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셋으로 무림지존-62화 (62/207)

#062. 마경, 마도의 고래(2)

“그것들 뭐냐?”

“흑귀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흑귀가 뭐냐고?”

화운이 따지듯 묻자 마경이 멈췄다.

그리고 화운을 돌아봤다.

“정파의 수수깡한테 교의 금역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만 꺼져라.”

마경의 말투는 담담했으나 화운을 향한 그의 눈길엔 냉기가 철철 흘러넘쳤다.

“니미랄 새끼, 설명하지 않을 거면 끼어들지를 말든가. 사람 궁금하게 만드냐.”

화운이 인상을 쓰며 다가갔다.

마경은 냉랭히 쏘아보다 화운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자신도 모르게 슬쩍 한 걸음 물러났다.

그에 화운이 두 걸음 더 다가간 후 멈췄다.

“너하고 나의 거리는 오 장(15m)이다. 너도 아는지 모르겠지만 근처 삼십 장 이내엔 인기척이 없다. 내가 느려터진 널 따라잡는 데는 반 호흡이면 돼. 널 기절시키는 데 다시 한 호흡, 삼십 장 밖의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고 널 끌고 가는 데에 충분한 시간이지.”

“······!”

“아까 그 금역이라는 곳으로 끌려가서 신나게 맞은 다음에 말할래, 아니면 여기서 공손하게 고할래?”

“헛소리 말고, 꺼져······?”

마경이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화운이 와락 달려들었다.

그야말로 전광 같은 속도였다.

마경이 기겁하여 돌아선 순간 화운의 검이 벼락처럼 뽑혔다.

쾅!

암흑대절을 일으킨 마경의 신형이 화운의 검력에 저만큼 튕겨 멀어진 순간.

쿠웅!

야천에서 무지막지한 거력이 절구 찧듯이 마경을 찍어버렸다.

건곤무상의 검력이었다.

마경은 기절은 하지 않았으나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이때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온 화운이 머리통을 걷어찼다.

“아, 안······!”

마경은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렸다.

툭툭! 툭툭툭!

마경은 머리통을 가볍게 두드리는 느낌에 눈을 떴다.

“억?”

마경은 꽤 높은 거목의 가지에 얹혀 축 늘어져 있다가 허둥대는 바람에 떨어질 뻔했다.

가지를 붙잡고 고개를 들어보니 화운이 다른 가지에 편하게 걸터앉아 있었다.

검을 손에 쥐고 있는 걸 보니 그걸로 머리통을 두들긴 모양이었다.

그에 마경이 인상을 쓴 순간.

화운이 검을 뻗어 가리켰다.

“탄강이 뭔지는 알지?”

마경을 가리키고 있는 화운의 검에 새파란 강기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암흑대절이 단단하다는 건 안다. 그래도 이 거리에서 탄강을 날리면 뭐 죽지야 않겠지만 저만큼 날아갈 거다. 저-만큼.”

화운이 일부러 턱짓까지 하며 가리키자 마경이 그쪽을 돌아봤다.

“······!”

흑귀들이 보였다.

화운이 피워놓았던 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는데, 그 주위에 잔뜩 몰려 있었다.

“니가 뭘 잘못 생각하는 것 같아서 말해줄게.”

“······!”

“여기가 천종천마교라고 해서 네 구역은 아니다. 똥개도 지 앞마당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그런 앞마당 같은 게 아니란 뜻이다. 내가 교에 들어가고 싶은 거야 분명한 사실이지만, 언제든 포기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럼 내 성격에 그냥 가겠냐? 날 포기하게 만든 것들을 모조리 박살을 내버리지.”

“······.”

“천마교주 밑에 이사가 있고 그 아래에 원로호법들이 있다며? 천마교주라면 모를까 그 외에는 누구도 날 잡지 못한다. 내가 경신 공부만큼은 제대로 했거든.”

“······.”

“니미랄, 말해놓고 보니 참 구질구질한 것 같다. 그냥 죽어라. 딴 입을 찾아 물어보는 게 낫겠다.”

쾅!

마경이 날아갔다.

정말 날려 버릴 줄은 몰랐던 마경이 혼비백산한 얼굴로 화급히 암흑대절을 일으켰다.

정확히 불이 있는 곳으로 날아간 마경은 흑귀들과 뒤엉켜 나뒹굴었다.

“캬아아악!”

“캬악!”

갑작스런 상황에도 놀라지 않는 것인지 성난 흑귀들이 잔뜩 굶주린 이리 떼처럼 마경을 덮쳤다.

벌떡 일어난 마경은 달려드는 흑귀들을 쳐내며 냅다 달렸다.

하지만 흑귀들을 완전히 떨치진 못했다.

