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셋으로 무림지존-67화 (67/207)

#067. 왜 그걸 이제야 말해!

쿵!

무저옥의 철문이 닫히는 소리다.

검을 회수한 화운은 명옥주와 옥지기 네 명을 무저옥 안으로 걷어차 버렸다.

횃불 하나를 던져주고는 철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철문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그러고 나니 방해꾼도 없고, 시간도 충분했다.

화운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중단전의 공력을 움직였다.

그제야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던 화운에게서 비범한 기세가 일어났다.

상단전과 하단전을 이어주는 게 중단전의 효용인 데다 중단전의 위치가 심장 가까이라 패도적인 건 좋지가 않았다.

화운 역시 그러했다.

하단전의 공력이 폭풍이라면 중단전의 공력은 질풍이었다.

불러주기 전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잠잠했다.

화운이 운행을 시작하자 질풍처럼 중단전에서 쏟아져 나온 기운이 하단전의 출입을 막고 있는 혈도들을 하나씩 풀어나갔다.

북명사신이 제법 단단히 막아놓았으나 막힌 혈도들을 전부 푸는 데에 반각도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화운의 공력이 북명사신에 비해 훨씬 더 화후가 깊고 뛰어나다는 방증이었다.

“음, 들어오긴 했는데, 이젠 어쩐다?”

하단전의 봉인을 푼 화운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들어오면서 관찰한 결과 밖으로 나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단전의 공력마저 봉인을 풀었으니 반뼘이 넘을 것 같은 철문이라도 부숴 버리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문제는 무불통의 위치다.

그가 있는 곳을 알아야 그를 데리고 북명전 밖으로 달아나기라도 할 것이 아니겠는가.

“북명전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무작정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는 하나라도 더 알고 나가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든 화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깔고 앉았던 철문을 들어 활짝 열었다.

그 소리에 무저옥 바닥에서 목말을 탄 사람 위에 또 다른 사람이 목말을 타는 방식으로 인의 탑처럼 쌓고 있던 네 명이 깜짝 놀라 와르르 쓰러졌다.

공공무영비를 펼쳐 바닥에 부드럽게 착지한 화운은 명옥주와 옥지기들을 쓸어보았다.

모두들 방금 다친 곳을 주무르며 두려운 얼굴로 화운을 쳐다봤다.

“북명전에 상주하는 인원은 총 몇이나 되지? 북명사자들은 항시 북명전에서 대기하나? 북명전은 지상 오 층이던데, 북명사신이 있는 곳은 몇 층이지?”

화운은 질문을 쏟아내고는 팔짱을 꼈다.

대답이 없으면 피를 보겠다는 살심을 두 눈에 가득 일으킨 채.

***

천종천마교 명부전.

패도마와 염마전주는 무상 철뢰를 찾아갔다.

화운을 어떻게 할지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대로 두면 제대로 된 판결조차 받지 못하고 명옥에서 썩게 될 것입니다.”

패도마는 명옥에서 화운을 꺼내자고 했다.

화운의 존재 자체가 가장 강력한 패가 될 수도 있으니 그를 이용해서 명왕쪽에 이쪽의 가치를 과시하자는 것이다.

혈존을 죽일 정도의 고수라면 결코 무상들의 아래가 아니다.

그런 고수가 한 명 더 합류하는 것이거늘 누가 감히 무시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패도마의 생각이었다.

“북명전에서 빼내는 건 그리 간단치가 않아. 사건을 조사하고 용의자를 잡아가는 것도 그쪽 소관이야.”

“용의자라 하더라도 무상패를 쓴다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명부전에서 데리고 있을 수 있잖습니까.”

명부전의 무상들에게 지급되는 무상패와 구천각의 원로호법들에게 지급된 구천패는 일종의 신분패이자 혹시라도 북명전이 교의 패권 다툼에 끼어들어 상대측을 무분별하게 체포하는 것을 막기 위한 불체포 특권이었다.

