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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으로 무림지존-109화 (109/207)

#109. 지독한 궁금증

객잔의 출입문이 부서져 있었다.

철탑거왕이 밖으로 나올 때 부숴 버렸다.

객잔의 벽에는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화운이 날려 버린 혈선이 벽을 뚫고 그 안으로 처박힌 탓이다.

화운은 검을 비스듬히 내려든 채 객잔을 향해 걸어갔다.

객잔 안의 사람들은 문이 사라진 곳과 객잔 벽의 구멍을 통해 화운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다섯 명의 천하십이흉을 이렇다 할 어려움 없이 일방적으로 날려버린 화운이었다.

천사련의 무인들은 놀람과 두려움이 뒤섞인 눈으로 경계하였고, 인질이 된 무룡대원들은 경외감을 느꼈다.

턱!

화운이 객잔 안으로 발을 들였다.

출입문이 날아가 버린 곳이다.

화운은 그곳에 서서 객잔 안을 둘러봤다.

낭왕을 비롯한 천사련의 무인들은 넓게 포진하여 무릎 꿇린 무룡대원들의 목에 날카로운 칼과 검 같은 병기들을 대고 있었다.

“멈춰라! 한 발짝만 더 들어오면······!”

낭왕은 말을 다 하지 못했다.

화운이 한 발짝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런 건 나한테 안 통한다는 걸 모릅니까? 아까 겪어봤잖습니까.”

“웃기지 마라! 칼자루를 쥔 건 우리다!”

낭왕이 소리치며 손에 쥔 구환도를 슬쩍 움직였다.

그러자 구환도의 날이 적엽명의 목에 혈선을 그어놓았다.

적엽명은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수치심을 애써 참아내느라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합니까. 낭왕께선 그 칼의 손잡이를 쥐셨고, 난 내 검의 손잡이를 쥐었지요.”

화운이 말하면서 검을 들어올렸다.

“멈춰라! 조금이라고 더 움직인다면······!”

“목이라도 베시게요? 베어 보십시오.”

화운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웃는 얼굴 그대로 검을 천중을 향해 치켜들었다.

“수작부리지 마라! 네가 아무리 빨라도 지금 이 상황에선 단 한 놈도 구하지 못한다!”

“내가 지금 그들을 구하려는 것으로 보입니까?”

“뭐?”

낭왕이 눈을 치뜬 순간.

번-쩍!

화운이 검을 휘둘렀다.

묵빛의 검광이 번뜩였다.

“······!”

숨을 멈출 정도로 놀란 낭왕.

다급히 자신의 몸을 더듬고 살펴봤다.

베어진 곳도, 갈라진 곳도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이놈! 지금 날 놀리는 것이냐!”

낭왕이 격분하여 부아를 터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화운은 방금의 일검이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갈 길이 먼 것 같군.”

“뭐?”

“자, 내 개인적인 용무는 끝났고. 지금부터 정무맹 신풍대주로서 말하겠습니다. 살고 싶은 자, 병기를 놓고 나가십시오.”

“닥쳐라, 이놈! 감히 날 무시해? 내가 그리 만만해 보인단 말이냐! 좋다, 해봐라! 무슨 짓이든 얼마든지 해봐라! 네놈이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인 순간 이놈을 죽여 버리겠다!”

낭왕의 눈이 번들거렸다.

광기에 가깝다.

반드시 적엽명의 목을 베어버릴 것이다.

“어지간하면 그냥 보내주려고 했더니, 좋습니다. 그렇게 나온다면 누가 더 빠른지 해보는 수밖에요.”

웃으며 말하는 화운.

말이 끝난 순간 검을 휘둘렀다.

화운이 아는 가장 빠른 검초.

사혼섬을 펼쳤다.

번쩍!

삼십여 보 사이의 공간을 격하고 섬전의 검초를 펼쳤다.

그러나 검기도 검강도 그리고 검환도 발현되지 않았다.

그저 섬전의 검초만 발휘할 뿐이다.

눈에 보이는 것도 없고, 강력하게 날아드는 기운도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끄윽?”

낭왕의 입에서 당황 가득한 비명이 터졌다.

깜짝 놀라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니 구환도를 쥔 손목이 깨끗하게 잘려 있었다.

“어느 분께서 또 나서보시겠습니까?”

화운이 물었다.

도탑주를 비롯한 다른 육지의 수장들은 침묵했다.

공간을 격하고 베어버리는 무위를 무슨 수로 감당한단 말인가?

그들은 서로 눈치만 볼뿐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

“죽여! 당장 인질들을 죽여 버려!”

낭왕이 악에 받쳐 마구 고함을 지르다 적엽명을 걷어차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발이 적엽명의 몸에 닿기도 전에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뒤로 날아가 객잔의 안쪽 벽을 부수고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자신도 못하는 일을 남에게만 강요하는 것처럼 나쁜 것도 없는 법이지요.”

화운의 눈길은 여전히 도탑주 등을 쓸어보고 있었다.

