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셋으로 무림지존-65화 (65/207)

#065. 이 지랄을 한 이유가 뭐냐

환신대법(換身大法)이라는 게 있다.

저 멀리 서역의 배교에서 극비리에 전해졌던 술법인데, 인간의 육신에 신을 강림시키는 것이다.

무녀들이 자신이 모시는 신과 교감하여 신의 말씀을 전하던 것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졌다.

인간의 육신을 통한 것이기에 어느 정도의 한계는 있으나 신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라 기이한 위력을 과시하곤 했다.

삼백여 년 전에 벌어졌던 서천혈사는 서장 무림의 총본산이라 일컬어지는 포달랍궁(布達拉宮)이 동진을 하면서 벌어진 혈사인데, 그 당시에 선두에서 중원무림을 휩쓸었던 자들이 바로 환신대법을 익혔었다.

“마경의 말이 사실이었군. 강하군! 정말 강해! 하지만 상관없다! 멸신의 힘을 보여주마!”

광마의 희번덕거리던 눈이 검게 변했다.

그의 전신에서 검은 연기가 샘솟듯 흘러나오더니 놀랍게도 몸뚱이가 부풀기 시작했다.

부욱! 찌이익!

옷이 찢어졌다.

살가죽이 쭉쭉 갈라지고 그 안에서 단단한 근육이 튀어나와 단단히 뭉쳤다.

키가 한 자는 더 커졌고, 근육이 터질 듯 우람하여 무슨 덩치괴물을 보는 것 같았다.

“넌 껍질만 사람이네?”

화운은 광마의 잔뜩 커진 덩치가 아니라 그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인의 공력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무척 이질적인 기운이 덩치 안에 잔뜩 도사리고 있었다.

파괴적이고, 잔혹한.

피와 죽음을 탐하는 존재가 그 이질적인 기운의 근원에 자리하고 있었다.

화운은 그 존재가 느껴졌다.

그 존재 역시 광마의 눈을 통해 화운을 보고 있었다.

“넌 뭐냐?”

“멸신, 파멸의 신이다.”

광마의 입을 통해 존재가 자신을 알렸다.

화운은 코웃음 쳤다.

처음 그 존재를 느꼈을 땐 상당히 놀랐다. 하지만 접신하는 무녀들을 본 적이 있는 데다 제천마존과 경천보패의 존재 보다는 놀람이 덜했다.

하여 대수롭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다.

“네가 신이면 난 신을 멸하는 신멸자다!”

화운이 검을 그어 올렸다.

검끝에 맞닿은 지기가 날카로운 기세가 되어 광마의 육신을 그었다.

핏!

피가 튀었다.

하지만 육신이 쪼개지지는 않았다.

“크크큭! 간지럽구나!”

광마가 비웃었다.

이때 허공으로 솟구쳤던 화운의 검이 건곤무상검의 검의에 따라 천기를 끌어당겼다.

“······!”

화운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천기가 모아지지 않아서다.

‘왜?’

화운이 얼굴 가득 의문을 드러낸 순간 광마가 들이닥쳤다.

반자(15cm) 길이나 되는 날카로운 손톱이 사납게 할퀴었다.

걸리는 순간 육신이 찢어지고 머리통이 조각날 것 같았다.

열혼수라조!

혼마저 찢어버린다는 광마의 성명절학이었다.

게다가 환신대법을 펼친 상태에서 발휘한 것이라 더욱 무시무시했다.

화운은 반사적으로 검을 그어 막으며 성큼 물러났다.

까강!

화운의 묵검과 손톱이 부딪치자 맹렬한 불꽃이 튀었다.

화운은 순식간에 지기를 끌어모아 다시 그었다.

번쩍!

화운의 묵검이 찰나의 순간을 갈랐다.

핏!

다시 한번 광마의 육신에서 피가 튀었다.

하지만 살가죽의 생채기에 불과했다.

“크크큭! 간지럽단 말이다!”

이때 화운은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기는 잘 모이는데 천기는 왜······! 장소가 문제인 건가? 이곳에 무슨 진이라도······ 아! 맞다!’

화운의 의문은 금방 풀렸다.

지금 이곳은 지하였다.

