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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으로 무림지존-114화 (114/207)

#114. 천종천마교라는 공통의 적

북궁설은 맹주 조극산과 한 내기에서 졌다.

화운이 무룡대를 무사히 구해왔기 때문이다.

조극산은 내기의 조건으로 북궁설에게 열흘간 정무맹에 머물면서 또래들과 교류할 것을 내걸었다.

정무맹의 후기지수들이 북궁설을 보고는 무인으로써 자극을 받기를 바란 것이다.

그래서 내기에서 진 북궁설은 꼼짝없이 열흘간 정무맹에 머물러야 했고, 좋든 싫든 신풍대와 무룡대 등과 어울려야 했다.

그런 이유로 이곳의 상황을 보고도 할 겸 심복 적충과 함께 왔던 수하들은 전부 천사련으로 돌려보낸 상태였다.

“내가 비무에 대해서 고마웠다는 말을 안 했지? 고마웠다. 언제 한 번 더 하자.”

빙그레 웃으며 말하는 북궁설.

화운은 살짝 곤혹스럽다는 얼굴로 바라보기만 했다.

“나 신경 쓰지 말고 놀아봐.”

북궁설은 얼른 무룡대원들 옆에 가서 섰다.

너희들이랑 어울려야 하니 쫓아도 안 갈 거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화운은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하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적엽명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희들은 너희들 사문이 오랜 세월 동안 누적해온 무학을 체계적으로 배웠을 거야. 그런 부분들은 너희들이 나보다 더 뛰어날 거다.”

“잠깐만!”

북궁설이 큰 소리로 화운의 말을 잘랐다.

“지금 무공을 가르쳐주려는 거야?”

“예.”

“그럼 이렇게는 아니지. 배우는 자세라는 게 있잖아. 자, 다들 앉자.”

북궁설이 그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한 무룡대원의 손을 잡아 강제로 옆에 앉혔다.

“이, 이거 놓으시오.”

무당파의 제자가 얼굴이 벌게져서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북궁설이 워낙 강하게 잡고 있어 그럴 수가 없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 그럼 놓을 게.”

“어서 놓으시오.”

무당파 제자가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였다.

무당명검이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러자 다른 무당파의 제자들이 그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북궁설이 손을 놓아주자 옆에 있던 무당파 제자는 벌건 얼굴로 딴 곳만 쳐다봤다.

이때 적엽명이 무당명검을 돌아봤다.

무당명검은 눈길도 주지 않고 화운만 쳐다보고 있었다.

적엽명은 잠시 망설이다 그 자리에 앉았다.

적엽명이 앉자 화산파 제자들이 그를 따라서 자리에 앉았고, 이어서 복호검후와 아미제자들을 비롯한 나머지 칠대문파 제자들이 줄지어 자리에 앉았다.

“다들······ 진짜 이럴 거야! 그렇게 고개를 숙이겠다는 거냐!”

우문산이 소리쳤다.

아직 서 있는 사람들은 우문산을 비롯한 소수의 몇몇뿐이었다.

“야!”

우문산이 소리치자 북궁설이 더 큰 소리로 그를 향해 외쳤다.

“시끄러우니까 주둥이 닥치든지 꺼지든지 해!”

“이······!”

“이, 뭐?”

북궁설은 정파인이 아니다.

인상 한번 쓰자마자 폭풍 같은 살기가 휘몰아쳤다.

그 기세가 어찌나 살벌한지 우문산은 가슴이 덜컥 주저앉았다.

적엽명과 무당명검 등은 이제야 철봉황 북궁설의 대단함을 실감하고 내심 놀람을 금치 못했다.

“분위기가 말이 아니군.”

화운이 나직이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으나 일부러 내력을 실었기에 모두의 고막을 묵직하게 울렸다.

“미안하다. 도와주려고 그런 건데. 이제 다들 조용할 거니까 계속해 봐.”

북궁설이 싱긋 웃었다.

화운은 피식 웃으며 무룡대 전부를 한차례 쓸어보며 말했다.

“내가 너희들을 불러 모은 이유는 나중에 알려주려고 했는데, 분위기 때문에라도 지금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여기에 있는 철봉황이랑 천사련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끝이 아니라는 말에 모두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천종천마교.”

마교 혹은 천마교.

그 위험한 이름이 튀어나오자 모두들 얼굴이 경직되었다.

심지어 북궁설 마저 굳은 표정을 지었다.

사황과 천마 그리고 금강부동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극비사항이었다.

하지만 천종천마교에 관한 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천종천마교는 늘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무맹의 주요 인사들이 맹주전에 틀어박혀 있는 상황은 맹 내에서 뿐만 아니라 천사련의 중요 관심사일 것이 분명했다.

“지금 맹주님을 비롯한 어른들께선 천종천마교의 발호가 임박했다는 정보 때문에 그들을 막을 방책을 세우느라 며칠 째 머리를 맞대고 계신다.”

