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셋으로 무림지존-75화 (75/207)

#075. 결단, 하지만 꿍꿍이

지금까지 시간은 화운의 편이었다.

필요하면 되돌리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 시간이 촉박했다.

천마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공과 아수라 마신의 신력을 융합했다는 천마.

그의 무력이 얼마나 엄청난지는 이미 겪어보았다.

사황마저 대적 불가였다.

게다가 지금 천마에 대항할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경천보패마저 아수라 마신의 권능이라고 했다.

시간을 되돌리는 경천보패가 정말 아수라 마신의 권능이라면 천마에겐 그 시간의 회귀에서 자유로울 힘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천마가 나타나기 전에 대항할 힘을 키워야한다.

지금으로써는 금강부동이 그 유일한 힘이다.

정파무림연합맹.

화운은 맹주 조극산에게 맹의 주요인사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맹주는 이유를 물었으나 화운은 그 자리에서 알게 될 거라고 했다.

맹주는 고심하다 맹의 주요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로 화운을 데려갔다.

맹의 주요인사들 대부분이 참여한 자리였다.

맹을 창설한 초기인지라 수많은 이권을 위한 물밑 작업들이 한창 성행할 때였다. 그래서 각대문파에서는 이런 자리를 등한시 할 수가 없어 빠짐없이 참여했다.

“오늘은 주요안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신풍대주가 여기 모이신 제위들을 뵙고 청할게 있다고 하니 잠시만 시간을 내어주셨으면 하오.”

맹주 조극산이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에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호기심을 가지고 조극산의 뒤에 서 있는 화운을 바라보는 이들과 탐탁지 않다는 표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이들, 백리세가주와 남궁검가주처럼 화운에게 호의적인 사람들까지 실로 다양했다.

“지금 이 자리가 어떤 자린데 청한다고 대뜸 데려온단 말이오? 맹주께서는 여기 모이신 분들이 일개 무력대주나 만나야 할 정도로 한가한 분들인지 아시오!”

화산파 장로 한매검 이심환이 분기를 터트렸다.

그는 맹주가 신풍대주를 밀어주기 위해 일부러 이런 자리를 빌어 인사를 시키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장강에서 세운 공이 있으니 화운을 전면으로 등장시키려는 속셈이라고 여긴 것이다.

조극산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심환과 같은 반응을 보이는 자들이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그래도 맹주의 체면을 생각해서 못마땅해도 대놓고 반발은 하지 않을 거라 여겼다.

오산이었다.

칠대문파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주는 광경이라 입맛이 쓰다 못해 화가 났다.

“화산파시군요.”

뒤쪽에서 화운이 말했다.

“물러나라! 감히 어디라고 끼어든단 말이냐!”

이심환은 이 자리를 빌어 근자에 욱일승천하고 있는 신풍대주의 기세를 꺾어놓을 참이었다.

하지만 그는 화운을 잘못 봤다.

화운이 이 자리에 선 이유조차 완전히 잘못 짚었다.

화운은 앞으로 나서서 모두를 향해 공손히 포권했다.

“그래도 감히······!”

이심환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화를 터트렸다.

“사황의 등장에 대해 말씀드리려 했더니 제 생각이 짧았던 모양입니다. 맹주님께만 따로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시 포권한 화운이 돌아섰다.

이때 좌중은 사황의 등장이라는 말에 크게 술렁였다.

“사황이라니! 사황혈천의 그 사황이란 말이냐?”

남궁검가주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물었다.

막 돌아섰던 화운이 남궁검가주를 향해 돌아서며 대답했다.

“그 사황이 맞습니다. 자세한 보고는 맹주님께 아뢰겠습니다. 그럼.”

화운이 포권한 후 다시 돌아서려고 하자 남궁검가주가 부리나케 외쳤다.

“진정 일백 년 전의 그 사황이 등장했다면 다른 안건을 논할 계제가 아닙니다.”

남궁검가주의 시선은 이심환을 향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사황의 등장이라니! 저 말을 어찌 믿는단 말인가?”

“한매검 선배께서는 화산파의 화산기룡이 저와 같은 말을 해도 의심하고 호통부터 치실 겁니까?”

남궁검가주가 당당히 말했다.

그는 화운이 화산기룡 못지않다고 선언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심환은 남궁검가주의 말이 워낙 날카로워 반박을 못하고 인상만 썼다.

“맹주령으로 명한다. 신풍대주는 지금 이 자리에서 사황에 관한 보고를 하도록 하라.”

맹주 조극산이 명했다.

