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강시당
천종천마교 북명전.
교의 율법을 집행하고 죄인들을 다스리는 곳이다.
천마탑을 기준으로 북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지상만 오 층인 거대전각이다.
“누구냐?”
허공에서 갑자기 화운이 나타나자 북명사자들이 경계하여 소리쳤다.
화운은 대꾸하지 않고 바람처럼 북명사자들 사이를 통과하여 북명전 안으로 들어갔다.
북명전 안에는 북명사자들이 꽤 많았지만 질풍처럼 달리는 화운을 막지는 못했다.
정면으로 달려오던 화운이 바로 눈앞에서 사라져버리거늘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화운은 과거의 기억을 따라 지하 형옥으로 향했다.
지하계단을 순식간에 내려간 화운은 눈앞에 철문이 나타나자 지체 없이 검을 휘둘렀다.
콰앙!
반 뼘 두께의 거무튀튀한 철문이 종잇장처럼 터지며 안쪽에 있던 간수들이 나가떨어졌다.
철문 앞에는 두 명의 북명사자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감히 검환을 막을 수는 없었다.
화운은 검을 뽑아든 북명사자들 사이를 질풍처럼 관통한 다음 무저옥을 향해 달렸다.
이때 쇠창살로 칸칸이 나누어진 뇌옥들 사이의 통로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양쪽 쇠창살 안쪽에 갇혀 있는 이들이 무척 많았다.
화운은 몇몇의 얼굴을 보고는 이들이 멸제와 함께 가담했던 이들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화운은 곧장 안쪽으로 질주했다.
안쪽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왔다.
그 계단을 따라 세 개 층을 내려가니 뇌옥이 하나도 없는 텅 빈 공간이 나왔고, 그 한복판 바닥에 커다란 철문이 있었다.
바닥의 철문에 빗장이 있었지만, 화운은 빗장을 풀지 않고 철문을 통째로 뜯어내버린 다음 그 아래로 뛰어내려 안쪽 벽까지 달려갔다.
호호백발의 머리칼조차 듬성듬성 남아 있는 노인이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은 채 앉아 있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이었는데 전에 화운이 보았을 때보단 상태가 좋아 화운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게 노인이 할 수 있는 움직임의 다였다.
두 손과 두 발의 힘줄이 잘렸고, 양 어깨도 박살이 났기 때문이다.
무영자임을 확인한 화운은 쇠사슬을 끊어버린 다음 무영자 앞에 자세를 낮췄다.
“무영투께서 구하러 왔습니다. 지금 나가겠습니다.”
무영투라는 말에 무영자가 흠칫 놀랐다.
화운은 그런 무영자를 안아 든 다음 경신술을 발휘하여 질주하기 시작했다.
화운이 죄수를 안고 나오자 형옥의 간수들과 두 명의 북명사자가 앞을 막아섰다.
좀 전에야 압도적인 무위에 놀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이대로 죄수를 놓친다면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라 죽음을 무릅쓰고 막아야 했다.
하지만 화운이 검 한 번 휘두르자 지하 형옥에 가득한 지기가 휘몰아쳐 모조리 날려버렸다.
누구 한 사람 예외 없이 전부 벽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화운은 그렇게 널브러진 이들 사이를 무인지경으로 통과한 후 지상으로 질주했다.
이윽고 화운이 북명전 지상으로 올라가자 북명사자들이 개떼처럼 몰려와 있었다.
북명전 밖에도 적잖은 마인들이 느껴졌으나 그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북명전의 일인지라 북명사자들이 아직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이다.
화운이 의도적으로 공격을 하지 않고 경신술만 발휘하여 그들을 통과한 계획이 적중한 것이다.
“무엄한 놈이로고!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안쪽의 계단에서 북명우사의 분노에 찬 일갈이 터졌다.
멸제와 손을 잡은 일로 기존의 북명우사는 머리통이 터져 죽었고, 새로 북명우사가 된 자가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엄중히 소리쳤다.
하지만 신임 북명우사는 곧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을 멈춰야했다.
화운이 갑자기 측면으로 검을 휘두른 것이다.
“막아라!”
북명우사가 소리친 순간 화운이 날린 검강에 강타당한 북명사자들이 벌러덩 나가떨어졌고 화운은 곧장 그들을 지나쳤다.
그리고는 재차 검강을 날려 벽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버린 후 그곳을 통해 바깥으로 튀어나갔다.
‘적당히! 적당히!’
북명전을 빠져나간 화운은 곧장 달리면서도 전력을 다하지 말자고 중얼거렸다.
한편으로는 경천보패의 기운이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중단전의 기운으로 겹겹이 에워쌌다.
모두가 천마의 개입을 우려해서였다.
그래서 검강만 발휘하여 소란을 피우며 빠져나간 것이다.
