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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으로 무림지존-141화 (141/207)

#141. 돌아오지 못할 겁니다

맹주전에 이십여 명이 모였다.

화운이 청한 대로 검환을 발휘할 수 있는 고수들이 태반이었다. 검환을 발휘할 수는 없으나 참석할 만한 사람들도 끼어 있었다.

군사 영호풍이나 선우세가주 같은 사람들이었다.

화운은 그 정도는 그냥 모른 척했다.

“사황혈천, 천마대겁의 그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그들을 물리쳤던 무당검성께서 먼저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사황과 천마가 등장했다는 말에 잔뜩 무거워졌던 공기가 검성이 모습을 보였다는 말에 순식간에 들떴다.

화운은 그 모습들을 보며 미리 생각했던 대로 경천보패가 아니라 검성 쪽으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제가 이토록 강해질 수 있었던 건 검성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호!”

“그게 정녕 사실이란 말인가?”

“검마가 스승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검성께 가르침을 받은 것이지 스승으로 모시진 않았습니다. 검성께서도 거기까지 바라진 않으셨구요.”

“무량수불! 태사백께선 어디에 계신 것인가?”

무당파 우진궁주가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순간 실내가 조용해지며 화운에게 집중 되었다.

“등선하셨습니다.”

“······!”

“그게 정말이냐?”

이심환이 소리쳐 물었다.

“검성께선 지금까지 등선을 미루셨지만 더는 그럴 수 없다시면서 저의 중단전을 열어주시고는 당신의 남은 공력을 심어주셨습니다.”

“언제, 언제 등선하셨단 말인가?”

우진궁주가 다급히 물었다.

“제천마존의 비동이 열렸을 때쯤입니다. 등선하신 검성께서 남기신 말씀이 있습니다.”

화운은 의문들이 쏟아지기 전에 서둘러 이야기를 이끌었다.

다행이 검성이 남겼다는 말에 다들 관심을 가졌다.

“검성께선 당신이 등선하신다면 필경 사황과 천마가 세상 밖으로 나오려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선대의 복수심에 얽매여 있는 사황은 우리가 하는 것에 따라 대화가 될 수도 있으나 천마는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천마는 마신 아수라를 이땅에 강림시키려고 하니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허, 마신 아수라라니? 이 무슨 황당한 말인가?”

이심환이 고개를 저었다.

화운은 그를 보며 말했다.

“이 대협께선 화산의 제자이시면서 화산 연화봉 상궁에 있는 선령의 존재를 불신하시렵니까?”

“그, 그걸 어떻게 아는 것이냐?”

“검성께서 그러셨습니다. 화산의 선령처럼 무당에 남았으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어 아쉽다고요.”

화운의 말에 이심환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각주님!”

화운이 일양신수를 보며 말했다.

일양신수가 비천각의 각주였다.

정보대를 운영하는 일에는 뜻이 없었으나 각파가 주요자리를 나누어 차지하느라 하는 수 없이 맡게 된 그여서 주요 업무는 부각주인 우문검가주에게 맡겨버렸다.

“왜 그러시는가?”

“비천각의 정보력을 최대한 동원해서 지금 당장 천사련 쪽의 동태를 살펴보라고 해주십시오. 아마 붉은 수염에 붉은 머리의 노인이 그쪽에 나타났다고 할 겁니다.”

일양신수는 맹주 조극산을 돌아봤다.

조극산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우문검가주를 돌아봤다.

그에 우문검가주가 인상을 쓰며 밖으로 사라졌다.

잠깐이나마 이 자리를 떠야 하는 게 싫었으리라.

“적염에 적발인 노인이 누군가?”

“사황입니다.”

사황이 천사련에 나타날 거라는 말에 잠깐 소란이 일어났다.

그가 천사련을 차지하여 사도천하를 만들려고 한다는 말들이 나왔다.

화운은 잠깐 동안 소란을 지켜본 후 말했다.

