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셋으로 무림지존-78화 (78/207)

#078. 대륙전장으로 가는 길

개봉으로 향하는 하남성 어딘가 이름 모를 산.

모닥불이 크게 피워져 있었다.

화운은 바위를 등지고 편하게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백리연이 가부좌를 튼 채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화운이 가르쳐준 검공에 푹 빠져 있어 틈만 나면 검을 휘두르거나 지금처럼 심상수련을 하곤 했다.

남궁현과 선우유성은 자발적으로 마른 가지들을 잔뜩 주워와 모닥불을 크게 피워놓더니 그 앞에서 검을 뽑아 휘둘렀다.

그런데 두 사람이 휘두르는 검의 궤적이 화운이 백리연에게 가르쳐준 검공과 유사해 보였다.

가만히 지켜보던 화운의 미간이 점점 더 찌푸려졌다.

“니들 지금 봐달라고 시위하는 거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한 번 아니다 하시면 그건 그냥 아닌 것인 대주님이심을 잘 아는데요.”

“맞아. 아닌 건 아닌 거지.”

검을 휘두르던 것을 우뚝 멈춘 남궁현이 말했고, 선우유성이 맞장구를 쳤다.

“그래도 이왕 보신 김에 우리가 생각해낸 검공을 보아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검을 휘두르는 두 사람.

“검강을 만든다고, 검환을 발휘한다고 검끝에 내력을 응집하려고만 하니까 놓치는 거겠지.”

“맞아. 강제하지 말고 그저 어우러진다는 느낌으로······.”

남궁현과 선우유성이 차례로 말했다.

화운이 백리연에게 검을 가르쳐줄 때 했던 말 그대로다.

“하, 진짜······.”

화운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궁현과 선우유성은 화운이 일어나서 다가오자 검을 멈추었다.

“꿀밤을 먹여도 좋으니까 좀 가르쳐주십시오.”

남궁현이 머리를 내밀고 푹 숙였다.

“형, 새로운 걸 보니까 잠을 자려고 해도 눈앞에서 막 아른거리고 그래.”

선우유성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화운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새로운 걸 보았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너희들이 없을 때 가르쳐 줄 것을.”

그렇게 말한 화운은 두 사람을 향해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너희들한테 가르쳐주지 않은 건 시간만 허비할 게 뻔해서야.”

“절대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습니다.”

남궁현이 기대에 차서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니야. 그 검공을 배우든 배우지 않던 너희들이 결국 도달할 경지는 그대로다. 그런데 새로운 검을 배우게 되면 거기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길어질 거야. 그래서 가르쳐 주지 않은 거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럼 연 누이께 가르쳐 준 이유는 뭡니까?”

“언젠가 백리소저의 검무를 본 적이 있다. 검과 자신과 주위 공간까지 혼연일체가 되어 푹 빠져 있었다. 백리소저는 너희들과는 달리 새로운 검공이 오히려 시간을 단축시켜 줄 거다.”

“그래도······.”

“내가 너희들한테 아까워서 감추고 그럴 이유가 있을까? 난 너희들한테 도움이 된다면 뭐든 다 줄 것이고, 그렇게 해왔다고 생각하는데, 너희는 아니냐?”

“······!”

화운의 말에 남궁현과 선우유성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화운의 말 대로였기 때문이다.

이무기의 비늘로 만들어진 묵검을 받은 것만 해도 놀라운 것인데, 거기에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영약들까지 복용했다.

그럼에도 더 달라고 투정이나 부리고 있으니.

미안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지금 너희들한테 필요한 건 실전이다. 많은 싸움을 경험해서 이제는 각자 자신만의 검로를 만들 단계다. 그 단계를 얼마나 빨리 완성하느냐에 따라 너희들의 앞날이 달라질 거다.”

화운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만 끄덕였다.

둘 다 자신들의 검공이 중요한 단계라는 걸 알고 있었다.

갑자기 많아진 공력으로 인해 검학과의 조화가 깨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한 화운의 말이 크게 닿았다.

“너희들도 생각이 있고, 꿈이 있을 것이고, 기대한 바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내 욕심에 너희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지금처럼 날 믿고 따라와 달라는 거다. 그럼 내가 열고자 하는 세상에 함께 가도록 하겠다.”

“예.”

“미안해, 형.”

“저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쉬십시오. 수련 좀 하고 오겠습니다.”

남궁현이 고개를 꾸벅 숙인 후 자리를 떴다.

“형, 나도.”

선우유성도 재빨리 사라졌다.

화운은 두 사람의 기척이 멀어지는 것을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았다.

‘나보다 더 뛰어난 너희들이니까, 금방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야.’

화운은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섰다.

“······!”

돌아서보니 백리연이 눈을 뜨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방해가 되었습니까?”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예. 말씀 하십시오.”

화운이 대답하며 다가갔다.

“제 검무를 언제 보았다는 건가요?”

