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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으로 무림지존-146화 (146/207)

#146. 당신이 여길 왜 와?

화운이 나타나자 금산명이 놀라 계단 쪽을 살펴봤다.

하지만 유가량은 놀라지 않고 되레 반색했다.

억만금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절세미인을 금산명이 혼자 독차지하게 된 것에 배 아파하던 차라 뭔가 일이 틀어진 것 같은 상황이 차라리 반가웠던 것이다.

“무부들이야 자기들 잇속 챙기느라 싸우는 건데, 그게 우리랑 뭔 상관이라고 그러는 것이오.”

유가량이 히죽 웃었다.

그리고는 돌아가는 상황이 재밌다는 듯 계속 말했다.

“사파가 득세하는 세상이 되면 자신들이 기를 펴지 못하니까 죽어라 싸우는 거 아니오. 강호정의? 천하대의?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하는 거요?”

의자에 몸을 묻으며 말하는 유가량의 말에는 무인들에 대한 조소가 가득했다.

“맞아. 강호정의니 천하대의니 그런 건 없을 지도 몰라.”

화운이 유가량의 말을 받으며 빈자리에 아무데나 앉았다.

“아래층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오?”

금산명이 계단 쪽을 힐끔하며 물었다.

“왜? 아래층 어딘가에 처박혀 있어야 할 내가 바로 올라오니까 이상해?”

“양 노인! 양 노인! 지금 뭐하고 있는 것이오? 양 노인!”

타호장의 성이 양씨였다.

금산명이 크게 불러댔지만 아래층에서는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네가 아무리 불러도 안 올 거니까, 입 닥치고 앉아라.”

“절영검! 모두 뭐하는 것이냐! 전부 죽고 싶어! 빨리 올라 오지 못해!”

금산명이 화를 터트리며 계단 쪽으로 향하자 화운이 검집으로 그의 다리를 후려쳤다.

“으악! 내 다리!”

금산명이 다리를 부여잡고 그 자리에 나뒹굴었다.

그에 기녀 백화가 한달음에 달려갔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이오. 그가 누군지나 알고 그런 것이오?”

유가량이 소리쳤다.

“넌 주둥이부터 뭉개줄까?”

화운이 검을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위협하자 유가량이 입을 다물었다.

“네 말대로 정무맹이 싸우는 건 잇속 때문이라고 쳐도 네가 그들을 비웃어서는 안 되지. 네가 이렇게 흥청망청 쓰는 돈을 네 아비가 벌 수 있는 게 왜겠어? 정파의 그늘이 안전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잖아. 정무맹이 밀려서 사파천하가 되면 인간의 도리 같은 건 안중에도 두지 않는 사파인들이 어쩔 것 같아? 네 가문을 털어먹으려고 안달일 건데, 네 가문 만으로 그거 감당할 수 있어?”

화운이 유가량의 비웃음을 비웃음으로 꼬집어주었다.

이때 금산명의 다리를 살펴보던 백화가 벌떡 일어나 홱 돌아보며 소리쳤다.

“당신은 뭐가 잘나서 행패죠? 정무맹이 싸울 때 당신들은 이렇게 행패나 부리고 있으면서 뭐가 잘났다고 큰소리에요! 정무맹의 신풍대주나 백봉 같은 분들이······!”

쏘아붙이던 백화가 말을 멈추고 백리연과 화운 그리고 화운이 식탁 위에 올려둔 검을 정신없이 번갈아봤다.

그 모습에 유가량과 다른 기녀들도 두 사람과 검을 번갈아보다 두 눈을 있는 대로 치떴다.

“지금 행패라고 했어? 웃기는군.”

화운이 돌아보지도 않고 코웃음 쳤다.

화운과 백리연의 신분을 혹시나 하고 있는 백화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다른 건 다 그렇다 치고 여기에 있는 니들이 하려고 한 짓을 말해볼까. 우리가 힘이 없는 사람들이었다면 난 아래층에서 이미 죽었거나 잔뜩 두들겨 맞았을 거야. 그리고 여기 백리 소저는 여인으로써 수치스런 일을 당했을 것이고.”

“아, 아닙니다! 절대 그런 짓을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금산명이 소리쳤다.

“억측이세요!”

백화가 거들었다.

그러자 화운이 검을 집어 들고 일어났다.

“오늘 그 새끼는 잡초를 뽑으려고 했어. 아니, 내가 약자였다면 분명 잡초를 뽑았을 거야. 계집, 넌 그 새끼가 잡초를 뽑아버리는 것이라며 웃고만 있을 테고 말이야.”

화운의 말에 금산명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백화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었고, 유가량 역시 가슴 철렁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이때였다.

백리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운에게 물었다.

“내가 그 잡초인가요?”

백리연의 물음에 화운이 미안한 표정만 지었다.