조극산은 화운이 자신에게 보고할 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기에 내심 기분이 상할 수도 있었으나 사황이라는 존재자체가 워낙 경악스러운 것이라 화운에게 자리를 깔아줄 수밖에 없었다.

이심환을 비롯하여 맹주와 대척점에 선 자들은 맹주령이라는 것 때문에 반발은 하지 않았으나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다.

일부는 고개를 돌려 버리기도 했다.

그들은 화운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화운은 조극산을 향해 공손히 예를 표한 후 모두를 향해 섰다.

자신에게서 고개를 돌려버린 자들도 있었으나 잠시 후면 뚫린 귀가 있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아설 것이다.

“최근에 제천마존의 비동이 있는 일대의 지형이 크게 변해버린 괴이한 일이 벌어져 제가 맹주님의 명을 받아 조사하러 갔었습니다. 저보다 앞서 출발한 조사대가 있습니다만, 그들은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잠깐만! 지금 조사대가 돌아오지 못하는 것과 신풍대주인 네가 관련이 있다는 것이냐?”

청성파의 장로 절광검 종사원이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사실여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공격의 빌미를 잡았으니 일단 찔러 보았다.

“그들은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했을 뿐인데, 어찌 제가 그들을 해쳤다는 의심을 하는 겁니까?”

“어떤 범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감추기 위해 일부러 사건이 벌어졌음을 알리기도 하는 법이지.”

태연히 말하는 종사원의 모습이 화운은 한심했다.

저토록 어처구니없는 말을 저렇게 태연히 할 수가 있는 것인지.

고개를 저은 화운은 그에게서 눈길을 거둬 버렸다.

“조사대는 사황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땐 이미 늦어서 도움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말을 어찌 믿는단 말이냐! 존재하지도 않은 사황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것일 수도 있는 일. 맹주님! 이번 일은 따로 조사를 해야겠으니 신풍대주의 근신을 요청하는 바 입니다.”

종사원이 조극산을 향해 당당히 외쳤다.

몇몇이 무릎을 탁 치며 종사원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기실 그들에게는 조사대가 돌아오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을 누가 해쳤는지도 관심 밖이었다.

이 사건을 빌미로 신풍대주의 활약을 제약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라 할 수 있었다.

“지금 날 의심하는 겁니까?”

화운이 다시 눈길을 던지며 물었다.

그에 종사원이 퉁명하게 반응했다.

“조사대가 파견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그곳에 네가 있었으니 의심하고 조사해보는 건 당연하지 않겠느냐?”

화운은 말없이 종사원을 빤히 응시했다.

종사원은 화운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당황한다고 여겼다.

“당신은 본맹의 정문으로 사황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날 붙잡는 것만 몰두하겠군.”

“말 돌리지 말라!”

종사원이 옳다구나 하고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까마득하게 어린 신풍대주가 맹주만 믿고 함부로 나대고 있으니 이보다 더 나을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막 일어선 순간 화운이 움직였다.

막대한 기의 유동과 함께.

모두가 그걸 인지하고 보았다.

그런데 그 모두의 감각 속에서 화운이 찰나간 사라졌다.

“다시 말씀해 보십시오.”

화운이 나타난 곳은 경악스럽게도 종사원의 코앞이었다.

종사원은 기겁했다.

그는 검을 뽑지도 못하고 굳었다.

“무엄하다! 감히 알량한 무공만 믿고 하극상을 일으키겠다는 것이냐!”

화사파의 장로 이심환이 이때다 싶어 소리쳤다.

그의 손은 어느새 검자루를 잡고 있었다.

화운이 빙글 돌아봤다.

“감히 묻겠습니다. 화산의 장로께서는 절 잡으실 자신이 있습니까?”

“흥! 건방지기가······!”

화운이 다시 움직였다.

이심환은 눈을 부릅뜨며 자신을 향해 일직선으로 쏘아져 오는 화운을 향해 검을 뽑아 휘둘렀다.

하지만 그의 검은 막대하게 일어난 기의 유동만 갈랐다.

화운은 이심환의 측면에 서 있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

“손가락 하나로 날 날려 버린 게 사황이었습니다. 난 상대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부랴부랴 도망쳐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이 자리에서 사황을 상대할 방법을 고민하기보다 한줌도 안 되는 알량한 권력다툼이나 하겠다는 겁니까?”

이심환은 눈만 사납게 떴다.

자신의 검을 벗어나 버린 화운의 경신에 놀랐고, 사황에 대한 화운의 말에 더욱 놀랐다.

화운의 말이 사실이라면 천하정파무림엔 크나큰 재앙이 닥친 셈이기 때문이었다.

“진정하거라.”

