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셋으로 무림지존-73화 (73/207)

#073. 무영투

공공무영비의 아홉 번째 단계인 구단공은 무영비천(無影飛天)이다.

무영비천은 일섬, 즉 섬전의 속도를 지향한다.

무영비천의 상위 단계로는 공공무영비의 궁극인 십단공 무풍무영(無風無影)만이 남았다.

무풍무영!

바람도 그림자도 없는 경지.

움직이지 않으나 이미 움직인 경지다.

금강부동신법이 지향하는 바와 같다.

오랫동안 마교에 갇혀 있던 무영자가 금강부동에 대해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던 건 무풍무영에 대해 상당한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어서였다.

그리고 그 덕을 본 건 화운이다.

금강부동신법.

공공무영비의 궁극인 무풍무영.

무영자 덕분에 움직이지 않으나 이미 움직인 경지에 한 발 진입한 상태였으니까.

정신을 차린 화운은 멀리 사황을 만났던 기암괴봉이 보이자마자 뒤돌아 냅다 경신을 발휘했다.

그가 펼친 건 구단공 무영비천이다.

일정 공간 내에서 종잡을 수 없는 현묘한 움직임을 보이는 건 공간을 넘나드는 무풍무영, 즉 금강부동신법이 위용을 발휘하겠지만, 일직선으로 멀리 달리는 데에는 무영비천이 가장 빠르기 때문이다.

언제고 무풍무영이나 금강부동신법의 한계마저 넘어서 버린다면 상황이 달라지겠으나 지금 화운의 수준에서만큼은 그랬다.

화운은 섬전이 되어 내쏘았다.

지금 그가 발휘할 수 있는 극한의 빠르기였다.

그런데 웬걸 그의 주위로 막대한 기가 휘몰아쳤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거인이 손을 뻗어 와락 움켜잡으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헉? 사황!’

기겁한 화운은 곧장 금강부동신법을 전개했다.

막대한 기의 파동과 동시에 화운이 사라졌다.

사황의 공격에서 벗어난 화운이 나타난 곳은 삼 장(9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지금 화운이 금강부동신법으로 이동할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였다.

화운은 사황의 공세를 빠져나가자마자 즉시 무영비천을 펼쳤다.

다시 섬전이 되어 내쏜 것이다.

하지만 그런 화운에게로 막대한 기가 휘몰아쳤다.

‘젠장! 뭐가 이렇게 빨라!’

화운은 즉각 금강부동신법을 펼쳐 빠져나갔다.

그리고 다시 무영비천을 펼쳤다.

하지만 사황의 공세를 완전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언젠가 무영투에게 들었던 말처럼 시선이 닿는 곳 모두가 그의 공간인 것 같았다.

‘그래, 해보자 썅!’

화운은 금강부동신법을 펼치고 곧장 무영비천으로 내쏘는 것을 반복했다.

사황이 언제까지 따라붙는지 끝을 보자는 오기였다.

그렇게 일다경(15분)이 흘렀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인의 손 같은 기운이 화운을 붙잡으려는 것까지는 같았다.

하지만 반경 삼 장(9m) 바깥쪽에서 큰 원을 그리며 휘감고 있는 거대한 기의 유동이 동시에 일어났다.

‘이런! 금강부동신법으로 벗어날 수 있는 거리를 파악해 버렸구나!’

화운의 우려는 사실이었다.

금강부동신법을 펼쳐 자신을 잡으려는 공세를 빠져나갔으나 삼 장 바깥쪽에서 휘감고 있는 거대한 기운까지 벗어나지는 못했다.

설상가상 화운이 다시 한번 금강부동신법을 펼치려는 순간 안쪽에서 화운을 움켜잡으려던 기운까지 와락 덮쳐왔다.

‘젠장! 늦었다!’

화운은 즉각 심장을 터트렸다.

죽음이 시간을 되돌렸다.

좀 전에 깨어났던 그 시점으로.

번쩍 정신을 차린 화운은 뒤돌아 냅다 무영비천을 펼치려다 우뚝 멈추었다.

