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하남성 개봉.
“천마는 보지 못했으나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어 지존께 아뢰고자 달려왔습니다.”
구혼사존의 말에 사황이 돌아섰다.
“말하라.”
“그 아이가 마교에서 공개처형을 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공개처형?”
구혼사존은 자신이 알아낸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사황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신물(神物)이 가까이에 왔음을 인지하지 못한 겐가?’
그런 거라면 탈마의 경지에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걸 의미한다.
그건 곧 힘겨운 싸움이 될 거라는 뜻이기도 했다.
탈마의 경지는 곧 영육(靈肉)의 경계를 넘어 도가의 조화를 좇는 것.
입신한다는 걸 의미한다.
입신(入神)!
신의 경지에 들어서는 것.
열반에 들기를 바라는 불문이나 우화등선하기를 바라는 도문에서 궁극적으로 염원하는 경지다.
허나 알고 보면 거창한 허울일 뿐이다.
신의 경계로 넘어선 순간부터 인간들의 땅에 미치는 힘이 미약해지기 때문이다.
무공은 사라지고 신력만 남는다.
신의 법력은 악귀들에게 발휘하기 위한 것이지 인간을 다스리고자 만들어진 권능이 아니다.
결국 무인으로 남고자 하는 이들에겐 궁극의 끝에 절망이 도래한다.
검성이 이기어검의 경지에서 멈춰버린 것도 그 같은 현상의 일환일 것이다.
‘인지하지 못했을 리 없다. 나서지 않은 건 기다리는 것일 게다. 본존이 오기를······. 좋다. 십만마도가 보는 가운데 그를 넘어서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사황은 결심했다.
천마를 만나기로.
“얼마나 남았더냐?”
“이틀 남았습니다.”
“수고 많았다. 시간이 뒤틀린 후에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존명!”
구혼사존이 넙죽 허리를 조아린 순간 사황의 존재가 사라졌다.
***
천종천마교 북명전 지하 명옥.
닷새라는 시간이 무척 아쉬웠다.
열흘 정도만이라도 시간이 더 있다면 금강부동신법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래도 다행이야. 금강부동을 얻었으니 일신에 익히기만 하면 돼.’
금강부동을 제대로 연마한다면 사황과 싸울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한 금강부동은 금강부동신을 뜻하는 게 아니다.
금강부동신은 금강부동을 이용한 신법일 뿐이다.
그만큼 금강부동은 심오하면서도 그 묘용이 방대했다.
무당검성께 사사했던 오 년의 기간으로도 사황에게서 벗어나는 것조차 힘에 겨웠지만, 그 기간이 헛된 건 아니었다.
무당검성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이틀이라는 짧은 기간만으로도 금강부동신법을 흉내 낼 수 있었고, 다시 닷새가 지나 상당한 수준으로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만류귀종!
만 가지 흐름도 종극에는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는 뜻이다.
무당의 검학을 익히든 검마의 검학을 수련하든 궁극의 경지에 도달하면 결국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불문의 무학이라 하여 거기서 벗어날 순 없다.
무당검성의 가르침이 금강부동을 익히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유였다.
“어르신께서 워낙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고민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잖습니까.”
그러고 보니 무영자의 공을 뺄 수가 없다.
이곳에 갇힌 십오 년 정도 되는 세월 동안 금강부동에 대해 끊임없이 궁리한 무영자였다.
그가 아는 무학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금강부동을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그 결과 화운이 금강부동이라는 바다에서 헤매지 않도록 바르게 인도할 수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하여도 이레 만에 그 정도까지 익힐 줄이야. 무공의 천재 그 이상이 아니고서야······.”
무영자는 말을 맺지도 못하고 혀를 내둘렀다.
그만큼 놀라워서다.
소림 천년의 전설이라는 금강부동이지 않은가.
하지만 알고 보면 화운은 금강부동을 익힐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오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무당검성에게 절대무학에 대해 배웠다.
그 이전엔 풍검을 수련하여 결에 대해 상당한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공력에 대한 공부는 이기제기의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그런 상태에서 마주한 게 금강부동이었다.
금강부동은 공간을 지배하는 무학.
공간은 곧 결의 운집이자 융합이니 화운으로서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절대무학을 만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제가 익히고 있는 무공들이 기본공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정도로 들어맞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그나저나 오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화운이 얼굴 표정을 굳혔다.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으나 마경이 말한 닷새가 되었으니 오늘 중으로 데리러 올 것이 틀림없었다.
“난 괜찮다. 네가 데리러 올 때까지 편하게 지내게 되었잖느냐.”
무영자가 웃었다.
일부러 웃어주는 웃음이 분명했다.
그라고 어찌 가고 싶지 않겠는가.
상황이 허락하지 않으니 어른으로서 담대함을 보여준 것이다.
