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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으로 무림지존-145화 (145/207)

#145. 우린 이대로 좋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동정호는 어선과 어민들을 약탈하던 수적이 존재했을 정도로 거대한 호수다.

바다처럼 보일 정도로 드넓다 보니 반대편이 까마득한 지평선으로 보일까 말까할 정도다. 그마저도 보이지 않는 쪽도 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해가 뜨는 낮에는 물고기를 잡는 크고 작은 어선들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넓게 펼쳐진 호수와 보보마다 절경을 이루고 있는 풍광들.

화운은 백리연과 둘이 호숫가를 걸었다.

절색의 미인과 함께 걸으니 이보다 좋을 순 없었다.

무인으로 단련된 두 사람이라 지치지도 않고 동정호의 풍광을 만끽했다.

시간이 지나 어둠이 내려앉자 동정호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물위의 불야성.

청홍의 화려한 등을 내건 선박들이 하나 둘 동정호로 나타나더니 어느 순간 말 그대로 불야성을 이루었다.

술과 요리 그리고 금과 웃음을 파는 기녀들.

흥청망청 먹고 노는 뱃놀이 선박들이 동정호를 대낮처럼 밝혀놓은 것이다.

그야말로 휘황찬란한 야경이었다.

“멋지군요.”

“그러게요. 밝을 때 안 돌아가길 잘 한 것 같아요.”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이 되었을 때 화운이 돌아가자는 말을 하지 않자 백리연은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화운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본 것 같아 그 기분을 깨트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지금 이렇게 멋진 야경을 보니 그러길 잘한 것 같았다.

화운과 백리연은 호숫가를 거닐며 동정호를 대낮처럼 밝히고 있는 불야성을 구경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금음이 귀까지 즐겁게 해주니 이렇게 서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무척 즐거웠다.

지상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화려한 볼거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중에 여기 동정호 근처에 자리를 잡아야겠어요. 그럼 언제든 저렇게 멋진 야경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때쯤이면······ 전 어디에 있을까요?”

화운의 말에 백리연은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드러냈다가 슬쩍 당황했다.

그런데 화운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가까이요.”

“예?”

“제게 가장 가까이 있을 겁니다.”

화운의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난 말이었다.

백리연은 슬쩍 붉어진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빠르게 다가온 인연은 빠르게 헤어진다는 말이 있지만, 왠지 빠르게 다가온 인연 같지가 않았다.

오랫동안 보슬비에 젖듯이 그렇게 젖어든 인연 같았다.

“그럴 거예요. 그랬으면······.”

백리연이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전이었다.

불야성을 이룬 동정호의 가장 큰 누선에서 한 명의 중년인이 누선 밖으로 몸을 날렸다.

놀랍게도 그는 동정호의 수면 위를 달렸다.

수상비.

물 위를 밟고 달린다는 수상비가 분명했다.

“대단하네요.”

백리연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화운의 수준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다는 거야 백리연도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기준에서 보자면 경신술 만큼은 무척 뛰어난 수준이었다.

“이쪽으로 올 모양입니다.”

화운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왠지 자신들의 시간이 방해받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표홀한 경신법을 펼쳐 동정호 수면을 박차고 달리던 중년인이 수면을 박차고 허공으로 솟구쳤다가 두 사람의 앞으로 내려섰다.

화운의 예상이 적중한 것이다.

“절영검이라 하오. 어디서 온 분들인지 알 수 있겠소?”

중년인이 백리연의 미모에 놀란 표정을 짓더니 화운의 평범한 모습을 보고는 적당히 예의를 지키며 물었다.

“지나던 길에 멋진 풍광을 잠깐 감상한 것뿐이니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화운이 적당히 포권하며 말했다.

둘만의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으니 그냥 돌아가주기를 바란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절영검이라고 밝힌 중년인은 화운의 말이 내세울 만한 사문이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혹여 금룡보와 유가상단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았는가?”

절영검의 말투가 달라졌다.

“처음 듣습니다.”

대답하는 화운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호남 사람들이 아니로군.”

절영검이 단정적으로 말했다.

호남 사람이라면 그 이름들을 모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금룡보.

동정호와 인접한 악양 땅 아니 호남성 제일의 거부다.

동정호의 물은 말라도 금룡보의 돈은 마르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유가상단.

악양에 자리 잡고 있는 상단으로 천하 십대상단에 들어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규모가 크다.

금룡보와 유가상단은 오랫동안 친밀한 관계였다.

