미소가 떠올랐다는 걸 사갈마희 역시 보지 못했다.

“저년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것 같은데?”

무영투가 안쪽에서 나타나며 중얼거렸다.

뭔가 너무 손쉽다는 낌새를 느낀 것이다.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몰랐지만.

“천종천마교에서 활동하는 간자와 접촉하는 게 임무가 아니니까요.”

“······!”

“그토록 중요한 임무를 맡은 자가 위험한 일에 나서겠습니까.”

“그래, 바로 그거야. 뭔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걸리적거렸다니까. 그럼 저년이 맡은 임무는 뭘까?”

“그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는 자를 보호하는 걸 겁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임무를 다른 자에게 넘겨줄 때가 된 거고요. 그러니 위험한 일에도 서슴없이 동참한 걸 겁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사라져 줄 수 있으니까요.”

“갑자기 복잡해지려고 하네. 근데 넌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냐?”

“정무맹에서 신풍대를 이끈 적이 있었다고 말씀드렸죠?”

“그래.”

“그때 하오문을 방문한 후에 정보대에 대해 생각 좀 해봤었거든요. 저라면 어떻게 운용할지요. 암만 생각해 봐도 하오문처럼 점조직으로 운용하는 게 정말 괜찮은 것 같더군요. 거기다 일정한 주기로 사람들을 교체해 버린다면 발각당할 일도 없겠구나 싶고.”

무영투는 화운이 대단하다는 생각이었다.

하나를 보면 둘을 알아볼 정도는 아닐지 몰라도 흩어져 있는 조각들을 하나하나 꿰맞춰 보는 능력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무영투의 기준으로는 신통방통한 일이었다.

“여튼 뭐, 머리 아픈 일은 네가 알아서 하고, 밖은 조용하니까 이제 좀 쉬어도 되겠지?”

“뭘 했다고 쉽니까. 건곤무상이나 수련하십시오.”

“네놈도 늙어봐라. 수련한다는 게 그리 쉬운 줄 아느냐?”

“십자곤법으로는 칠십이살마조차 상대하기가 버거울 건데, 앞으로도 계속 도망만 다닐 겁니까?”

무영투가 익힌 공공무영비는 절세경신술이라 할 만큼 대단했다.

하지만 공격무공인 십자곤법은 그렇지가 않았다.

공공무영비가 워낙 뛰어나 지금까지 천하를 활보하는 데에 큰 위기는 없었으나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낭패를 보기 십상일 정도로 형편없는 게 십자곤법이었다.

그래서 화운은 일 년 전부터 건곤무상을 가르치고 있었다.

십자곤법에 건곤무상을 접목시킨다면 지금 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었다.

하지만 건곤무상은 무영투에게 너무 난해한 무학이었다.

그래서 걸핏하면 그만두려고 했다.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포기하지만 않으면 어느 순간 갑자기 다가오는 게 건곤무상이라고요. 그리고 공공무영비를 구단공까지 익히고 이해하셨으니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으니 끈질기게 버티시라고요.”

“알았다. 알았어. 그놈의 잔소리.”

“제가 천마와 싸울 땐 옆을 돌아볼 겨를조차 없을 테니까 스스로 목숨을 챙겨야 한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알았다. 한다, 해.”

투덜거린 무영투가 품에서 철곤을 꺼내들며 대청 중앙으로 향했다.

화운은 그런 무영투에게서 결코 눈을 떼지 않았다.

대충 하는 낌새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잔소리를 해댈 기세였다.

그에 무영투는 대청 바닥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망할, 이 나이에 이 무슨 꼴이냐! 하아, 진짜!’

***

사갈마희는 네 사람과 다시 만났다.

“어떻게 되었느냐?”

화골장이 물었다.

“그들을 죽이지 못하면 철저히 고개를 숙여야 할 거예요. 두 번은 없을 테니까요.”

어째 더 심각해진 것 같아 모두들 서로를 돌아보는 가운데 사갈마희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삼십육대마로는 안 되겠어요. 그 위쪽, 십이무상을 청해야겠어요.”

“그들이 움직일 리가 없잖나!”

“아뇨, 움직일 거예요. 상대가 반로환동한 고수라고 하면 적어도 한 사람쯤은 반드시 올 거예요.”

반로환동이라는 말에 모두들 깜짝 놀라 쳐다봤다.

그러나 사갈마희는 더 이상의 설명 없이 계속 묘한 미소만 지었다.

‘궁금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이야. 정말 반로환동 한 것인지도.’

***

삼십육대마의 일인인 혈삭마가 무상 마백을 찾아왔다.

그런데 마백이 혼자 있지 않았다.

“아, 소공녀께서 함께 계셨습니까. 방해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나중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혈삭마가 소공녀라 칭하며 극진한 자세로 대할 이는 한 사람 뿐이다.

사연홍.

멸제의 두 번째 양녀로 이공녀 혹은 소공녀라고 불리는 여인.

방년 열넷의 나이에 벌써부터 소나찰이라는 흉명을 얻을 정도로 성품이 고약했다.

“멸천부에 칼을 들이댈 모의를 하려는 게 아니라면 그러지 마세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멸천부는 멸제의 거처를 말한다.

사연홍의 말에 혈삭마가 급히 손사래를 치며 빈자리로 와서 앉았다.

“무슨 일로 온 겐가?”

무상 마백이 물었다.

멸천부에 감출 게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 뜻을 알아들은 혈삭마는 감추지 않고 바로 말했다.

“일전에 말씀드렸잖습니까. 난주에서 들어오는 자금이 쏠쏠하다구요.”

“흑도들처럼 잡스런 짓을 한다던 암영총 말인가?”

“예.”