모두들 화운의 압도적인 무위에 짓눌려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고 있었다.

“환사.”

갑자기 화운이 불렀다.

도탑주 등의 눈길이 천장으로 향했다.

“내게서 벗어날 자신이 있는 모양이지요?”

이층 객방에는 무룡대 여자 대원들이 갇혀 있었다.

그리고 환사 역시 거기에 있었다.

아래층의 일이 틀어지자 여자 대원들을 죽이고 조용히 사라지려고 한 것인데 화운이 경고를 한 것이다.

“본련의 무인들을 놓아준다면 나 역시 손을 쓰지 않을 것이오!”

이층에서 환사가 소리쳤다.

여자 대원들을 죽이고 혼자 달아나려다 화운에게 발각 당하자 괜히 동료애를 발휘하고 있다.

화운은 피식 웃었다.

“가도 좋소.”

도탑주를 비롯한 육지의 수장들은 수하들을 데리고 물러갔다.

환사도 사라졌다.

화운은 객잔 안을 둘러본 후 그때까지도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적엽명을 향해 말한 후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기다리겠다.”

“이거 체면이 말이 아니네.”

백리명이 웃으면서 말했다.

“웃음이 나옵니까?”

청성의 도룡이 핀잔을 주었다.

백리명은 오히려 그를 빤히 쳐다보며 한 소리 했다.

“그럼 울 텐가? 아니면 인상 팍팍 쓰면서 한숨이나 쉴 건가? 그것도 아니면 세상 다 산 것처럼 다 포기해 버릴 건가? 다 아니잖아. 이럴 땐 그냥 웃어. 웃으면서 다음을 기약하는 거야. 더 열심히 수련해서 자존심을 회복해야지.”

“······!”

도룡은 백리명을 다시 봤다는 표정을 지었다.

늘 실없는 사람처럼 웃고 다니기만 해서 무시하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위기 때 더 진가를 발휘하는 사람처럼 새삼 다시 보인다.

“어이! 다들 고개 들어. 창피하고 수치심도 들고 그러겠지만, 이대로 인생 끝낼 거 아니잖아. 이번 일을 거름 삼아 더 열심히들 해. 우리가 왜 정파의 후기지수인지 다시 보여주면 되잖아.”

백리명의 말에 하나둘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 아까부터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무당명검이 벌떡 일어나 한쪽으로 바쁘게 걸어갔다.

백리명과 도룡은 뭔 일인가 싶어 얼른 따라가 봤다.

무당명검은 낭왕이 날아가면서 뻥 뚫려 있는 안쪽 벽의 구멍을 만지고 있었다.

“뭔가? 왜 그래?”

백리명이 물었다.

도룡도 궁금하여 고개를 내밀고 살펴봤다.

낭왕의 육중한 몸이 뚫고 나가면서 벽이 거칠 게 부서져 있었는데, 비스듬하게 한쪽 부분만은 날카로운 칼로 예리하게 베어 놓은 것처럼 반듯한 일직선이었다.

무당명검은 오래전 스승님께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 이 사부의 스승님께서 어릴 적에 검성 태사백을 뵌 적이 있다더구나. 그땐 스승님께서 너희들보다 더 어렸을 때라 치기어린 마음에 심검을 익히려면 얼마나 수련을 해야 하느냐고 여쭈었다는구나.

- 검성 태사백께서는 허허 웃으시며 그러셨다고 한다. 심검은 얼마나 수련하느냐 보다 어떻게 수련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마음이 이르는 곳에 검이 이르는 것이 심검이니 마음을 대오각성 해야 할 것이라고 하셨다는구나.

- 하여 스승님께서는 다시 여쭈었다는구나. 마음이 이른 곳에 검이 이르렀는지 어찌 아느냐고.

- 검성 태사백께서는 일체의 내력의 기동 없이 단지 검만을 휘둘러서 눈과 마음이 닿는 곳에 검흔을 남길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눈이 이르는 곳에 검이 이르는 것의 시작이라고 하셨다는구나.

과거를 회상하느라 무당명검의 침묵이 길어졌다.

답답해진 백리명이 다시 물었다.

“대체 이게 뭔가? 뭔데 그리 심각한 겐가?”

“심검.”

“뭐?”

“심검의 시작입니다.”

대답하는 무당명검이나 물었던 백리명이나 곁에 있던 도룡이나 셋 다 황당한 표정이기는 마찬가지였다.

***

철봉황 북궁설.

정무맹에 머문 지 꼬박 하루가 지나는 동안 그녀의 궁금증은 여전했다.

“대체 신풍대주의 어떤 점이 그토록 대단하여 맹주가 그리도 신임하는 것일까?”

태양존자를 죽일 정도이니 본신 무학이야 대단할 것이다.

천하십이흉과 육지의 수장들이 벌이는 합격을 이겨내고 죽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북궁설 자신 역시 환경만 허락한다면 어찌 어찌 가능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을 이기고 죽이는 것과 그들의 수중에서 인질들을 무사히 구해내는 일은 다른 법이다.