“사황을 만나고 오는 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화운의 말에 모두들 화운을 돌아봤다.

“사황은 천하의 고수들을 모아 천마를 죽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

모두들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화운을 쳐다봤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들이었다.

사황혈천!

일백 년 전 천하를 피로 물들였던 자를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다들 그런 얼굴들이었다.

“그러니까 사황의 말을 믿고 천마를 치러가자는 것이냐?”

이심환이 무슨 헛소리냐는 얼굴로 물었다.

“아뇨. 사황을 어찌 믿겠습니까. 제가 믿는 건 검성께서 남기신 말씀입니다. 천마를 막을 수 있는 건 사황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본 사황은 정말 강했습니다. 싸운다면 죽지 않을 자신은 있습니다만, 단지 그것뿐이었습니다. 결코 그를 쓰러트릴 수 없습니다. 제가 무례하게도 제 무위를 보여준 이유가 이 때문이었습니다. 사황의 강함을 설명드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화운의 말에 장내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화운은 잠깐 시간을 주었다가 다시 말했다.

“사황은 천사련의 고수들을 이끌고 천종천마교로 향하겠다고 했습니다. 저에겐 정무맹의 고수들을 모으라면서요. 무작정 그 말을 따를 순 없어서 천종천마교와 많이 멀지 않은 화산에서 함께 모이자고 해두었습니다.”

“뭐? 사황과 천사련을 화산으로 보냈단 말이냐!”

이심환이 펄쩍 날뛰었다.

화운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맹이 빨리 움직이면 최소 하루는 먼저 도착할 수 있습니다.”

정무맹과 천사련의 거리는 하루에서 하루 반 정도다.

정무맹이 더 북쪽에 위치하고 있고, 화산은 한참 더 북쪽이다.

그러니 화운의 말대로 정무맹이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맹주! 서둘러 움직여야겠소이다!”

이심환이 발등에 불 떨어진 사람처럼 다급해졌다.

화운의 예상대로 된 것이다.

반 시진 후.

정무맹은 머리를 맞댄 끝에 일단 화산으로 향하기로 했다.

발등에 불 떨어진 사람처럼 구는 이심환의 주장이 크게 먹힌 결과였다.

비천각의 정보대를 총동원하여 천사련 쪽의 동향을 파악하여 화산으로 향하는 중간에 보고를 받도록 조치했다.

그렇게 결정이 나자 정무맹의 고수들은 출발할 준비를 하기 위해 부산하게 자리를 떴다.

맹주전에는 맹주와 군사 영호풍, 소림의 나한당주, 아미의 멸절신니 그리고 남궁검가주, 선우세가주 그리고 백리세가주가 남았다.

“세분 다 함께 갈 겁니까?”

화운이 세 명의 가주들을 보며 묻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화운은 마음이 무거웠다.

“돌아오지 못할 겁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천하를 지키는 것이잖느냐. 돌아오지 못한다고 하여 가지 않을 순 없다.”

“맞네.”

남궁검가주의 말에 백리세가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선우세가주는 묵묵히 화운만 바라보고 있었다.

“정과 사의 고수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면 상당한 숫자일 텐데 어찌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이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맹주가 물었다.

그의 옆에는 나한당주와 멸절신니 그리고 영호풍도 함께 있었다.

“그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화운이 대답했다.

조극산은 그 대답에 만족하지 않았다.

“내 느낌에 더 말하지 않은 것들이 있는 것 같다. 말해줄 수 있겠느냐?”

“맹주님.”

“말하거라.”

“본맹에 들어와서 참 많은 걸 배웠습니다. 그 중에 정말 놀랍고 대단한 건 다름 아니라 맹주님을 비롯한 윗분들의 정대함입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작은 것에도 연연하시고, 때로는 각파를 생각하느라 서로를 경계하기도 하지만, 천하대의 앞에서는 늘 한마음이셨고, 서로를 굳건히 믿는다는 거였습니다.”