단 북명전의 체포령과 불체포 특권이 부딪칠 경우엔 명부전과 구천각에 스스로를 연금해야 한다.

패도마는 무상 철뢰의 무상패를 이용해 화운을 꺼낸 다음 이곳 명부전에 연금하자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화운이 반은 자유로운 몸이나 마찬가지이니 자신들의 강력한 패 중의 하나로 내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그 아이를 강시당으로 유인하여 죽이려고 한 배후는 알아냈느냐?”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교의 인물이 아니었던 터라 그 녀석에 대해 잘 아는 이가 없어서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마경은?”

“오 년 전쯤에 교 밖으로 나갔다가 신풍대주였던 녀석에게 호되게 당했던 적이 있는데 그게 다라고 합니다.”

“그때의 복수를 하려고 한 건 아니고?”

“그랬다면 마경도 강시당의 싸움에 참여했겠지요. 마경은 일이 터진 후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마경이 광마종의 다른 자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하던데, 반대로 그들을 없애기 위해 일을 벌였을 공산은?”

“전혀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중요한 건 누가 일을 벌였느냐가 아니라 마운, 그 녀석을 우리가 지킬 수 있느냐 아니겠습니까?”

“흐음······.”

무상 철뢰의 고민이 깊어졌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뿐인 무상패를 사용하는 일이다. 다른 무상들과 상의해야겠다.”

무상들과 원로호법들에게 하나씩의 무상패가 주어져 있다. 그리고 무상패는 각각 단 한 번씩만 사용할 수 있다.

단 한 번의 불체포 특권인 셈이다.

그러니 냉큼 사용하지 못하고 꺼릴 수밖에.

“판결을 내리기 전에 꺼내야 합니다.”

“서둘러 보겠다.”

그렇게 무상 철뢰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

어둠이 깊어지고 있었다.

마경은 벌써 한 시진(2시간)째 기다렸다.

‘자존심을 밟아도 너무 밟는군.’

그래도 기다렸다.

그동안 가지고 있던 개인적인 주관을 던져 버리고 찾아온 것이니까.

‘이게 다 네 덕분이다. 네 덕분에 내가 너무 어리석었다는 걸 깨달았다.’

무인의 일생도 그리 길지 않다.

어려서부터 무공을 익히고 천하에 자신의 무위를 과시할 만한 나이가 되면 보통 서른이 넘어간다.

거기에 이런저런 환경에 얽매여 천하에 나가지 못하는 게 또 몇 년이다 보면 금세 사십 대, 오십 대가 되고 만다.

고작 십 년, 이십 년을 맘껏 종횡하기 위해 이십 년 이상을 한 곳에 처박혀 수련만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더 늦기 전에 세상을 맘껏 활보하는 쪽에 서기로.

개가 되는 한이 있어도 그 편이 죽을 때가 되었을 때 덜 억울할 것 같았다.

“따라오십시오.”

한 시진 전에 객청에서 기다리라고 한 후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자가 찾아왔다.

마경은 그 자의 뒤를 따라갔다.

회랑을 따라 한참을 걸었고, 계단을 통해 세 번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해서 들어가게 된 거대한 대전.

황금빛 용이 여의주를 쫓아 천상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생동감 있게 휘감고 있는 거대한 기둥 아홉 개가 대전 주인의 위용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마경을 안내해온 자는 대전을 가로지르다 바닥에 깔린 붉은 융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멈추더니 전방의 크고 높은 의자에 앉아 있는 존재에게 허리를 조아렸다.

“마경을 데려왔습니다.”

크고 높은 의자에 앉은 존재가 손을 저었다.

마경을 안내해온 자는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이더니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내가 섰던 자리에서 허리를 숙이시오.”

마경은 자신의 곁으로 돌아온 자의 말을 들은 후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 마경이 어떤 사내인지 보여줘야 할 자리다. 머리를 숙이는 건 나중이다.’

마경은 당당히 걸었다.

