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창피를 당할 각오가 있다면야
화운은 무룡대를 멀찍이서 지켜봤다.
백리명의 말대로 자신이 사라져주자 하나둘 고개를 들더니 삼삼오오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무룡대가 정신을 차리든 힘을 내든 크게 관심이 없었던 화운은 그들이 맹으로부터 하루 떨어진 곳까지 이동하자 뒤에서 지켜주던 것을 그만 두고 맹으로 복귀했다.
정식으로 맡은 임무가 아니기에 굳이 보고를 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무룡대가 복귀하면 그곳에서 있었던 상황이 보고될 것이다.
화운은 곧장 신풍대 숙소로 향했다.
천사련과의 싸움에 당장 급한 일은 없었다.
되레 급한 건 자신이었다.
모든 것을 베어버릴 검력을 수련하고 싶었다.
사황을 염탐하러 가지 못했으니 그것을 핑계 삼아 신풍대를 데리고 맹 밖으로 나갈 생각이었다. 한적한 곳으로 가서 함께 수련할 생각인 것이다.
그런데 신풍대 숙소에 도착해보니 낯선 자들이 보였다.
일남일녀.
검은 무복의 중년사내와 붉은 혈전포를 걸친 빼어난 미모의 여인이었다.
“형!”
“대주님!”
선우유성과 남궁현이 반겨주었다.
“무슨 일 있어? 못 보던 분들이 계시네.”
“어, 그게······.”
선우유성이 설명하려는 순간 혈전포의 여인이 다가오며 불쑥 소리쳤다.
“드디어 신풍대주를 보는 건가?”
“신풍대주 화운입니다. 뉘신지요?”
“철봉황.”
“······!”
화운이 살짝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철봉황 북궁설, 맞습니까?”
“건방지다! 감히 주군의 함자를 함부로 입에 올리다니!”
적충이 사납게 외쳤다.
화운은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남궁현에게 말했다.
“현아. 아랫것은 니가 담당해라.”
“옛! 대주님!”
남궁현이 깍듯이 복명하더니 적충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윗분들의 일에 끼어들지 마십시오.”
“뭐?”
적충이 인상을 험악하게 쓴 순간.
북궁설이 말했다.
“북궁설 맞아. 니가 흠씬 두들겨 팬 무결이 누나지.”
북궁설이 대답했다는 건 적충에게 나서지 말라는 명이기도 했다.
적충은 솟구쳤던 화기를 단숨에 억눌렀다.
“구룡태자, 그놈은 맞을 짓을 했습니다.”
화운은 담담한 신색을 회복하며 다가갔다.
그러면서 슬쩍 둘러보니 이들의 존재 자체가 이상할 뿐 그 외에는 별 일이 없었던 것 같다.
“본맹에 일이 있어서 오신 것 같은데, 이곳엔 저 때문에 일부러 오신 겁니까?”
“맞아.”
맞을 뿐만 아니라 신풍대주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여 삼 일째 신풍대를 찾아왔다.
북궁설은 화운을 분석하듯 예리한 눈빛으로 훑어봤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평범해 보였다.
‘진짜 신풍대주 맞아? 얘가 태양존자를 죽였다고?’
다른 곳, 다른 상황이었다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틀 전에 신풍대원들의 놀라운 진면목을 직접 보았고, 또 생각해보면 정파의 무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힘을 드러내지 않고 과시하지 않는 것을 미덕처럼 여긴다.
‘더 살펴보면 알게 되겠지. 대체 뭐가 그토록 대단한 건지.’
북궁설의 눈빛이 더욱 예리해질 때였다.
“그럼, 들어볼까요? 절 보려는 이유가 뭔지.”
화운이 담담히 물었다.
그러자 북궁설이 반사적으로 빠르게 말했다.
“궁금한 게 많아. 우선 무룡대를 어떻게 구했지? 낭왕이랑 천하십이흉들이 만만치는 않았을 텐데.”
“그들은 만만했습니다. 다음은 뭡니까?”
“······!”
북궁설은 일순 할 말이 없어져 멍청히 쳐다봤다.
그러다 곧 다시 물었다.
“그들이 인질극을 벌이지 않았어?”
“벌였습니다.”
“그런데도 만만했다고?”
“만만했습니다.”
“쉬웠다고?”
“쉬웠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쉬울 수가 있지?”
화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익힌 무공의 특성을 알려달라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라 알려줄 이유가 없었다.
“난 알아야겠어. 알고 싶다.”
북궁설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화운은 ‘그거야 당신 사정이지.’라는 태도를 유지했다.
그러자 북궁설이 더 강한 어조로 말했다.