오랜 시간을 보낸 후에나 할 만한 말이었다.

하지만 화운의 표정이 워낙 진지하여 다들 가만히 듣기만 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은 부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건 혼란을 막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모든 것은 천종천마교에 도착하는 순간 사실과 한 치의 오차도 없다는 걸, 오히려 부족하다는 걸 바로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더는 말할 수 없다.

그런 확고한 화운의 모습에 조극산은 더는 묻지 않았다.

이때 나한당주가 몇 걸음 다가오며 물었다.

“시주.”

한참 전부터 잔뜩 무거운 얼굴이라 화운은 나한당주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당주님께서 생각하시는 게 맞습니다.”

“······!”

금강부동신법이 맞다는 말에 나한당주의 얼굴이 놀람과 당혹으로 굳어졌다.

“반드시 소림으로 돌아갈 것이니, 지금은 천마의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묻어주십시오.”

“아미타불! 아미타불!”

나한당주는 불호를 외며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애썼다.

그 모습을 본 화운은 다시 세 가주들을 돌아봤다.

선우세가주, 남궁검가주 그리고 백리세가주를 차례로 바라보며 말했다.

“제겐 가족이시고, 숙부님이시고, 귀한 인연인 분이십니다.”

선우세가주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남궁검가주는 고개를 끄덕였고, 백리세가주는 웃었다.

화운은 그 얼굴들을 보며 다시 말했다.

“그럼에도 세 분께서 제 앞에서 피를 흘리신다하여도 전 못 본 척 할 것입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천마에게 모조리 집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미안함과 결의가 동시에 엿보이는 얼굴이었다.

그에 백리세가주가 웃으며 말했다.

“난 자네를 전적으로 믿네. 천마가 마신을 강림시키려한다는데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지.”

“천하를 지켜야하는 일이라면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하는 게 우리들의 숙명이다.”

남궁검가주가 이제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족으로서 네가 자랑스럽다.”

선우세가주가 말했다.

화운은 마주 고개를 끄덕여준 후 맹주를 돌아봤다.

“신풍대에 다녀오겠습니다. 몸만 이대로 떠나면 되니 준비할 건 없습니다만, 신풍대원들에게 말은 해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거라.”

맹주의 허락이 떨어지자 화운은 세 가주들을 다시 돌아봤다.

“대원들에게 가주님들을 찾아뵈라고 일러두겠습니다.”

“그래, 알겠다.”

“그러거라.”

“그럼 출발할 때 뵙겠습니다.”

화운은 세 가주에게 인사 한 후 맹주전을 나갔다.

“맹주님, 저희도 각 세가를 정리해두고 오겠습니다.”

“그러시게.”

세 명의 가주들도 자리를 떴다.

그렇게 맹주전이 한산해지자 조극산이 나한당주를 향해 물었다.

“대사, 아까 신풍대주랑 했던 말이 무엇인지 물어도 되겠소?”

“죄송합니다. 본사의 일이라 함부로 누설 할 수가 없습니다. 아! 소승 역시 본사에 전갈을 보내야겠습니다.”

나한당주가 허둥지둥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멸절신니가 혀를 찼다.

“쯧쯧! 어찌 저리 넋을 잃었을까. 분명 신풍대주한테서 뭔가를 보고 저러는 것인데······ 밖에서 산 하나를 날려버리던 검공 때문일까? 소림에 검공이 있던가?”

“예, 신니. 참마검이라고 칠십이 절예에 들어가는 게 있습니다만, 익히는 이가 없는 것으로 압니다.”

“하긴 워낙 대단한 절예들이 많으니까. 그럼 뭣 때문일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던 그······!”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던 멸절신니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조극산을 돌아봤다.

“신니!”

조극산도 뭔가를 깨달은 듯 신니를 놀란 얼굴로 쳐다봤다.

“빈니가 지금 생각하는 그것이······!”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허!”

놀란 마음을 탄성으로 내뱉는 신니.

