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8. 내가 지켜주면 안 되냐?
무당명검은 말이 없었다.
처음 대면한 날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나눈 게 전부일 뿐 입조차 열지 않았다.
마치 비상할 날만을 기대하는 젊은 학처럼 홀로 고고하려고 했다.
그가 있음에도 화산기룡이 무룡대주가 된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배타적에 가까운 그의 성격은 한 무리의 수장이 되기에는 결격이었던 것이다.
화운은 무당검성에게 받은 것이 있어 무당의 제자들에게는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무당의 일대제자들은 무당명검의 주위에만 있을 뿐 다른 이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무당명검을 동경해서인지 무당의 어른들이 무당명검의 주위를 지키라고 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말 붙이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다.
아미의 복호검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많은 아미의 일대제자들을 제치고 검후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지독하게 검을 수련했기 때문인지 그녀의 모습 자체가 한 자루의 검을 보는 것처럼 날카로운 예기를 뿜었다.
점창의 분광과 청성의 도룡이 그나마 사람다웠다.
칠대문파의 오만함과 젊은 무인의 혈기, 그리고 강호초출의 호기심을 맘껏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화운이 무룡대의 후기지수들을 살피는 동안 무룡대의 후기지수들 역시 화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지난 며칠 동안 걸음걸음은 물론이고 말하는 중에도 육포를 먹는 중에도 끊임없이 시선이 따라다녔다.
정말 태양존자를 쓰러트렸을까?
그 의문이 밑바탕이었다.
신풍대주가 소문처럼 그렇게나 강할까?
그런 궁금증이 동반된 시선이 줄곧 따라다녔으나 며칠이 지나자 그에 대한 궁금증은 시들해지고, 새로운 궁금증이 점차 퍼지기 시작했다.
백봉 백리연과 신풍대주는 어떤 관계일까?
그 의문은 무룡대 소속 여자대원들 사이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봐봐, 지금도 신풍대주를 훔쳐보잖아!”
“정말 그러네. 틈만 나면 신풍대주를 훔쳐보네.”
“저게 꼬리치는 게 아니면 뭐겠어? 백봉은 무슨. 꼬리 아홉 개 달린 구미호가 낫겠다.”
백봉 백리연을 시기질투하고 험담하는 대화들이 틈만 나면 벌어졌다.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했으나 청력이 극도로 발달한 화운은 모조리 듣고 있었다.
한심하고, 짜증나고, 화도 나고 그랬지만 그냥 내버려두었다.
며칠 후면 자신들이 얼마나 초라한 존재들인지 똑똑히 알게 될 테니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백리연이 물었다.
지금은 이동하다 쉬는 중이었고 숫자가 많은 무룡대가 여기저기를 차지한 가운데 화운과 백리연은 어쩌다 보니 다들 볼 수 있는 넓적한 바위에 나란히 앉게 되었다.
남궁현과 선우유성은 정찰겸 경신술을 수련하는 중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내가 친구 하나 없이 지금까지 살아왔구나 하는. 백리 소저는 친구가 있습니까? 그냥 아는 사이가 아니라 속마음도 털어놓을 수 있고, 누가 날 욕하면 나보다 더 화를 내고 날뛰어주는 그런 친구요.”
“없어요. 사람을 만나는 것에······ 미숙해서요.”
백리연이 대답을 하며 한쪽에 모여 있는 무룡대 여자대원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선을 피하거나 자신들끼리 숙덕거리는 모습에 바로 고개를 돌렸다.
듣지 않아도 저들이 자신에 대해 좋지 않은 말들을 하고 있다는 것쯤은 눈치챘다.
어려서부터 비슷한 경우를 무수히 보고 겪어봤다.
사람들을 경계하여 친구가 없는 것도 그런 일을 하도 많이 겪어서다.
“대주님은 그런 적 있으세요? 누군가를 위해서 먼저 화를 내주고, 더 많이 화를 내고 그런 적이요.”
백리연을 비롯한 신풍대원들은 무룡대가 합류한 후로는 대주라는 호칭을 꼬박꼬박 붙이고 있었다.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것 같고요.”