화운은 다가가던 것을 흠칫 멈추었다.

다시 보니 백리연의 얼굴 표정이 가히 좋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해할 만한 건가요?”

“제천마존의 비동 근처에서 보았습니다.”

“아······!”

백리연은 그날 밤을 똑똑히 기억한다.

한참 검무에 빠졌다가 누군가가 지켜보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던 날이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였기에 착각일 뿐이라고 여겼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 본 건가요?”

묻는 백리연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제가 본 게 다라면 백리소저의 검무를 다 본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다른 건요?”

“예?”

“다른 건 보지 않은 건가요?”

그날 한바탕 검무를 추고 난 후 가까운 곳에 있는 계곡물에 몸을 씻었다.

백리연이 염려하는 건 바로 그거다.

“다른 거라는 게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날 바쁘게 움직여야 했기에 검무를 지켜본 게 답니다. 혹여 다른 절학을 수련하신 거라면 맹세코 보지 못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됐어요. 그리고 무공 같은 건 보셨다고 해도 문제 삼을 일이 없어요. 제가 화 소협께 받은 게 얼마나 큰데요.”

백리연이 웃으며 말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맞아, 그럴 리가 없지. 여인의 몸이나 몰래 훔쳐보는 사람일 리가 없어.’

백리연은 안도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자신의 몸을 보고 안 보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믿었던 화운이 이상한 사람일까봐 그것이 염려가 되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래서 안도했고, 혹시나 하는 염려를 한 것조차 미안했다.

믿어주지 못해서.

“제게 받기만 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야 하는 말입니다만, 소저의 검무가 제게도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요.”

무당검성과 보냈던 오 년.

그때 건곤무상검을 깨닫는 데에 큰 도움을 준 것이 백리연의 검무였다.

남궁현, 선우유성과는 달리 백리연에게 건곤무상검이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한 근거가 바로 거기에 있다.

물론 그러한 상황을 알지 못하는 백리연이기에 믿지 않았다.

자신이 받기만 하는 것에 무안해할까 봐 화운이 일부러 그리 말해준 것이라 여겼다.

‘고마운 사람.’

백리연의 눈길이 따스해졌다.

화운은 원래 앉아 있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모닥불의 뜨거운 열기가 얼굴에 닿고 있는 데도 백리연의 시선이 느껴져 가만히 있기가 뭐했다.

화운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손을 뻗었다.

남궁현과 선우유성이 저쪽에 수북하게 쌓아놓은 나뭇가지 두 개가 날아와 화운의 손에 잡혔다.

화운은 그걸 모닥불 안으로 던져 넣었다.

“정말 대단한 격공섭물이네요. 그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백리소저도 내공의 화후가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섰으니 금방 할 수 있을 겁니다.”

“정말요?”

“그럼요. 이틀 전에 가르쳐 준 그 검공을 통해 건곤응신(乾坤應神)에 들어섰으니 이제 곧 체외로 발출한 공력을 여의하는 이기제기의 관문 앞에 설 수 있을 겁니다.”

이기제기의 경지에 들어서면 검강을 자연스럽게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니 백리연의 무공 수위가 상당히 빠르게 진전되고 있는 셈이었다. 그만큼 대환단의 약력이 대단했다.

“저기······.”

백리연이 머뭇거렸다.

화운은 의아하여 백리연을 쳐다봤다.

“말 나온 김에 그 검공을 다시 한번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한 번만 더 경험해 보면 뭔가 더 명확하게 보일 것 같아서 그래요.”

백리연이 물었다.

화운으로써는 조금 갑작스러웠으나 평소 무공에 관한 백리연의 열의를 알기에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좋습니다. 일어나시지요.”

화운이 일어서자 백리연도 웃으며 일어났다.

주위를 둘러본 화운은 모닥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릴 잡았다.

“이쯤이 좋겠습니다.”

“네.”

백리연이 사뿐히 다가왔다.

화운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백리연을 보고 있자니 왠지 묘한 기분이 들었으나 애써 떨쳐냈다.

“검을 뽑으십시오.”

“네.”

백리연이 검을 뽑아들고는 돌아섰다.

화운은 왼손으로는 백리연의 어깨를 살짝 짚고 오른손으로는 검을 쥔 손을 덮듯이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준비되었습니까?”

“네. 준비되었어요.”

“그럼 갑니다.”

화운이 부드럽게 검을 이끌었다.

부드러움에 치중된 백리연의 검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화와 속도를 가중시킨 검결을 펼쳤다.

보다 현란해지고, 강경해진 검결이었다.

“의식은 검끝이 아니라 내력에 두어야 합니다. 집중하기 보다는 흐르듯이. 평온한 마음으로 검무를 추듯이 내력에 둔 의식도 그러해야 합니다. 강요도 집착도 하지 말고 그저 함께 한다는 생각으로. 지금 백리소저와 내가 함께 하듯이 검과 내력과 대기가 함께 검무를 즐긴다는 마음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화운이 먼저 검에 내력을 주입하여 천지간의 기운을 어떻게 이끌어내는지 시범을 보였다.

