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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으로 무림지존-123화 (123/207)

#123. 검마

“무영자 어르신께서 대환단을 훔친 건 다 영감님 때문이셨습니다. 영감님을 고수로 만들어주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것이지요. 하지만 소림에 미안한 마음도 컸습니다. 혹여 소림의 의심이 제자인 영감님에게 향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하셨구요. 그래서 천종천마교로 가신 겁니다. 까마득한 과거에 천마가 가져간 금강부동을 소림으로 돌려주기 위해서요. 금강부동이라면 대환단의 일이 무마될 것이라고 생각하신 겁니다.”

“그, 그럴 리가! 마교라니! 분명 스승님께선 당신의 마지막을 내게 보여주기 싫다고 유언을 남기셨는데······.”

“영감님이라면 천마교로 간다고 하시겠습니까?”

무영투는 대답을 못했다.

자신이었어도 마교로 간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니까.

이제야 자신의 임종을 보여주기 싫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유언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한 가닥 의심을 지우진 않았다.

“넌 그걸 어찌 아는 것이냐?”

“조부님께서 무영자 어르신과 지기이셨습니다. 삼대 공공문주께서 마도의 땅으로 가셨다가 횡액을 당하셨고, 그분께서 죽기 직전에 공공문의 맥을 이어달라며 공공무영비를 남기셨다고 한 건 거짓말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스승님의 지기라면 내가 모를 리 없다.”

“조부님은 무공을 모르는 분이십니다.”

“······!”

그럼 말이 된다.

무림의 화가 닥칠까봐 지기임을 감춘 것일 테니까.

“무풍무영은 영감님께 남기신 겁니다. 영감님이 그걸 해내기 전에는 마교로 가신 걸 알리지 말라고 하셨다는데, 상황이 좀 달라졌습니다.”

“무슨 상황?”

“정파와 사파가 연합하여 마교를 칠 겁니다.”

“······!”

무영투는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믿는다면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화운은 그렇게 혼란해 하는 무영투를 보며 하는 수 없다는 듯 천천히 허공으로 부상했다.

공공무영비 칠단공 부풍무영을 펼친 것이다.

그리고 곧 무영투가 놀란 얼굴로 쳐다보는 가운데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운신하는 운해비룡과 일섬의 속도인 무영비천 그리고 곧 무풍무영까지 발휘했다.

무영투는 자신은 가닥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무풍무영을 화운이 펼쳐보이자 눈만 부릅뜬 채 쳐다봤다.

이윽고 공공무영비를 펼쳐 보인 화운이 무영투 앞으로 내려왔다.

“제가 영감님께 얻어내고 싶은 게 있겠습니까?”

무영투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무풍무영까지 자신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던가.

“알아들으신 듯하니 이만 가시지요.”

“어디로 말이냐?”

“제 신분이 신풍대주입니다. 정무맹으로 가야지요.”

“아, 그랬었지.”

무영투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화운이 먼저 돌아서며 말했다.

“남은 대환단 챙기는 거 잊지 마십시오.”

순간 무영투가 두 주먹을 쥐고 반사적으로 몸을 튕기듯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대환단이었구나! 네놈이 노리고 있는 것이!”

“오 년이 넘었습니다.”

“됐다! 더 이상 안 속겠다!”

“무영자 어르신께서 갇히신지 오 년이 넘었는데, 엄지발가락 밑에 숨겨 둔 대환단 한 알만으로 여태 무사할 것 같습니까?”

“······!”

“어르신을 구하면 대환단부터 복용시켜야 할 거 아니냔 말입니다.”

그제야 무영투의 꽉 쥔 주먹이 슬그머니 펴졌다.

“······엄지발가락은 어찌 알았대?”

무영투가 지나가는 투로 중얼거리듯 물었다.

애써 담담한 표정이었으나 속으로는 크게 놀란 무영투였다.

왜냐하면 지금도 그의 엄지발가락 밑에 대환단 한 알이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운은 대답하지 않고 먼저 가버렸다.