화운은 사실을 말했다.
그러자 백리연의 얼굴에 살짝 실망의 기운이 떠올랐다.
그걸 눈치챈 화운이 얼른 말을 이었다.
“누가 내 사람을 모욕해도 불같이 끓어오르는 화를 터트리기 보다는 어떻게 갚아줄까, 그런 생각을 더 하게 되거든요.”
“그렇군요.”
백리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망했던 기운이 조금 옅어졌다.
“그만 출발하지.”
화산기룡 적엽명이 다가오며 말했다.
이틀 전부터는 출발과 휴식을 나서서 정하고 그러면서 마치 자신이 임무를 주도하는 것처럼 굴고 있었다.
화운은 그가 그러는 이유를 짐작하고도 내버려두었다.
그깟 체면 때문에 잔머리를 굴리는 모습이 우습기도 했고, 결국은 저런 행동들이 그를 더욱 수치스럽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화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백리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순간 그 광경을 본 모든 이들의 동작이 딱 멈췄다.
백리연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자연스런 동작으로 화운의 손을 잡았다.
화운이 백리연을 끌어당겨 일으켜주자 두 사람의 숨결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앞으로도 며칠을 더 가야 하니 자질구레한 것들은 신경 쓰지 말아요.”
“그럴게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백리연의 얼굴이 밝아졌다.
감정을 지운 듯 차갑게 보일 때도 대단한 미모였으나 살짝 미소를 짓는 얼굴은 사내의 가슴을 진탕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이렇게나 아름다웠던가?’
가까이에 있던 적엽명이 경탄했다.
칠대문파와 경쟁상대나 마찬가지인 오대세가 출신이라는 것과 신풍대 소속이라는 것 때문에 애써 무시하고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 백리연의 미소 띤 얼굴이 적엽명의 두 눈에 가득 들어차 버렸다.
비단 적엽명만이 아니었다.
무룡대 소속의 수많은 사내들이 처음 보았을 때부터 혹은 지금 이 순간부터 백리연의 미모에 빠져 버렸다.
그렇게 넋을 잃고 보는 사내들의 모습에 일부 여자대원들이 사납고 앙칼진 표정을 지었으나 거기에 신경 쓰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가지.”
화운의 한 마디가 적엽명을 비롯한 모두를 일깨웠다.
“그, 그래 어느 쪽······.”
방향을 묻기도 전에 화운이 앞서 걷고 있었다.
백리연과 함께.
“음.”
신음처럼 숨을 다스린 적엽명은 주위를 둘러보며 외쳤다.
“금방 어두워질 것 같으니 서두르자.”
말이 씨가 된다고 했다.
금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산속이라 전날보다 한 식경은 더 빨리 어두워지고 있었다.
벌써 며칠째 하는 노숙에 점점 짜증이 더해져 가던 차여서 다들 말이 없어질 정도로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오늘은 이곳에서 보낼 거니까, 너무 멀리 떨어지지는 말고 자리를 잡도록 해.”
적엽명의 지시 하에 무룡대는 각자 밤을 보낼 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연이은 노숙으로 짜증이 나 있던 데다 주위엔 온통 잡목들만 빽빽하기만 하고 동굴 같은 건 보이지가 않으니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버리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화운은 신풍대원들을 바라봤다.
세 사람은 지치거나 짜증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럴 새조차 없었다.
사황과 천마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후로는 매순간이 수련의 연속이었다.
걸으면서도 각자의 무공을 고민했고, 쉴 때는 조용히 앉아 심상수련을 하곤 했다.
지금도 나란히 앉아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각자 머릿속에 가상의 적을 세워두고 심상수련을 하고 있거나 자신들의 무공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들을 무룡대원들은 유별나다는 둥 꼴값 떤다는 둥 자기들끼리 구시렁거리며 빈정거렸다.
‘편하게만 무공을 익힌 너희들로서는 이해를 못 하겠지. 하지만 두고 봐라. 이 세 사람이 너희들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는 무위를 보여줄 테니까.’