지하이다 보니 천기가 닿질 않은 것이다.

‘흠! 건곤무상검은 장소에 따라 제약이 있구나!’

건곤무상검에 제약이 있음을 깨달은 화운은 검법을 고쳐야겠다고 결론 내리며 다시 광마에게 집중했다.

그런데 이때였다.

“놈의 공력이 바닥이 났다! 모두 함께 공격해라!”

면사녀가 소리쳤다.

새파란 검강처럼 보이는 검멸을 마구 발휘하다 화려해 보이지 않은 건곤무상검을 펼치니 공력이 다하여 검강을 발휘하지 못하는 걸로 여겨진 모양이었다.

화운은 피식 웃었다.

공력은 넘쳤고, 남아돌았다.

광마가 사특한 존재를 불러내기에 천기라면 좀 더 강한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 싶어 일부러 건곤무상검을 펼쳐본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면사녀가 잘못 알아보았고, 그녀의 사나운 외침에 마지막 남은 십여 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가늘고 길쭉한 장검을 가진 자들이었는데, 각자가 일정한 방위를 점하며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검진을 펼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고루마군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한쪽 벽의 석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골적을 불었다.

그러자 붉은 그림자 세 개가 불쑥 튀어나왔다.

화운이 광마의 맹공을 공공무영비를 펼쳐 피하며 살펴보니 놀랍게도 거대한 동체를 가진 맹수들이었다.

흡사 거죽을 벗겨놓은 것 같은 붉은 살덩이의 맹수 세 마리가 십여 장을 한 번에 도약하며 덮쳐왔다.

덩치가 얼마나 큰지 쩍 벌린 아가리가 사람 머리통쯤은 한입에 씹어버릴 것 같았다.

가죽을 벗겨 놓은 것 같은 몰골인데도 오히려 더 단단했다.

화운은 광마의 맹공과 십여 명의 검진 그리고 세 마리의 살덩이 맹수 사이를 종횡무진하다 어느 순간 공공무영비를 극성으로 펼쳤다.

펏!

화운의 신형이 돌연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멍청한 것! 건곤무상검을 무시하냐!”

화운의 외침은 면사녀의 바로 옆에서 터졌다.

기겁한 면사녀가 고개를 돌린 순간.

짝!

면사녀의 뺨에 불같은 통증이 작렬했다.

“으악! 죽여 버릴 거야!”

면사가 날아가 버린 여인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소나찰 사연홍이었다.

한쪽 눈두덩은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광대뼈 쪽은 벌겋게 부어 있었다.

화운은 짐작도 못하고 있지만, 전날 밤 객잔에서 화운에게 맞은 곳이었다.

사연홍이 악을 쓰며 사나운 장력을 뿌렸다.

하지만 이땐 화운이 사라진 후였다.

번-쩍!

어느새 자리를 바꾼 화운의 검이 공간을 갈랐다.

땅!

검진을 펼치고 있던 자가 화운의 검을 막았다.

하지만 뒤이어 들이닥친 지기의 날카로움까지 막지는 못했다.

“크악!”

육신이 동강이 나자 처절한 비명을 터트리며 쓰러졌다.

번쩍! 번-쩍!

두 번의 검광이 작렬했다.

순식간에 다섯 명이 쪼개졌다.

‘지하라 지기는 넘쳐나는구나!’

하나가 부족하니 하나가 넘쳤다.

그러니 넘쳐나는 걸 맘껏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화운은 지기에 더욱 집중하였다.

지하에 가득한 기운은 대지의 기운이었다.

온갖 사특한 기운이 뒤섞인.

상관없다.

천지간의 모든 탁기는 결국 대지로 스며든다.

마인들의 마기라고 하는 것도 결국엔 천지간의 탁기를 쌓은 것이다.

큰 의미로 보면 결국 건곤무상검에서 다루는 지기라 볼 수 있다.

화운은 전심전력을 다해 의식을 집중하고, 중단전의 공력을 더욱 검신에 쏟아 부어 지하에 가득한 지기를 단숨에 끌어당긴 후 벼락같이 검을 그었다.

날카로운 지기가 수십 개의 칼날이 되어 화운의 전방을 휩쓸었다.