“그런데?”

“거기서 도움을 청해왔습니다. 자신들을 날로 삼키려는 작자가 나타났다고요.”

“그럼 가보지 여길 왜 찾아와?”

“어쩌면 제가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섭니다.”

“······!”

마백이 살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때 사연홍의 반응은 좀 더 직접적이었다.

“재밌군요. 본교의 앞마당인 난주에 삼십육대마의 일인께서 감당하지 못할 자가 있다니 말입니다. 아아, 은거기인이라는 말도 있으니 난주에도 그런 고수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문제는 그런 자가 대놓고 활동을 한다는 것이지만.”

“대체 뭐라고 요청을 해왔기에 가보지도 않고 그런 생각부터 한 겐가?”

“반로환동한 고수랍니다.”

“······!”

“······!”

이번엔 사연홍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건 잠깐에 불과했다.

“반로환동한 고수가 잡스런 것에 눈독을 들여요? 하아, 오늘 강시당에서 재미난 일이 있다고 하지만 않았어도 구경가볼 만한 일이네요.”

사연홍이 비웃음을 흘리며 일어났다.

“벌써 가렵니까?”

“무상께서 바쁘시게 되었으니 얼른 비켜드려야지요. 그 반로환동 했다는 작자를 잡아다 놓으시면 구경 오겠어요.”

사연홍이 다시 한번 비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망할 년!”

마백이 나직이 욕설을 내뱉었다.

혈삭마는 마백의 짜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말했다.

“그놈들이 잡스럽긴 합니다만, 살아온 세월이 있어 눈치가 좀 남다른 편입니다.”

“그래서?”

묻는 마백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사연홍에게 놀림을 받게 만들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혈삭마는 알면서도 모른 척 계속 말했다.

“늙은이 하나와 열세 살 혹은 열네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 하나인데, 그 아이의 무공을 측정조차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 아이가 반로환동을 했다?”

“스스로 그렇게 말하더랍니다.”

열세 살 정도의 아이가 반로환동했다는 말을 할 정도로 고수라면 데려다가 키워볼 만할 것이다.

반대로 반로환동한 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한 것인지 알아봐야 한다.

젊은 육체로 되돌릴 수 있는 일이거늘 어찌 관심을 갖지 않겠는가.

“좀 더 자세히 말해봐.”

마백의 모습에서 짜증이 사라지고 있었다.

***

이틀 후 난주.

마백과 혈삭마가 이십여 명의 수하들을 데리고 장원 앞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곧장 장원의 문을 열고 들어간 후 수하들을 앞마당에 대기시켰다.

그리고 자신들은 다짜고짜 대청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야말로 무인지경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대청 안으로 사라지자 장원 밖에서 지켜보던 사갈마희 등이 서로를 돌아봤다.

“그냥 저렇게 끝나는 거 아니오?”

“흥! 그렇게 무섭게 굴더니 막상 무상께서 오니까 꼬리를 만 것이 아니겠소.”

흑서담주와 비서둔주가 콧방귀를 뀌어가며 비웃음을 터트리자 장원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사갈마희가 한 마디 했다.

“아니, 저렇게 끝나지 않을 거야.”

화운과 무영투는 대청 안에 있었다.

“방주님, 청하지 않은 객이 들어온 모양입니다.”

무영투가 수련하던 것을 멈추고 말했다.

화운은 안쪽 태사의에 앉아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본 마백은 곧장 대청을 가로질렀다.

“우린 천종천마교에서 왔다.”

혈삭마가 마백의 뒤를 따르며 말했다.

그에 무영투가 화운을 돌아봤다.

화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손에 쥐고 있던 철곤을 집어넣은 무영투가 옆으로 비켜섰다.

그럴 줄 알았다는 태도로 마백이 무영투를 곧장 지나쳤다.

그런데 그가 지나가고 나자 무영투가 혈삭마의 앞을 막아섰다.

“무슨 뜻이냐?”

“모시는 분께서 편하게 말씀 나누실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는 게 아랫것들의 도리가 아니겠소?”

“뭐라?”

혈삭마는 인상을 쓰며 마백을 바라봤다.

그러나 마백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화운의 앞에 서 있었다.

“주군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자리에 서 본 적이 없소. 어서 나갑시다.”

무영투가 재촉했다.

그럼에도 마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혈삭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난처했다.

“지켜야 할 게 있다면 맘대로 하시오.”

그 말을 끝으로 무영투가 대청 밖으로 향했다.

마백을 지켜야 한다면 그리 하라는 말에 혈삭마는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가 없어 무영투를 따라 대청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두 사람이 밖으로 사라지자 대청의 출입문이 닫혔다.

“반로환동 하셨다고?”

화운의 위아래를 거듭 살펴보던 마백이 물었다.

태사의에서 일어난 화운은 대답 대신 마백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십여 보를 앞두고 멈춰 섰다.

“그렇게 보이오?”

쾅!

대청 출입문이 요란하게 열렸다.

그리고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마백이었다.

대청 앞마당에 대기 중이던 혈삭마와 그의 수하들은 마백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백이 대청 문을 부수고 나왔으니 그 안의 인물은 필시 죽었으리라.

그런데 갑자기 마백이 휘청거리다 그 자리에 한쪽 무릎을 털썩 꿇었다.

“무상!”

뒤늦게 혈삭마가 소리치며 몸을 날리려는 순간.

화운이 대청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는 장검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

혈삭마의 얼굴에 놀람과 불신의 빛이 떠오른 순간.

마백의 옆에서 걸음을 멈춘 화운이 검을 높이 쳐들었다가 단호하게 내리 그었다.

스-칵!

머리통 하나가 깨끗하게 잘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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