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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으로 무림지존-122화 (122/207)

#122. 무영투

정무맹에 복귀하자마자 천사련과의 연합에 대한 보고를 했다.

남궁검가주가 책임자였기에 보고는 그가 했고 화운은 참석만 했다.

북궁설의 말대로 구룡제와 적성대도황이 천마와 싸울 생각뿐이어서 그런지 정사연합을 결성하는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천사련이 꽤 양보한 측면이 컸다.

딱히 염려가 되거나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 없었다.

그래서 정사연합에 대해서는 모두들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문제는 이후였다.

천사련이 천종천마교로 먼저 쳐들어가기를 바란다는 말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정파답게 누군가를 먼저 쳐들어간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 거부감이 들었고, 그 상대가 천종천마교라 하니 꺼려진 것이다.

“아니 될 말이네. 어찌 이로움을 버리고 적진으로 쳐들어간단 말인가. 그들이 나올 때를 기다리면 우리가 원하는 장소에서 싸울 수가 있으니, 천종천마교가 감숙에서 섬서로 나오는 길목을 미리 살펴 유리한 지형을 선점해 두어야 할 것이네.”

무당파의 우진궁주가 한 말이다.

일면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전쟁을 치르면서 그렇게 한쪽 면으로만 이득을 판단할 수 없는 일이다.

“맞는 말입니다. 다만 한 가지 우려할 게 있습니다. 그들이 언제 나올 줄 알고 기다리겠습니까?”

남궁검가주가 우진궁주의 체면을 고려하여 묻는 형식을 빌어 반박했다.

“그렇다고 우리의 이득을 버리고 적진으로 쳐들어간단 말인가?”

“사전에 조사를 한 후 적지가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장소가 되도록 적절한 계획을 세우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네. 정사연합의 대군이 움직이는 걸 천종천마교에서 모를 리도 없고,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저들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게 될 것이네. 한데 그런 그들의 철저한 준비를 깨고 우리가 원하는 계획대로 한다?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네. 설령 된다하더라도 상상도 못할 피해를 입을 것이네.”

전쟁을 치러보기 전에는 상황이 어떻게 벌어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예측으로는 우진궁주의 말에 무게가 실린다.

다들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검가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역시 더는 반박을 못하겠군요.”

“그게 무슨 말인가?”

“실은 저 역시 진인과 같은 생각입니다. 쳐들어가는 건 이로움보다 불리함이 더 크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구룡제와 적성대도황입니다.”

“그들이 쳐들어가자고 한단 말인가?”

“예. 우리가 거부하면 천사련 독단으로라도 쳐들어갈 모양입니다.”

“허!”

우진궁주뿐만 아니라 다들 놀랍고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들이었다.

“구룡제와 적성대도황께서 직접 하신 말은 아닙니다. 철봉황에게 들은 말인데, 그 두 분께서는 천마와 한바탕 싸워보는 것 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허면 천마를 불러내서 셋이서 싸우면 될 일이지, 어찌 쳐들어간단 말인가?”

“역사에 길이 남을 대전쟁을 일으키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역시 철봉황이 한 말이라 두 분의 생각이 꼭 그렇다고 단정할 순 없습니다.”

“허! 대전쟁이라니? 인명을 대체 어찌 알기에 그런 생각을 다 할 수 있단 말인가?”

우진궁주가 탄식했다.

다른 이들도 대동소이한 반응을 보이며 구룡제와 적성대도황을 지탄했다.

“아직 정식으로 나온 말은 아니니 굳이 묻고 따지고 할 필요는 없어 보이고, 단 미리 그에 대한 고민 정도는 하고 있어야 할 듯싶습니다.”

“상황이 그렇다면 미리 고민해 두어야겠지.”

남궁검가주의 말에 조극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진궁주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역시 상황이 그렇다면 조금은 더 고민해 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지가 보고드려야 할 내용입니다.”

“수고했네. 다들 고생했어.”

맹주 조극산이 사신단의 수고를 치하했다.

그렇게 남궁검가주의 보고가 끝나고 잠깐 담소가 오갈 때 맹주 조극산이 화운을 향해 웃으며 물었다.

“구룡제와 붙었다지?”

“벌써 보고가 왔습니까?”

“천사련은 늘 지켜보고 있잖느냐.”