아예 차원이 다르다고 봐도 무방하다.

낭왕만 해도 꼭지가 돌아 미쳐 날뛰지 않는 한 잔꾀가 밝고 강호 경험이 많았다.

하물며 천하십이흉이 함께 있었다.

특히 혈선과 철탑거왕은 태양존자를 자신들의 위로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그러니 맹주 조극산의 내기는 비정상적이라 할 수 있다.

북궁설은 전날 맹주 조극산이 물러간 후 군사 영호풍에게 물었었다.

“무룡대를 사로잡고 있는 이들의 면면을 파악하고 있나요?”

“육지와 천하십이흉인 걸로 압니다만?”

영호풍이 반문하듯 대답했다.

그래서 북궁설이 다시 물었다.

“맹주께서도 알고 계시나요?”

“뭐가 그리 급하신지 미처 말씀드리기도 전에 가버리셨네요.”

영호풍이 맹주가 나가버린 출입문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북궁설은 육지의 수장들에 천하십이흉까지 가세했다는 걸 알고도 맹주가 신풍대주에 대한 기대를 거두지 않을지 궁금해졌다.

“가셔서 맹주님께 육지와 천하십이흉이 함께 있다고 말씀드리세요. 내기는 형평이 맞아야 하는 법이니까 다시 해도 된다고 전해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철봉황께서는 당분간 이곳에 머무시도록 하십시오. 본맹의 자리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 이곳보다 나은 곳이 없을 듯싶습니다.”

“사신 자격으로 왔으나 엄연히 적진인 것을 이 정도만 해도 구중궁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또 그 말씀이 맞는 것 같군요.”

영호풍은 빙그레 웃어 보인 후 물러갔다.

그리고 한 식경이 지난 후 다시 돌아와 맹주의 전언을 알려주었다.

“맹주님께서 말씀하시길, 그곳에 구룡제나 도황 혹은 그 분들에 버금가는 고수가 존재하지 않는 한 내기는 유효하다고 하셨습니다.”

“······!”

북궁설은 놀랍고도 기가 막혔다.

하여 자신도 모르게 묻고 말았다.

“신풍대주가 그렇게 대단한가요?”

군사 영호풍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적에게 아군에 대해 알려주어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웃어준 후 물러갔다.

북궁설은 그 후로 다음날인 지금까지 궁금증만 커졌다.

“신풍대주, 신풍대주······ 하, 진짜! 상사병을 앓아도 이토록 답답하진 않겠다!”

실내를 왔다갔다 하더니 급기야 답답함을 토로하는 북궁설.

“속하가 그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북궁설의 심복 광풍맹호도 적충이 보다 못해 나섰다.

그러자 북궁설이 홱 돌아보며 말했다.

“이름 화운. 나이 십구 세에서 이십이 세 사이로 추정. 최초로 모습을 보인 건 내 동생, 그 멍청한 놈을 날려버릴 때 이고, 이어서 황보세가의 소패룡을 일방적으로 패서 만신창이로 만들었지. 정무맹이 만들어지자 신풍대주가 되어 장강에서 난리를 쳤고, 태양존자와 이화태양종이 그자에 의해 본련에서 지워졌지. 더 알아야 해?”

워낙 굵직굵직한 일들을 벌여놓아 말하면서 보니 그의 강함이 새삼 놀랍다.

“주공께서 지금 궁금하신 건 그 자의 강함이 아니라 정무맹의 맹주가 그토록 신임하는 이유이지 않습니까?”

“아! 그렇지!”

북궁설은 탄성을 터트리다 한심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하아! 내가 완전히 바보가 된 기분이군.”

“낯선 상황에서는 누구나 당황할 수 있습니다.”

“입바른 소린 말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무공 말고, 그자 자체에 대해 알아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그렇게 알아보다 보면 세작들이 알아내지 못한 그자의 또 다른 면모나 무공에 대해서도 알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와? 어딜?”

“우선 그와 가장 가까이서 생활하고 있는 신풍대원들을 만나보겠습니다.”

“신풍대가 남아 있어? 함께 가지 않았고?”

“무룡대를 구하러 갔다면 시급을 다투는 일이니 혼자 갔을 겁니다.”

“흠······.”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북궁설은 잠시 고민하다 결정을 내렸다.

“좋아. 신풍대가 남아 있다면 직접 만나보겠다. 넌 가서 그들이 남아 있는지 알아보고, 그들이 남아 있으면 군사한테 내 뜻을 전하도록 해.”

“존명.”

적충이 물러갔다.

혼자 남은 북궁설은 의자에 앉았다.

“대체 어떤 사내일까?”

신풍대주 신검룡 화운.

그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 북궁설은 답답한 가슴에 의자에서 도로 일어나 실내를 왔다갔다했다.

그야말로 지독한 궁금증이 천하의 철봉황을 사로잡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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