“맹주님이 그토록 널 신뢰하는 이유, 네가 무룡대를 무사히 구할 수 있는 이유, 대체 네가 얼마나 강한 것인지······.”
말을 멈추고 강한 눈길로 쳐다보던 북궁설이 뭔가를 결정한 표정을 짓더니 마지막 말을 꺼내놓았다.
“너랑 싸워봐야겠어. 싸워서 직접 알아봐야겠다.”
화운은 기가 막혔다.
자신이 궁금하니 싸우자니!
상황이 황당했고, 우습고,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북궁설을 응시하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쁠 게 없었다.
낭왕에게 시도해보았던 모든 것을 베어버릴 검력.
철봉황과 싸우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연습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낭왕 보다는 철봉황이 훨씬 더 강해보이니까.
어쩌면 혈선보다 더 강할 것도 같다.
게다가 맹에는 자신보다 무학에 대한 이해가 훨씬 깊은 고수들이 즐비했다.
그들에게 보여주고 가르침을 청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창피를 당할 각오가 있다면야.”
화운이 말했다.
그러자 북궁설이 바로 말했다.
“패배는 창피한 게 아니야. 그리고 왜 내가 패배할 거라고 생각하지?”
“그러게요. 왜 그런 생각이 들까요?”
화운은 그냥 웃어주었다.
***
정무맹 맹주부.
화운은 북궁설과의 비무를 알리기 위해 맹주를 찾아갔다.
그 자리에서 우선 무룡대의 무사함을 알려주었고 그에 대해 이심환 등에게 수고했다는 말과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이어서 북궁설과의 비무 이야기를 꺼내놓자 맹주 조극산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철봉황과 비무를 하겠다고?”
“예.”
“굳이 왜? 걔가 그리 강해보이더냐?”
“아닙니다.”
“하면 왜?”
“이곳에 계신 분들께 가르침을 청하고 싶어서입니다.”
조극산은 얼른 이해하지 못해 말문이 막혔다.
이때 옆에 있던 이심환이 물었다.
“새로운 것을 시험하고자 하는 것이냐?”
“예.”
“알아들었다. 시간을 낼 수 있는 분들과 함께 나가보마.”
이심환의 말인즉슨 자신도 나가겠다는 뜻이다.
화운은 잠깐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으나 이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우리가 해야지. 늘 수고해줘서 고맙다.”
“제가 얻는 바가 큽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화운은 자꾸 인자하게 말하는 이심환이 부담스러웠다.
하여 얼른 일어나 나갈 것을 청했다.
“따로 말씀이 없으시면 이만 나가서 준비할까 합니다.”
“오냐. 가 보거라.”
“그럼, 반 시진 후에 뵙겠습니다.”
“그래, 그러자.”
화운은 이심환과 조극산에게 꾸뻑 인사하고는 물러갔다.
화운이 사라지자 조극산이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새로운 게 뭘까요?”
“뭐가 그리 급하십니까? 반 시진 후면 직접 볼 수 있을 텐데요.”
“기대가 되니까 그렇지요.”
“하긴 나 역시 궁금하긴 합니다, 그려.”
이심환은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조극산이 면박을 줬다.
“아니 계속 냉랭하게 대하겠다고 해놓고 뭡니까 그게.”
“생각해 보니 말입니다. 저 아이가 맹주님과만 친하게 지내는 게 왠지 질투가 나지 뭡니까.”
“예?”
“예로부터 선현들께서 말씀하시길, 좋은 건 나누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험험.”
헛기침을 하는 이심환의 말에 조극산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 말씀하시니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려.”
***
반 시진 후.
정무맹 대연무장.
정무맹에서는 맹주부에서 가까운 곳에 맹의 무사들을 전부 모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두고 있었다.
화운이 그곳에 당도했을 땐 이미 수백의 정무맹 문도들이 모여 있었고, 연무장 중앙엔 북궁설이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안 오는 줄 알았다.”
“그쪽이 빨리 온 겁니다.”
“따지자는 거 아니니까 됐고, 얼른 시작하자.”
“궁금하다는 건 알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남의 집에 왔으면 그 집의 법도를 좀 따르십시오.”
“법도? 무슨 법도?”
북궁설이 애가 탄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화운은 한쪽으로 돌아섰다.
맹주와 이심환을 비롯한 맹주부에 있던 이들 중 일곱 명이 막 당도하고 있었다.
화운은 그들이 자리를 잡고 서자 그쪽을 향해 공손히 예를 올렸다.
“확실히 정파는 너무 번거로워.”
북궁설 역시 구시렁대면서도 강호무림의 대선배들께 예를 갖추었다.
“이제 됐지?”
“됐습니다.”