맹의 주요 인사들이 맹주전에 모여 있는 이유가 설명이 되자 모두들 한차례 술렁거렸다.

이때 북궁설은 화운만 빤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천마가, 새로운 천마가 나온 것이냐? 아니면······.”

“천종천마교는 천마 없이 천하로 나올 수 없습니다. 새로운 천마인지 과거의 천마인지는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압니다.”

“······!”

과거의 천마라는 말이 나오자 주위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으나 그건 곧 과거의 천마일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북궁설은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화운의 말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하다 퍼뜩 떠오른 바가 있었다.

“장강에서도 그렇고, 얘들 구해올 때도 그렇고 완전히 손을 쓰지 않은 이유가 천종천마교 때문이었냐?”

“우린 서로가 적이지만 천종천마교라는 공통의 적도 있으니까요.”

화운은 사실대로 대답했지만 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사황이라는 적도 있지요.’

사황에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천마와 천종천마교만으로도 북궁설과 무룡대를 놀라게 하기엔 넘치도록 충분했다.

그렇게 충격과 경악이 주위 공기를 한껏 짓누른 광경을 잠시 지켜본 화운은 모두의 이목을 자신에게로 집중시켰다.

“자! 새로운 천마든 과거의 천마든 그자는 맹의 어른들이 감당할 일이고, 우린 여기 철봉황과 천사련 그리고 천종천마교의 마인들을 상대할 수 있도록 강해져야 해.”

“공동의 적이 있다면서 자꾸만 날 들먹이는 건 또 뭐냐?”

“공동의 적이 있으니까 전장에서 만나면 봐줄 겁니까?”

“절대 아니지. 살고 싶으면 니들이 도망가야지.”

“자, 다들 들었지. 지금 이 자리에 함께 있다고 봐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마. 전장에서 만나면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죽이도록 해. 아니면 니들이 당할 거니까.”

전쟁의 잔인한 일면을 보는 것 같아 모두들 표정이 무거웠다.

하지만 그 이야기 덕분에 잠깐이나마 천마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아까도 말했다시피 내가 이론적으로 너희들한테 도움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내 무공을 펼쳐 보여줄 수는 있다. 거기서 너희들이 뭘 느끼고 얼마나 배워갈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기대하기를 천사련과 천종천마교를 상대할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할 뿐이다.”

화운의 말이 끝났다.

더 이상 화운이 자신들을 불러낸 것에 불만을 가지는 이는 없었다.

우문산을 비롯하여 대놓고 불만을 내비쳤던 이들은 한쪽에서 머쓱한 태도로 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화운은 그들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적엽명 등을 둘러본 후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면서 검을 뽑았다.

고수가 자신의 검학을 펼쳐 보인다는 건 하수에게는 작은 기연이나 마찬가지다.

하물며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부분을 간파할 수 있는 수준의 무인들에게 자신의 무학을 펼쳐 보인다는 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놀라운 행동이었다.

그래서 다들 불평도 불만도 모두 날려 버리고 죽은 듯이 조용히 지켜봤다.

검을 뽑아든 화운은 경건한 자세로 말했다.

“난 검마 스승님께 사혼구검을 배웠다. 지금 펼쳐 보일 것은 삼 초식 사혼격이다.”

일 초식 사혼섬은 발검과 함께 사용하기도 하는 쾌검이고, 이 초식 사혼참은 사혼섬에 놀란 상대를 일격에 참해버리는 조금 단조로운 검초다.

삼 초식 사혼격이야 말로 변초와 진초가 빠르고 강맹하게 펼쳐지는 사혼구검의 진짜 시작이랄 수 있다.

화운은 사혼격을 차분히 펼쳐보였다.

일초 십이 식의 검초가 끝나도 누구 하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혼격을 끝낸 화운은 적엽명에게 시선을 주었다.

“화산의 검은 날카롭다.”

그렇게 말한 화운이 다시 검을 움직였다.

분명 사혼격을 펼쳤다.

검이 그리는 궤적이, 진초와 변초가 빠르게 뒤섞이는 것이 분명 좀 전에 보았던 그대로다.

다만 좀 전 보다 훨씬 더 빠르고 날카롭게 움직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 광경에 적엽명이 두 눈을 있는 대로 치뜨며 벌떡 일어났다.

“그건 매화검이야!”

화운은 검을 멈추었다.

그리고 일어서 있는 적엽명을 향해 말했다.

“난 사혼구검을 펼쳤을 뿐이다. 다시 보도록 해.”

화운은 다시 처음처럼 사혼격을 차분히 펼쳤다.

그리고 다 끝나자 좀 전처럼 빠르고 날카로운 사혼격을 펼쳐보였다.

“달라. 완전히 달라. 그런데 매화검······ 같아.”

분명 매화검과는 완전히 다른 사혼격이었다.

그런데 검의 궤적이 정점을 찍고 벨 때마다 순간적으로 날카롭게 번뜩이는 것이 매화검과 너무나 많이 닮았다.

