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지옥으로 꺼져라
천종천마교.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살짝 비튼 위치에 세워진 오층전각.
그리고 그 전각들을 이어놓은 높다란 돌담.
천종천마교는 거대한 성곽도시였고, 그 한복판에는 거대한 구층석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멀리서 보는 것임에도 어마어마한 위용이 느껴졌다.
“천마탑······.”
누군가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천마의 존재감을 대변해주는 광경이었다.
“저 네 방위에 있는 전각들이 절진의 축이 되는 모양입니다. 제가 저것들을 부술 거고 그때쯤이면 사황께서 천마탑을 무너트릴 겁니다. 천마탑 아래 지하가 드러나면 유마정을 부수러 가십시오. 마인들이 막아서면 최대한 피하도록 하고, 그게 안 되면 합격을 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쓰러트리십시오.”
오는 중에 한 번 이야기했던 부분이지만, 다시 한번 주지시켜 준 화운.
정사의 고수들은 듣는 둥 마는 둥 천종천마교와 천마탑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같이 가셔야죠!”
화운이 갑자기 크게 소리치며 움직였다.
잠깐 멈춰 섰던 사황이 말없이 움직인 것이다.
정사의 고수들은 화운의 외침에 정신을 차리고 서로를 돌아봤다.
“허허! 뭐에 홀린 듯 여기까지 왔습니다만, 이게 다 뭔 일인지 원.”
조극산이 허허롭게 웃었다.
“천마든 명왕이든, 여기까지 왔으니 한바탕 해야겠소.”
구룡제가 말했다.
그의 가슴엔 싸우고 싶다는 열망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사황에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무릎을 꿇고 말았으나 여기선 다를 것이었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한다!’
구룡제가 전의를 불태우며 성큼 걷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조극산이 걸었고 두 사람의 뒤로 정사의 고수 칠십여 명이 줄을 지었다.
정파에서는 무당과 소림 같은 거대문파의 장문인들과 원로들이 가세하였고, 사파에서는 은거했던 거두들이 합류했다.
천하를 좌지우지할 정사의 고수들이 대거 투입된 것이다.
천종천마교의 정문.
그들의 자신감을 대변하듯 거무튀튀하고 커다란 철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하지만 정사의 고수들 수십 명이 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마인들이 속속들이 정문으로 집결하고 있었다.
오십여 장(150m) 정도로 가까워지자 사황의 몸이 허공으로 천천히 부상했다.
화운은 사황을 힐끔 한 번 보고는 천종천마교의 정문을 향해 계속 걸어가며 검을 뽑아 휘둘렀다.
정사의 수많은 고수들 앞에서 처음으로 절대검력을 펼쳤다.
콰-앙!
천종천마교의 정문 일대가 삽시에 초토화되었다.
열려 있었다고는 하지만 정문이 기둥까지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고, 기둥을 받쳐주던 담벼락과 그 일대의 땅이 폐허가 되어버렸다.
그 놀라운 파괴력에 정사를 막론한 고수들이 깜짝 놀랐다.
화운이 강하다는 것이야 능히 짐작하고 있었지만, 방금 보여준 검력은 검환 이상의 파괴력을 보여주었다.
검성에게 검을 배웠다고 하더라도 나이가 있고, 수련을 한 햇수가 있으니 강해지는 것에도 한계가 있을 터였다.
그런데 그런 한계조차 가볍게 날려버린 일격이었다.
‘내 아래가 아니다!’
구룡제의 놀람이었고.
‘천사련의 앞날이 캄캄하구나!’
적성대도황의 걱정이었고.
‘반드시 죽여야 할 놈이다!’
태양존자의 살심이었다.
‘검성께 배웠다고 해도 그렇지 어찌 이리도 강할 수 있단 말이냐!’
조극산을 비롯한 정파의 고수들도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속도를 올리겠습니다.”
화운이 경신술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전방으로 빛살처럼 쏘아져가는 화운.
그와 동시에 다시 펼쳐지는 절대검력.