폭풍처럼 몰아쳐 오는 무형의 검세에 모두가 기겁했다.

그나마 뒤늦게 화운을 찾아 신형을 날리던 사연홍은 황급히 기둥 뒤로 숨었다.

쓰칵! 쓰카각! 쓰-각!

무언가가 날카롭게 갈라지는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한꺼번에 터졌다.

그와 동시에 대전 안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털썩!

가장 먼저 주저앉은 건 검진을 펼치던 자들이다.

그들의 육신이 가장 먼저 쪼개지고 갈라져 그 자리에 쏟아졌다.

다음으로는 고루마군이 불러낸 붉은 살덩이 맹수들이었다.

귀혼마수라는 괴물들인데, 맹수를 강시로 만든 다음 대법을 통해 악귀를 씌운 것들이었다.

금강마인 못지않게 단단한 동체에 사납기는 금강마인보다 더 사나웠다.

하지만 방금의 공격을 버텨내진 못했다.

투둑! 후두두둑!

귀혼마수들의 동체가 혈편이 되어 쏟아졌다.

마지막으로 광마.

역시나 광마는 광마였다.

온몸이 날카로운 칼날로 난도질을 당한 상처만 가득할 뿐 갈라지지 않았다.

화운은 광마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고통은 느껴지는 모양인지 광마가 괴성을 지르며 화운을 공격했다.

반자나 되는 손톱들이 벼락같이 할퀴었다.

하지만 공공무영비를 발휘한 화운의 옷자락 하나 건들지 못했다.

광마가 두 번째 공격을 펼치려는 순간 화운이 검을 일직선으로 쭉 뻗었다.

검신엔 검멸의 기운을 잔뜩 발휘한 채 사혼구검의 마지막 검초인 사혼종극을 발휘했다.

푸욱!

검이 살가죽을 뚫고 들어가 광마의 육신 안에 도사린 이질적인 기운에 닿았다.

“크헉?”

광마의 입이 쩍 벌어지며 고통이 온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린 순간 화운이 검신에 잔뜩 일으켜놓은 검멸을 폭 자결로 모조리 터트려 버렸다.

콰콰쾅!

광마의 육신이 산산이 조각이 나 터져 버렸다.

육신이 사라진 자리에 시커먼 기운이 뭉클거렸다.

- 분하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언젠간 반드시 널 머리부터 씹어 먹어 버리겠다!

화운의 머릿속을 직접 울리는 격분에 찬 협박이었다.

번쩍!

검멸을 발휘한 화운의 검이 시커먼 기운을 가르자 ‘펏!’ 하고 촛불 꺼지듯 사라졌다.

“멸신? 웃기지도 않는다.”

코웃음 친 화운은 마지막 남은 두 사람을 응시했다.

고루마군과 기둥 뒤로 간신히 숨었던 소나찰 사연홍이었다.

“말해봐. 이 지랄을 한 이유가 뭔지. 정말 그럴듯해야 할 거야. 아니면 너 역시 이렇게 될 테니까.”

화운의 검이 대전 바닥에 지천으로 널브러진 참혹한 혈편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

콰앙!

대전을 막고 있던 철문이 굉음을 터트리며 부서졌다.

그리고 한 사람이 불쑥 뛰어 들어왔다.

마경이었다.

마경은 대전 안에 가득한 혈지옥도를 쓱 쓸어본 후 안쪽을 향해 걸었다.

참혹하게 갈라지고 쪼개진 혈편들이 마경의 발에 밟혔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다! 아름다워!”

마경이 탄성을 터트리며 고개를 돌렸다.

한쪽 벽에 머리통이 부서진 고루마군이 처박혀 있었다.

“훌륭해! 좋아! 좋아!”

연방 탄성을 터트리며 걸어간 마경은 대전 안쪽 끝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아직 살아 있네?”

마경의 앞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검을 늘어트리고 있는 화운과 겁에 잔뜩 질려 오들오들 떨고 있는 사연홍.

마경이 나타나자 사연홍이 애원하는 얼굴로 쳐다봤다.

피식 웃은 마경은 사연홍 가까이 다가가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무섭냐?”

“마, 마경, 살려줘. 제발······.”