화운이 대답한 순간 북궁설이 검을 뽑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눈앞에 있던 화운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는 것 같더니 순식간에 십여 장을 이동해 버렸다.
이때 북궁설이 놀란 건 그렇게 빨리 물러났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극히 찰나의 순간 화운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 녀석 뭐냐? 내가 잘못 본 건 아닐 텐데.’
놀란 건 비단 북궁설만이 아니다.
멀찍이서 지켜보던 맹의 무인들 대부분이 깜짝 놀라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과연 금강부동을 어느 정도 익히고 있는 것 같구려.”
이심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저게 다는 아닐 겁니다.”
“그럴까요?”
이심환 등이 궁금해 하는 동안 화운이 검을 뽑았다.
그리고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 모습에 북궁설 역시 놀랐던 것을 떨쳐내고는 검을 움켜쥐었다.
원래 성질 급한 그녀인데다 화운의 실력을 어서 빨리 보고 싶은 터라 탐색전 따위는 있을 수가 없었다.
쑤-악!
북궁설이 돌진하자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도 비무라는 것쯤은 인지하고 있다는 듯 돌진하면서 고함을 터트렸다.
“간다-!”
북궁설이 익힌 건 북제 북궁도의 성명절학인 북두제왕검이다.
거기에 내력은 화륜심결을 익혔다.
북두제왕검과 한 짝인 제왕심결이 여인에게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외로 화륜심결이 북두제왕검이랑 잘 맞아 북궁설 만의 검격을 과시했다.
화운의 코앞까지 돌진한 북궁설이 검을 휘둘렀다.
화악!
검신을 따라 지독한 열기가 이글거렸다.
마치 철을 제련하기 위한 용광로 속에서 막 꺼낸 것 같았다.
하지만 상대는 태양존자 조차 적수가 되지 못한 화운이다.
정무맹 사람들, 특히 화운의 대단함을 두 눈으로 보았던 신풍대는 화운이 일격에 날려버릴 것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다.
그 기대와 신뢰를 듬뿍 받으며 화운이 검을 휘둘렀다.
번쩍!
섬광의 검격이 북궁설의 검격을 향해 일섬을 발휘했다.
쩌-엉!
쇳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화운이 휘청 물러났다.
벼락같이 따라붙는 북궁설의 검격.
강력하면서도 빨랐다. 검신에 이글거리는 지독한 열기도 상대를 곤혹스럽게 만들 것이 분명했다.
화운이 연거푸 검을 휘둘렀다.
쩡! 쩌쩌쩡!
북두제왕검은 일곱 초식의 검초로 구성되었다.
북궁설은 일초식 북두개벽에서 이초식 북두절멸로 이어지는 일곱 검초를 잇달아 쏟아냈다.
화운의 검 역시 정신없이 움직였다.
쩡! 쩡! 쩡쩡쩡쩡쩡!
두 검격이 격돌할 때마다 화운이 계속 밀렸다.
힘에서 검격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였고, 빠르고 강력한 북궁설의 검격에 목이 잘리고, 가슴이 갈라질 것처럼 위태로운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 때문에 잔뜩 기대하고 몰려왔던 정무맹의 일반 무인들은 경악과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맹의 수뇌부의 반응은 달랐다.
“저 녀석, 내력을 발휘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좀 더 두고 봅시다. 우리한테 보여주고 싶다고 했으니 필시 그럴 만 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요.”
조극산과 이심환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두 사람의 검격이 치열하게 부딪쳤다.
그리고 잠시 후 북궁설이 북두제왕검의 칠초 북두무한경을 펼치자 ‘쾅!’ 하는 굉음과 함께 화운이 뒤로 튕기듯 수 장을 밀려났다.
간신히 휘청거리는 몸의 중심을 잡는 화운.
북궁설이 사납게 소리쳐 물었다.
“무슨 수작이냐?”
그녀는 화운이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서 화도 났고 놀랍기도 했다.
자신이 전력을 다한 북두제왕검을 그저 검만 휘둘러 막아냈으니까.
“흠, 이제 감을 잡았으니까 조금 달라질 겁니다.”
화운이 대꾸했다.
검마는 연혼팔검은 감각의 검이라고 했다.
본능적으로 죽음을 찾아낸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과 가까워야 한다. 의식이 인식하기도 전에 검끝이 죽음을 찾아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극한일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검이라고 했다.
화운은 북궁설을 상대하면서 잠깐의 죽을 고비를 겪은 것만으로도 연혼팔검의 요체에 대해 감을 잡아냈다.
이토록 빨리 감을 잡을 것이라고는 화운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화운의 경지가 워낙 높았던 데다 모산파에서 초혼술을 겪으면서 인간이 감지할 수 없는 영적인 기운에도 민감해진 덕분이었다.