여기저기서 북명사자들이 쫓아왔으나 공공무영비를 발휘하는 화운을 잡기에는 한참 느렸다.
화운은 북명전을 빠져나가자마자 한 방향으로 질주했다.
천마탑에서 멀어지는 방향이었다.
담이 나오면 담을 뛰어넘고, 마인들이 나타나면 즉각 검강부터 날렸다.
그러자 화운의 뒤로 마인들이 줄줄이 달라붙었다.
제법 경신속도가 빠른 자들도 있었으나 화운이 달리는 속도를 높이자 금세 뒤로 처졌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자 일반교도들이 머무는 집들이 밀집된 곳이 나타났다.
몸을 날린 화운은 건물들의 지붕을 밟고 질주했다.
그의 뒤로 수백 명의 마인들이 함성을 질러대며 쫓아왔다.
“잡아라!”
“막아! 막으라고!”
“죽여버려!”
갈수록 숫자가 많아졌고, 뒤를 쫓는 분노도 커졌다.
거리를 달리며 쫓아오는 자들.
화운처럼 지붕을 밟으면 쫓아오는 자들.
어떤 자는 집들을 마구 부수며 쫓아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화운의 정면을 막아선 자가 있었다.
커다란 대도를 든 대단한 마기를 내뿜고 있는 고수였다.
그래도 화운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정면으로 쏘아가다 수중의 검을 휘둘렀다.
검신에 새파란 검환이 응집한 채.
콰앙!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커다란 대도를 휘두르던 자가 일검에 날아갔다.
화운은 달리던 속도 그대로 질주하다 허공을 박차고 크게 도약하여 성벽 같은 천종천마교의 담을 훌쩍 뛰어넘어 사라졌다.
화운의 뒤를 쫓아온 자들은 닭 쫓던 개처럼 놀란 눈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경신술에 일가견이 있는 몇몇이 화운을 쫓아갔으나 그들 만으로 화운을 잡기엔 어림없었다.
그들은 얼마 가지 못해 화운의 종적조차 놓치고 말았다.
“사부님! 으허엉!”
화운이 마차 안에 무영자를 앉히자 무영투는 무영자의 참혹한 모습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대환단요.”
화운이 말하자 허겁지겁 신을 벗고 엄지발가락 밑에서 대환단을 꺼내 손으로 짓이긴 다음 무영자의 입에 넣어주었다.
하지만 바싹 마른 입으로 그걸 넘길 리 만무했다.
“물요.”
화운이 다시 말하자 미리 준비해두었던 물을 한 모금 먹이자 그제야 대환단을 꿀꺽 삼켰다.
화운은 무영투를 눕혔다.
그리고 눈물범벅인 얼굴로 스승 무영자의 얼굴만 들여다보고 있는 무영투를 강하게 잡아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이제 영감님이 지켜드려야 합니다.”
끄덕끄덕!
“정신 차리시고요!”
“난 괜찮아. 괜찮다! 내가, 내가 지켜드릴 거다.”
무영투가 조금 정신을 추스른 듯 하자 화운은 그를 놓아주고 신풍대원들을 돌아봤다.
“계획한 대로 사천 아미파로 가. 검마 스승님의 일이 끝나는 대로 그리 갈 테니까.”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는 세 사람.
화운은 그들에게 일일이 눈을 마주친 후 마차에서 내렸다.
“곧장 가십시오.”
마부석을 향해 말하자 마부가 바로 말을 몰아 달리기 시작했다.
마차가 금세 멀어지자 화운은 검을 휘둘러 검풍을 일으켰다.
마차가 달리며 생겨난 바퀴자국은 검풍에 의해 깨끗하게 사라졌다.
화운은 백여 장에 이르도록 마차의 바퀴자국을 지웠다.
그리고 곧 함께 준비해둔 또 다른 마차를 향해 다가갔다.
“부탁드립니다.”
“염려 마십시오.”
마부가 정중히 대답한 후 빈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화운은 마차가 달려간 자국을 지우지 않았다.
천종천마교의 추격대는 저 빈 마차의 뒤를 쫓아갈 것이고, 그들은 아무도 잡지 못할 것이다.
빈 마차를 모는 마부 역시 한 식경 후에는 마차에서 뛰어내린 후 그를 기다리고 있는 말을 타고 난주로 달려갈 테니까.
추격대가 저 마부의 흔적을 찾아 추격을 시작할 때쯤엔 마부는 반나절 거리인 난주에서 사람들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대륙전장 난주지부에서 특별히 지원해준 사람으로 마차를 모는 건 기본이고 무공도 제법 강한 고수였다.
“이제 가시지요?”
화운이 물었다.
그의 곁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검마였다.
검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화운은 그의 팔을 잡은 다음 공공무영비를 극성으로 발휘했다.
그러자 두 사람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천종천마교 강시당.
