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셋으로 무림지존-136화 (136/207)

#136. 절대검력의 궁극

아미 장문인이 맞았다.

타초경사다.

천마탑으로 쳐들어가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니까.

언젠간 일어날 일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당장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고, 사천으로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너무 많은 죽음이, 너무나 참혹한 죽음들이 숨통을 틀어막았지만,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시신들을 모았다.

형체가 남아 있는 시신들은 가지런히 한 곳으로 모았고, 팔이나 다리가 같이 따로 떨어져 나간 일부 시신들은 온전한 짝을 찾았다.

혈편이 되어버린 조각들은 구덩이에 따로 모았다.

어둠이 내려오자 사방에 불을 피웠다.

다시 아침이 오고 높게 떠오른 태양이 서산을 넘어가길 반복했다.

화운은 멈추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멈추면 팔을 찾지 못한 시신이 어서 찾아오라고 호통을 치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허리를 펴면 어서 다리를 찾아오라고 소릴 질렀다.

화운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수천 구의 시신들.

그중 본래의 형체를 어느 정도나마 찾은 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나머지는 찾을 수가 없었다.

머리만 남은 시신, 머리와 상반신 절반만 남은 시신, 하반신만 남은 시신도 있었고, 상반신 대부분이 뜯겨 나가고 머리와 하반신이 간신히 붙어 있는 시신도 있었다.

화운은 그런 시신들까지 최대한 가지런히 모았다.

그럼에도 절반이 되지 못했다.

이틀이 꼬박 지나서야 멈춰선 화운은 비통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어느새 피비린내가 악취로 변해 있었지만 느끼지도 못했다.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던 화운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마신 아수라가 존재한다는 건 인드라(제석천)을 비롯한 천계의 신들도 존재한다는 뜻일 터.

화운은 하늘을 올려다본 채 손을 뻗어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라는 손짓을 했다.

“이렇게 되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겁니까? 아니면 더 큰 뜻이 있어 내버려 둔 겁니까? 어느 쪽이든 당신들이 마신 아수라와 다를 게 뭡니까? 적어도 마신 아수라의 개들이 이 세상으로 넘어오는 것만은 막았어야죠!”

폭풍전의 고요처럼 차분한 목소리였다.

당연히 하늘은 대답이 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높은 하늘과 평화로운 구름만 보일 뿐이다.

대답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화운은 고개를 내리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구덩이 안에 나뭇가지들을 잔뜩 집어넣고는 불을 붙였다.

누군가의 육신에서 강제로 뜯기고 찢겨나간 혈편들이 활활 타올랐다가 재가 되어 사라졌다.

한 시진 후, 모든 게 타버리고 재만 남았을 때 화운은 구덩이에 흙을 채워 덮었다.

강기를 잔뜩 주입한 검으로 땅을 파헤치고 그렇게 얻은 흙을 모아다 구덩이를 채웠다.

“저어······ 혹시 신풍대주이십니까?”

구덩이를 다 채워갈 때 쯤 되자 한 사람이 다가와 물었다.

“예.”

화운은 마저 구덩이를 채우며 대답했다.

지나가는 나그네 복장을 하고 있던 남자는 돌아서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멀리서 십여 명의 사람들이 모습을 보였다.

“저흰 정무맹 비천각 소속입니다. 퇴각했던 분들은 사천을 벗어나기 직전에 멈췄습니다. 적들이 물러갔다는 걸 알고는 다시 돌아와도 좋은지 망설이고 있습니다.”

“돌아와도 좋다고 하십시오.”

화운의 말에 사내는 다시 돌아서서는 오른팔을 휘둘러 크게 원을 그렸다.

멀리 대기 중이던 동료가 지금 화운이 한 대답을 알리기 위해 달려갈 것이 분명했다.

“대주님.”

사내가 화운을 넌지시 불렀다.

화운이 하던 작업을 멈추고 돌아보자 한쪽에 가지런히 모셔진 시신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분들을 저렇게 두면 안 됩니다. 아직 여름이라 부패가 빠르게 진행됩니다.”

“저분들의 핏줄들이, 제자들이, 동료분들이 있잖습니까.”

“퇴각했던 분들이 돌아오려면 빨라도 이삼 일은 걸립니다. 그때쯤이면 심각하게 부패됩니다.”

안보는 것만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화운은 사내의 말에 동감했다.

“태우는 게 나을까요?”

“제 생각에는 합동 묘로 모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흠.”

생각해보면 시신을 태우는 것 보다 관에 모신 다음 땅에 묻는 걸 선호하는 이들이 더 많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화운은 주위를 둘러본 다음 산비탈로 향했다.

해가 잘 받는 곳을 찾아 검환을 발휘하여 땅을 팠다.

모든 시신들을 가지런히 눕힐 수 있도록 충분히 넓고 깊게 판 다음 시신들을 한 구씩 운반했다.

사내도 동참하여 시신들을 옮겼고, 그러고 있자니 멀리서 다가온 정무맹 비천각의 요원들이 도착하여 거들었다.

다섯이서 옮겼는데도 반 시진이 넘게 걸렸다.