‘잠깐! 굳이 달아날 필요가 없잖아!’

화운은 사황이 있는 기암괴봉을 쳐다봤다.

순간 사황의 거대한 기운이 화운을 와락 움켜잡았다.

퍽!

화운은 다시 심장을 터트렸다.

화운은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 팔짱을 꼈다.

“어디 끝까지 가봅시다!”

순간 사황의 거대한 기운이 화운을 와락 움켜잡았다.

퍽!

화운이 팔짱을 꼈다.

“느립니다. 느려! 굼벵이도 그것보다 빠를 겁니다!”

사황의 거대한 기운이 화운을 움켜잡았다.

퍽!

“사황이시여! 이번엔 성공하시길······!”

화운이 이죽거린 순간 사황의 기운이 화운을 움켜잡았다.

퍽!

“조금만 더 속도를 내보십시오! 할 수 있습니다!”

사황의 기운이 화운을 움켜잡았다.

퍽!

“오오! 이번엔 제법 빨······!”

퍽!

“더 힘내보십······!”

퍽!

“그만!”

“······!”

“그만해라. 그 정도면 알아들었다.”

사황의 짜증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더이상 화운을 붙잡으려는 기운이 휘몰아치지 않았다.

화운은 기암괴봉을 응시하며 물었다.

“정말입니까?”

“올라오너라.”

화운은 잠시 망설이다 기암괴봉을 향해 공공무영비를 펼쳤다.

화운이 기암괴봉 위로 올라서자 사황은 특유의 오만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분노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화운을 쏘아봤다.

“역시! 사황이십니다! 아직 포기하지 않으셨군요! 자 해보십시오!”

화운이 두 팔을 벌리고 섰다.

얼마든지 붙잡아보라는 태도다.

부아가 치민 사황은 화운에게서 등을 돌려 버렸다.

감히 자신을 도발하고 있는 화운의 모습을 보기도 싫었고, 그 도발에 격분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싫었다.

“천마에게도 그렇게 해라.”

“누구든 절 붙잡으려고 하면 이렇게 할 겁니다. 시간을 되돌리는 사람과 결코 잡을 수 없는 것을 무한히 잡으려는 사람, 누가 먼저 지치는지 끝을 볼 겁니다.”

등을 돌리고 선 사황의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짜증을 참느라 어금니를 깨문 것이다.

겪어본 사람만 알리라.

다잡은 물고기를 손에서 놓치는 기분을.

그것도 수차례 반복되면 절간의 고승도 목탁을 집어던질 것이다.

다행히 사황은 어지간한 고승보다 더 수련한 사람이다.

울컥 치밀던 짜증을 금방 잠재웠다.

“하아!”

돌연 화운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간단한 걸 알았다면 마교로 가서 그 고생을 하지도 않았을 텐데. 하아! 누가 이렇게 간단할 줄 알았나!”

화운이 스스로를 타박한 순간.

다시 부아가 치민 사황이 빙글 돌아섰다.

하지만 화운이 더 빨랐다.

퍽!

다시 살아난 화운은 벙글벙글 웃으며 사황이 있는 기암괴봉 위로 올라갔다.

“네놈은 시간을 되돌리는 게 해결책인 것 같으냐! 네놈이 아는 모든 자들을 모조리 찢어 죽여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간만 되돌릴 것이냐?”

“그건 아니지요. 사황께서 그렇게 하기 전에 시간을 이곳으로 되돌리면 되거든요.”

“허면 그 짧은 반복 속에 갇혀 살겠다는 것이냐?”

“어쩔 수 없잖습니까. 눈앞에 계신 분을 죽일 수 있는 힘을 얻을 때까지는 그렇게라도 해야지요.”

화운이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사황은 그 얼굴을 보기가 싫었는지 뒤돌아섰다.

“그렇게 돌아서실 게 아니라 절 불렀으면 무슨 말씀이라도 하셔야지요.”

“천마는······.”

사황은 그렇게 운을 떼고는 입을 다물었다.

아직 생각이 정리가 안 된 모양이었다.

화운이 잠자코 기다려주자 약간의 시간이 지나 사황이 입을 열었다.