“얼마나 걸릴지 약속을 드리지 못합니다. 어쩌면 다시 시작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무영자를 데리고 가지 않는 이유는 아직 그의 몸이 안심할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잡아 놓은 생명이라 약간의 충격만으로도 심각한 상태를 초래할 수 있었다.
“금강부동을 완성하던, 다시 시작하던 데리러 와주겠다고 했잖느냐. 그거면 됐다.”
무영자는 이곳 명옥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게 가능하게 된 데에는 옥주와 옥지기들이 이쪽 두 사람과의 거래에 응해주었기 때문이다.
공공무영비를 가르쳐 주는 대가로 화운이 몰래 잠입해 돌아올 때까지 돌봐주기로 한 것이다.
편하게 누울 수 있는 자리와 약간의 물과 음식만 제공하면 공공무영비라는 희대의 경신술을 배울 수 있거늘 누가 마다하겠는가.
“석 달 정도면 많이 나아지실 테니, 그때 쯤 모시러 오겠습니다. 제자인 무영투 영감님이랑 만나셔야죠.”
“그래, 기다리마.”
화운은 내키지 않은 약속을 했다.
지킬 수 있을지 확신할 순 없지만 그래도 해야 했다.
그것이 기대가 되고 희망이 되기도 하는 법이니까.
화운은 그렇게 작별의 인사를 미리 나눈 후 아침 연공을 시작했다.
금강부동.
소림의 육조 혜능이 만들었다는 이 전설의 무학은 병기술도 아니고, 권장박투술도 아니었다.
공간을 여의하는 것이라 신술에 가까웠다.
‘자, 시작해 볼까!’
명옥 한복판에 선 화운.
이윽고 그를 중심으로 막대한 기의 파동이 휘몰아쳤다.
공간이 뒤틀리고, 공간과 공간이 이어진 순간 화운이 한 걸음 내디딤과 동시에 사라졌다.
그리고 화운이 나타난 건 오 장 떨어진 곳이었다.
팍!
화운은 나타남과 동시에 사라졌고, 다시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막대한 기의 파동이 휘몰아쳤다.
그렇게 십여 번을 이동한 화운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모르는 이가 보았다면 화운이 극쾌의 궁극에 다다랐다며 놀라워할 정도로 대단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화운은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금강부동, 금강은 움직이지 않아야 해!’
그가 생각하기에 금강부동의 요체는 그 이름 그대로인 것 같았다.
아마도 육조 혜능이 달마를 따라가서 본 광경은 금강신이 석상처럼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채 악귀들을 물리치는 광경이었을 것 같다.
그러니 부동이라고 명명한 것이겠지.
‘어쨌든 대단해! 이건 무학의 궁극을 넘어선 것이야. 천마가 탄식할 만해!’
화운의 판단으로는 금강부동은 활용할 수 있는 묘용이 무궁무진했다.
지금 당장 펼칠 수는 없지만, 머릿속에 그 묘용들이 하나씩 실체가 그려지고 있으니, 그 묘용들로 사황을 상대할 날이 틀림없이 올 것이라 기대되었다.
꾸그그그긍!
화운의 수련을 방해하며 철문이 열렸다.
바로 이때 화운은 철창 안으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뭐냐!”
명옥 안으로 막 들어서던 북명사자들이 난데없이 불어닥치는 경풍에 놀라 경계하며 소리쳤다.
화운이 움직이면서 발생한 경풍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면 가끔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명옥주가 천연덕스럽게 응대하자 북명사자들이 명옥 안을 쓱 둘러보더니 경계를 풀었다.
“마운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 안내해라!”
“오실 줄 알고 이곳으로 데려다가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명옥주가 고개를 조아리며 철창 안의 화운을 가리켰다.
이때 화운은 태연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하단전의 공력을 억누르고 있음은 물론이었다.
북명사자들은 철창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다 곧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어찌하여 혈포삭을 풀어준 것이냐!”
엄히 소리치는 것이 여차하면 죄를 묻겠다는 얼굴이라 명옥주는 기가 막혔다.
‘니미, 그렇게 간단히 끊어져 버리는 게 뭐 대단하다고!’
불만이 있다고 하여 내색할 수는 없는 일.
“그게 그러니까······.”
“어서 고하지 못할까!”
“이깟 정파의 쥐새끼 하나 끌고 가는데 혈포삭으로 묶고 가면 두려워서 그러냐고 사람들이 한 소리 할까봐 풀어놓았습니다.”
명옥주가 빠르게 내뱉었다.
한 마디로 말해 니들 위신을 생각해서 풀었다는 뜻이다.
짧은 순간 어찌 이리도 그럴 듯한 말을 생각해 냈는지 옥주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님을 보여주었다.
