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남궁검가
동패가 눈알을 뒤룩뒤룩 굴렸다.
허름한 옷차림에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아이였다.
암만 봐도 신내림 받은 아이 같지가 않았다.
오히려 함께 있는 여인이 더 특별해 보인다.
검을 찬 걸로 보아 무공을 익힌 것 같고, 무공을 익혀서인지 몸매가 빙어처럼 늘씬했다.
동패는 다시 아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칼의 소용돌이 어쩌고 한 놈이 너냐?”
순간 화운이 미간을 찌푸렸다.
동패가 신내림 어쩌고 할 때부터 알아차렸다.
비무가 끝나자마자 자신이 했던 말을 고해바친 작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건 곧 그 노인이 비무에서 졌다는 뜻이다.
“맞아요.”
화운이 말했다.
이럴 땐 뒤로 빠질 일이 아니다.
어차피 알고 온 상대한테 발뺌은 통하지 않는 법이니까. 하물며 동패 같은 작자가 어설프게 속아줄 리 만무했다.
화운이 나서자 선우비연은 검자루를 잡으며 싸움에 대비했다.
그녀는 대화에 신경 쓰지 않고 동패와 일곱 명의 낭인들을 예의주시했다.
혼자서 상대하기엔 숫자가 너무 많은 데다 동패 한 사람을 상대하기에도 벅찬 상황이라 대화고 뭐고 피할 수 없는 싸움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만 했다.
“꿈을 꿨다고?”
동패가 말에서 내리며 물었다.
그의 수하들로 보이는 일곱 명의 낭인들도 말에서 내려 다가왔다.
화운은 그들의 움직임을 힐끔 살펴본 후 동패를 쳐다봤다.
“알고 싶은 건 내가 뭘 더 알고 있는지가 아닌가요?”
“더 알고 있는 게 있다는 것이냐?”
동패가 몇 걸음 더 다가왔다.
화운은 심한 압박을 받았다.
어린 몸에 무공조차 익히지 못한 상태다 보니 동패의 기세를 받아내는 게 쉽지 않았다.
전신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화운은 온몸에 힘을 주고 버텼다.
“낭왕.”
화운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오자 동패가 걸음을 멈췄다.
그가 꿈에서조차 바라던 것이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화운은 그런 동패를 보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젠장, 꼼짝없이 신내림 받은 흉내를 내야겠구나!’
화운은 두 눈을 하얗게 뒤집었다가 동패를 직시했다.
그리고 아이 답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어제의 비무는 결과가 예정되어 있었다. 승자는 낭왕이 될 것이고 정사지쟁의 선두에서 수많은 피를 뿌릴 것이다.”
동패는 화운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다 피식 웃었다.
“기가 차는군.”
“······!”
“어린놈이 사기꾼의 기질을 제대로 타고 났구나!”
“신벌을 받게 될······!”
“닥쳐라! 신내림을 받은 자는 신의 기운에 민감한 법이다. 그런데 너에겐 그 어떤 신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잡신의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거늘 어디서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
화운의 눈이 커졌다.
‘뭐, 뭐야! 저 늙은이가 신내림을 받은 적 있다고!’
그렇지 않았다.
동패는 신내림 근처에도 가 본적이 없다.
산전수전 다 겪어 노회할 대로 노회한 동패는 화운의 행동에서 미묘하게 부자연스런 느낌을 받아 미끼를 던져본 것이다.
화운이 그 미끼에 걸려든 셈이다.
“누구냐, 누구한테 들은 것이냐!”
동패가 격분한 얼굴로 물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구명절초를 알고 있는 자를 찾아내 반드시 없애야만 했다.
화운은 미간을 찌푸렸다.
상대가 상대다 보니 어쩌면 일생일대의 위기였다.
“대화가 통할 상대가 아니다. 가만 있거라.”
선우비연이 낮게 말하며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둘 중 하나를 죽여 놓아야 밝히겠구나!”
동패가 구환도를 높이 쳐들었다.
금방이라도 무시무시하게 휘두를 기세였다.
선우비연은 화운의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검자루를 힘껏 잡아 일시에 발검할 태세를 갖추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그런데 바로 이때.
촤아아악!
동패가 돌연 뒤로 빙글 돌았다.
회전하는 동패의 신형을 따라 구환도가 크게 원을 그리며 일곱 명의 낭인들을 가차 없이 베어버렸다.
“크윽?”
“컥!”
“끄륵!”
세 명이 단박에 나가떨어졌고, 나머지 넷 역시 질풍처럼 움직인 동패의 구환도에 속절없이 갈라지고 베어졌다.