“그는 비인의 길을 걷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비인의 길이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 있는 걸 네놈도 보았지 않느냐.”

화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긍한 것이다.

사황의 말대로 천마가 보여준 신위는 인간의 무공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천마의 신위는 끔찍했다.

그리고 충격적이었다.

공력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악마의 손과 발이 일으킨 결과는 섬뜩하리만치 놀라웠다.

아니 그건 단순히 공력으로 만들어진 손과 발 같지가 않았다.

강기가 집약한 형상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그건 실체에 가까웠다.

공력과 실체의 중간 혹은 융합, 그것도 아니면 두 가지가 결합한 그 무언가.

그게 무엇이든 지금으로써는 사황보다 더 두려운 존재임이 분명했다.

“천마지존공과 마신의 혼돈을 융합했다고 했었지요.”

“단순히 공력과 신력의 융합이 아닐 수도 있다.”

사황이 뭔가를 예감한 것처럼 말했다.

“그럼요?”

“본좌도 더 이상은 알지 못한다. 공력과 신력의 융합일 뿐이라면······ 그렇게 진짜 같은 느낌이 들 수가 없는 법이지.”

단호한 느낌이 드는 말이다.

뭔가를 알아챈 것 같은데, 그걸 화운에게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거나 자신의 생각을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거나 그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진짜 같은······ 그래 진짜 같았어. 실체가 있는······.”

화운이 생각하고 있을 때다.

사황이 돌아섰다.

“네놈한테 있는 그 신의 법보.”

화운이 사황을 쳐다봤다.

“너도 들었을 것이 아니냐. 시간을 뒤트는 건 마신 아수라의 권능이라고 천마가 한 말을.”

“아! 저도 들었습니다. 수 천 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거라는 말도 했었지요.”

화운이 눈을 크게 뜨며 대꾸했다.

경천보패가 아수라 마신의 권능이라는 게 사실이라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 수도 있다.

왠지 오싹해진다.

‘혹시 마구 사용한 것 때문에 다른 부작용 같은 게 있는 건 아닐까? 죽으면 아수라 마신한테 끌려간다든지, 영혼이 저당 잡힌 거라든지······ 으으! 끔찍하다! 끔찍······!’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오한이 든 듯 진저리를 치던 화운의 심장이 갑자기 터졌다.

“한 번만 더 절 잡으려고 들면 다신 얼굴 안 봅니다.”

경고를 날린다고 날렸는데 말해놓고 보니 우습다.

둘 사이에 얼굴 보고 안 보고가 무슨 경고가 된다고.

그런데 사황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인상조차 쓰지 않고 하려던 말만 꺼냈다.

“그 신의 법보와 아수라 마신에 대해 조사해라.”

“예. 그래야겠습니다. 응? 왜 제게 명령하십니까?”

“본좌가 천마를 쓰러트릴 때까지 그 법보를 빼앗기지 말아라. 만일 그랬다간 지난 오 년 동안 그랬듯이 네놈이 스쳐간 모든 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것이다.”

사황의 으름장은 오싹한 것이었다.

그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라는 걸 이미 겪어보았질 않은가.

그 끔찍했던 기억으로 인해 화운은 부아가 울컥 치밀었다.

‘당당히 갚아 줄 것이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화운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게 치밀어 오른 화를 다스렸다.

화운은 차분한 눈으로 사황을 응시했다.

그러면서 검을 뽑았다.

“상대가 안 됨을 압니다만, 그래도 보아야겠습니다. 당신의 끝이 어느 정도인지!”

화풀이가 아니다.

이렇게라도 만났을 때 사황이 얼마나 강한지 조금이라도 더 알아내야 했다.

그래야 그에 맞게 준비하는 데에 보탬이 될 것이니까.

화운은 새파랗게 발휘한 검멸을 사황을 향해 냅다 발출했다.

고리모양의 강환 수십 개가 끝도 없이 쏟아지자 사황도 경시할 수가 없어 전력으로 맞받아쳤다.

“발칙한 놈!”