백리연은 아무 말도 않고 금산명을 향해 다가갔다.

“제발 살려주세요.”

백화가 백리연의 앞을 막아섰다.

“말해봐. 이자가 뽑아버린 잡초가 몇이나 되지? 내가 처음이라면 없었던 일로 해줄게.”

백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본 숫자만 해도 다섯이 넘었고, 전해들은 숫자만도 열이 넘었다.

“구해주지는 못할망정 웃지는 말았어야지.”

싸늘히 말한 백리연이 손을 휘둘렀다.

짜-악!

백화의 신형이 한쪽으로 홱 기울었다.

그렇게 자신의 앞이 치워지자 백리연이 검집채 휘둘렀다.

“제, 제발······ 끄아악!”

살려달라고 빌려던 금산명이 숨넘어가는 비명을 질렀다.

백리연이 휘두른 검집이 그의 사타구니를 갈겨버린 것이다.

거기가 묵사발이 되어버렸으니 다시는 잡초를 뽑지 못할 것이다.

백리연은 차갑게 돌아섰다.

그리고 기녀들을 쓱 훑어보며 말했다.

“다 팔더라도 인간의 도리 정도는 지키고 살아.”

그 말을 끝으로 백리연은 계단을 내려가 버렸다.

화운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 마무리를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아래층에서 날선 백리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갈 거예요?”

“갑니다! 가요!”

화운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잽싸게 달려 내려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한참을 차가운 얼굴로 걷기만 하던 백리연이 내뱉듯이 말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무슨 말 말입니까?”

“큰 힘은 쓸 데가 따로 있다는 말이요.”

“······!”

“흔히 하는 말로 소 잡는 칼로 닭이나 잡을 순 없잖아요.”

“······.”

“제겐 백리세가라는 배경이 있고, 나름 힘도 있어요. 그 힘에 걸맞게 저런 놈들을 모조리 부셔 버려야겠어요. 걸리는 족족 전부 다요.”

“······.”

“그러니까 그런 놈들은 내게 맡기고, 화 공자께서는 가진 힘에 걸맞게 큰일을 하세요. 무엇 때문에 마음이 혼란스러운지는 모르겠지만, 쉽기만 하다면 그건 큰일이 아닐 거예요. 그러니까······ 힘내세요.”

낯간지러운 표현을 잘하지 않는 백리연의 말에 화운은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한 번만 더 말해주십시오.”

“뭘요?”

“힘내라는 말이요.”

“싫어요.”

“제발 한 번만 더요.”

“하아, 힘······ 내세요.”

“잘 안 들려요.”

“힘내세요. 방황하는 건 화 공자랑 안 어울리니까, 힘내세요.”

“알았어요. 힘낼게요. 천마 그 까짓 거 힘내서 박살을 내버릴게요.”

“······?”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요? 천마랑 싸워야 해요.”

“······!”

***

정무맹 맹주전.

“그래, 동정호를 정찰하고 온 결과는?”

맹주 조극산이 물었다.

화운은 머쓱한 얼굴로 대답했다.

“흥청망청 노는 놈들 빼면 평화로웠습니다.”

“부럽더냐?”

“금룡보라고 아십니까?”

“본맹에 군자금을 지원해준 걸로 안다만.”

“거기 소보주의 아랫도리를 박살을 내버렸습니다.”

조극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호통은 다른 사람에게서 나왔다.

“맹주를 믿고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본맹에 군자금을 지원해준 곳에 그렇게 행패를 부리다니! 맹주 이 일을 어찌 할 것이오?”

“당장 신풍대주의 직위를 해제해야 할 것이오!”

이심환과 몇몇이 지탄하며 소리쳤다.

그에 맹주가 손을 들어 소란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이유도 듣지 않았잖소.”

“멀쩡히 노는 아이들을 찾아가 행패를 부려놓고 무슨 이유를 찾는단 말이오!”

이심환이 싸늘히 소리쳤다.

화운은 고개를 저었다.

이토록 냉랭한 사람이 금강부동을 공개한 이후엔 어찌 그렇게 호의적으로 변한 것인지 믿기지가 않았다.

“일단 들어나 봅시다.”

조극산이 다독거리듯 말한 후 화운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유가 있을 거 아니냐.”

“절 죽이고 백봉 백리소저를 욕보이려고 했습니다.”

“이런 개망나니를 봤나! 내 당장 금룡보에 다녀와야겠소이다!”

백리세가주가 벌떡 일어나 잔뜩 흥분하여 소리쳤다.

“제가 함께 가드릴 테니까, 자세한 이야기 좀 들어보고 가시지요.”

남궁검가주가 막 달려 나가려는 백리세가주를 붙잡았다.

그러자 백리세가주가 화운을 향해 외쳤다.

“은공! 얼른 말해보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가?”