유가상단은 금룡보의 금전으로 천하십대상단에 들어갈 정도로 상단을 키웠고, 금룡보는 유가상단을 상대로 한 돈놀이로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서로의 실리가 잘 맞아떨어진 관계였던 것이다.

절영검이 금룡보와 유가상단의 거대한 규모에 대해 말해주었다.

하지만 화운은 기분만 더 나빠졌다.

“대단한 곳이로군요.”

“그렇네. 두 곳을 합치면 천하제일이라는 대륙전장과도 비견할 만하지.”

“그런데 저희에겐 무슨 일이신지요?”

“금룡보의 금 공자님과 유가상단의 유 공자께서는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는 호인들이신데 마침 호젓해 보이는 자네들을 보니 함께 어울렸으면 어떨까 해서 날 보낸 것이라네. 그러니 사양 말고 함께 가세나.”

“아닙니다. 저흰 이대로가 좋으니 그냥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화운이 가볍게 포권하며 사양했다.

순간 절영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는 멀리서 봐도 자태가 고와 보이니 백리연을 반드시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았기에 그냥 돌아갈 수가 없었다.

“예까지 달려온 사람의 성의를 그렇게 무시하면 안 되는 법이네. 게다가 지금까지 저토록 멋진 광경을 공으로 구경했으면 그에 대한 성의 정도는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대협, 우린 이대로 좋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화운의 말투도 살짝 변했다.

절영검이 억지를 부리자 화가 난 것이다.

“젊은 사람이 선배 알기를 우습게 하는군.”

절영검의 표정이 싸늘해진 순간이었다.

날카로운 기세가 순식간에 절영검의 심장을 움켜잡았다.

“······?”

절영검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금방이라도 심장이 찢겨버릴 것 같아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고 화운만 쳐다봤다.

“괜히 억지를 부리는 것 같지는 않고, 그 공자라는 것들이 반드시 데려오라고 시킨 건가?”

“그, 그렇소. 사람을 몰라 본 것이니 조용히 물러가겠소.”

“아니, 이젠 우리가 안 되겠어. 좋았던 기분이 엉망이 되어버렸거든.”

화운은 백리연을 돌아봤다.

“저 멀리서도 백리소저의 미모에 혹한 놈이 있는 모양입니다. 내키니 않으시면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가서 혼만 내주고 바로 돌아오겠습니다.”

“아뇨, 함께 가요.”

“제가 괜한 짓을 하는 거라면······.”

“아뇨, 저도 맘이 상했어요. 우리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면 무슨 짓을 당했을지 충분히 상상이 가요. 저렇게 멋진 야경 속에 그런 추악한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화운은 절영검의 심장을 움켜쥐고 있던 기운을 거두었다.

그리고 차갑게 말했다.

“저기 정박되어 있는 작은 배를 타고 가겠다. 앞장서라.”

무공을 보여주지 않고 가겠다는 화운의 말에 절영검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죽을상을 한 채 앞장을 서야했다.

어둠을 대낮처럼 밝히고 있는 커다란 선박.

권세를 과시하듯 누각을 지어놓아 누선이라 불리는 선박의 이 층엔 딱 봐도 거부의 자제들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한 옷차림의 청년 둘이 여섯 명의 기녀들과 함께 있었고, 그 아래층엔 수십 명의 무인들이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었다.

“서 있는 자태가 곧은 걸 보니 상당하겠어. 좋아, 난 예화에게 걸지.”

화사한 백의를 입고 있는 청년 금산명이 말했다.

버들잎 모양의 유엽선을 타고 이쪽으로 오고 있는 백리연의 모습을 보며 한 말이었다.

“검을 들었으니 무인일 테고, 그럼 한 달이라도 바람을 맞았겠지. 계집의 피부는 바람이 천적이니 난 저기 주방일 하는 수수한테 걸겠네.”

삐딱하게 풀어진 자세로 앉아 있는 청의청년 유가량이 대충 눈길 한 번 주더니 말했다.

그러자 금산명이 웃었다.

“너무 박하군.”

“자네가 너무 후한 걸세.”

두 사람은 내기를 하고 있었다.

소선을 타고 오고 있는 백리연의 미모가 누구와 비슷할지를 걸고 하는 내기였다.

금산명은 기녀들 중 미모가 중간 정도인 예화라는 기녀와 비슷한 정도일 거라는 데에 걸었고, 유가량은 음식을 나르고 그릇을 치우는 등 허드렛일을 하는 시비 수수의 외모에도 미치지 못할 거라고 건 것이다.

“백화 넌 어디다 걸 테냐?”

금산명이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기녀에게 물었다.