콰-앙!
남방에서 살짝 비틀어진 자리에 세워져 있던 전각이 박살이 났다.
화운의 무위에 놀랐던 정파의 고수들이 경신술을 발휘하여 화운의 뒤를 쫓았다.
천종천마교 안에서 비상 타종 소리가 들렸고, 마인들의 고함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천마탑으로 곧장 직진하십시오!”
크게 외친 화운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순식간에 수십 장 높이로 날아오르더니 잇달아 세 번의 절대검력을 펼쳤다.
찰나의 시차를 두고 세 번의 폭음이 들렸다.
다른 세 방향을 지탱하고 있던 전각들을 날려버리는 소리였다.
구룡제를 선두로 한 정사의 고수들이 곧장 달렸다.
쑥대밭이 되어버린 정문을 곧장 넘어섰다.
마인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지만, 정사 고수들의 일격에 바람에 휩쓸린 가랑잎처럼 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무인지경으로 천마탑까지 질주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극강의 고수들이 바글거리는 곳이 천종천마교였다.
“웬 놈들이냐!”
쩌렁쩌렁 울리는 일갈과 함께 천종천마교의 고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십이무상과 삼십육대마 그리고 칠십이살마 중의 일부가 앞을 막아서더니 그들의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났다.
이때부터 난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구룡제와 적성대도황, 태양존자, 정무맹의 맹주 조극산 그리고 칠대문파의 최고수들만이 그들을 뚫고 달려 나갔다.
하지만 그들도 곧 앞이 막히고 말았다.
명왕과 광명좌사, 북명우사 그리고 구천각의 구호법들과 광마종의 광인들까지 나타난 것이다.
멸제와 마존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사이에 멸제가 반역을 일으켰고 천마에게 당한 모양이었다.
번-쩍!
구룡제의 검에서 새하얀 강기가 빛처럼 폭사했다.
콰앙!
구룡제의 광검을 막은 건 명왕이었다.
천마파천권강으로 막은 것이다.
맹수는 맹수를 알아보는 법.
두 사람은 서로가 난적임을 알아보고는 상대에게 집중했다.
화산의 매화검과 무당의 태극검이 도가의 선기를 강기로 뿜어댔고, 소림의 권장이 불가의 웅혼한 기운을 발휘하자 그에 맞선 천종천마교의 마두들이 음산하면서도 포악한 마기를 줄기차게 뿜어댔다.
천사련의 사파인들도 강렬한 패도적인 무공들을 있는 대로 퍼부었다.
천하를 뒤흔들 절학들이 온 사방에서 폭발적으로 발휘되었고, 아차 하는 순간에 피떡이 되어 날아가거나 사지가 잘려나갔다.
경이로우면서도 무자비한 격돌이었다.
쿠구구구궁!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굉음이 갑자기 터졌다.
천종천마교의 대지가 뒤흔들릴 정도였다.
“천마탑이 무너졌다!”
마인들 중의 하나가 경악하여 소리쳤다.
정사연합의 고수들은 사전에 알고 있었던 터라 각자의 싸움에만 집중했고, 일부는 자신들의 상대를 떨쳐내고는 천마탑이 무너진 곳으로 달렸다.
“북제!”
적성대도황이 구룡제를 불렀다.
구룡제의 검학이 북두제왕검이어서 적성대도황은 북제라고 부르곤 했다.
“가게. 난 끝을 보아야겠네.”
구룡제의 시선은 명왕에게서 떠날 줄을 몰랐다.
천마고 뭐고 지금 구룡제에겐 명왕밖에 보이지가 않았다.
명왕 역시 마찬가지인지 천마탑이 무너졌음에도 돌아보지도 않았다.
필생의 적수!
두 사람은 서로를 그렇게 느꼈다.
적성대도황은 상대하고 있던 북명우사를 단칼에 쳐버리고는 천마탑이 무너진 곳으로 몸을 날렸다.