무영투는 어쩔 수 없이 화운의 뒤를 부리나케 쫓아갔다.

***

다음 날 화운이 이끄는 신풍대가 정무맹을 나섰다.

맹주부에는 사파연합과 함께 천종천마교를 치러가기 전에 그 일대를 사전에 정찰하기 위해서라고 해두었다.

그리고 신풍대에는 무영투가 합류해 있었다.

백리연과 남궁현 그리고 선우유성은 무영투를 깍듯이 대했다.

무림의 대선배이기도 했지만, 그가 준 대환단을 복용하여 무위가 한층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화운을 따라 나서게 된 무영투 역시 기분이 좋았다.

스승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신반의 하는 중이었으나 정파의 유명한 후기지수들이 어르신이라며 깍듯하게 대해주어 무풍무영을 익히다 좌절한 기분을 상당수 털어낼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니까! 일보무념! 이보질풍! 삼보종극! 무념이어야 할 정도로 첫 걸음이 중한데 너처럼 그렇게 처음부터 변화를 드러내면 어쩌자는 것이냐?”

무영투가 호통을 쳤다.

남궁현을 향한 것이었다.

휴식할 때마다 화운이 세 사람에게 경신술을 가르쳐주는 것을 지켜보다 며칠 전부터 끼어들어 직접 가르치고 있었다.

화운이 세 사람을 가리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르쳐 주면서 배운다는 말이 떠올라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공공무영비를 가르쳐줄 순 없고 질풍섬이라는 경신술을 가르쳐 주었다.

무영투가 공공무영비를 배우기 전에 익혔던 것이라 절학이라 할 만한 것은 못되지만, 잘 익혀두면 적들이 밀집한 적진을 돌파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어차피 질풍이 될 거 처음부터 그러면 더 좋은 거 아닙니까?”

남궁현이 모르겠다는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직 몸이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걸음만 디딘다고 되겠느냐? 질풍만 되다 종극에 이르지 못하고 부서지고 말 게다. 저 녀석을 봐라. 일보무념, 이보질풍, 삼보종극이란 바로 저런 거다.”

무영투가 가리킨 건 선우유성이다.

다들 보라는 듯이 정직하게 한 걸음 내디딘 선우유성이 두 번째 걸음을 내디딜 땐 바람처럼 빨라지더니 세 걸음 째엔 이 장 여를 순식간에 지나갔다.

적들이 밀집되어 있었다면 첫걸음에 적진의 틈을 간파하고 두 번째 걸음에 일검을 휘두르고, 세 번째 걸음엔 피를 뿌리는 적진을 바람처럼 돌파해 버릴 것이었다.

“하! 진짜! 진짜 별거 아닌데, 왜 난 안 되지?”

남궁현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왜 안 되긴! 몸뚱이가 둔하니까 그렇지! 남궁검가의 핏줄이 이토록 둔할 줄이야!”

무영투가 타박했다.

남궁현은 왜 안 되는지 그 생각에 빠져 있어 무영투의 타박도 안 들리는 모양이었다.

“현이는 왜 못 하는 걸까요?”

보고 있던 백리연이 화운에게 물었다.

화운은 보는 게 즐겁다는 듯 웃는 얼굴로 말해주었다.

“때로는 지나침이 모자람만 못하다고 하지요. 저 녀석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워낙 똑똑한 데다 남궁검가의 고절한 무공까지 익히고 있어 단순하기 짝이 없는 질풍섬을 익히려니 생각이 많아 방해가 되는 겁니다. 질풍섬은 단순하게 펼쳐야 하는데, 머리가 더 뛰어난 절학을 알고 있어 자꾸만 끼어드는 거지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근데 그건 유성이도 크게 다르지 않지 않나요? 선우세가가 몰락했다고 하더라도 남아 있는 무학이 결코 모자란 건 아닐 텐데요.”