화운은 무룡대의 웃기지도 않는 반응을 뒤로 하고 세 사람을 바라봤다.
기특했다.
그래서 잠만은 편하게 자도록 해주고 싶었다.
화운은 주위를 둘러본 후 자리를 떴다.
이윽고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화운이 돌아왔다.
가지를 쳐낸 거목 두 그루를 끌고 온 화운은 검을 뽑아 사람 키 정도의 길이로 토막을 내서 통나무 이십여 개를 만들었다.
화운은 그 통나무들을 하나씩 땅에 박아 세웠다.
내력을 일으켜 박으니 굵은 통나무가 단단한 땅 속으로 한 자나 푹푹 박혔다.
그 소리에 신풍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끄럽게 해서 미안.”
“바람막이를 세우는 겁니까?”
“맞아.”
남궁현이 물었고 화운이 대답했다.
“통나무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선우유성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너희들이 할 일은 따로 있으니까 지금은 그냥 지켜보기만 해.”
이십여 개의 통나무를 촘촘하도록 딱 붙여서 박은 화운은 다시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금세 가지를 쳐낸 두 그루의 거목을 끌고 와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순식간에 세 방향의 바람을 완벽히 막아준 통나무 벽이 완성되었다.
화운은 다시 사라졌다.
이윽고 가지를 쳐낸 통나무 한 그루를 끌고 나타난 화운은 다시 통나무로 만들더니, 이번에 통나무를 두 쪽으로 갈랐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대로 통나무 벽을 좌우로 잇도록 올려놓아 지붕을 만들었다.
“애쓰긴 했는데 저래봐야 바람이 불면 아래서 자다가 봉변당하기 십상이야. 한 마디로 미련한 짓이야.”
무룡대원들 속에서 우문산이 비웃었다.
그 소리에 선우유성이 신경질적으로 홱 돌아섰다.
방패를 가지고 비웃다가 한 번 당한 적이 있던 우문산이 선우유성의 성난 기세에 움찔했다.
그러나 좌우로 가득한 동료들을 믿고는 코웃음 쳤다.
이때 화운이 한쪽으로 성큼성큼 가더니 손가락 굵기의 나뭇가지를 잘라와 젓가락 두 개 길이로 자르더니, 통나무를 쪼개 지붕처럼 얹어둔 나무 위에서 냅다 박았다.
마치 못처럼 쑥 박혔다.
순간 모두가 경악했다.
내력이 잘 통하는 쇳조각이라면 놀랄 일도 아니지만, 겨우 손가락 굵기의 나뭇가지이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뭇가지는 내력이 잘 통하지 않기에 억지로 흘려보내면 쪼개지거나 터져버리기 때문이었다.
화산기룡이나 무당검룡 그리고 복호검후 등은 답답하게 짓눌린 시선으로 화운을 지켜봤다.
“대주님, 여기.”
남궁현이 못 대신 사용할 나뭇가지들을 잽싸게 잘라왔다.
화운은 그것들을 받아 모래사장에 박듯이 지붕의 나무들에 푹푹 박아놓았다.
그렇게 태풍이 몰아쳐도 끄떡없을 거처가 만들어졌다.
“하룻밤 묵기엔 과분하군.”
적엽명이 다가와 말했다.
“이곳에서 이틀은 머무를 거야.”
천사련이 미끼를 물려고 움직인다면 얼추 이삼일 정도 후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곳에서 진을 치고 그들을 맞이할 생각이다.
물론 화운 혼자만의 생각이라 그러한 사정을 알지 못한 적엽명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그걸 왜 이제야······!”
“이번 임무는 내가 주관한다고 했는데, 며칠 만에 잊어버린 건지 제멋대로 군 게 누구지?”
“······!”
적엽명은 반박할 수도 화를 낼 수도 없었다.
화운의 말이 맞기도 했고, 말을 거는 척 다가와 살펴보니 손가락 굵기의 가지가 정말 못처럼 박혀 있었다.
내력을 발휘하는 수준이 엄청나다는 방증이다.