몇몇의 마두들이 그의 앞을 막아섰으나 기다란 대도를 크게 휘둘러 붉은 빛의 강기를 벼락처럼 날렸다.
꽈앙!
마두들이 와르르 밀려났다.
하지만 탈혼신마, 백발귀마, 팔황도마와 같은 구천각의 호법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자 더 이상 한 발짝도 나아갈 수가 없었다.
한편 화운은 사황과 함께 천마와 맞닥트리고 있었다.
무너진 천마탑 아래 지하에서였다.
“조잡한 방법을 쓰다니 사황답지 않군.”
“마신 따위에나 의지하는 작자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군.”
“마신 아수라의 위대함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여. 그렇게 인간들의 세상에만 얽매여 있으니 발전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마신 따위의 힘을 빌어 천상에라도 쳐들어 갈 생각인가?”
“그렇다. 천상의 신들은 대체 얼마나 강하기에 삼라만상을 내려다보는 것인지 보아야겠다.”
“천상의 신들을 보기 전에 지옥의 염라왕부터 알현하게 만들어주지.”
사황이 말을 끝낸 순간 곧장 천마를 향해 공격했다.
검붉은 강기의 파도!
가공할 파괴력이 집약된 거대한 전륜멸천의 파도가 천마를 향해 몰아친 것이다.
콰콰콰콰쾅!
지하세상이 무너질 듯 요동쳤다.
천마가 발휘한 거대한 악마의 손이 전륜멸천파를 막은 것이다.
콰앙!
또 한 번의 천붕지음!
화운의 절대검력이 막히며 터져 나온 굉음이었다.
“십 년 동안 더 강해진 모양이군.”
천마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어째 흡족해하는 느낌이다.
잠깐 의아했으나 그런 순간의 감정에 얽매일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화운은 절대검력을 다시 발휘한 후 금강부동신법을 펼쳐 멀찍이 물러났다.
콰-앙!
천마가 다시 한번 막았다.
이때 사황은 천마를 공격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
천마에게서 거대한 기의 유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기운이 지하세계를 꽉 채우고도 계속 불어났다.
화운도 공격하지 않았다.
이미 겪어보았던 일이기 때문이다.
콰콰콰콰콰콰!
천장의 암벽이 쩍쩍 벌어지며 돌덩이들이 떨어졌다.
거인이 몸을 일으키는 것처럼 거대한 기의 유동이 천장을 부수며 위로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솟아올랐다.
그리고 곧 인간세상이 멸망이라도 하는 것처럼 천종천마교를 받치고 있던 대지가 갈라지고 찢어지다 어느 순간 폭발하듯 사방으로 날아갔다.
그 광활하던 천종천마교의 대지 전체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천종천마교의 마인들과 교도들이 질러댄 고함과 비명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뿌연 흙먼지만이 천지간을 뒤덮었다.
그런 가운데 화운과 사황은 허공에 둥실 떠서 내려다봤다.
천종천마교의 땅은 성곽도시였다.
그런데 지금 성곽만 남고 까마득한 아래까지 땅이, 대지가 송두리째 터져 날아가 버렸다.
도시 하나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정사연합의 고수들과 그들을 막던 마인들만이 성곽 밖에서 경악 가득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천종천마교의 마인들은 자신들의 땅이 날아가 버린 것에 망연자실한 상태였고, 정사연합의 고수들은 까마득한 아래에 보이고 있는 천마와 악마의 형상에 놀라고 있었다.
‘그땐 절반만 날리더니······ 더 강해진 모양이군.’
화운은 염려의 빛이 가득한 얼굴로 사황을 돌아봤다.
사황은 발아래에 시선을 못 박고 있었다.
까마득한 아래 유마정 바로 위에 떠 있는 천마에게.
화운은 천마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곧장 천마를 향해 쏘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사황이 입을 열었다.
“왜일까?”
“······?”
“왜 올라오지 않는 걸까?”
사황의 의문에 화운은 사황을 쳐다봤다가 다시 천마를 내려다봤다.
