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셋으로 무림지존-134화 (134/207)

#134. 와라! 아수라의 개들!

결전의 날은 빨리도 찾아왔다.

거의 칠만에 달하는 천종천마교의 마귀들은 곧장 남하하였고, 마지막 정찰대의 보고에 의하면 코앞까지 몰려오고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은 다 한 것 같소. 다들 애쓰셨소.”

화산파 장문인 임장홍이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가 뭐 한 게 있겠습니까. 당문과 청성에서 다 하셨지요.”

섬서에서 온 종남파 장문인이 당화천과 청성파 장문인을 향해 포권하며 말했다.

그러자 청성파 장문인이 손사래를 쳤다.

“다들 보셨겠지만, 당문이 애 많이 쓰셨습니다. 섬서에서 오신 분들도 다들 팔을 걷어붙이셨구요. 정말 다들 애쓰셨습니다. 감사하외다.”

“거참, 신풍대주가 파 놓은 땅을 마무리한 것에 불과하거늘 자꾸 고생했다고 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소. 신풍대주, 수고했네. 싸우기도 전에 이런 말 하기는 뭣하지만, 자네 덕분에 사기까지 잔뜩 올랐으니 자네야 말로 일등공신이네.”

“아닙니다. 전 땅만 팠지만, 당문에서는 많은 걸 내놓으셨잖습니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당화천이 화운을 향해 공을 떠넘겼고, 화운은 당화천이 큰 결단을 내려 당문의 암기들을 내놓은 것에 고마움을 드러냈다.

“맞네, 맞아. 당문이 많은 걸 내놓았지. 신풍대주가 큰일 한 것도 맞고.”

“수고했네. 신풍대주도 수고했고, 다들 수고하셨소. 이제 한바탕 화끈하게 놀 일만 남았소이다!”

“좋소! 좋아! 화끈하게 놀아봅시다!”

다들 호탕하게 소리쳤다.

일만에 달하는 사천과 섬서 무림인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함이다.

자신만만한 수장들의 기세는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힘이 되기 마련인 법이다.

사천과 섬서의 일만 무인들은 화운의 신위를 목격한 순간부터 폭발하기 직전일 정도로 사기가 드높았다.

제대로 한판 벌여볼 준비가 된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남았다.

적들에 대한 정체.

수뇌부들은 지옥에서나 있을 법한 마귀들이 싸울 상대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칠만에 달한다는 사실 역시 밝힐 수가 없었다.

적과 맞닥트려 너무 놀라지 않도록 마귀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일부러 흘려놓기는 했으나 공식적으로 공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전쟁이 코앞으로 들이닥친 이상 사실을 밝힐 때가 되었다.

점점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일만 무인들을 둘러본 임장홍이 화운을 보며 물었다.

“아미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가? 지금껏 자네를 보는 눈빛이 좋지 않아 보이던데.”

“타초경사의 우를 저질렀다며 절 몰아세우더군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믿지 않는 모습이었고요.”

“여기까지 왔으니 지금이야 믿겠지.”

“믿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심하다 느껴질 정도로 절 냉대하더군요.”

“전쟁 중에도 내 발 밟은 아군한테 화내는 게 인간이네. 자네 혹은 자네 주위에 심기 불편한 뭔가가 있는 모양이지.”

“예.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여튼 그 부분은 잊어버리고, 이젠 자네가 나서줄 차례네.”

임장홍의 말에 화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화운은 단상 대신 놓아둔 큼지막한 돌덩이 위로 올라섰다.

화운을 알아본 이들을 시작으로 점점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목을 집중했다.

“정무맹 신풍대주 화운입니다.”

내력이 실린 화운의 음성이 맨 뒤에까지 울렸다.

뒤쪽에서는 화운의 얼굴을 보기위해 목을 길게 내미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화운은 그 같은 광경을 보고는 허공으로 부상했다. 그리고는 자신을 보려는 소란이 가라앉자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둘 중 하나입니다. 적을 두고 도망치는 것과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는 것입니다. 도망친다면 마귀들이 사천 땅을 휩쓸 겁니다. 끝까지 싸운다면…… 약속드리겠습니다. 절대! 마귀들은 이곳을 넘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화운이 힘주어 외치자 일만 무인들의 피가 끓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임장홍이 큰 소리로 외쳤다.

“화산의 제자들은 들어라!”

“예!”

화산파 제자들이 일제히 대답하자 장내의 소란이 일시에 가라앉았다.

“악을 멸하고 정을 수호하는 게 본파의 사명이다. 그 대상에 인간과 마귀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하여 장문인으로서 명한다! 별도의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화산파는 이 자리에서 옥쇄한다!”

임장홍의 명령에 화산파 제자들이 일제히 검을 든 손으로 각자의 가슴팍을 두들긴 후 머리위로 힘껏 쳐들었다.