화려한 기녀복을 입은 채 다소곳이 앉아 있는 자태가 무척이나 아름다운 기녀였다.

화월루의 백화.

악양 땅은 물론이고 호남 제일이라고 알려져 있는 기녀였다.

“잡초는 생명력이 강할 뿐 관상용으로 적합하진 않지요.”

백화의 대답이다.

그에 유가량이 자신의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푸하하! 니 말이 맞다. 잡초를 두고 눈으로 즐길 순 없는 노릇이지.”

“쯧쯧! 잡초는 너무했다. 들꽃 정도는 될 터인데.”

금산명이 혀를 차며 말했다.

허나 그의 얼굴도 웃고 있었다.

“잡초나 들꽃이나 그게 그거지. 난 흙냄새 나는 것들이 싫어. 여기 화련이처럼 꽃냄새 가득한 것이 좋아.”

“아잉, 공자님, 그렇게 건드리지만 마시고 선실로 가셔서 꽃잎을 활짝 여는 게 어떻겠어요?”

유가량이 어디를 어떻게 만졌는지 홍의기녀 화련이 교태를 부리며 노골적으로 유혹했다.

“좋다, 좋아. 내기가 끝나는 대로 선실로 가자구나! 꽃잎도 열고, 꿀도 빨자구나! 푸하하하하!”

유가량이 대소를 터트리자 화련이 몸을 기대 안기다시피 하며 아양을 떨었다.

그런데 이때였다.

금산명의 얼굴이 뭔가에 놀란 듯 급변했다.

“왜 그러나?”

유가량이 의아하여 물었다.

뭔가에 놀란 듯 아니면 넋을 잃은 듯 대답조차 하지 않고 있는 금산명의 모습에 유가량은 그가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려봤다.

“맙소사!”

유가량이 경탄을 터트렸다.

순간 금산명이 벌떡 일어났다.

“저 잡초는 내가 뽑을 것이니 나서지 말게.”

금산명이 단호히 말하며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향했다.

어느새 유엽선이 가까워져 있었고, 백리연의 미모가 드러나 보였던 것이다.

유가량은 입맛이 썼다.

내기에서 졌으니 양보를 하는 수밖엔 도리가 없었다.

이때 호남제일의 기녀라는 백화의 시선은 아래층으로 사라지고 있는 금산명의 뒷모습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누선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수가 바로 화운이었다.

유엽선을 타고 오는 중에 귀를 활짝 열어두고 있던 화운은 이층 누각에서 벌어지고 있던 대화를 빠짐없이 들었다.

그래서 화가 더욱 치민 상태였다.

그런데 마중을 나온 놈이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어서 오시오. 멀리서 보이는 모습이 호젓해 보여 함께 술이나 들자고 청한 것인데 이토록 아름다운 가인이실 줄은 진정 몰랐소이다.”

옷매무새까지 가다듬은 금산명이 정중히 맞았다.

시선은 백리연에게 꽂힌 채.

하지만 백리연은 그에게는 눈길 한 번 준 게 다였다.

누선을 둘러본 후 화운을 쳐다봤다.

이제 어쩔 거냐는 얼굴이었는데, 그 모습이 금산명의 신경을 건드렸나보다.

찰나 간 눈빛이 달라졌다.

허나 금세 신색을 회복하며 말했다.

“금룡보의 금산명이오. 어디에서 오신 분이시오?”

“멀리서 왔습니다. 난 운화라 하고, 이쪽은 백연 소저이시오.”

화운이 자신들의 이름을 앞뒤를 바꾸고 한 자를 줄이며 소개했다.

운화와 백연.

금산명이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이다.

금룡보의 후계자로써 천하에 이름 깨나 알려진 무인이라면 어느 정도 꿰차고 있는 그가 모르는 이름이라면 별 볼 일 없는 이들이라는 뜻이다.

“백연(白蓮)소저이셨구려. 연꽃이라······ 만일 내게 소저의 이름을 작명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면 연꽃을 능가하는 아름다움이니 능백연이라 하겠소.”

금산명이 내심 스스로의 작명 실력에 흡족해 하며 말했다.

하지만 백리연이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대대로 이어져 온 성을 바꾸라는 건가요?”

“이런, 소저의 아름다움에 취해 제가 실수를 했나 봅니다. 자, 자. 여기서 이러실 게 아니라 위로 오르십시다.”

금산명이 일부러 밝게 웃으며 이층 누각으로 향하는 계단을 가리켰다.

왼팔은 뻗어 계단을 가리키고, 오른팔은 자연스럽게 화운의 앞을 슬쩍 가로막으며 속내를 슬쩍 드러냈다.