그러고 보니 왜 올라오지 않는 걸까?
지난번에 자신과 싸울 땐 싸울 자격 운운하며 올라오더니.
“지난번에 저랑 싸울 때는 올라왔었습니다.”
“그땐 본좌가 없었으니까.”
“······!”
“저 우물을 지키려는 거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이유가······ 없어 보인다.”
천마는 악마의 형상을 현신 시킨 채 유마정 위에 떠 있었다.
지난번까지만 해도 악마의 형상은 목 위로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얼굴의 절반이 형태를 보이고 있었다.
사악한 악마다운 얼굴이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가서 전부 데려오너라.”
“예?”
“한 번에 끝장을 봐야겠다.”
화운은 사황의 생각을 알아들었다.
금강부동신법을 펼쳐 순식간에 사라진 화운은 천종천마교의 땅 밖에서 까마득한 아래에 보이는 천마와 악마의 형상을 놀란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는 정사연합의 고수들 앞에 나타났다.
화운이 갑자기 공간을 열고 나타나자 모두들 해연히 놀랐다.
“천마는 유마정을 지키려고 합니다. 사황께서는 모두 뛰어들어 단번에 끝을 보자고 하십니다.”
화운의 말에 구룡제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명왕에게로 가 닿았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천종천마교를 끝장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고요.”
구룡제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명왕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바로 이때 명왕이 불쑥 쏘아져왔다.
막으려는 것이다.
콰앙!
화운이 절대검력을 날렸다.
명왕은 단 일격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사천에서 싸워본 이후로 화운은 십여 년에 걸쳐 절대검력을 수련했다.
그때보다 확연히 강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른 마두들은 달려들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들의 땅이 날아가 버리자 무얼 지켜야 하고, 무얼 위해 싸워야하는지 크게 낙담한 것이다.
“가지.”
구룡제가 가장 먼저 허공으로 몸을 날려 아래로 급강하했다.
그러자 적성대도황이 바로 뒤를 따랐고, 태양존자는 정무맹의 고수들을 돌아봤다.
그에 맹주 조극산이 가장 먼저 몸을 날렸다.
소림, 무당, 화산, 아미, 점창, 청성, 곤륜.
칠대문파의 최고수들이 분분히 몸을 날렸다.
팔이 잘리거나 가슴이 갈라지는 등 치명상을 입은 이들도 기꺼이 몸을 날렸다.
“이건 다 미친 짓이야!”
태양존자마저 몸을 날렸다.
마지막으로 화운이 몸을 날렸다.
이때 허공에서 사황이 빠른 속도로 뚝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사황과 화운 그리고 정사연합 수십 명의 고수들이 천마를 한꺼번에 덮친 것이다.
“지금!”
사황의 일갈과 동시에 거대한 멸천의 파도가 수직낙하로 천마를 급습했다.
화운이 펼친 절대검력이 공간을 두 쪽으로 가르며 벼락처럼 쏘아갔고, 구룡제의 광검이, 적성대도황의 붉은빛 도환이, 태양존자의 백열의 강환이.
조극산의 검에서는 새파란 강환이 쏘아갔고, 소림 장문인의 손에서는 반야장의 장환이, 무당장문인의 검에서는 태극강환이 날아갔다.
모두들 자신들이 발휘할 수 있는 최강의 힘을 발휘한 것이다.
그에 심상치 않음을 느낀 천마의 두 발이 땅으로 내려섰다.
이후 천마의 전신에서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마기가 활화산처럼 폭발했다.
악마의 형상이 두 손을 번쩍 쳐들어 천마가 뿜어내는 마기를 빨아들여 거대한 마기의 막을 만들었다.
“어림없다! 지옥으로 꺼져라, 천마!”
화운의 외침과 동시에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무지막지한 격돌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앙!
인간도가 처음 열리던 개벽의 대폭발이 이러했을까.
천지간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켜버리는 어마어마한 대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폭발에 휘말린 사람들의 육신과 혼백이 갈가리 찢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