“성격이 다릅니다. 유성이는 가르쳐준 대로만 하는 성격이에요. 스스로가 재능이 모자라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아마 어려서 숙부님께 무공을 배울 때도 그랬을 겁니다. 가르쳐 준 대로 그대로 따라만 했을 겁니다. 자신의 머리를 믿지 못해 다르게 해볼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숙부님의 가르침도 일방적이었을 공산이 크고요.”

“아!”

백리연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검가의 가풍은 좀 자유로운 면이 많잖아요. 무공을 가르치고 배울 때도 그 영향이 있을 겁니다.”

“그럼 현이는 질풍섬을 배울 수 없는 건가요?”

“그럴 리가요. 잠깐 혼란한 것뿐이니 적응하고 나면 자기만의 새로운 질풍섬을 익혀낼 겁니다.”

“그렇군요.”

“함께 있으면 항상 신나고 악동 같이 굴 때도 많지만, 한 꺼풀 들여다보면 참 성격이 다른 녀석들이에요. 저런 녀석들이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참 이해불가입니다.”

“유성이는 순둥이처럼 착하고, 현이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듬어 줄 줄 아니까요.”

“흠,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백리연의 말에 동감을 표한 화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리연이 쳐다보며 ‘벌써?’ 그런 표정을 지었다.

화운은 입가에 미소를 매달았다.

“비연보를 펼치는 백리 소저는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적들은 아름답다고 그냥 두지 않아요.”

백리연은 비연보를 익혔다.

물을 박차고 날아가는 제비처럼 날렵한 경신술이었다.

화운은 비연보에 공공무영비 팔단공 운해비룡의 자유로움을 덧붙여주고 있었다.

날렵하면서도 허공에서 운신이 자유로운 비연보라면 백리연의 생명을 무수히 지켜줄 수 있을 거라 기대되었다.

무영투가 합류한 신풍대는 휴식시간마다 그렇게 수련을 했다.

하남성의 대륙전장에 당도할 때까지.

화운은 천종천마교가 있는 감숙으로 가기 전에 검마를 만나고 싶었다.

이제는 마음속에 스승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아서 그런 것인지, 천마와 싸우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라 꼭 말해야 할 것만 같았다. 제자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려드리는 게 스승에 대한 도리일 테니까.

***

대륙전장.

화운과 신풍대가 도착했단 소식에 화수련이 달려 나왔다.

집에서만 곱게 자란 화수련이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 나오자 대륙전장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사람들이 저러다 넘어지면 어쩌나 하는 얼굴로 지켜봤다.

“오라버니! 언니! 이렇게 빨리 와주셨어요?”

떠날 땐 언제 올지 모른다며 기약 없이 떠났었는데, 이토록 빨리 얼굴을 보게 되자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화수련은 화운과 백리연을 보고는 세상 다 가진 사람처럼 밝게 웃었다.

“쳇! 우리는 봐주지도 않네.”

남궁현이 투덜거렸다.

그러자 화수련이 나란히 서 있는 남궁현과 선우유성을 돌아보며 배시시 웃었다.

“헤에, 오라버니들······.”

“그래, 이 오라버니들께서도 오셨다. 그동안 너 못살게 구는 놈 없었냐? 말만 해. 이 오라버니들이 너 근처엔 얼씬도 못하게 만들어 줄게.”

“없었어요. 있으면 오라버니들한테 꼭 말할 테니까 얼른 들어가요. 할아버지들께선 무슨 말씀을 나누시는지 엄청 심각하세요.”

“그래? 그럼 어여 들어가야지. 대주형님, 누님, 들어가시죠.”

남궁현이 마치 제 집인 것처럼 앞장섰다.

그러자 선우유성이 친구 따라 엄한 짓은 다한다는 듯 따라갔고, 화수련이 화운과 백리연 사이에서 두 사람의 팔짱을 꼈다.

“우리도 들어가요.”

“그래.”

“웃음이 많아져서 보기 좋다.”