모든 시신들을 옮기고 흙으로 덮어 커다란 봉분을 만들었다.

장원 세 채를 합쳐놓은 것처럼 거대한 봉분이었다.

“반드시 좋은 날이 있을 겁니다.”

비천각 요원들이 의아해할 말로 명복을 빌어준 화운은 비장하게 합장을 하고 허리를 조아렸다.

그리고는 비천각 소속의 네 사람을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마땅히 함께 해야 할 일입니다.”

네 사람은 화운이 혼자 남아서 시신들을 수습하는 모습에 놀랐던 터라 감사까지 표하는 모습에 겸연쩍었다.

“정무맹으로 가야 합니다. 퇴각했던 사람들이 돌아오면 그렇게 전해주십시오. 그럼.”

마지막으로 주위를 둘러 본 화운은 네 사람에게 고개를 숙인 후 돌아섰다.

이때 한 사람이 조심스레 말했다.

“대주님.”

“예.”

“주제넘을지 모릅니다만······ 힘내십시오.”

“······감사합니다.”

화운은 네 사람을 다시 한번 돌아본 후 그곳을 떠났다.

***

정무맹으로 가는 길.

열흘은 걸릴 정도로 멀었다.

그 먼 길을 화운은 터벅터벅 걸었다.

언제나 자신하던 경신술을 발휘할 마음도 들지 않았고, 늘 자신만만하던 자신감도 한줌 먼지가 되어 날아가 버린 상태였다.

한참을 걷다보니 계곡이 나왔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

핏물이 덕지덕지 말라붙은 모습은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수라도에서 튀어나온 마귀들과 다를 바 없었다.

화운은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가지런히 묶어놓았던 마리까지 풀어 온몸 구석구석까지 깨끗이 씻었다.

한 식경이 넘도록 씻다보니 물마저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자신의 몸은 깨끗해졌지만, 계곡물은 자신의 지저분함을 가져가 더러워진 것이다.

화운의 얼굴에 처연한 표정이 떠올랐다.

사천 사람들도, 계곡 물도 모두가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에 주저앉고만 싶었다.

보는 이 하나 없는 계곡임에도 자신을 탓하는 눈길들이 매섭게 쏘아보는 것 같았다.

화운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물속에 잠기고 나니 세상으로부터 벗어난 것 같았다.

그렇게 물속에 잠겨 있다 보니 조금은 편안해졌다.

외면하고 숨은 것이다.

홀로 도망치니 뭔가를 해야 한다는 속박과 굴레를 벗어난 것이다.

화운은 이대로 편히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이렇게 앉아 있고만 싶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이렇게.

머리는 편안해지고 있었다.

고통 없는 심연으로 한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하지만 육신이 내버려두지 않았다.

천마에게 당했던 가슴팍의 상처가 오랫동안 물속에 있다 보니 고통을 던져주었다.

가슴팍을 꿰뚫는 고통.

화산에 막 당도했을 때의 고통 그대로였다.

당시에 너무 고통스러워 잠깐 운기를 한다는 게 꼬박 하룻밤을 넘기고 말았다.

- 무릇 도라는 것은 행함에 있는 것이지 머릿속에서 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거늘 뭔 가르침을 달라는 것이냐? 필요하면 네 녀석이 겪어보면 될 일이지.

화산에서의 기억이 선령의 가르침을 끄집어냈다.

머릿속으로 갈구하지 말고 직접 겪으라는 가르침이 화운의 정신을 강하게 일깨웠다.

편안해 지고 싶다면 직접 편안해질 방도를 찾아야지 이렇게 회피해서는 안 된다.

화운은 벌떡 일어났다.

신선한 공기가 폐부로 밀려들었다.

가슴 깊숙한 곳까지 힘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

화운은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이 서 있는 계곡 물을 들여다보는 그의 얼굴에 한 대 맞은 듯 한 표정이 떠올랐다.

자신이 그토록 더럽혔던 계곡물이 어느새 깨끗하게 정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크크큭! 내가 뭐 대단한 존재라고······. 나 역시 세상의 일부분일 뿐인데······.”

웃음을 터트린 화운은 고개를 들고 허리를 세웠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름 모를 계곡이 자신을 에워싸고 있다.

자신은 계곡 안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천마도 자신도 천지자연의 일부분일 뿐인 것이다.

넘어서고자 한다면 넘어서지 못할 까닭이 없고, 그를 넘어설 힘을 얻고자 한다면 그에 걸맞게 행해야 할 것이다.

화운은 고개를 돌려 한쪽을 응시했다.

그쪽 방향 어딘가에 그녀가 있기를 바라며.

‘당분간은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백리연을 떠올리며 무척 미안해하는 화운의 심장이 퍽 하고 터졌다.

시간을 되돌린 화운의 눈에 멀리 기암괴봉이 보였다.

화운은 그냥 돌아서서 어딘가로 향했다.

기암괴봉 위의 사황은 화운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말없이 응시하고만 있었다.

***

무릇 도라는 것은 행함에 있는 것이지 머릿속에서 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공이라는 것 역시 결국 몸으로 익히는 것.

화운은 검마를 찾아갔다.