화운은 백리세가주를 향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동정호를 돌아보던 중 호수 위의 불야성이 하도 멋져서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던 중 금룡보의 금산명이 수상비를 펼치는 고수를 보내 와달라고 청했고, 자신들은 극구 사양했음에도 그 고수가 협박까지 해서 마지못해 건너갔다.

그런데 가는 중에 들어보니 백리연을 두고 내기를 하더니 급기야 잡초를 뽑겠다며 지랄까지 했다.

대충 그런 이야기였다.

화운의 이야기가 끝나자 백리세가주가 다시 날뛰려고 하기 전에 맹주가 서둘러 외쳤다.

“군사!”

“예!”

“금룡보에서 받은 금액을 전부 돌려주고, 화 대주가 한 말 그대로 전한 다음 그 개망나니한테 정무맹의 이름으로 징치한 것이니 할 말이 있으면 언제든 오라고 하라!”

“예! 알겠습니다!”

군사 영호풍이 달려 나가자 맹주가 백리세가주를 응시하며 말했다.

“백봉은 백리세가의 보옥이지만, 본맹의 귀한 전력이자 정파의 미래이기도 하오. 이번 일은 맹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게 본 맹주의 생각이오. 가주께서는 더 원하는 게 있으시면 기탄없이 말해 주시오.”

당장 쫓아가서 한바탕 하려고만 했던 백리세가주는 맹주의 말에 뭘 요구해야 할지 몰라 눈만 끔벅거렸다.

“나조차 화를 참기 힘든데 백리세가주의 마음이야 말해 무엇 하겠소. 나중에라도 바라는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 말해주시오.”

“그, 그러겠습니다.”

백리세가주가 눈만 끔벅거리다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동정호의 일이 일단락되자 맹주가 더 없이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화운에게 말했다.

“천사련에서 사신이 왔다.”

“사신이요?”

“그래.”

화운은 의아했다.

무룡대가 조직되고 그들이 임무를 달라고 성화를 부린 건 좀 더 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무룡대가 인질로 잡히지 않았으니 사신이 올 이유가 없잖아!’

화운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맹주를 쳐다봤다.

“혹시 사신으로 온 분이 철봉황입니까?”

“철봉황? 그 아이가 여기서 왜 나오는 것이냐?”

“응? 아, 아닙니다. 구룡제가 사신을 보냈다기에 여식인 철봉황이 떠올라서 해본 말입니다. 근데 무슨 일이랍니까?”

얼렁뚱땅 넘기며 이유를 묻는 화운.

맹주는 그런 화운을 미심쩍은 눈으로 빤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정사연합을 요청해왔다.”

“예에?”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정사연합 이야기가 왜 나온단 말인가.

그것도 정무맹이 아닌 천사련에서.

“사신으로 왔으면서 자세한 이야기는 신풍대주가 있는 자리에서 하겠다고 한다. 대체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인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사신을 만나 보면 알겠구나.”

“그렇겠지요?”

“혹시라도 우리엑게 해야할 말이 있다거나 한다면 지금 하거라.”

“감추고 그런 거 없습니다.”

“알겠다. 그럼 사신을 부르겠다.”

맹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문 앞에 대기 중이던 비천각의 부각주가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사신이 맹주전으로 들어왔다.

피처럼 붉은 장포의 노인이었다.

화운은 사신을 보자마자 눈을 치떴다.

“당신이 여길 왜 와?”

놀랍게도 사신이라고 들어온 자는 다름 아닌 혈존이었다.

사황의 두 심복 중의 하나인 그 혈존.

“주군의 명을 가지고 왔다.”

“······!”

사황이 보냈다는 말에 화운은 인상만 쓰고 기다렸다.

그에 혈존이 말했다.

“주군께선 닷새 후 천사련을 이끌고 화산에 오르겠다고 하셨다.”

“예에?”

말인즉슨 시간을 되돌리기 전의 일을 다시 하자는 것이다.

정사의 고수들을 이끌고 천마를 치러 가자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화운이 눈만 멀뚱멀뚱하고 있을 때 심장이 덜컥 주저앉을 정도로 놀란 이가 있었다.

바로 화산파 장로 이심환이었다.

“화산에 오르다니! 이게 다 무슨 말이오! 맹주 서둘러 화산으로 가야겠소이다!”

이심환이 사색이 된 얼굴로 소리쳤다.

순간 화운이 그를 향해 버럭 외쳤다.

“닷새 후라잖아요!”

“······!”

“······!”

화운이 화산 장로를 향해 짜증난다는 듯이 외치자 맹주전 안의 공기가 어색하게 변했다.

모두들 이 무슨 해괴한 경우냐는 표정을 짓는 가운데 마음을 가다듬은 화운이 혈존에게 말했다.

“사황께서 그렇게 말했습니까? 정사연합을 하자고?”

사황이 언급되자 맹주전 안의 공기가 경악으로 출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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