“의기화산!”

화산파 제자들이 그렇게 의기를 드높이자 종남 장문인이 웃으며 소리쳤다.

“종남은 들어라!”

“예!”

“화산의 옆자리는 종남의 것이다!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말라!”

“종남재인 기개만리!”

종남에도 사람이 있고, 그 기개가 만리에 간다는 외침이 종남 제자들의 입을 통해 크게 울렸다.

섬서의 문파들이 앞장을 서자 사천무인들의 가슴팍에 경쟁이라는 불길이 확 치솟았다.

“나 귀산검이다! 의기니, 정의니 같은 건 좆 빠는 소리고 내 고향이 끝장나는 꼴은 두고 볼 수 없다!”

“이런 시펄! 사람 머리통 깨는 것도 지겨웠던 참인데 마귄지, 마물인지 머리통도 깨보자!”

사파인들 중 악명깨나 날리던 자들이 한마디씩 하자 그들을 추종하던 사파인들이 크게 웃거나 소리치며 전의를 불태웠다.

이는 사전에 협의된 바였다.

수뇌부들은 귀산검을 비롯한 사파인들 중 우두머리격인 이들을 따로 불러 정확한 상황을 알려준 후 도움을 청했는데, 놀랍게도 그들이 흔쾌히 합류해 주었다.

“청성파 역시 물러나지 않을 것이오!”

“당문은 자리를 지킨다!”

“아미타불! 중생을 구제하는 일에 아미 역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렇게 전의가 활활 타올랐다.

그런데 한참 전의를 불태우던 어느 순간 발바닥을 미세하게 건드리는 울림이 있었다.

화운을 비롯하여 감각이 극도로 발달한 고수들은 너나할 것 없이 북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깐 사이에 발바닥에 전해지는 진동이 좀 더 확연해지고, 수뇌부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북쪽만 바라보는 모습에 일반 무인들도 북쪽을 바라봤다.

멀리 병풍처럼 드리워진 산을 새까맣게 채우고 넘어오는 존재들이 보였다.

마치 범람한 물길이 산을 넘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 같았다.

“맙소사!”

“뭐가 저렇게 많아!”

아직 마귀인지 마인인지 구별할 순 없지만 몰려오는 적들이 너무 많았다.

가히 압도적이라 할 만한 숫자에 모두들 넋을 잃어버렸다.

“전투 준비!”

임장홍이 내력을 실어 크게 외쳤다.

화산파의 제자들이 가장 먼저 반응하여 검을 뽑아들었고, 다음으로 각파의 제자들도 전투 준비를 했다.

절반을 훌쩍 넘는 일반 군소방파의 무인들과 이렇다 할 소속 없이 개인이거나 몇몇이 무리를 짓는 이들은 그저 파도처럼 몰려오는 대군을 멍청히 바라보기만 했다.

“날, 날개다! 날아오는 것들도 있다!”

누군가가 경악하여 외쳤다.

정말 수천은 될 것 같은 숫자가 하늘을 날아오고 있었다.

대규모의 적들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진 순간이었다.

바로 이때 화운이 둥실 떠서 더욱 높은 허공으로 부상했다.

“날아다니는 게 뭐 대단하다고! 날갯죽지를 뽑아버리자!”

임장홍이 크게 외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병기를 뽑아들고 전의를 가다듬었다.

화운은 허공에 부상한 채 앞으로 쭉 날아갔다.

모두가 보란 듯이 수십 장 앞쪽으로 나아가 선두에 섰다.

칠만에 달하는 대군이 파도처럼 몰려오는 광경은 실로 두려웠다.

얼마나 세차게 질주하는지 땅이 울려댔다.

“많아. 많아. 너무 많아······.”

겁에 질린 누군가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하며 중얼거렸다.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준비들 해!”

당화천이 큰 소리로 외쳤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마귀들의 대군을 보자 그조차도 적잖이 긴장이 되었다.

이백 장!

파도처럼 밀려드는 마귀들과의 거리다.

흡사 수만의 군마가 일제히 질주하는 것처럼 땅바닥의 자잘한 돌멩이들이 들썩거렸다.

백오십 장!

이제 마귀들의 발목을 잘라버리기 위한 올가미들을 잔뜩 설치해둔 지점과는 오십여 장만 남았다.

‘제발, 제발, 제발······!’

당옥기가 긴장된 얼굴로 지켜봤다.

당화천도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직접 올가미를 설치했던 당문의 문도들 역시 간절한 얼굴로 바라봤다.

백 장(300m)!

‘지금이다!’

당옥기가 눈을 부릅뜬 순간 질주하던 마귀들의 일부가 와락 고꾸라졌다.

“다리가 잘렸다!”

