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셋으로 무림지존-68화 (68/207)

#068. 무영자

사람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선천지기가 있다.

사람에 따라 특성도 양도 다 다르지만, 선천지기 없이 태어나는 이는 없다.

선천지기야말로 생명의 젖줄이자 그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선천지기가 소멸하면 생명도 끝나는 것이다.

무영자는 그 선천지기가 다했다.

화운이 내력을 주입하여 그 선천지기를 북돋아주려고 살펴보니 이미 소멸되고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선천지기가 자리하는 심장에 다른 기운이 미약하게나마 존재하고 있었다.

화운은 그 기운의 정체를 단박에 알아봤다.

‘대환단이다! 이건 대환단의 기운이 틀림없다!’

백리연과 남궁현에게 대환단을 복용시키면서 그 특유의 약력을 기억하고 있어 단박에 알아챘다.

무영자가 이미 열두 번은 두 죽었을 정도로 끔찍한 몰골을 하고도 지금껏 버텼던 건 대환단의 약력 때문이 틀림없었다.

화운은 자신의 내력으로 꺼져가는 촛불처럼 미약하기 짝이 없는 대환단의 기운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대환단의 약력에 내력의 일부를 보탰다.

부드럽기 짝이 없는 나비의 날갯짓만으로도 훅 꺼져 버릴 정도로 위태로운 지경이라 극도로 세심함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화운이 날려 버렸던 옥지기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전부 죽여 버리기 전에 한쪽으로 조용히 물러나 있어. 숨소리도 크게 내지 마.”

화운이 말했다.

명옥주를 향한 것이었다.

화운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다고 하여 명옥주의 무위가 형편없는 건 아니다.

명옥의 책임자가 될 정도로 나름 한가락 했다.

명옥주는 화운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보았기에 기습을 해볼까 고민했었다.

화운처럼 내력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내상을 돌볼 땐 외부의 충격만으로도 두 사람 다 화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고민하던 차에 화운이 아무렇지도 않게 경고를 하자 기습이고 뭐고 그런 생각은 단번에 날려 버리고 옥지기들을 향해 잽싸게 움직였다.

“조용히, 지금부터 찍 소리도 내지 마.”

그렇게 명옥 안이 조용해진 가운데 화운은 무영자를 살리고자 안간힘을 썼다.

반 시진(1시간)이 흐르는 동안 화운은 미동도 않고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이미 소진할 대로 소진해 버린 대환단의 약력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순 없었다.

무영자의 숨만 틔워준 화운은 손을 떼고 고민했다.

이대론 무영자를 살릴 수 없다.

선천지기를 대신한 대환단의 약력, 이젠 대환단의 약력을 대신할 또 다른 기운이 필요했다.

‘해보자!’

화운이 검을 뽑아 자신의 팔뚝을 그었다.

뚝뚝뚝뚝!

붉은 피가 무영자의 입가로 떨어졌다.

화운은 무영자의 입을 벌려주었다.

피가 어느 정도 고이면 목울대를 자극하여 삼키도록 했다.

그렇게 반 사발이 조금 넘는 정도 되는 양을 먹인 후 손을 뻗어 무영자의 가슴에 손바닥을 붙였다.

그리고 곧 중단전의 기운을 조심스레 주입했다.

화운은 꺼져가는 유등에 새로운 기름을 채우듯 중단전의 기운으로 대환단의 약력을 대체할 생각이었다.

자신의 피 속에는 영약의 기운들이 적잖이 남아 있을 것이니 그것 또한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성공 여부는 알 수가 없다.

결과에 미칠 변수가 워낙 많아 어떻게 될지 불확실했다.

하지만 화운은 성공할 것 같았다.

중단전의 기운이 늘 심장과 함께하는 기운이기 때문이었다.

극도로 집중하는 화운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다.

한 시진(2시간) 후.

화운의 생각이 들어맞아 무영자가 살았다.

심장의 박동이 이전보다 훨씬 더 활기찼고 호흡도 생기가 돌았다.

화운이 그제야 안도하는 가운데 다시 한 식경이 지나자 무영자가 눈을 떴다.

무영자는 정신이 완전히 들어오지 않은지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고 눈알을 굴려 주위를 살펴보기를 반복했다.

화운은 그런 무영자 앞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무영자는 일각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꿈······ 인가?”

“여긴 천종천마교 명옥입니다. 현실이라는 뜻이지요.”