사황의 일갈과 동시에 천지간의 기운이 모조리 일어나 거대한 해일처럼 한 뭉텅이가 되어 전방으로 몰아쳤다.

콰콰콰콰콰쾅!

쉴 새 없이 터지는 폭음.

강기의 파편이 천지간을 찢어발기고, 폭풍이 휘몰아치고 돌풍이 사방을 휩쓰는 가운데 하늘에서 천신의 철퇴 같은 기운이 사황에게로 내리 꽂혔다.

쿠웅!

기암괴봉이 일거에 무너져 버렸다.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죽는 걸 겁내는 놈으로 보입니까!”

허공에 뜬 두 사람이 살벌하게 대치했다.

기습적으로 발휘한 화운의 건곤무상검은 사황의 옷깃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피했다.

맞받아치지 않고 피했다는 건 약간이라도 우려를 한 것이리라.

‘그래, 대적하는 것조차 불가인 상대는 아니었어!’

화운이 반색했다.

하지만 그건 화운만의 착각이었다.

“오냐!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주마! 전륜멸천파!”

중첩하고 중첩하여 가공할 힘을 가진 거대한 멸천의 파도가 화운을 향해 몰아쳤다.

눈을 치뜬 화운은 있는 힘을 다해 검멸을 발휘한 채 멸천의 파도를 향해 와락 달려들었다.

“그래, 해보자 썅!”

화운이 악다구니를 치며 검을 휘둘렀다.

일반적인 검환을 능가하는 검멸이 멸천의 파도를 터트렸다.

하지만 일부에 불과했다.

“젠장!”

범람하는 해일처럼 덮쳐온 멸천의 파도가 화운의 육신을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

화운이 번쩍 눈을 떴다.

육신이 가루가 되는 끔찍한 순간이 떠올라 진저리를 치고 있을 때 멀리 사황이 있는 기암괴봉으로부터 멸천의 파도가 휘몰아쳐 왔다.

“그만하십시오!”

화운이 소리쳤으나 사황은 멈추지 않았다.

어지간히도 성이 난 모양이다.

“다시 반복해 볼까요! 되돌리고, 되돌리고, 되돌리고 또 되돌리고!”

몰아쳐오던 멸천의 파도가 중간에 우뚝 멈추었다.

사황의 고민을 보여주는 듯 잠시 그대로 멈추어져 있더니 점차 사그라져 사라졌다.

“가라. 더는 볼 일이 없느니라.”

“갑니다. 더는 볼 일이 없습니다.”

누가 누구의 명을 듣는 사이가 아니라는 뜻으로 사황의 말을 고스란히 되돌려주자 기암괴봉에서 막대한 기의 유동이 터졌다.

화운은 무영비천을 펼쳐 삽시에 멀어졌다.

***

화운은 정도무림연합맹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의 상황을 정리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지금의 삶에 충실해야 하니 떠나기 전의 상황을 생각해 둘 필요가 있었다.

사황을 만나기 전의 일을 몇 가지만 간추려 보면 비천각에서 정보를 가지고 장난을 치던 우문가주를 혼내주었고, 앞으로 중요 정보를 맹주부로 직접 전달하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리고 장강으로 가서 장강수로왕과 사천독왕을 혼내주었고, 상당 숫자의 선단을 부숴놓았다.

흑사채주, 교룡채주, 무하채주가 죽은 것까지 장강수로십팔채의 선단을 지켜보던 비선들에 의해 정무맹으로 보고되어 복귀하는 중에 정문을 지키던 수문위사들의 환대를 받았다.

신풍대원 세 사람이 새로 마련된 거처로 간 사이에 화운은 맹주와 독대하였고, 기암괴봉이 있는 곳을 조사하러 갔다가 사황을 만났다.

그러니 지금 복귀하면 맹주에게 기암괴봉을 조사한 결과를 보고 해야 한다.

자신에 앞서 출발했던 조사단의 전멸 소식과 함께.

“사황의 존재를 말해야 하나?”

사황혈천!

사황은 일백 년 전의 존재다.

그가 등장했다고 하면 믿을까?