삽시에 일곱을 죽여 버린 동패가 흉신악살 같은 얼굴로 돌아섰다.
“누구냐, 누구한테 들은 것이냐? 고통 없이 죽고 싶다면 말하는 게 좋을 것이다.”
동패가 살기 가득한 목소리로 낮게 으르렁거리며 다가왔다.
신내림이 거짓인 이상 거리낌이 없는 그는 화운과 선우비연을 살려둘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동패 자신만 알고 있어야 구명절초이고 비장의 한 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쯤이면 어제 비무를 벌였던 천리낭객은 죽었을 것이고, 그의 추종자들이 남아 있으나 낭인 주제에 장례를 지낸답시고 한 곳에 모여 있으니 눈앞의 둘을 죽이고 그들을 찾아가야 한다.
문제는 그 이야기를 누구한테 들었느냐다.
“내 장담하는데 배가 갈라지고 창자가 끄집어내지는데도 끝까지 버티는 놈은 없다.”
동패가 살기를 번뜩이며 다가왔다.
성큼성큼 걷는 그의 걸음이 일정 간격 안으로 들어선 순간 선우비연의 검이 검집을 빠져나오며 벼락같이 허공을 갈랐다.
쩌엉!
맑게 울리는 쇳소리.
기분 좋은 소리가 아니다.
선우비연의 벼락같은 일검이 간단히 막히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츠아아악!
동패의 구환도가 무섭게 소용돌이쳤다.
혈염도의 마지막 초식 용권도참을 펼친 것이다.
꽈앙!
용권도참의 강렬한 도격에 선우비연의 검이 와락 밀려 버린 순간.
화운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그 수법이다!’
몸은 반응하지 못하지만 눈으로는 알아차렸다.
선우비연이 튕겨난 순간 동패의 왼손이 불쑥 뻗어온 것이다.
퍼억!
화운은 가슴팍이 부서지는 것 같은 고통과 함께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운아!”
선우비연이 기겁하여 소리쳤다.
작은 키의 동패가 한 발을 크게 내뻗어 펼친 것이기에 화운이 뒤로 날아갔다.
동패의 키가 지금보다 더 커서 위에서 찍어 누르듯 작렬했다면 그 자리에서 땅바닥에 처박혀 충격이 더 컸을 것이다.
선우비연이 다급히 달려갔다.
뒤에서 동패의 구환도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들었으나 그녀의 눈에는 화운 밖에 보이지가 않았다.
꽈앙!
동패의 구환도가 막혔다.
그리고 동시에 누군가가 날아가는 화운을 받았다.
“······!”
선우비연은 피아를 구분할 생각도 못하고 화운을 받아낸 사람에게로 무작정 달려갔다.
다행히 적은 아닌 모양인지 화운을 선우비연에게 내밀었다.
선우비연은 검을 던져버리고 화운을 받았다.
“대형께서 아이를 지키라고 하셨소. 어서 달아나시오. 일다경 이상은 버티지 못할 거요.”
천리낭객의 의형제들이었다.
천리낭객은 화운 덕분에 단 몇 합 만에 끝나버렸을 일방적인 패배를 면했다.
결국엔 동패의 구환도에 치명상을 당해 죽음을 면치 못했으나 그를 따르는 의형제들에겐 대형으로써의 체면치레를 했고, 향후 동패의 명성이 올라갈수록 어제의 비무와 함께 천리낭객의 별호 역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었다.
“어서 가시오!”
선우비연은 고맙다는 인사를 할 정신조차 없었다.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진 화운을 안은 채 정신없이 뛰었다.
뒤에서는 고함과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운아! 정신 차려라! 운아!”
애타게 화운을 부르며 달리다보니 기억에 남아 있는 길이 나왔다. 선우비연은 본능적으로 그 길을 따라 뛰었다.
***
올해는 오대세가의 회합이 남궁검가에서 치러졌다.
황보세가, 백리세가, 선우세가 그리고 우문검가의 가주들이 모두 참석하여 남궁검가 전체가 이틀 전부터 시끌벅적했다.
다섯 세가들이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 이런저런 사정에 의해 정해놓은 날짜에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해서 세가들은 삼일이라는 기간을 두고 회합을 치렀다.
“구룡성은 조용하네만, 바닷가에서는 해적들이 시끄러운 모양이네.”
백리세가주가 염려스럽다는 얼굴로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선우세가주에게로 향했다.
그에 선우세가주가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말하려는 순간 한쪽에 있던 우문검가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먹고 사는 게 급해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럭저럭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니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같은 오대세가라 해도 세간에 끼치는 영향력에 따라 알게 모르게 위아래가 있다.