하긴 지금까지 정무맹이 촉각을 가장 많이 곤두세우고 있는 쪽은 단연 천사련이었다.

그러니 천사련 내에서 그토록 크게 벌어진 격전이 보고가 되지 않았을 리 만무한 일이다.

“구룡제께서 태양존자와 막역한 지기였다고 합니다.”

“천사련에 피해를 준 것도 못마땅했을 터인데 지기를 죽였으니 화가 많이 났겠군.”

“예. 그랬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싸워보니 어떻더냐?”

“본신의 무공을 다 드러내게 하지도 못했는데, 그것만으로도 구룡제는 구룡제였습니다. 사파의 지존이라 불릴 만했습니다.”

“그럴 게다. 이미 오래전에 천하에 적수가 없다고 알려진 사람이었으니, 허나 내가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니다. 사황과 비교하면 어떻더냐? 그가 막을 수 있겠더냐?”

천마의 무위는 아는 자가 없다.

사황이야 그가 제천마존의 비동 인근까지 찾아왔기에 화운이 만나볼 수 있었지만, 천마는 그런 적이 없다. 맹주가 아는 바로는 화운이 천종천마교로 간 적도 없다. 그래서 맹주는 천마에 대해 묻지 않았다.

화운이 사황을 겪어보았으니 천마의 무위를 간접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기준으로 삼고자 물은 것이다.

조극산이 물었으나 다들 궁금한 모양인지 조용히 화운의 대답만 기다렸다.

화운은 조극산을 쳐다보며 조금 단호한 투로 말했다.

“제 판단이 틀리길 바랍니다만, 구룡제는 사황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화운의 말이 끝난 순간 몇 사람이 무겁게 침음하며 모두의 속내를 대변해주었다.

“일말의 가능성도 없는 것이냐? 우리 모두가 가세한다고 해도 사황을 감당 못할까?”

“승부는 부딪쳐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니 어찌 단언하겠습니까만, 제가 겪어본 느낌으로는 소림의 육조 혜능선사께서 다시 돌아오신다면 모를까, 그를 막을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장내의 분위기가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화운은 그 모습들을 바라보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으니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사황과 천마 역시 서로가 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그들끼리도 적이지. 네 말대로 그나마 위안이 되는구나.”

조극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얼굴이 완전히 펴지지는 않았다.

이때 화산 장로 이심환이 우진궁주를 보며 물었다.

“무당에서는 아직 소식이 없는 게요?”

“백방으로 알아보겠다고 했으니 좀 기다려 봐야지요. 허나 큰 기대는 하지 않으셔야 할 겝니다. 당신께서 스스로 돌아오지 않으시면 입적한 것으로 여기고 찾지 말라고 하셨답니다.”

“사황과 천마가 나타났으니 백 년 전에 그들을 막았던 검성께서도 함께 돌아오실 수도 있지 않겠소이까.”

이때 화운은 이들이 무당검성을 찾고 있음을 알았으나 그의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어떻게 검성을 만났는지부터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무량수불.”

우진궁주는 나직이 도호만 중얼거렸다.

그도 무당검성이 정정한 모습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사황과 천마를 막아내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지만, 무당에 남긴 전언을 보면 그건 분명 유언이었다.

“일은 사람이 해도 결과는 하늘이 정한다고 하였으니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보면 될 것입니다. 그보다 천종천마교도 세세히 살펴보고, 혹여 천마의 동태를 알 수 있을지 확인도 할 겸 신풍대주를 보냈으면 하는데,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남궁검가주가 조극산을 향해 물었다.

그에 조극산은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얼굴로 말했다.

“살펴보고 싶으면 가면 되지. 지난번에 다들 의견 일치를 보았지 않은가. 신풍대주에게 자유를 주자고. 무공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건 아니네만, 맹의 대소사에 얽매여 있는 것보다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궁리하고 부딪치고 그러는 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니 말이네.”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조극산은 다시 화운을 보며 말했다.

“너에게 자유를 주고자 함은 널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를 위함이기도 하고, 나아가 천하를 위해서이기도 하니 부담 갖지 말고 행하고 싶은 대로 행하거라.”

“감사합니다.”

화운이 넙죽 허리를 조아렸다.

천하에 다시없을 무위를 지니고도 갈수록 겸손하고 본분을 잊지 않고 있으니 맹의 원로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그래, 맞아! 우리에겐 이 녀석이 있잖아! 시간이 필요하다면 이 노구가 몸을 던져서라도 시간을 벌어줄 테니 넌 가고 싶은 길만 계속 가거라!”