남궁검가주가 말했다.

그는 공손한 자세로 이심환을 바라봤다.

“사실여부는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본 후에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이심환은 고심했다.

여기서 검을 거두면 신풍대주에게 쩔쩔 맸다는 소릴 들을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검을 휘두르자니 자신이 없다.

‘이놈이 이렇게나 강했단 말인가? 장강수로왕과 사천독왕이 놈의 무위에 놀라 쫓지도 않았다는 것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이심환이 놀람과 분노 사이에서 고민할 때였다.

“사황에 대한 심각성을 말씀드리고자 제가 잔재주를 부렸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화운이 정중히 포권했다.

기실 화운은 이 자리에서 얻고자 하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적당한 선에서 고개를 숙여준 것이었다.

“숨기는 것이 없어야 할 것이야.”

이심환이 그제야 검을 거둬들였다.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제겐 그게 더 편합니다. 굳이 이런 자리에서 대선배님들께 미움을 살 일도 없으니까요.”

“일단 들어보겠다.”

이심환이 자리에 앉았다.

화운은 모두가 볼 수 있는 자리로 이동했다.

바로 이때 소림의 나한당주가 덜덜 떨리는 모습으로 일어났다.

“시, 시주 방금······!”

“알아보셨군요.”

“정녕······ 정녕 천 년 소림의······!”

“대사님!”

“······?”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다 말씀 드릴 것입니다.”

“시, 시주. 방금 그건······.”

“말씀드리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화운이 워낙 정중한 태도로 말하자 나한당주는 떨리는 가슴을 끌어안은 채 다시 앉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나한당주가 무엇 때문에 이토록 놀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두 사람을 번갈아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화운은 나한당주에게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맹주 조극산을 향해 돌아섰다.

“죄송합니다. 아까 보고를 할 때는 말씀드리지 않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황은 준비한다고 막을 수 있는 자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냐?”

“그가 지금 당장 쳐들어오지만 않는다면 한 가지 방편이 될 수 있는 것이 제게 있습니다.”

“들어보겠다.”

“예.”

화운은 공손히 대답한 다음 좌중을 둘러보았다.

“조금 답답하시더라도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굳이 번거롭게 시간을 끌어야 했던 연유를 알게 되실 겁니다.”

모두를 향해 정중히 포권한 화운은 무당의 우진궁주를 향해 섰다.

그리고 물었다.

“무당은 사황으로부터 천하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당의 보물을 모두에게 공개할 수 있습니까?”

“무량수불. 도를 닦는 자에게 보물은 가장 멀리해야 할 화근덩어리라네.”

“무당 천 년의 보물이라도 그렇습니까? 장교진인께 여쭈지 않아도 그러합니까?”

“상대가 사황이고, 그를 막을 수만 있다면 분명히 그러하다고 말할 수 있네. 장교진인께서도 빈도의 결정을 나무라지 않을 것이네.”

“알겠습니다.”

우진궁주에게 공손히 포권을 한 화운은 이심환을 향해 물었다.

“같은 질문입니다. 화산은 어떻습니까?”

“사황이라는 전제하에 응당 그렇게 할 것이다.”

이심환이 힘주어 말했다.

얼굴 표정으로는 어찌 그런 것을 묻느냐?

결국 허튼소리를 계속 늘어놓은 것이라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드러냈다.

화운은 아미, 청성 등 나머지 칠대문파와 오대세가에도 같은 물음을 던졌다.

모두들 대동소이한 대답이었다.

본심이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누가 이런 자리에서 뺄 수 있겠는가.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사황이라는 전제조건을 다는 것뿐이었다.

소림을 제외한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 화운은 나한당주를 돌아보았다가 다시 좌중 전체를 향해 말했다.

“좀 전에 들으셨다시피 전 맹주님의 밀명을 받아 제천마존의 비동 근처를 살피러 갔습니다. 그곳에 가보셨던 분들께서는 아시겠지만, 온통 기암괴봉 천지인 곳이었습니다. 한데 제가 도착했을 땐 단 하나의 기암괴봉만 남고 모조리 사라져 버린 상태였습니다.”

잠깐 숨을 고르며 좌중을 둘러본 화운은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제가 하나 남은 기암괴봉 아래에 도착했을 때 조사단이 위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냥 떨어진 게 아니라 참혹한 모습으로 쏟아졌습니다. 죄송하게도 쏟아졌다는 말이 가장 정확한 표현일 정도였습니다.”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비는 듯 한차례 눈을 감은 화운.

이때 좌중은 조용했다.