화운이 대꾸하자 무영자의 시선이 화운에게 꽂혔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한참을 쳐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꿈······ 돌려줘.”

“······?”

“닭고기 먹는 내 꿈······ 돌려줘.”

화운은 황당했다.

기껏 살려주었더니 닭고기 먹는 꿈 타령이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얼마나 오랫동안 못 먹고 살았으면 이럴까 싶어 안쓰럽다.

화운은 명옥주를 돌아봤다.

“거기 닭고기 가져와.”

명옥주가 옥지기 중의 하나를 등 떠밀었다.

얼떨결에 떠밀린 자가 닭고기가 든 그릇을 가져왔다.

화운은 그릇을 받아 무영자 앞에 내밀었다.

닭고기를 본 무영자의 눈빛이 돌변했다.

화운은 무영자가 손을 뻗자 잽싸게 그릇을 치워 버렸다.

무영자가 당황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로 쳐다봤다.

“이거 전부 드릴 테니까, 제발 천천히 드십시오. 천천히. 맛을 느끼면서 아주 천천히요. 목에 걸릴 정도로 허겁지겁 먹으면 빼앗을 겁니다. 아셨죠?”

화운은 진심을 담아 걱정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무영자가 뻗었던 손을 거둬들였다.

화운은 그런 무영자 앞에 그릇을 내밀었다.

무영자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릇을 받았다. 그리고 그릇 안으로 손을 집어넣으려다가 화운을 쳐다봤다.

“천천히 드십시오. 그거 전부 먹어도 됩니다.”

무영자는 그제야 손을 집어넣어 닭고기 한 점을 뜯어 입으로 가져갔다.

천천히 입이 움직였다.

씹는 다기 보다는 우물거리는 것에 가까웠다.

이가 성치 않아서다.

화운은 무영자가 천천히 먹는 것을 지켜본 후 다시 명옥주에게 고개를 돌렸다.

“거기 물도 가져와.”

옥지기 중의 하나가 투박하게 생긴 물주전자를 가져다주었다.

화운은 물주전자를 무영자가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올려두었다.

“아무 걱정 마시고 천천히 드십시오. 그래야 삽니다. 무엇보다 사는 게 우선이니까, 천천히 드십시오.”

화운의 말에 무영자는 정말 천천히 먹었다.

입안의 닭고기가 걸쭉해질 때까지 씹었다가 물과 함께 삼켰다.

그리고 그 과정을 반복했다.

화운은 무영자가 먹는 모습을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묘한 기분과 함께.

‘그래, 사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게 맞아. 나도 다른 사람들도 사는 것에 우선해야 해.’

지금껏 친인들을 지키고 더 나은 삶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지금은 사황이라는 거대한 존재에게 모든 걸 잃어버렸지만, 그걸 되돌려 받기 위해 여기에 있다.

정말 어떨 때는 내가 왜 이래야 하나? 왜 이렇게 정신 사나울 정도로 바쁘게 사느냐는 의문도 들었다.

그런 의문이 들 때도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확신이 든다.

이게 맞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거다.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반복할 때마다 산다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주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에.

그것이 생명체로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니까.

화운이 그런 생각을 한참 하고 있을 때 무영자가 먹던 것을 멈추었다.

그릇 안에는 아직 닭고기 많이 남아 있었지만 더 이상 먹지 않았다.

“왜 그러십니까?”

화운이 의아하여 물었다.

“꿈을 꿨다. 닭고기 먹는 거랑······ 어머니 젖처럼 달디 단 걸 마시는 꿈이었다. 그게 뭘까? 암만 생각해 봐도 그건 모태주가 아니었을까 싶다.”

무영자가 먹은 건 화운의 피다.

피맛을 달디 단 젖처럼 느낀 모양이다.

화운은 살짝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술은 없습니다. 있어도 아직은 안 됩니다. 간신히 살려드렸는데 술 때문에 가시면 안 되죠.”

무영자는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화운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맑아져 더는 말하지 않았다.

“묻고 싶은 게 있다.”

“그러셔야죠. 저도 묻고 싶은 게 있거든요.”

“우선 살려줘서 고맙다.”

“당연한 일이니까 생명의 은인이라는 둥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연한······ 잠시 쉬자.”

무영자는 말을 하는 것도 힘이 드는 모양인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화운은 그런 무영자를 빤히 바라보다 명옥주에게 고개를 돌렸다.

“옥주, 수하들 전부 데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감히 누구의 명이라고 거부할까.