그냥 대적불가인 괴인이 등장했다고 할까?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봐도 정체불명의 괴인이 등장했다고 하는 게 귀찮음을 면하는 길일 것 같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자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생겼다.

“어르신을 구하러 가야 하는데······.”

무영자를 구하는 일은 무영투와 함께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줄곧 했었다.

화운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 보니 천병가가 그리 멀지 않았다.

화운은 그리로 걸음을 돌렸다.

천하제일공방 천병가.

화운이 도착하자 천병가주가 반갑게 맞았다.

난생 처음 보는 재질인 이무기 비늘을 가져다주어 철공으로서 고마운 마음이 컸기에 화운의 방문이 달가운 천병가주였다.

“무영투 영감님을 만나러 오셨는가?”

“예. 어디 안 가고 이곳에 계시지요?”

“몸이 근질거리는지 여기저기 바람 쐬러 다니시더니 지금은 이곳에 계시네.”

“돈 걱정은 마시고, 영감님이 해달라는 건 다 들어주십시오.”

“해줄 게 뭐 있겠는가? 그저 먹는 거나 좀 신경 써줄 뿐.”

“예. 계속 그렇게 신경 써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근데 정확히 무슨 사인가?”

“그냥 한 식구 같은 사이입니다.”

천병가주는 화운이 얼버무리자 밝히길 꺼려하는 모양이라 여기며 더는 묻지 않았다.

“여기에 기거하시네. 들어가 보게.”

“예.”

화운은 천병가주에게 인사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어랏? 니놈이 어쩐 일이냐!”

무영투가 놀라 소리쳤다.

화운은 무영투의 얼굴이 이토록 반가울 줄은 몰랐다.

마지막으로 봤을 땐 사황의 졸개들한테 붙잡혀 모진 고문을 받아 무척 안쓰러웠는데, 이렇게 멀쩡한 모습을 보니 절로 미소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진짜 남 같지가 않네.’

화운은 웃는 얼굴로 무영투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 시선이 너무 은근했던 것일까?

무영투가 ‘이 미친놈이 왜 이래?’ 그런 표정을 지었다.

“영감님.”

“나한텐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뭐든 달라고 하지 마.”

“뭘 얼마나 빼앗겼다고 그렇게 정색을 하고 그러세요? 이번엔 제가 드리려고 하는데 그냥 갈까요?”

“뭔데?”

무영투가 달려들 듯 다가와 물었다.

“영감님.”

“왜?”

화운은 잠시 입을 다물고 빤히 응시했다.

무영투만 생각하면 주고받고 그렇게 투닥거리기나 할 사이인데, 지금도 명옥에 갇혀 있을 무영자를 생각하면 기분이 착잡하게 가라앉는다.

무영자를 만났을 때가 지금으로부터 오 년 후인 셈이니, 그를 구해내는 걸 조금만 더 서두른다면 그때보다는 몸 상태가 나을 터였다.

그렇다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작정 갈 수도 없고, 단단히 준비한 후 무영투와 함께 구하러 가는 것이 사제지간인 두 사람에겐 더 뜻깊을 것 같았다.

‘이놈, 이거 뭐하는 수작이지?’

무영투의 얼굴에 경계의 빛이 떠올랐다.

무영투는 지난번 대환단을 빼앗길 때부터 느끼고 있었다. 화운이 자신의 머리 위에 앉아 있음을.

그래서 자꾸만 경계심이 들었다.

그 모습에 화운이 한 번 웃어 보인 후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영감님, 아무것도 묻지 말고 제가 가르쳐 드리는 거 이곳에서 수련만 하십시오. 그리고 어느 정도 흉내를 낼 정도가 되면 멀리 떠날 준비를 한 다음에 정무맹으로 절 찾아오십시오.”

“······!”

“약속부터 하십시오. 그러면 영감님께서 깜짝 놀랄 만한 무공을 지금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약속! 약속한다! 지금 한다. 아니 지금 했다! 뭐냐? 뭘 가르쳐 주겠다는 거냐?”

“무영비천입니다.”

“무, 무영비천이라고?”

무영투의 두 눈이 잔뜩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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