북명사자들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다시 혈포삭으로 묶자니 명옥주 말대로 두려워서 그러냐는 말을 들을 것 같다.
하단전이 봉인되어 있으니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도 들어 별말 없이 철창의 문을 열었다.
“나와라!”
화운이 밖으로 나오자 북명사자 둘이 앞장을 서고 셋이 뒤를 차단한 대열을 갖추었다.
“저, 이건 어쩝니까?”
명옥주가 물었다.
그가 화운의 검을 들고 있었다.
그러자 맨 후미에 있던 북명사자가 검을 넘겨받았다.
“가자.”
그렇게 화운은 명옥을 빠져나가게 되었다.
갇힌 지 이레 만의 일이었다.
지상 층으로 올라가자 북명사신이 북명사자 수십 명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혈포삭은 어찌 푼 것이냐?”
북명사신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하단전을 점혈까지 했는데, 혈포삭으로 두 손까지 묶고 가면 정파의 쥐새끼가 무서워 그러는 것이냐는 말이 나올까 싶습니다.”
“이런 병신! 뭔 헛소리야! 포승줄은 죄인이라는 표식이거늘 어찌 묶지도 않고 간단 말이냐! 어서 묶어라!”
북명사신의 호통에 북명사자들이 부랴부랴 혈포삭을 꺼내 화운의 두 손을 묶었다.
북명사신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찍었던 혈도들을 점검했다.
“······!”
북명사신이 흠칫했다.
혈도들이 남김없이 풀려 있었기 때문이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화운의 이죽거림이 들려온 순간.
혈포삭을 끊어버린 화운의 주먹이 일직선으로 뻗었다.
퍼억!
북명사신의 고개가 뒤로 확 넘어갔다.
무지막지한 일격을 얼굴 정면에 허용한 북명사신은 순간적으로 정신 줄을 놓아버렸다.
“억?”
“······!”
북명사자들이 화들짝 놀라기 시작한 순간 화운이 질풍이 되어 그들을 휩쓸었다.
싸움이랄 것도 없는 일방적인 공격이었다.
오십이 넘는 숫자가 그야말로 순식간에 두들겨 맞아 픽픽 고꾸라졌다.
마지막 북명사자가 통나무처럼 굳은 채 쓰러지자 화운은 손을 뻗었다.
그러자 바닥에 뒹굴고 있던 그의 검이 손아귀로 빨려왔다.
지하 명옥에서 화운의 검을 회수해온 자가 쓰러지면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검까지 회수한 화운은 북명사신 앞에 섰다.
“손 하나 대지 않을 거라더니 날 무저옥에 가둬?”
빡!
간신히 정신을 추스르려던 북명사신의 머리통이 좌로 팍 꺾였다.
“끄으으윽!”
신음하며 머리를 바로 세우는 북명사신.
“명옥은 죄질이 가장 악랄한 죄인들을 가두는 곳이라며? 난 용의자일 뿐인데 거기다 가둬? 그 덕분에 어르신을 만나긴 했지만 공과 사는 구별해야겠지!”
화운의 주먹이 다시 뻗었다.
퍽!
얼굴이 곤죽이 된 북명사신이 저만큼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좋아, 지금쯤이면 다들 공개처형 장소에 가 있겠지?”
그렇다는 건 외부인인 무불통 홀로 여기 북명전 어딘가에 남아 있을 공산이 크다는 걸 의미한다.
금강부동을 얻었음에도 무불통을 만나려는 건 그의 진법까지 활용할 수 있다면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화운은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저쪽에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보였다.
화운은 계단을 따라 바람처럼 움직였다.
곳곳에 경비를 서는 북명사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화운의 존재를 눈치 채고 경계하는 순간엔 무지막지한 주먹이 머리통을 가격한 후였다.
북명전은 지상 오층의 건물이었다.
화운은 순식간에 오층 끝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경계를 서는 북명사자들만 보였지, 무불통 비슷하게 생긴 사람조차 보이지가 않았다.
심지어 북명전의 주인인 북명우사조차 없었다.
화운은 오층 경계를 서는 자에게 물었다.
“무불통은 어디에 있지?”
“······!”
화운은 검을 뽑아 검날을 목에다 댔다.
“오 척의 키에 머리통이 거의 반은 차지할 거다.”
“아, 아수라장으로 갔습니다.”
“아수라장?”
“아수라신의 석상이 세워져 있는 광장입니다. 오늘 정파놈의 공개처형이 있어······.”
화운이 혹시 그 정파 놈인가 싶어 말꼬리를 흐리는 북명사자.
“북명우사도 거기에 갔나?”
“예.”
“흠, 그렇단 말이지······.”
잠시 고민하던 화운은 검을 치우며 북명사자에게 말했다.
“벗어.”
“······!”
북명사자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