바로 이때 금산명의 뜻을 알아차린 자가 있었다.

“호오, 검을 쓰는 모양이군. 노부도 한때는 검을 사용했다네. 지금이야 검이 거추장스러워 버렸네만, 혹여 타호장이라는 별호를 들어봤나? 그게 바로 노부라네. 자네가 남 같지가 않아 검에 대해 가르쳐줄 터이니, 잠깐 노부랑 이야기 좀 나누도록 하세. 공자님 괜찮겠지요?”

“하하하! 무인들끼리는 서로 통하는 데가 있다더니,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운 형이라고 했소? 여기 타호장 어르신은 호남제일장으로 명성이 높으신 분이니 잘 모셔보시오. 운 형에겐 기연이 될 것이오.”

호탕하게 웃으며 말한 금산명이 다시 백리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 백 소저께선 가시지요. 위층엔 여러 가인들께서 계시니 함께 어울리다보면 운 형도 올라오실 게요.”

금산명이 백리연의 어깨에 슬쩍 손을 올리며 말했다.

순간 백리연이 검자루를 들어 금산명의 손을 밀쳐냈다.

‘호오, 가시가 제법이로군!’

금산명은 속으로 웃으며 다시 말했다.

“자, 어서 가십시다.”

그러나 백리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백 소저, 먼저 가 계십시오. 여기 어르신과 이야기 좀 나눈 후에 금방 올라가겠습니다.”

화운이 천연덕스레 말했다.

그제야 백리연이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금산명이 얼른 보조를 맞춰 백리연과 함께 계단으로 향했다.

이때까지 절영검은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화운의 엄포가 있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것이다.

“자넨 이쪽으로 가지.”

타호장이라는 노인이 화운의 팔목을 붙잡으며 잡아끌었다.

내력을 발휘하여 화운의 팔에 있는 완맥을 제압하려고 한 것이다.

완맥이 제압당하면 팔 전체가 저릿해지며 절대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화운은 팔이 잡힌 채 타호장이 이끄는 대로 아래층 창고로 따라갔다.

그 모습을 살짝 돌아본 금산명이 입매를 비틀어 웃었다.

타호장이 운화라는 놈을 제압했으니 잠시 후에 성난 얼굴로 올라올 것이다.

놈이 갑자기 공격했다며 소란을 떤 후 백연이라는 환장하도록 아름다운 계집에게 정체가 뭐냐고 물을 것이다.

이때 뒷 배경이 별 볼일 없다는 게 밝혀지면 극락의 밤을 보낼 수 있다.

금산명은 벌써부터 환상적인 밤을 보낼 생각에 미칠 것만 같았다.

이층에 올라간 백리연은 눈살부터 찌푸렸다.

고급 주루의 가장 비싼 방 하나를 통째로 옮겨놓은 것 같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고급스럽게 보이는 식탁과 푹신해 보이는 의자들 그리고 사방 벽을 꾸미고 있는 유채색의 화려한 그림들.

사방에 나 있는 커다란 창문을 통해 바깥을 구경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는데, 창문마다 귀해 보이는 구슬들을 꿰어 만들어 놓은 주렴도 쳐져 있었다.

백리연이 나타나자 이층 누각 안이 조용해졌다.

유가량과 여섯 명의 기녀들은 백리연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새하얀 무복을 입고 있는 백리연의 모습은 멀리서 볼 때 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가까이서 보니 마치 순백의 여신처럼 보였다.

백봉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얼굴이 새하얀 무복과 어우러져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는 기녀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호남제일의 기녀라는 백화조차도 잔뜩 꾸민 상태로도 순백의 여신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

평소 자신을 설레게 할 여인은 없다고 큰소리 치던 유가량이 연신 마른침만 삼켰고, 기녀들은 놀람과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 여긴 백연 소저라네. 백연 소저, 저 친구는 유가상단의 유가량이라오. 일단 앉으십시다.”

금산명이 밝은 얼굴로 말하며 백리연에게 원래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권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자리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백화에게 눈짓하여 자리를 옮기라고 했다.

그에 백화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고 있을 때였다.

아래층에서 쿠당탕 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금산명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간만이라 맘껏 손을 풀겠다는 건가? 요란하게도 하는군.’

금산명은 백리연이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히죽 웃으며 백화에게 연신 눈짓했다.

그에 백화가 마지못해 일어선 순간이었다.

“와우! 땅에서는 정무맹이 사파와 싸우느라 난리인데 여긴 아주 별천지네.”

투덜거림과 함께 화운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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