조극산은 잠깐 생각하다 멸절신니를 나직하게 불렀다.

“신니.”

“그래, 그래야겠지. 우리 역시 함구하는 게 맞겠지.”

“예. 대체 그 녀석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검성에 소림의 전설까지······ 허허!”

“길흉과 화복은 늘 함께 이지 않는가. 아무래도 천마에 대한 말이 진짜 사실인 모양이야. 이거 늙은이 뼈다귀가 성하지 못하겠어.”

“하하하! 신니의 뼈는 제가 모실 것이니 염려 마십시오.”

“그 아이 말대로라면 맹주 역시 온전치 못할 것이네.”

“그럼 신니 옆에 나란히 처박히지요, 뭐.”

“헐! 이왕이면 젊은 놈이 좋은데.”

“젊은 친구들은 살아남아야지요.”

“그도 그렇군.”

“저승 가는 길 외롭지 않도록 이 후배가 잘 모시겠습니다.”

“감사하네. 다만 맹주도 살아남는다면 더 좋을 것 같네.”

“노력해 보겠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미소 지었다.

***

신풍대 숙소.

화운이 돌아오자 세 사람은 말없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들도 화운이 복귀하자마자 난리를 친 일을 보았다.

그들이 아는 화운이라면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필요하다면 설명을 해줄 거라 믿었다. 그래서 숙소로 돌아와 기다리는 중이었다.

“들었겠지만, 사황과 천마가 나타났다. 맹의 고수들은 천사련의 고수들과 함께 천마를 없애기 위해 천종천마교로 간다. 세 분 가주님들께서도 함께 갈 거야. 그리고 어쩌면 세 분 다 돌아오지 못할 지도 모른다.”

화운의 말에 세 사람의 얼굴이 급격히 무거워졌다.

놀람과 두려움이 엄습한 얼굴들이었다.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천하의 힘을 모으는 수밖에는.”

화운은 진심으로 미안했다.

하지만 더 이상 겉으로 말하진 않았다.

“너희 둘에게 가르쳐 줄 게 있다.”

화운은 선우유성과 남궁현에세 질풍섬을 가르쳐주었다.

무영투가 두 사람에게 가르쳐주던 경신공부였다.

“유성이는 일보무념, 이보질풍, 삼보종극 그 구결 그대로 착실히 익히다보면 금방 익힐 수 있을 거다. 다만 현이 너는 성격이 유성이랑 다른 데다 생각이 많아서 익히기가 쉽지 않을 거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고 니 자신을 믿고 계속 하다보면 너만의 질풍섬을 익혀낼 거다.”

“알았어, 형.”

“감사합니다.”

화운은 고마워하는 두 사람을 두고 백리연을 돌아봤다.

“검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시간이 없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우니 직접 손을 잡고 가르쳐드리겠습니다.”

화운은 앞마당에서 백리연의 등 뒤에서 검을 쥔 그녀의 손을 잡은 채 검을 가르쳐 주었다.

처음엔 집중 못하던 백리연이었으나 그녀가 익히고 있던 난화십이검과 워낙 유사하여 금세 집중하였다.

이윽고 세 번에 걸쳐 함께 검을 펼쳐준 후 화운이 손을 놓고 물러나자 백리연 혼자 거기에 푹 빠져 검을 휘둘렀다.

잠시 후 백리연이 검을 멈추고 들뜬 얼굴로 쳐다보자 화운이 말했다.

“운연검입니다.”

“운연······!”

살짝 놀라는 백리연에게 미소를 지어준 화운은 선우유성과 남궁현을 차례로 바라봤다.

갑자기 와서는 무공을 가르쳐주고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구는 화운의 모습에 모두들 굳은 얼굴로 바라보기만 했다.

화운은 그런 세 사람의 얼굴을 일일이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게 되더라도 이것만은 기억해 주었으면 해. 내가 한 모든 행동과 결정은 천하가 아니라 우리 네 사람의 앞날을 위한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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