강시당은 지상 삼층 지하 오층으로 만들어진 상당한 규모의 전각이다.
정체불명의 고수가 북명전의 죄인을 빼내간 사건이 터지면서 천종천마교가 크게 술렁인 상황이었다.
신임 북명우사조차 일격에 나가떨어져 북명전의 북명사자들은 물론이고, 삼십육대마에 십이무상들까지 대거 나서서 추격조를 꾸리고 발 빠른 이들은 교 밖으로 달려 나가 도주한 자들의 흔적을 찾는 등 소란스러웠다.
이때 화운과 검마는 조용히 강시당으로 스며들었다.
강시당은 워낙 음산한 곳이라 천종천마교의 마인들조차 발길이 뜸해 입구를 지키는 자들이 사라졌어도 사달이 났음을 알아차릴 이가 없었다.
화운과 검마는 입구를 지키던 자들의 수혈을 짚어 안으로 끌고 들어가 발길이 뜸할 만한 곳에 던져 둔 후 곧장 지하로 향했다.
화운이 과거의 기억을 찬찬히 생각해보니 지하가 의심스러웠었다.
과거의 기억을 따라 나선형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지하 일층에 기다란 통로가 나왔고, 그 끝에 커다란 철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안쪽에 꽤 많은 사람들의 기운이 느껴졌다.
강시당의 무리들인 모양이었다.
유난히 음산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고루마군도 있는 것 같았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흉측한 기운도 잔뜩 느껴졌다.
강시들이 분명했다.
그러나 화운은 나선형의 계단을 따라 계속 지하로 내려갔다.
고루마군을 잡아 족치기 전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서다.
‘그때 마경이 계집의 시체를 가지고 가서 괴물들한테 던져버렸다고 했었어.’
강시당 지하를 샅샅이 뒤져본 후 쓸 만 한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 되돌아와서 고루마군을 사로잡을 생각이었다.
한참을 내려가자 바로 위층처럼 수평으로 나 있는 기다란 통로가 나왔고 그 끝에 철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게 보였다.
화운과 검마는 그리로 향했다.
곳곳에 횃불이 걸려 있어 보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두 사람이 철문 안으로 들어서자 양쪽으로 각각 두 개씩의 철문이 보였다.
그리고 각 철문마다 작은 철창이 만들어져 있었다.
“누구신지요? 내방하실 분이 계시다는 지시는 듣지 못했습니다만?”
중앙 통로에 탁자 몇 개와 의자들이 있었는데, 거기에 앉아 있던 십여 명이 엉거주춤 일어서서는 화운과 검마를 경계했다.
둘이 워낙 당당하게 들어오자 적이라는 생각은 일절하지 못한 것이다.
“신임 북명우사께서 내방하시는 데에 니들한테까지 일일이 알려야 한단 말이냐!”
화운이 대뜸 고함을 질렀다.
“헉?”
“우, 우사께서·····!”
파수를 보는 자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본 화운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이자들까지 신임 북명우사의 얼굴을 봤을 리가 없을 거라 여겼는데 맞아 떨어진 것이다.
“냉큼 조아리지 못할까!”
화운이 싸늘히 말하자 파수를 보는 자들이 넙죽 허리를 숙였다.
화운과 검마는 휘적휘적 다가가 넙죽 조아린 자들의 수혈을 잽싸게 짚어버렸다.
그 자리에 쓰러진 자들은 깊은 잠에 빠졌다.
화운과 검마는 양쪽에 늘어서 있는 철문 안쪽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철창으로 들여다보니 강시들이 가득했다.
검마는 강시들을 구별하지 못했으나 화운은 이미 싸워본 적도 있었다.
핏빛 무복의 혈라강시 백여 구와 철립을 씌워놓은 흑의의 금강강시 수십 구 그리고 거대한 동체를 가진 맹수들.
맹수들은 다시 봐도 끔찍했다.
흡사 거죽을 벗겨놓은 것 같은 붉은 살덩이의 모습이었다.
십여 장을 한 번에 도약하고 쩍 벌린 아가리가 사람 머리통쯤은 한 입에 씹어버릴 수 있을 만큼 큰 놈들이 십여 마리나 되었다.
화운은 마지막 철문 앞에 섰다.
그곳은 뭔가를 위한 자리인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 보죠.”
화운의 말에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지하로 한 층 더 내려갔다.
역시 기다란 통로가 나왔고 철문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굳게 닫혀 있었다.
화운이 밀어보니 잠기지 않았는지 쉽게 열렸다.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지하 삼 층은 무슨 실험실 같았다.
붉은 살덩이를 가진 맹수들이 지천으로 걸려있었다. 사람의 시체도 무척 많았다.
그들을 해부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화운과 검마는 곧바로 돌아서서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 사층은 무슨 창고 같았다.