이어서 백리연이 차츰 내력을 주입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화운은 내력을 거둬들였다.

백리연의 호흡이 갈수록 안정되었다.

일다경이 지나자 화운이 이끄는 것인지 백리연이 이끄는 것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다시 일다경이 지났다.

화운은 검에서 내력을 완전히 거두었고 손을 떼려고 했다.

“조금만 더요.”

백리연이 말했다.

화운은 다시 손을 잡았다.

대신 검을 이끌지 않고 백리연이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백리연은 무아지경에 든 것처럼 검을 이끌었다.

내력과 검 그리고 천지간의 기운조차 잊어버린 것처럼 의식의 집중조차 놓아버렸다.

그렇게 반각이 지났다.

‘좀 더 강하게 해볼까.’

화운은 잠시 고민하다 자신의 공력을 주입했다.

백리연의 내력을 뒤덮은 화운의 공력이 검신을 새파랗게 물들였다.

천지간의 기운이 와락 밀려들었다.

화운이 다시 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 천지간의 기운이 요동치듯 휘몰아쳤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활활 타오르고 있던 모닥불이 천지간의 기운을 따라 와락 끌려왔다. 불붙은 나뭇가지들이 어둠 속을 움직이자 흡사 한 마리의 화룡이 와락 달려드는 것 같았다.

화운은 백리연과 함께 빙글 돌며 검을 크게 휘둘렀다.

검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 불붙은 화룡이 두 사람의 주위를 크게 돌았다.

검이 솟구치면 화룡도 솟구쳤고, 검이 내리꽂히면 화룡도 낙하했고, 검이 수평으로 원을 그리면 화룡도 원을 그렸다.

백리연은 기감만으로 느끼던 것을 시선으로도 확연하게 보게 되자 화운이 가르쳐주고 있는 검공의 묘리를 더욱 분명하게 알 것 같았다.

‘건곤응신(乾坤應神)! 응신이라고 한 이유가 있었어!’

백리연의 머릿속에 깨달음의 불꽃이 피어오르는 사이에도 화운은 계속 검을 움직였다.

백리연의 수련인지 화운의 수련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푹 빠져 있었다.

백리연이 잘 따라오도록 신경 쓰면서도 화룡처럼 보이는 불덩이가 꺼지지 않도록 신경쓰다보니 천지간의 기운을 더욱 세심하게 다루는 수련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났다.

화룡은 어둠속으로 자취를 감추었고 천지간을 유영하던 검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두 사람은 어둠 속에 나란히 서 있었다.

좀 전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움직일 줄을 몰랐다.

“건곤응신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백리연이 말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부드럽게 웃으며 말하던 화운이 그때까지 잡고 있던 손을 얼른 놓았다.

“불을 다시 피우겠습니다.”

화운은 나뭇가지를 찾아 주위를 돌아다녔고, 백리연은 어둠 속에서 화운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

휙! 휙!

두 사람이 빠르게 움직였다.

급격히 경사진 산등성이를 다람쥐처럼 민첩하게 달려 오르더니 산 정상을 단숨에 넘어갔다.

울창한 숲도, 크고 작은 돌덩이가 지천이어도 두 사람을 막지 못했다.

그런 두 사람 앞에 홀로 산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잿빛의 장삼.

허리춤에는 한 자루의 장검.

그저 걷고 있음에도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 같은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검은 머리의 노인.

빠르게 내달리던 두 사람은 검은 머리 노인의 기도가 심상치 않아 괜히 시비가 붙지 않도록 하기 위해 좌우로 갈라져 크게 우회했다.

그렇게 양옆을 스쳐가는 찰나.

검은머리 노인의 눈동자가 좌우로 한 번씩 움직였다.

양옆을 쾌속하게 지나쳐 가는 두 사람은 호호백발의 노인들이다.

가슴팍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다.

천하에 태양을 문파의 상징으로 삼는 곳은 단 한 곳뿐이다.

허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우측의 노인이 옆구리에 끼고 있는 아이.

얼핏 봐도 아직 어리다.

검은머리의 노인은 자신의 우측을 스쳐가는 노인을 향해 벼락같이 검을 뽑아 그었다.

번-쩍!

눈부신 섬광이 날아들자 우측을 지나쳐가던 노인이 깜짝 놀라 급격히 방향을 틀어 피한 후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좌측을 지나쳐 가던 노인 역시 달리던 것을 멈추고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우린 이화태양종의 호법들이다. 누구이기에 감히 검을 휘두른 것이냐!”

급작스런 공격을 받았던 노인이 노해 소리쳤다.

그러자 검은 머리의 노인이 분노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바로 검마다. 피를 보고 싶지 않거든 그 아이를 내려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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