그런데 딱 두 걸음을 내디뎠을 때다.

전방에서 뻗어온 기운이 마경의 양 어깨를 짓눌렀다.

무겁게.

한없이 무겁게.

마경은 더 이상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

마경은 아연실색했다.

상대는 터무니없이 강했다.

자신의 앞에 당당히 서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오만했고, 그 오만함에 걸맞게 가공할 권능의 소유자였다.

“마, 마경이라 합니다. 멸제시여!”

마경은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조아렸다.

크고 높은 의자, 태사의에 앉은 멸제는 붉은빛이 감도는 눈으로 마경을 흥미롭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

북명전 지하 명옥.

화운은 명옥주와 옥지기들에게 북명전에 관한 정보를 캐물었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북명전의 주인인 북명우사가 맨 꼭대기 층에 기거한다는 것과 네 명의 북명사신이 있고, 각기 일백 명의 북명사자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었다.

‘흠, 북명사자의 옷으로 변복해서 맨 꼭대기까지 올라가 볼까?’

무볼통을 만나기만 하면 그를 데리고 도망치는 건 그리 어려울 것 같지가 않았다.

사실 부딪쳐 보아야 알겠지만, 천마를 제외하고는 공공무영비를 극성으로 펼치는 자신을 막을 수 있는 자가 있을까 싶다.

‘북명사자의 복장을 손에 넣는 것부터 시작해야겠군.’

거기까지 결정한 화운은 명옥주를 향해 물었다.

“출출한데 먹을 만한 게 있어?”

“저녁은 반 시진은 더 기다려야 합니다. 식은 것도 괜찮다면 분주랑 삶은 닭고기가 있습니다.”

명옥주가 대답하며 화운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화운의 반응이 이상했다.

이렇다, 저렇다 말은 않고 저쪽 어둠만 빤히 응시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신지······.”

“저기 누가 있군.”

틀림없다.

분주랑 삶은 닭고기가 있다는 말을 한 순간 미약한 기척이 느껴졌다.

화운의 말에 명옥주는 물론이고 모두들 어둠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까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해 보라던 노인이 저곳에 있는 건가?”

“맞습니다.”

명옥주의 대답에 화운이 손을 뻗었다.

“무슨······?”

“횃불을 달라고.”

횃불을 들고 있던 옥지기가 횃불을 내밀자 화운이 받아 어둠 저쪽을 향해 던졌다.

놀랍게도 횃불은 천천히 날아갔다.

화운이 기로써 조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횃불은 천천히 날아가면서 불빛이 미치는 범위 내의 무저옥을 보여주었다.

여기저기 백골들이 무수히 보였다.

하나같이 발목에 쇠사슬이 묶인 모습이었다.

이윽고 횃불이 가장 안쪽에서 멈추었다.

화운이 있는 곳으로부터 오십여 보 떨어진 벽에 한 사람이 기대 앉아 있었다.

얼굴을 세워놓은 두 무릎에 간신히 올려놓은 채.

호호백발인 머리칼이 모조리 빠져 듬성듬성하게 남아 있었고, 의복은 여기저기 해지고 찢어져 누더기보다도 못했다.

게다가 얼마나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앙상한 뼈만 남은 모습이라 두 눈으로 보기가 참으로 처참했다.

“쯧쯧! 저리 되도록 사람을 방치하다니, 진짜 마교답다.”

화운은 마교에서 이토록 가혹하게 가둬둘 정도라면 혹시 정파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노인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노인의 상태가 더욱 처참했다.

두 손과 두 발의 힘줄이 잘렸고, 양 어깨도 박살이 나 있었다.

살아 있는 게 이상해 보일 정도로 참혹한 몰골이었다.

‘살아도 산 게 아니로군.’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보내주는 게 사람의 도리라는 생각만 들었다.

화운은 노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고통 없이 가기를 바라시면 눈을 뜨십시오. 그렇게 보내드리겠습니다.”

노인의 몰골은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아보였다.