백리연이 웃으며 머리를 쓸어주자 화수련이 배시시 웃었다.

그렇게 신풍대가 들어가자 마지막으로 무영투가 중얼거리며 따라갔다.

“하여간 상상불가인 놈이야. 뭐하는 놈이기에 대륙전장과도 친분이 있을까?”

대륙전장 내원.

대청에서 잠깐 기다리고 있으니 장주가 보낸 사람이 왔다.

“다른 분들과의 인사는 나중에 하시겠다며 우선 공자님만 오시랍니다. 화 공자님, 가시지요.”

“예.”

화운은 모두에게 쉬고 있으라고 한 후 장주 화경천의 거처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화경천과 검마를 만날 수 있었다.

“스승님, 제자 왔습니다. 장주님, 별일 없으셨지요?”

화운이 공손히 포권하자 검마는 고개를 끄덕였고, 화경천은 웃으며 맞았다.

“어서 오시게. 공사가 다망한 사람이 어인 일로 예까지 왔는지는 모르겠네만, 이쪽에도 일이 있으니 이리 와서 앉으시게.”

화운은 두 사람에게 다가가 빈자리에 앉았다.

“바로 본론부터 말하겠네. 그동안 자네 스승님의 자제분 내외의 일을 천하각지로 알아보았잖은가.”

“예.”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나 뭔가 찾은 것 같다네.”

화운은 기뻐하며 검마를 돌아봤다.

하지만 검마의 얼굴은 무겁기만 했다.

“자네 스승님의 손자분이 행방불명이 되었을 때 나이가 아홉 살이었다고 하네. 한데 천하 각지에서 그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납치되거나 행방이 묘연해진 일이 상당히 많았다네. 하여 사람들을 더 많이 풀어서 백방으로 알아보니 놀랍게도 삼 년 주기로 그런 일들이 갑자기 많아지곤 했다는 걸 알게 되었네. 자네 스승님의 자제분들이 변을 당할 때가 딱 그 주기에 해당되었고.”

“그럼 어떤 단체가 개입되었다는 거잖습니까.”

“바로 그렇네. 그런데 여기서 큰 문제가 있네.”

“뭡니까?”

“그 주기에 맞춰 여러 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것이 목격된 일이 있는지 알아봤더니, 한 곳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무시할 수 없는 횟수를 보였네.”

“거기가 어딥니까?”

“사천과 섬서에서 감숙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여러 차례 목격이 되었고, 그 보다 많은 횟수가 감숙성 내에서 난주로 향하는 길목에서 나타났네. 그리고 내가 아는 바로는 난주 일대에 그런 일을 벌일 만 한 곳은 단 한 곳뿐이네.”

“천종천마교!”

“바로 거기네.”

화경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화운은 놀란 눈으로 다시 검마를 돌아봤다.

검마는 말없이 앉아만 있었다.

화운은 알 수 있었다.

검마가 천종천마교로 가려 한다는 것을.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라 잠시 말문이 막혔던 화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검마를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천종천마교랑 한바탕 해야 할 운명인 모양입니다.”

그제야 검마가 화운을 돌아봤다.

화운은 검마를 보며 힘 있게 말했다.

“제자랑 함께 가시죠. 마침 그쪽으로 향하던 중에 잠시 들린 것입니다. 저랑 함께 가셔서 천마 목줄을 움켜쥐고 물어보죠. 아이들을 어찌 한 것인지.”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검마가 화운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제게 어떤 능력이 있는지 잊으셨습니까?”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

검마가 눈을 치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하마.”

“스승은 하라고 하고, 제자는 하겠다고 하는 법입니다. 둘 사이에 부탁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래, 함께 가서 놈을 비틀어 버리자.”

“스승님의 말씀 따릅니다.”

화운은 이제야 비로소 사제가 함께 하게 되어 기뻤으나 워낙 사안이 무거워 웃지는 않았다.

검마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천종천마교로 향하는 여정.

거기에 검마가 합류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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