- 본능, 감각 그것이 연혼팔검의 시작이나 그 검예의 궁극은 인지의 감각을 초월하는 것이다.
검마가 가르쳐준 말이다.
‘그래, 맞아. 스승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본능이 그 시작이야!’
북궁설의 검력이 금방이라도 목숨을 앗아갈 것 같은 위기의 순간마다 몸 안에서 반사적으로 꿈틀거리는 기운을 감지했다.
화운은 그것이 선천지기이면서도 일반적으로 말하는 선천지기와는 다른 기운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산 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영적인 기운! 살고자 하는 본능으로 그걸 일깨워야 하는 것 같아!’
화운이 그렇게 정리하고 있을 때 북궁설이 성난 표정을 지었다.
“날 상대로 수련이나 하겠다는 것이냐!”
“비무의 목적이 원래 서로 견주고 수련하는 거 아닙니까?”
맞는 말이다.
북궁설은 할 말이 없어졌으나 화까지 가라앉은 건 아니다.
“닥쳐!”
북궁설이 소리치며 다시 달려들었다.
화운이 검을 높이 쳐들었다가 벼락같이 그었다.
번쩍!
일섬의 섬광이 터지며 일직선으로 뻗어나갔다.
화운의 의지가 담긴 섬광의 검력이 북두개벽의 검초를 강타했다.
쩌엉!
이전과 마찬가지로 강기의 충돌이 아니었다.
그런데 화운의 말대로 달랐다.
북두개벽의 검초가 찰나 간 멈추었다.
놀란 북궁설이 부리나케 이초 북두멸절을 펼쳤다.
화운은 담담한 태도로 검을 휘둘렀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베기였다.
쩌엉!
쇳소리가 터지며 북두멸절의 검초마저 찰나 간 멈춰졌다.
그걸 명확히 인지한 북궁설은 다급히 삼초식 북두명강을 펼치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앞가슴이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깜짝 놀라 멈춰보니 앞자락이 길게 베어져 있었다.
“······!”
북궁설은 크게 놀랐다.
젖가슴의 일부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 따위에 놀란 게 아니었다.
화운의 검력은 분명 북두멸절과 부딪쳤다.
그런데 앞가슴을 베어놓은 검력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 짧은 순간에 이격을 펼쳤단 말인가?
‘아냐! 그건 절대 아냐! 이격이 있었다면 내가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어!’
북궁설이 당황하고 있을 때 화운이 손짓하여 백리연을 불렀다.
백리연이 재빨리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요?”
“백리소저의 흉갑이 필요합니다.”
화운의 말에 백리연은 북궁설의 젖가슴이 드러나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신풍대 숙소로 달려갔다.
“대체 무엇이냐?”
북궁설이 물었다.
“이름은······ 아직 짓지 못했고, 여튼 제대로 익혔다면 그쪽의 몸이 동강이 났을 겁니다.”
“분명히 막았어.”
“잠시 후에 다시 붙어보죠. 이번 비무는 분명 둘 다 도움이 될 겁니다.”
“······?”
북궁설은 화운을 흔들리는 시선으로 쳐다봤다.
“패배는 창피한 게 아니라면서요?”
“내가 패배 때문에 이러는 것 같으냐?”
“그럼 뭡니까?”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그쪽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알고 있습니까?”
“그건······ 아니지만.”
“그럼 다시 겪어 보십시오. 사실 저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어서 더 해봐야 알겠습니다.”
화운이 말하는 사이에 백리연이 달려왔다.
“여기요.”
백리연이 내민 건 그녀가 착용하던 이무기 비늘로 만든 보호갑이었다.
“이런 건 필요 없다!”
북궁설이 거부했다.
“제 검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려면 오랫동안 싸워야 할 겁니다. 뭐 이런 걸 착용하는 게 창피하다면 그만 두도록 하지요. 가슴에 심한 상처를 입어도 절 원망하지 마십시오.”
화운의 말이 끝나자마자 북궁설이 자신의 상의를 찢어버렸다.
젖가슴이 만천하에 드러났으나 눈빛 한 번 흔들리지 않으며 백리연의 손에서 흉갑을 가져가 착용했다.
누구보다 당당한 무인의 길을 걸으려는 북궁설이다.
하지만 여인은 여인.
가슴이 잘라지는 것만은 견디지 못한다.
그렇다고 기세가 꺾인 건 아니다.
“비무의 한계를 높이겠다.”
북궁설이 말했다.
“무슨 뜻입니까?”
“지금부터 생사투다!”
북궁설의 두 눈이 투지로 활활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