하지만 노인은 눈을 뜨지 않았다.

대신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인지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그것조차 힘이 드는지 말이 되지 못하고 씰룩 거리는 게 다였다.

화운은 손을 뻗어 노인의 등에 가져다댔다.

자신의 기운을 불어넣어 노인이 말 정도는 할 수 있도록 기력을 일으켜주었다.

그러자 잠시 후 노인이 눈을 떴다.

“고통 없이 가시고 싶으면 다시 눈을 감으십시오.”

노인은 눈을 감지 않고 버텼다.

화운은 잠시 생각하다 다시 물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있으면 도와드리겠습니다. 바라시는 게 있습니까?”

그러자 노인이 힘겹게 입술을 뗐다.

“다······ 고······ 기.”

“예?”

“다······ 고··· 기.”

“한 번만 더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다··· 고기 저.”

순간 화운이 살짝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닭고기 달라구요?”

“그····· 래.”

화운은 의외이고, 다소 황당하기도 하고 그랬으나 죽어가는 노인의 작은 바람하나 못 들어줄까 싶었다.

화운은 검을 뽑아 노인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족쇄를 부숴버렸다.

그리고 노인을 안아들었다.

‘뭐 이렇게 가벼워?’

세 살짜리 아이도 이보단 무거우리라.

화운은 너무 안쓰러워 악취가 나는 것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명옥주 등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당신들은 여기에 있고, 옥주는 나와 함께 올라간다.”

화운은 명옥주를 잡아 무저옥 철문 위쪽으로 던져 버린 후 공공무영비를 펼쳐 단숨에 위로 솟구쳤다.

“빨리 움직여!”

화운은 명옥주를 채근하여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명옥주와 처음 대면했던 지하 일층으로 올라가자 지금까지 명옥주가 돌아오기를 눈이 빠져라 기다리던 나머지 옥지기들이 놀란 눈을 치떴다.

그러거나 말거나 화운은 옥지기들이 앉아서 쉬는 의자에 노인을 앉히며 말했다.

“닭고기 가져와.”

“옥주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자들이 왜······!”

화운은 잔뜩 경계하며 서 있는 옥지기들을 한 주먹에 날려버린 후 명옥주를 향해 다시 말했다.

“뭐 하고 있어!”

그제야 명옥주가 뒤뚱뒤뚱 달려가 먹다 남은 삶은 닭고기를 가져왔다.

화운은 그나마 부드러운 닭고기 껍질을 찢어 노인의 입에 넣어주었다.

노인의 입이 움직였다.

씹는 것인지 씹는 흉내만 내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천천히 움직이더니 삼키려는 듯 목울대가 위로 올라가다가 뚝 멈추었다.

노인의 두 눈이 힘없이 감겼다.

“뉘신지는 모르나 다시 태어나면 이런 고초를 겪지 마시기 바랍니다.”

노인의 명복을 빌어준 화운은 문득 궁금하여 명옥주에게 물었다.

“무저옥에 갇힐 정도면 보통 분이 아니실 것 같은데, 어떤 분인지 알아? 혹시 교에 반역이라도 일으켰던 사람인가? 아니면 정파인?”

“반역이라니요? 어림 반 푼 도 없습니다. 본교에 반역 같은 게 일어날 리가 없잖습니까! 소인이 듣기로 이 늙은인 본교의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감히 본교에 도둑질 하러 몰래 왔다가 붙잡힌 미친 늙은이인데, 무영객인가? 무영노인? 무영 뭐라고 했······.”

“무영자?”

“아, 맞습니다. 무영자입니다. 무영자!”

“이런 옘병! 왜 그걸 이제야 말해!”

기겁한 화운의 오른손이 노인의 가슴에 닿아 진기를 불어넣었고, 왼손은 노인의 입을 벌리고 삼키다 만 닭고기 껍질을 끄집어냈다.

“대체 이게 뭐야! 영감님의 사부가 왜 여기서 나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