아미의 멸절신니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쳐 말했다.

“신니의 옆자리엔 빈승이 서겠습니다. 아미타불.”

“늙은 중은 싫은데?”

“허면 이 후배가 서지요, 뭐.”

점창의 일양신수가 나서자 멸절신니가 낄낄 웃었다.

“오냐, 이 노구 옆엔 일양이 니 자리다.”

“감사합니다. 신니.”

그저 분위기를 일신할 말장난에 불과했으나 모두들 따스한 얼굴로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말장난 같은 말이었으나 진심이 담겨 있었다.

화운에게 시간이 필요하고 천마든 사황이든 막아야 한다면 모두들 몸을 던져서라도 막을 생각인 것이다.

그것이 천하를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소임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이기에 작은 일로 싸우지만, 또한 사람이기에 큰일을 두고 합심할 수 있는 거야. 그게 사람이니까.’

화운은 정무맹의 어른들을 보며 얼굴 가득 웃음을 지었다.

***

무영투는 천병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중턱에 앉아 낙조로 붉어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산속에서 한 몇 년은 헤맨 사람 같았다. 입고 있는 옷이 온통 헤지고 찢어진 데다 여기저기 흙과 풀물이 들어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교활해 보이기까지 하던 눈빛은 생기를 잃었고, 작달막한 키였어도 어디로든 튈 것처럼 힘이 넘쳤었는데, 지금은 앉아 있는 모습조차 잔뜩 처져 있어 세상 다 산 사람 같았다.

그런 무영투를 발견한 화운은 몹시 미안했다.

‘내가 몹쓸 짓을 했군!’

무영투가 어찌 하여 이런 몰골이 되었는지 단박에 알았다.

못 오를 나무를 오르려다 떨어지고, 떨어지고, 또 떨어진 것이리라.

수백 번, 수천 번을 떨어지고서야 자신은 결코 오를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진 것이리라.

무풍무영!

공공무영비의 궁극.

금강부동신과 같은 무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공간을 넘나드는 절학이다.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었어.’

신공절학이라고 하여 모두에게 축복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익히는 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가는 자에겐 선물이고, 희망이고, 축복이 되겠지만, 아무리 해도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면 고난이고, 절망이고, 재앙일 것이다.

“와우! 영감님 정말 열심히 하셨나 봅니다!”

화운은 일부러 밝게 말했다.

화운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리자 무영투는 움찔했다.

하지만 그뿐이다.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의 좌절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아무리 해도 쉽지 않지요?”

“그래.”

무영투가 대답했다.

여전히 눈길조차 주지 않았으나 화운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았다.

적어도 남에게 책임이나 전가하는 성격은 아닌 모양이다.

화운은 무영투에게 다가갔다.

“혼자서 익힐 수 있으면 그게 신공절학이겠습니까. 삼류무공이지.”

맞는 말이지만 이 정도로는 주저앉은 무영투의 마음을 일으켜주지는 못했다.

무영투 가까이서 멈춰 선 화운은 옆에 나란히 앉아 낙조를 바라봤다.

“아시지요, 저렇게 붉은 낙조도 시간이 되면 사라진다는 거요.”

“······.”

“무공도 준비가 되고 때가 되어야만 다음을 허락하잖습니까. 커다란 벽 앞에 선 것처럼 답답하고 암담해도 오르겠다는 생각을 접지만 않으면 언젠간 발을 디딜 부분이 보이고, 손으로 잡을 틈이 보이곤 하지요.”

“······.”

“때가 된 것 같은데도 보이지 않고 정말 모르겠으면 어쩌겠습니까, 스승님께 여쭤봐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무영투가 돌아봤다.

귀찮아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화운은 빙그레 웃어주었다.

“영감님 스승님께 여쭤보러 가자는 말입니다.”

“······!”

“무영자 어르신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무영투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잔뜩 놀란 얼굴로 화운을 쳐다봤다.

“무영자 어르신은 천종천마교에 갇혀 계십니다. 그러니 영감님이 가셔서 구해드려야지요.”

화운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온 얼굴에 의심의 빛을 잔뜩 떠올린 무영투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쳤다.

“너······ 너 대체 누구냐!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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