우문검가는 늘 말석이었다.
게다가 바닷가에서 가까운 세가는 선우세가와 우문검가 뿐이어서 해적들과 관련된 부분은 늘 선우세가가 도맡다시피 했다.
지금 우문검가가 먼저 입을 열고 끼어든 건 더 이상 선우세가의 아래에 있지 않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선우세가주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인가 하려고 했으나 도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우문검가가 나서겠다니 잘 처리되길 바라겠네.”
백리세가주는 선우세가주에게 미안하여 화두로 꺼내놓은 이야기를 서둘러 봉합해버렸다.
“염려 놓으십시오.”
우문검가주가 당당히 대답했다.
이때 우문검가주의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남궁검가주가 차게 한 마디 했다.
“오대세가가 오랫동안 굳건할 수 있었던 건 서로를 믿었기 때문이고, 각자의 자리를 인정했기 때문이오. 이 자리를 빌어 분명히 말하겠소. 어느 가문이든 다른 세가의 자리를 넘보는 일이 벌어진다면 본가는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오.”
자신의 벗인 선우세가를 넘보지 마라.
선우세가가 있는 절강 땅에는 발도 디디지 말라는 엄포였다.
하지만 우문검가주는 속으로 코웃음 쳤다.
‘흥! 검을 맞대겠다는 것도 아니고 사업을 확장하는 것인데 남궁검가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우문검가주는 속으로 비웃었으나 겉으로는 그러지 않았다.
“이를 말입니까! 본가가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다 다른 세가에서 인정해주고 믿어주셨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소이다. 혹여라도 오대세가를 위협하는 무리가 나타나거든 언제라도 연통을 주시오. 다른 분들보다 먼저 달려가겠소이다!”
남궁검가주가 엄포한 내부의 분열을 외부의 공세로 바꿔놓은 우문검가주.
그는 과장되게 결연한 표정까지 지어가며 남궁검가주의 엄포를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남궁검가주이 눈초리가 차갑게 꿈틀거릴 때였다.
“가주님께 아룁니다. 자신을 선우비연이라고 말하는 여인이 찾아와 가주님을 뵙게 해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함께 온 아이가 위독해 보여 일단 객청으로 모셨습니다.”
대청 문 밖에서 들려온 보고다,
깜짝 놀란 남궁검가주는 선우세가주를 돌아봤고, 선우세가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덜컥!
객청의 문이 다급히 열리며 두 사람이 황급히 안으로 들어섰다.
“오라버니······.”
선우비연이 놀라 중얼거리자 선우세가주가 호되게 소리쳤다.
“누가 네 오라버니라는 것이냐!”
“이 사람아, 그게 급한가! 아이부터 보세.”
남궁검가주가 선우세가주를 밀치고 선우비연에게로 다가갔다.
선우비연은 화운을 꽉 끌어안은 채 앉아 있었다.
남궁검가주가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기식이 엄엄한 게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어쩌다 이리 된 건가?”
“장력에 맞았습니다.”
“상처도 상처지만, 경력의 힘이 몸에 남아있겠군. 본가로 잘 왔네. 아버님께서 검을 놓으셨지만 의술에 관심을 두고 계신지 오래라 도움이 될 거네.”
남궁검가주가 차분히 말하며 손을 뻗어 화운을 안으려고 했다.
선우비연은 화운을 꽉 끌어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알겠네.”
고개를 끄덕인 남궁검가주는 선우세가주를 돌아보며 크게 소리쳤다.
“뭐하는 겐가! 어서 아버님께 앞서 달려가지 않고!”
선우세가주의 격분을 가라앉혀 놓기 위해 일부러 그에게 소리친 남궁검가주.
선우세가주도 아이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들었기에 허둥지둥 밖으로 뛰쳐나갔다.
남궁검가주는 선우비연을 호위하듯 안내하여 객청 밖으로 나갔다.
***
화운은 극심한 통증과 함께 정신을 차렸다.
천근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보니 주름 가득한 노인의 얼굴이 보였다.
“정신이 드느냐?”
“예.”
“불편한 곳은 없느냐?”
“제 상태가······ 어떻습니까?”
“흠, 몇 년은 정양해야겠다.”
“팔다리가 다 붙어 있습니까?”
“그런 것 같구나.”
“그럼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무리해서 말을 한 화운은 다시 의식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의식을 차린 화운은 전보다 한결 나은 몸 상태를 느꼈다.