“스승님의 도움이 필요해서 찾아왔습니다.”

검마는 다짜고짜 자신을 스승이라 칭하는 화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하지만 곧 화운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얼굴 가득 놀람이 차올랐다.

화운은 흑귀에 관한 이야기만 빼고 전부 다 말했다.

흑귀에 관한 건 검마가 너무 고통스럽다며 손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당부했었기에 하지 않았다.

천마의 강함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막막함과 절실함이 화운의 얼굴에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좌절과 절망을 맛본 자의 얼굴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럼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반시진이 넘어가는 긴 이야기가 끝이 나자 검마는 침묵했다.

사실 인간의 사고로는 결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자신에 관해 알고 있는 부분들이 너무 놀라웠다. 자신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은연중에 풍기는 기도만 봐도 청년이 자신보다 더 강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엔 좌절과 절망을 이겨내고 있는 자의 진실함이 엿보였다.

검마는 믿고 싶었다.

자신의 제자가 되었다는 청년의 말이 사실이길 바랐다.

자식 내외를 죽이고 손자를 납치해간 자를 쫓기를 벌써 십 년이 넘었다.

몸도 마음도 지쳤다.

그렇다고 손자를 찾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어차피 시간을 되돌려야 한다면 자신의 제자가 되었다는 청년을 도와주어도 되지 않을까.

아니, 조금은 쉬어도 되지 않을까.

‘명아, 널 잊겠다는 게 아니다. 할애비가 좀 힘들어서 조금만 쉬겠다는 거다. 조금 쉬었다가 좀 더 힘을 내겠다는 것이니까 이해해 주려무나.’

검마가 고민하느라 침묵이 길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화운이 힘주어 말했다.

“오 년이 걸리든, 십 년, 이십 년······ 백 년이 걸리더라도 더 강해져야겠습니다. 절대검력을 완성하고 천마를 찾아갈 것입니다.”

화운은 단단히 결심했다.

절대검력의 완성에 매진하기로.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는 돌파구가 보이질 않으니 다 잊고 절대검력 하나에만 매달리기로 작정했다.

검마는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화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끝을 볼 각오가 서려 있었다.

자신의 기억에는 존재조차 없는 제자이지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모습이었다.

“내가 잘 가르쳐놓았구나.”

“제자가 늘 찾을 수밖에 없는 최고의 스승이셨습니다.”

화운이 단언하듯 말했다.

검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늘 찾았다는 말에 마음이 흐뭇해지는 기분이 든 것이다.

“절대검력에 대해 말해보아라.”

“예.”

화운은 절대검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절대검력의 모체가 된 건 연혼팔검이라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잠시 후 화운의 설명이 끝나자 진중한 얼굴을 하고 있던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다.”

“아직 모자랍니다.”

“모자란 건 입신한 것이나 다름없는 천마가 기준이기 때문이다.”

맞는 말인 것도 같아 화운은 침묵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모자라지 않은 건 아니었다.

“연혼팔검이든 절대검력이든 내력을 쓰지 않는 건 아니다.”

“······!”

화운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검마가 바로 말을 이었다.

“연혼팔검의 궁극은 단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검마의 말에 화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마가 말해주지 않은 것이지만, 대충 감은 잡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검마도 화운이 스스로 느끼길 바라고 그 말까지는 해주지 않았었다.

이제 연혼팔검을 넘어 절대검력이라는 새로운 검학까지 만들어낸 화운이니 알려주어도 무방하다 생각한 것이다.

“네가 생각한 절대검력의 궁극은 무엇이냐?”

“제 의지가 닿는 모든 공간을 베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 그렇겠지. 허나 난 달리 생각이 든다.”

“······?”

“내가 느낀 절대검력은 의지에 따라 존재하는 모든 기운이 검력을 이루는 것 같다.”

“······!”

“너는 보이는 걸 베어버리려고만 했지. 어떤 힘으로 벨 것인지는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연혼팔검의 검력을 비롯하여 네 안에 잠재하고 있는 힘만이 발휘된 걸 게다.”

화운은 한 대 맞은 표정만 지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검마만 쳐다봤다.

“네가 아무리 지극한 경지에 올라서도 네 안에 잠재된 힘이 이 세상 모든 기운을 능가할 순 없다.”

“······!”

화운은 결정타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천마는 자신의 무학에 마신 아수라의 힘까지 융합했는데, 자신은 고작 자신이 가진 힘만을 융합하고 있었다.

금강부동이 신들의 권능에 가깝다고는 하지만, 지금 화운이 금강부동을 발휘하는 건 결국 그 자신의 공력이었다.

“오만했구나. 물론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다는 건 알겠다만, 네가 상대할 존재는 마신의 힘을 발휘한다고 했잖느냐. 그럼 그에 걸맞는 힘으로 상대해야겠지.”

화운은 자신이 방만했고 오만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화운이 스스로를 질책하며 고개를 떨구자 검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구나.”

“어디로 말입니까?”

“세상엔 인간을 압도하는 거대한 존재들이 있다. 너에게 그 존재들의 위대함을 보여주마.”

검마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무척이나 온화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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