명옥주는 옥지기들을 전부 데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제 명옥 지하일층엔 화운과 무영자만 남았다.

“말씀하시는 게 힘들면 제 말을 먼저 들으십시오.”

무영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화운은 무영자의 정체부터 물었다.

“무영자 맞으시죠?”

끄덕끄덕!

“무영투가 제자 맞습니까?”

“그 녀석을 아느냐?”

무영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예. 잘 아는 사이가 맞습니다.”

“녀석은 잘 지내느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 다행이구나. 워낙 제멋대로인 녀석이라 여기저기 미움이나 사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했는데.”

무영자는 빠르게 말하고는 힘겨운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입을 다물었다.

숨도 좀 가빠졌다.

화운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밖으로 내보내긴 무리야.’

화운이 살려놓긴 했으나 몇 년은 조식을 취해야 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화운이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인데, 지금 화운이 이곳에 있는 이유가 무불통을 만나기 위해서이지 않던가.

그렇다고 이렇게 살려놓고 나 몰라라 할 수도 없고.

화운은 고심 끝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니 무영투와 함께 구하러 오겠다며 희망을 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제가 무영투 영감님을 처음 만난 건 제천마존의 비동입니다. 제천마존이 누군지는 아시지요? 그런 고수의 비동이 알려졌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겠습니까.”

그렇게 말을 시작한 화운은 자신에게 벌어진 일과 사황의 등장 그리고 오 년 만에 나와 보니 천하가 사황에게 쑥대밭이 되어버린 이야기까지 오랜 시간을 들여 이야기 했다.

화운의 긴 이야기가 끝이 나도 무영자는 눈만 끔벅거렸다.

화운은 무영자가 볼 수 있도록 공공무영비를 펼쳤다.

무영자의 눈이 커지자 다시 돌아와 공공무영비의 구결을 들려주었다.

그러자 무영자의 눈이 더 커졌다.

“제가 여기 마교로 온 건 무영투 영감님이 무불통에 관한 말을 해주어서입니다. 무불통은 진법의 대가인데 그의 진법을 이용하면 사황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단 만나보려고 왔습니다.”

화운은 마교로 와서 자신이 여기에 갇히게 된 과정까지 이야기 했다.

그리고는 놀란 눈만 끔벅거리고 있는 무영자를 보며 웃었다.

“그러고 보면 운명이니 인연이니 그런 게 진짜 있는 모양입니다. 무영투 영감님이 공공무영비를 비롯해서 제게 손해 좀 보셨는데 아무래도 그게 다 이곳에 계신 스승님을 구하게 될 운명이었기 때문인 모양입니다. 인연이었던 거지요.”

화운은 자신이 말해놓고도 그럴 듯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다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어르신을 모시고 나갈 수가 없어서입니다. 물론 무불통을 만나고 난 후에도 상황이 허락된다면 반드시 모시러 올 겁니다만.”

무영자는 화운의 말을 이해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왠지 희망이 사라진 사람처럼 축 처졌다.

“제가 사황을 물리칠 방법을 찾게 되면 시간을 되돌릴 겁니다. 그럼 무영투 영감님과 함께 어르신을 구하러 오겠습니다.”

“정말인가?”

무영자가 반색했다.

“무영투 영감님께는 참 화도 많이 났습니다만, 이래저래 도움을 받은 게 많아서 마음에 빚 같은 게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고초를 겪고 계신 분을 어찌 모른 척하겠습니까. 사람 새끼라면 그래서는 안 되죠.”

화운은 진심 어린 얼굴로 말했다.

그 진심이 통한 것일까, 무영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화운을 빤히 응시했다.

지금 데리고 나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화운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운명과 인연······ 그래, 어쩌면 자네 말이 맞는 모양이구먼.”

“그렇지요. 제가 무영투 영감님과 처음 만날 때만 해도 이렇게 단단한 인연으로 얽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인연······ 그래, 인연. 우리의 인연은 그게 다가 아닌 모양이야. 아무래도 날 구하기 위해 제자 놈을 만난 게 아니라 날 만나기 위해 제자 놈을 먼저 만나게 된 모양이네.”

“예?”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무영자의 말에 화운은 의아하여 쳐다봤다.

무영자는 눈을 감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 가만히 있었다.

화운은 그가 눈을 뜰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한참 만에 눈을 뜬 무영자는 화운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내놓았다.

“금강부동. 소림의 전설이라는 금강부동이라면 사황에게 맞설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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