“그렇지!”

“와아!”

당문의 문도들을 중심으로 다들 환호를 질렀다.

그러나 그 환호는 순식간에 그쳤다.

발목이 잘려 땅바닥에 나뒹구는 숫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고, 대부분의 마귀들은 몇 바퀴 구르다가 벌떡 일어나 다시 질주했다.

그들은 무영사가 발목을 자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화운은 그 광경에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마귀들에도 더 단단한 놈과 덜 단단한 놈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정신 차리고 화공을 준비해라!”

당화천이 소리쳤다.

그제야 활을 든 자들이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마귀들은 순식간에 오십여 장(150m)까지 돌진해 왔다.

이때는 마귀들의 끔찍하면서도 공포스러운 모습들이 제대로 보였다.

두려움에 짓눌린 자들이 들었던 병기들을 내려 버리기도 했지만, 다행이 활을 든 자들은 끝까지 시위를 놓지 않고 있었다.

“지금!”

당화천이 소리친 순간 활을 든 자 옆에 있던 자들이 화살 촉 바로 뒤에 묶여 있는 솜뭉치에 불을 붙여주었고, 궁수들은 일제히 시위를 놓았다.

쏴아아아아!

불화살들이 무수히 날아간 순간 맹렬히 돌진해 오던 마귀들의 선두가 푹 꺼졌다.

얇은 나뭇가지와 천으로 뒤덮은 다음 그 위에 흙을 덮어 위장해둔 구덩이 속으로 와르르 빠진 것이다.

선두의 바로 뒤에서 또 그 뒤에서 질주해오던 마귀들도 와르르 빠졌다.

구덩이 속에 빠진 마귀들이 빠른 속도로 튀어 오르기 시작한 순간 하늘에서 불화살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화라라락!

산비탈과 강가까지 백여 장(300m)에 이르도록 거대한 불길이 치솟았다.

“캬아아아악!”

“키아악!”

마귀들이 울부짖었다.

상당수가 불붙은 채로 구덩이 밖으로 튀어나와 땅바닥에 뒹굴었지만, 당문에서 특별히 준비한 기름이라 쉽게 꺼지지 않았다.

“그래! 다 타버려라!”

누군가가 속 시원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일만의 무인들은 그제야 땅에 떨어졌던 전의를 다시금 일으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마귀들이 놀라운 도약력을 발휘하여 구덩이를 훌쩍 건너뛰기 시작했다.

더 이상 구덩이에 빠지거나 불이 붙는 마귀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망할!”

누군가가 답답한 속내를 터트린 순간 당화천이 소리쳤다.

“던져!”

당화천의 외침과 동시에 수백 개의 가죽주머니들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또 한 번 불화살들이 발사되었고, 불화살들이 가죽주머니에 꽂힌 순간 기름과 불덩이가 마귀들의 머리위로 쏟아졌다.

그야말로 불벼락을 맞은 마귀들이 괴성을 지르며 사방팔방으로 날뛰며 땅바닥에 구르고 난리를 쳐댔다.

하지만 불덩이가 된 숫자는 새 발의 피라는 말처럼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먹잇감을 코앞에 든 흥분을 어쩌지 못하겠는지 성난 이빨과 발톱들을 드러내며 물밀듯이 덮쳐온 마귀들이 불덩이가 된 동료들을 뒤덮으며 와락 밀려왔다.

바로 이때였다.

새파란 섬광 백여 개가 일시에 날아갔다.

쾅쾅쾅쾅쾅쾅쾅!

굉음이 터지며 화운이 날린 검환에 적중당한 마귀들이 폭죽처럼 터져 버렸다.

곧이어 화운의 검격을 따라 와락 치솟은 지기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폭풍처럼 몰아쳤다.

콰콰콰콰콰콰콰콰!

지기의 칼날에 꼬치처럼 꿰뚫린 마귀들이 고통으로 울부짖으며 수장을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그 숫자 역시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칠만의 숫자.

많아도 너무 많았다.

산비탈과 강가 사이의 백여 장을 꽉 채우고 몰려오는 마귀들.

한꺼번에 몰려오지 못하는 게 답답했던지 일부가 가파른 산비탈을 평지처럼 달리며 더욱 넓게 몰려오기 시작하자 화운이 날려 버린 숫자가 더더욱 적게 느껴졌다.

허공에 떠 있던 화운은 다시금 검멸을 발휘하여 지상을 폭격하고, 지기를 일으켜 수십의 마귀들을 한꺼번에 날려 버린 후 눈앞의 허공을 응시했다.

날개 달린 마귀들이 먹잇감을 덮치는 맹금처럼 화운을 향해 몰려들었다.

화운은 검을 머리 위로 치켜들며 포효하듯 소리쳤다.

“와라! 아수라의 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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