“위에 누가 있어서 그리 참혹한 짓을 벌인 것인지 올라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 노인을 보았습니다.”

피처럼 붉은 적룡포.

활활 타오르듯 새빨간 머리카락.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온 세상을 짓밟을 것 같은 존재감.

화운은 사황의 모습과 기도를 이야기 했다.

이때 좌중이 술렁였다.

모두들 자신들이 기억하는 사황의 외모에 관한 것들을 떠올린 것이다.

화운은 잠시 기다렸다가 한 차례 술렁거림이 지나가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저를 향해 손가락을 한 번 튕겼습니다. 그러자 천지간의 모든 기운이 휘몰아쳐 저를 날려버렸습니다. 다들 고수들이니 아실 겁니다. 몸 안의 공력을 강기로 압축하고 날리기는 쉬워도 천지간의 기운을 그렇게 하기는 정말 어렵다는 것을. 하지만 그는 너무도 쉽게 했습니다. 천지간의 기운이 강환 이상의 힘으로 압축되고 압축되어 거대한 파도가 되어 절 날려 버렸습니다. 좀 전에 보여드렸던 경신이 없었다면 지금 전 이 자리에 서 있지도 못했습니다.”

화운의 말은 쉬이 믿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하지만 분위기라는 게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분위기 상 거짓이기가 더 어려워 보였다.

만일 거짓이라면 불손한 의도로 철저히 기획된 음모일 수밖에 없었다.

남궁검가주와 선우세가주는 화운이 불손한 의도를 가지고 음모나 꾸밀 성격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맹주 조극산에 대해 아는 이들도 그가 다른 뜻을 가지고 모두를 상대로 수작이나 벌일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하여 태반이 경직되어 무겁게 신음했다.

“무량수불!”

무당의 우진궁주가 도호를 침음하듯 중얼거렸다.

화산의 이심환은 어느 선까지 믿어야 할지 화운과 맹주를 번갈아보며 고심했다.

이때 아미의 멸절신니가 나섰다.

“네놈이 말이 사실이라 치자. 아니 맹주의 성향 상 사실이겠지. 이 노구는 사황이 쳐들어온다면 누구보다 앞서 싸우겠다. 네놈 말대로라면 손가락질 한 번에 늙은 뼈다귀가 으스러지겠지만 한 걸음이라도 막을 수 있다면 응당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런데 네놈이 말하는 걸 들어보니 뭔가 대책이 있는 모양이다. 그걸 말해라. 그게 무엇이든 이 노구가 가장 앞서서 싸워주마.”

“예, 그렇잖아도 그 말씀을 올리려던 참입니다.”

공손히 대답한 화운은 소림 나한당주를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모두에게 했던 질문을 던졌다.

“소림은 사황으로부터 천하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소림의 보물을 모두에게 공개할 수 있습니까?”

“시, 시주······.”

나한당주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워낙 놀라운 것인데다 그에겐 그럴 권한이 없었다.

“정녕, 정녕 그것이 맞는 것인가?”

“예.”

화운의 대답에 나한당주는 진저리를 치듯 전신을 떨었다.

불가의 수행을 오래도록 해온 그였으나 천 년 소림의 전설 앞에서는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성질 급한 노구만 궁금해서 똥줄이 타는 것이냐! 얼른 밝히고 사황을 상대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 아니냐!”

아미의 멸절신니가 소리쳤다.

강호 상의 배분으로 따지면 그녀가 이곳에서 가장 높은데다 태생적으로 거침이 없는 성격이었다.

그러자 나한당주의 입에서 신음처럼 흘러나온 한 마디가 있었다.

“금, 금강부동······.”

금강부동!

천 년 소림의 전설로 남아 있는 이름이 흘러나오자 장내에 한바탕 충격이 몰아쳤다.

“금강부동······?”

“······!”

“육조 혜능 선사께서 남기셨다는 그 금강부동 말인가?”

금강부동의 등장에 좌중들이 크게 소란을 떨었다.

걸걸한 성격인 멸절신니조차 말을 못하고 눈만 휘둥그레 떴고, 남궁검가주도 선우세가주도 화산의 이심환조차 눈에 띄게 놀라고 있었다.

화운은 그 모습들을 보며 속으로는 꿍꿍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놀라긴, 그거 당신들한테 싹 다 가르쳐줄 거라는 걸 알면 아예 까무러치겠네? 왜 알려주냐고? 무공에 나름 천재성을 가진 당신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그걸 깨우 친 다음에 날 가르쳐 달라는 거거든. 물론 시간을 되돌리면 다들 잊을 거라 당신들에겐 헛수고 일뿐이겠지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