너무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적엽명을 두고 화운은 무당명검에게 눈길을 돌렸다.

“무당의 검은 부드럽다.”

화운의 말에 무당명검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긴장과 기대가 떠올랐다.

화운은 천천히 사혼격을 펼치기 시작했다.

두 번의 검초와는 달리 사혼격의 일초 십이 식이 유려하면서도 끊이지 않는 검적들을 그려냈다.

“태, 태극검이다!”

소리친 자는 무당명검이 아니라 그의 사제들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내심 놀라기는 무당명검 역시 마찬가지였다.

화운이 보여주고 있는 검초는 무당의 태극검과 정말 비슷했다.

태극검의 기본 요체는 상대로 하여금 스스로 물러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궤적을 그리면서 일정공간에 검적을 가득 채워놓아 상대로 하여금 도저히 파고들 틈이 없도록 느끼게 만든다.

지금 화운이 보여주고 있는 검처럼 말이다.

화운은 사혼격을 반복해서 펼쳤을 뿐인데 무당파 제자들의 눈에는 면면부절인 태극검처럼 보였다.

무당파 제자들이 눈을 한껏 치뜨는 사이에 화운은 다시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이후 아미와 점창 그리고 청성의 제자들도 경악하게 만들었다.

모두들 이해를 하지 못했다.

어떻게 자파의 검공을 그토록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는 것인지.

하지만 화운 정도 되는 고수라면 몇 번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흉내 정도는 낼 수 있었다.

이전의 삶일 때 무룡대가 싸우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지켜봤던 화운이다.

기존에 알고 있던 각파 무공의 특성을 생각하면서 살펴보니 각 검법의 초식과 특성 정도는 흉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화운이 각파의 검공을 비슷하게 펼쳐 보인 이유다.

생각이 있는 자들은 벌써 그 같은 이유에 빠져들어 혼자만의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 숫자는 일부에 불과했는데 그들의 모습에 뭔가를 느낀 자들이 하나둘 따라서 심사숙고하다 보니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화운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딱히 이들을 가르친다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보여주고 싶었다.

무초식이라는 게 뭔지.

북궁설과 비무를 할 때 그녀가 보여준 무초식의 경지를 보니 무룡대에게 보여준다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물론 뭔가를 깨닫는 자에게 한해서겠지만.

화운은 신풍대를 돌아봤다.

세 사람 역시 각자의 상념 속에 빠져 있었다.

남궁현은 한쪽으로 가더니 검을 뽑아 휘둘렀다.

반 각 정도 지나자 선우유성과 백리연도 한쪽으로 가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무룡대 쪽에서도 그런 자들이 생겨났다.

가장 먼저 무당명검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민에 깊이 빠진 사람처럼 한쪽으로 가더니 검을 뽑아 무당파의 검법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한데 처음에 유려하게 휘두르던 검공이 점차 매서워지고 사나워졌다.

화운이 의도한 바가 바로 저것이었다.

저 모습이 무초식의 경지는 아니다. 그러나 각파의 특성에만 갇혀 있던 검공이 그 틀을 벗어나는 것이니 전장에서는 상당한 힘을 발휘할 것이 틀림없었다.

유려한 검공을 펼치던 자가 갑자기 빠르고 날카로운 검공으로 돌변하여 펼친다면 상대는 무척 곤혹스러울 것이니까.

“너 때문에 큰일 났다.”

북궁설이 다가와 너스레를 떨었다.

“뭐가요?”

“정파의 애송이들만큼 상대하기 쉬운 이들도 없었거든, 근데 너 때문에 그렇지 못하게 될 것 같잖아.”

북궁설은 화운의 의도를 간파했다.

그래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신의 무공도 굉장했고, 주위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했다.

자기 혼자만 강한 게 아니라 주위를 함께 강하게 만들고 있으니 적대적인 입장에서는 무척 요주의 인물인 셈이었다.

“아무래도 널 암살해야겠다.”

북궁설이 화운을 살짝 흘겨보는 척하며 말했다.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은데, 제가 잘못 본 겁니까?”

“맞아. 살수들을 정말 싫어해. 근데 넌 그렇게라도 해치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가까이 오지도 못할 텐데요.”

“여기서야 그렇지.”

“······!”

“천사련으로 가자.”

“······?”

“천마와 천종천마교라는 공동의 적이 천하로 나올 거라며?”

“그래서요?”

“암살 어쩌고는 농담이고, 천마와 천종천마교에 대한 네 말이 사실이라면 사정대전의 양상이 달라져야 할 것 같다.”

말하면서 진지한 표정을 짓는 북궁설.

화운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면서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간을 돌리기 전의 삶일 때는 천종천마교를 경계하도록 천사련에 천마와 천종천마교에 대한 정보를 일부러 흘렸었는데, 지금 드는 생각은 그보다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공동으로 대처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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