온갖 약과 독향이 진동을 하는 술독 같은 커다란 항아리들 수백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화운은 왠지 모를 불길함에 바로 옆에 있던 횃불을 들고는 항아리 가까이 다가가 안을 비춰보았다.
“사람입니다.”
놀랍게도 항아리 안에 사람이 들어앉아 있었다.
화운은 다른 항아리들도 살펴보았다.
각 항아리마다 한 명씩 있었다.
화운은 손을 넣어 머리통을 잡아서 들어 올려 봤다.
어린 아이였다.
십 세가 되었을까 말까 한.
놀랍게도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화운은 검마를 돌아봤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검마가 다가오더니 다른 항아리들을 일일이 살피기 시작했다.
마찬가지였다.
각 항아리마다 아이들이 들어있었고, 전부 살아 있었다.
이때 화운이 항아리들을 살펴보니 초록색, 노란색, 주황색, 붉은색 그리고 검은색의 종이가 구분 되어 붙어 있었다.
화운은 그 색깔 별로 항아리 속의 아이들의 상태가 조금씩 다르다는 걸 알아차렸다.
점점 더 살아 있는 인간의 모습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항아리에 붙은 종이가 붉은색 가까이 갈수록 삐쩍 말라 흡사 살아 있는 강시로 변해가는 것 같았다.
검마가 마지막 검은색 종이가 붙어 있는 항아리 속의 아이를 들어보니 피부는 완전한 잿빛이었고 머리털은 한 가닥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얼굴엔 주름이 생기다 잿빛으로 굳어버려 아이인지 어른인지조차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흑귀······.”
화운이 침음했다.
그가 생각했던 불길한 상상이 눈앞에 사실로 판명이 난 것이다.
강시당에서 아이들을 납치해서 흑귀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흑귀로 만들어서 무얼 하려고 했단 말인가?
그 이유는 이제 알아봐야한다.
그리고 검마의 손자도 찾아야 하고.
“조심하십시오.”
화운이 갑자기 경고했다.
검마가 들어 올린 거의 흑귀가 다 된 아이가 날카로운 손톱으로 검마의 팔을 긁어대며 입을 쩍 벌려 물으려고 했다.
검마는 측은한 얼굴로 바라보다 다른 아이들처럼 항아리 밖에다 내려놓았다.
그러자 검마의 다리를 할퀴고 물려고 달려들었다.
이때 화운이 발휘한 검풍이 아이를 저만큼 밀어버렸다.
“한 층 더 남았습니다.”
화운이 재촉했다.
다른 아이들조차 눈을 떴다간 죽이지도 못하고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았다.
다행히 검마는 곧바로 돌아섰다.
뒤에서 흑귀가 다 된 아이가 덮쳐왔으나 화운에게서 일어난 기운이 다시 밀쳐버렸다.
이윽고 철문을 닫아버린 두 사람은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가 들어앉은 얼굴로 지하오층으로 향했다.
지하오층이 마지막이었다.
더 이상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은 없었고, 철문이 아니라 커다란 석문만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석문을 열고 닫는 개폐 장치가 있어 조작해보니 ‘그그긍!’ 하는 묵직한 소리를 내며 쉽게 열렸다.
두 사람은 곧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오층은 거대한 광장이었다.
천장은 삼층 건물이 들어설 수 있을 정도로 높았고, 넓이는 장원을 세 채 정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천장 곳곳에 은은한 빛을 발하는 구슬들이 박혀있어 밤에 보름달이 떠 있는 것보다 조금 더 밝게 보였다.
광장 안으로 걸어가며 살펴보니 사방 벽에 수십 개의 크고 작은 동혈들이 무질서하게 뚫려 있었다.
두 사람은 동혈들을 둘러보며 반대편으로 향했다.
그런데 반대편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앞쪽 땅에서 머리통 하나가 불쑥 솟아올랐다.
그러고 보니 바닥에도 수많은 구멍둘이 숭숭 뚫려 있었다.
바닥 구멍을 통해 얼굴을 보인 흑귀가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더니 갑자기 허공으로 솟구쳐 두 사람들 덮쳐왔다.
마치 자신의 집에 들어온 불청객을 죽이겠다는 듯이.
화운이 손을 뻗어 일으킨 장력으로 흑귀를 멀리 날려버렸다.
흑귀는 벽까지 날아가 가볍게 부딪쳤다가 아래로 내려서서는 성난 얼굴로 화운을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캬아아아! 캬아아캬아아아아!”
성난 울음 같은 소리가 계속해서 광장을 울렸다.
검마가 흑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화운이 이맛살을 찌푸린 바로 그때.
사방 벽과 바닥에 뚫려있는 수백 개의 동혈과 구멍들을 통해 ‘다다다닥!’ 하는 소리가 흡사 밀려오는 파도처럼 빠르게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