물론 내력을 발휘하는 수준이 대단하다고 하여 반드시 고강하다는 법은 없다. 게다가 화산의 검학은 어느 정도 내력의 격차를 무시할 정도로 뛰어났다.
적엽명은 애써 자신감을 되찾았다.
“사람들이 주머니 속에 못을 넣지 않는 이유를 알아? 언젠간 반드시 주머니를 뚫어버리기 때문이야.”
낭중지추라 하여 제아무리 사람들 속에 숨어 있어도 빼어난 사람은 반드시 두각을 드러내기 마련이라는 말이 있다.
적엽명은 그 말을 바꿔 주머니라는 한 울타리 안에 적응 못 하는 못 같은 존재냐며 화운을 타박했다.
하지만 근본부터가 잘못 되었다.
그 울타리가 어떤 울타리이며 누가 만든 울타리인가.
기득권자들이나 생각할 만한 말이었다.
게다가 한 가지 더.
화운은 이미 울타리니 뭐니 하는 경계를 훌쩍 초월해 버린 존재였다.
정무맹조차 화운을 품기엔 모자랄 판국이거늘 이제 강호초출이나 마찬가지인 적엽명이 울타리 운운하는 건 그야말로 어불성설, 말도 안 되는 웃기는 일이었다.
화운은 대꾸하지 않았다.
더 이상 나대지 말라는 뜻을 전했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다.
적엽명이 무슨 생각을 하든 더 이상 아웅다웅하고 싶지가 않았다.
스스로가 유치하고 한심해 보일 것 같아서다.
화운이 말이 없자 적엽명은 코웃음 치고는 돌아섰다.
“화산파의 기재라는 애가 보는 눈이 저것밖에 안 되나 몰라.”
남궁현이 한심하다며 중얼거렸다.
자기보다 서너 살은 더 많은 사람을 애 취급하고 있었다. 그만큼 한심해 보여서다.
“그런 데에 신경 쓰지 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나 하자.”
“우리가 할 일?”
선우유성의 말에 남궁현이 돌아봤다.
“우리가 할 일이 따로 있다는 건 아마도 불을 피우는 것 같아.”
선우유성이 화운의 생각을 눈치챘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화운이 지어놓은 임시거처에 딱 한 가지가 빠져 있었다.
남궁현은 화운을 돌아봤다.
“하루 이틀만 더 가면 적지나 마찬가지일 텐데 불을 피워도 됩니까?”
“괜찮아, 피워. 그게 너희들이 할 일이야.”
화운이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미끼인데 무슨 상관이겠는가.
화운이 허락하자 둘이 잽싸게 주위를 돌아다니며 마른가지들을 주워왔다.
타닥타닥!
모닥불이 타고 있었다.
화운을 비롯한 네 사람은 모닥불을 둘러싸고 앉아 육포 조각을 꼬챙이처럼 길쭉한 나뭇가지에 꿰어 불에 굽고 있었다.
“이런 건 어떻게 알았답니까?”
“세상을 떠돌다 보면 이런 것들을 하나둘 배우게 되어 있어.”
“세상을 떠돈 적도 있습니까?”
“애 혼자 멀리 있는 친척 집을 찾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더라. 길을 잃고 헤매곤 했어.”
남궁현이 물었고, 화운이 대답했다.
이때 선우유성이 화운의 말을 듣고는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그날 그렇게 남루해 보였구나.”
“그날?”
“어, 형이 우리 집에 처음 온 날.”
남궁현의 물음에 선우유성이 화운을 처음 만나던 날을 생각하며 대답해 주었다.
화운이 양친을 잃고 천애고아라는 걸 다들 안다.
그래서 분위기가 살짝 가라앉았다.
“에이, 분위기 처졌잖아. 대주 형님이 어려서 고생 좀 했나 본데 설마 천하 안위를 온통 혼자 짊어진 것 같은 지금보다 더하려고. 걱정, 염려 놓아두고, 먹자 먹어. 먹다보면 다시 기분 좋아질 거야. 기분이 좋아야 하는 일도 잘 되는 법이야.”