“그러게 왜 그랬어. 강한 건 멸제지, 네가 아니잖아. 안 그래?”

“제, 제발······.”

“너도 그날 객잔에 있었다며? 그럼 알 거 아냐. 난 이 수수깡한테 안 돼. 그런데 나한테 빌면 뭐 하냐, 안 그래?”

손을 뻗은 마경이 사연홍의 어깨를 두들겼다.

사연홍은 오들오들 떨며 간신히 고개를 들어 화운을 쳐다보았다가 싸늘한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야, 보이냐! 얘 떠는 거. 물에 빠진 참새 같다.”

히죽 웃은 마경이 화운을 올려다봤다.

화운은 차가운 얼굴로 내려다볼 뿐이었다.

“내가 그랬지. 넌 반드시 큰일을 저지를 것 같다고. 이년이 이렇게 처량해 보여도 이년 뒤에 멸제가 있다. 네가 감당 못할 정도로 고강한 무력에 본교의 권력을 상당히 휘어잡은 사람이다.”

마경의 말에 살길이 보이는 것 같아 사연홍이 얼른 말했다.

“내가 없었던 일로 함구할게요. 나 빼고 다 죽었으니까 나만 입을 다물면 괜찮아요.”

“내 말이!”

마경이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그에 사연홍이 놀랐다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이 그거야! 너만 입을 다물면 돼! 너만! 영원히!”

“······!

마경의 큼지막한 손이 사연홍의 얼굴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돌렸다.

우드드득!

목뼈가 부서지는 소리였다.

사연홍은 즉사했다.

“이제 진짜 제대로 일 터졌다. 어쩔래?”

마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고민 중이었는데, 네가 해결 방법 중의 하나를 지금 막 없애버렸다. 왜 그랬냐? 제대로 대답해. 널 죽여 버릴 수도 있으니까.”

“멍청아, 이년이 정말 입을 다물 거라 생각했냐! 그리고 네가 죽고 나면 이 성질 더러운 년이 다음 화살을 나한테 돌릴 게 뻔한데 뭐 하러 살려두냐! 이년이 이렇게 곱상해 보여도 한번 꼭지가 돌면 아주 줄줄이 피 보기로 유명하거든.”

“그래서, 너만 그렇게 벗어나면 다냐?”

“그러게 왜 이렇게까지 했냐. 적당히 당해주면 좀 좋냐. 아니면 이년만 죽이고 죽어버리든가.”

“너부터 죽여줄까?”

“기다려봐.”

마경은 사연홍의 시신을 질질 끌고 대전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에 돌아왔다.

“그년은 여기 안 왔다. 아래 괴물들한테 밥으로 던져 버렸거든.”

“미친놈.”

“넌 그냥 여기 널브러진 것들과 싸웠을 뿐이야. 그년의 시신이 보이지 않는 한 그년이 사라진 거랑은 무관해. 알아들었냐?”

“그게 그렇게 간단히 넘어가질 일이냐?”

“아니면 어쩌겠어? 왜 싸우게 되었는지 추궁하겠지만, 넌 불러서 왔고, 죽이려고 해서 죽였다고만 해.”

“추궁? 누가 추궁한다는 거냐?”

“당연히 북명전이지.”

“북명전? 북명전으로 끌려간다는 거냐?”

“네가 도망가지만 않는다면.”

“확실해?”

“그래, 이 정도로 일이 터지면 북명전으로 끌려간다. 반드시.”

마경의 단언에 화운의 표정이 변했다.

그런데 당황하거나 놀라는 표정이 아니다.

뭔가를 기대하는 표정에 가깝다.

“진짜지?”

“멍청아, 북명전에 끌려가면 네 인생도 쫑나. 거기 끌려갔다가 살아서 돌아온 사람이 없어. 단 한 명도.”

“북명전으로 끌려간단 말이지?”

화운이 눈빛을 빛냈다.

무불통이 있는 곳이 북명전이라고 했으니까 어쩌면 손쉽게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단전이 봉인되어도 좋다면 내가 직접 그리 데려가 주겠다.”

갑자기 다른 목소리가 대전을 울렸다.

화운이 돌아보니 염마전주와 대마전주인 패도마가 대전 입구에 서서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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