손과 발의 감각도 살아 있고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는 것도 가슴팍의 고통을 통해 명확하게 느껴졌다.
화운은 천천히 눈을 떴다.
“운아! 운아, 엄마다! 엄마야! 정신이 드느냐!”
선우비연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얼굴로 화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화운은 안심시켜드리고자 고통을 참으며 억지로 웃어주었다.
“웃는 걸 보니 괜찮겠소.”
점잖은 목소리와 함께 엄마의 얼굴 뒤로 두 사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화운은 그 두 사람을 단박에 알아봤다.
남궁검가주와 남궁현의 모친 섭소천.
한참 젊은 모습이지만 그 두 사람이 분명했다.
‘남궁검가로 왔구나.’
화운은 그제야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차렸다.
“숙부님, 부탁이 있습니다.”
남궁검가주는 화운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며 말하자 깜짝 놀랐다.
“내가 숙부라는 걸 알아보는 것이냐?”
화운은 자신이 너무 성급하게 말했다는 걸 깨달았다.
잠깐 입을 다문 화운은 머릿속을 정리한 후 다시 말했다.
“어머니께서 오실 만 한 곳은 남궁검가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그렇지 열흘 만에 깨어난 놈이 상황 판단이 참 빠르구나.”
놀람과 감탄한 기색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었다.
“이모님, 이렇게 인사드려 죄송합니다.”
화운은 말을 돌리고자 섭소천에게 말을 걸었다.
“나도 아는 것이냐?”
“어머니께서 가끔 말씀해주셨습니다. 친자매나 마찬가지이니 언제고 뵙게 되면 이모처럼 모시라고······.”
섭소천 역시 복잡한 얼굴로 화운과 선우비연을 번갈아봤다.
이때 선우비연은 화운의 상태를 걱정하는 한편 화운이 했던 말들을 더더욱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섭소천에 대해서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숙부님, 부탁이 있습니다.”
“그래, 뭐냐. 말해 보거라.”
“저희가 떠날 때 마차 좀 빌려주십시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남궁검가의 검수들로 저희 좀 지켜주십시오.”
마차와 남궁검가의 무인들을 호위로 붙여달라는 것이다.
다들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곧 남궁검가주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마. 조카가 처음으로 하는 부탁인데 그 정도도 못 들어주겠느냐. 염려 마라.”
“감사합니다.”
“진정 고마우면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나거라. 여기 모두가 네게 바라는 건 딱 그거 하나니까.”
“예. 알겠습니다.”
화운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음에도 남궁검가주의 얼굴엔 안쓰러운 기색이 스쳐갔다.
섭소천도 눈물이 글썽거리는 얼굴로 화운을 내려다보다 고개를 돌려버렸다.
‘내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은 모양이구나.’
화운은 어른들의 반응이 왜 그런지 알아차렸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힘없다는 듯 말했다.
“많이 잤는데도 졸립네요.”
“그래, 더 자거라. 나중에 또 오마.”
“예. 좀 자겠습니다.”
졸립진 않았다.
운기를 해서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해볼 생각이었다.
선우비연은 선우세가의 무공을 가르쳐 줄 수가 없어서 검공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하지만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초심법은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하단전의 기틀은 나름 착실했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밤마다 운기행공을 해왔기에 운기를 통해 몸 상태를 점검할 정도는 되었다.
화운이 눈을 감자 남궁검가주와 섭소천이 밖으로 나갔다.
선우비연은 화운이 편이 잘 수 있도록 이부자리를 살펴준 후에야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문 앞에 남궁검가주 내외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가실 생각이오?”
“예.”
“아버님 말씀 들으셨잖습니까. 몇 년은 정양해야하고, 그러고 나면 주요 혈맥들이 굳어져서 상승의 무공을 익힐 순 없게 될 거라고. 먼 길을 가다 혹여 더 안 좋아지기라도 하면······.”
“가주님.”
“말씀 하시오.”
“운이의 운명이 걸려 있는 곳이에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가야 해요.”
선우비연의 단호한 모습에 남궁검가주는 더는 만류할 수가 없어 안쓰러운 표정만 지었다.
“언니······.”
“괜찮아. 내 마음이 아픈 건 운이가 지금 받고 있는 고통 때문이지 앞날을 염려해서가 아니야. 잘 이겨낼 거야. 그리고 훗날 두 사람 앞에 씩씩한 모습으로 나타날 거니까 그때 가서 너무 놀라지마.”
말을 하면서 얼굴이 편안해진 선우비연이었다.
이제 화운의 말을 온전히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청석유랑 인형설삼 그리고 이무기 내단까지 있다고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