남궁현이 굽던 육포조각을 후후 불며 뜯어먹었다.
“오오! 색다른 맛인 걸!”
선우유성과 백리연도 얼른 입으로 가져갔다.
뜨거운 육포를 후후 식혀가며 오물오물 씹어보니 마른 채 먹던 것과는 또 다른 구수한 맛이 났다.
“멍청한 놈들, 그깟 게 무슨 자존심 상할 일이라고.”
남궁현이 투덜거렸다.
무룡대를 향한 말이었다.
다들 화운이 지은 통나무 거처를 부러워하면서 단 한 사람도 따라 하지 않았다.
모닥불 피워놓고 가까이 앉아 있거나 드러누운 게 다였다.
다들 몸을 단련한 무인들인 데다 여름이라 공기가 제법 차가운 산속이라 하더라도 몸에 탈이 날 일은 없다.
하지만 밤새 차가운 바닥에 드러누워 찬바람을 맞는 걸 좋아할 사람도 없거니와 그런 상태로는 깊은 잠을 자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신경 끄고 얼른 먹고 자자. 일찍 자 둬야 내일 또 열심히 수련하지.”
선우유성이 한 말이다.
남궁현은 그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인 후 무룡대 쪽에는 관심을 껐다.
한 식경 후 별이 초롱초롱한 가운에 잠자리에 들 시각이 되었다.
“불침번은 내가 설 테니까, 푹 자도록 해.”
화운의 말에 세 사람은 잠자리에 누웠다.
모닥불의 열기가 안으로 들어가 공기를 따스하게 데워주어 세 사람은 두 다리를 쭉 뻗고 누울 수 있었다.
“자기 전에 내가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
“뭔데?”
남궁현의 말에 선우유성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에 남궁현이 사악하게 웃었다.
“밤에 잘 때 옆에 베개를 나란히 두고 자면 안 된대. 왜 그런지 알아?”
“그래? 처음 들어보는데 왜 그렇지?”
“새벽에 자다가 깨어보면 귀신이 그 베개를 베고 나란히 누워 자고 있대. 으흐흐흐!”
“······!”
“빈 의자 옆에서 자도 안 된대. 밤에 깨어보면 귀신이 거기 앉아서 내려다본대. 으흐흐흐흐흐! 재밌지? 재밌지?”
“좀 무섭다. 그쵸, 누나?”
“······.”
백리연의 반응이 없었다.
“누나?”
선우유성이 돌아보니 백리연이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있었다.
“어? 누나 귀 막은 것 같은데?”
“정말?”
“어.”
“귀신 이야기를 무서워하는구나! 그렇다면 더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어야지. 크크큭!”
남궁현이 악동처럼 키득거렸다.
순간 작은 돌멩이 하나가 날아와 남궁현의 발바닥을 때렸다.
“아얏!”
“밤새 보초 설래? 아니면 입 다물래?”
저쪽에서 화운이 물었다.
남궁현은 발바닥을 문질러대며 투덜거렸다.
“씨이, 연 누나는 형님이 지키겠다, 뭐 그런 겁니까?”
“왜, 내가 지켜주면 안 되냐?”
“오홍?”
“놀리기만 해봐. 악착같이 보복해 줄 테니까.”
화운의 엄포에 남궁현이 움찔했다.
왠지 자신이 놀리는 것보다 열 배, 백 배는 더 심한 놀림을 받을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다.
“아······ 대주님께 충성을 다하기로 했었지요.”
남궁현이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겠다며 조용히 드러누웠다.
“그만 자도록 해. 유성이 말대로 내일은 수련해야 하니까. 좀 힘든 하루가 될 거야.”
“옛, 충성.”
“고마워, 형.”
남궁현과 선우유성이 차례로 대꾸하며 잠을 청했다.
이때 백리연은 숨조차 크게 내쉬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끝났겠지 싶어 귀를 막은 손을 떼었다가 자신을 지켜주면 안 되냐는 화운의 말을 듣고 괜히 가슴이 뛰어서다.
‘설마, 들리진 않겠지?’
백리연은 한동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