놀랍게도 흑귀들이 달리는 속도가 경신술을 발휘하고 있는 마경의 속도에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마경의 경신술이 무위에 비해 대단치 않다고 해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다.

“이런 썅!”

마경은 미친 듯이 달아났다.

흑귀가 두려운 건 크게 떨어지지 않는 속도에 몸뚱이마저 암흑대절을 익힌 자신만큼이나 단단하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수백 어쩌면 수천일지도 모르는 숫자.

싸우게 되면 하루가 걸리든 이틀이 걸리든 간에 공력이 다한 순간 반드시 죽는다.

그것도 산채로 뜯어 먹힌다.

마경이 싸울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미친 듯이 달아나는 이유였다.

그런데 미친 듯이 도주하고 있는 마경의 정면으로 화운이 들이닥쳤다.

검을 잔뜩 치켜든 채.

새파란 강기가 넘실거리는.

“말한다! 말해! 여긴 흑지다! 흑지라고!”

마경이 부리나케 외쳤다.

순간 벼락같이 달려들던 화운이 허공으로 솟구쳤다가 마경의 뒤로 뚝 떨어졌다.

퍼버버버버벅!

강기를 거둬들인 화운의 묵검이 마경을 바로 뒤에서 쫓아오던 흑귀들을 날려버렸다.

하지만 날려 버린 흑귀들보다 화운을 향해 덮쳐오는 흑귀들이 더 많았다.

화운은 공공무영비를 펼쳤다.

어둠 속에서 화운이 빨랫줄처럼 마경의 뒤를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퍼억!

화운의 발길질에 마경이 저만큼 단번에 날아갔다.

“이 썅!”

“그럼 손잡고 가리?”

퍼억!

마경이 다시 한번 날아갔다.

“그만 차!”

“이번이 마지막이다!”

퍼억!

“썅! 죽여 버리겠다!”

마경이 화가 폭발하여 소리친 순간 그의 바로 뒤에서 화운의 목소리가 스산하게 들렸다.

“첨부터 다시 시작할까?”

“······!”

마경이 입을 다물었다.

퍼억!

“마지막이라며!”

“내 호의를 모욕한 대가다.”

마경은 두 번 더 차였고, 흑귀들은 한참 전에 멀어졌다.

흑귀들의 땅을 벗어난 개울가.

화운은 평평한 바위 위에 걸터앉았고, 마경은 그 앞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본교에는 금역이 몇 군데가 있다. 네가 하필 자릴 잡은 곳은 금역 중의 하나인 흑지고, 흑귀는 거기 살아.”

“흑지?”

“그래, 흑지. 내가 알기로 본교는 흑지에 세워졌어. 흑귀들이 살고 있는 땅에 본교가 지어진 거니까 원래는 본교의 땅 전체가 흑지였던 거지.”

“흑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건 모른다.”

“흑귀라는 것들, 네 주먹에 맞아도 멀쩡해 보였다.”

“네가 보기엔 흑귀가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몸뚱이가 정말 단단해. 나라고 해도 팔 성 이상의 힘으로 쳐야만 죽일 수 있어. 게다가 숫자 또한 워낙 많아서 잘못 걸리면 골로 간다. 걔들 특기가 산채로 사람 뜯어먹는 거니까, 걔들 모조리 죽일 때까지 버텨줄 공력이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그냥 도망치는 게 현명한 거다.”

마경이 자신의 도주를 그렇게 합리화하며 설명했다.

그러다 말해놓고도 머쓱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말했다시피 걔들이랑 싸우는 건 교의 율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니까. 다신 가지 마라.”

“금지구역은 또 뭐가 있냐?”

“금지구역?”

“흑지를 포함해서 금역이 몇 군데 있다며?”

“아, 몇 군데 금지구역이 있지. 흑지가 그렇고, 천마동이랑 유마정 역시 금역이야.”

“천마동은 천마의 비밀 동굴인가?”

“어.”

“유마정은 뭐냐?”

“천마탑 지하 깊은 곳에 우물이 하나 있는데 천마교주님 외에는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흐음······.”

“자, 네가 만족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건 다 말했다. 더 물어보면 더 대답해 준다. 대신 흑지엘 가려거든 날이 밝으면 가라. 방관자도 끌려가니까 나랑 전혀 연관이 없을 때 가란 말이다. 그리고 이 시간 이후로는 아는 체 하지 말자. 니가 교에 들어와서 간자노릇을 하든 흑지를 뒤집어엎든 모른 척할 테니까 너도 날 아는 체 하지 마라.”

교의 율법을 관장하는 북명전으로 끌려가면 그걸로 인생 종치는 거다.

마경이 두려워하는 몇 안 되는 것 중의 하나다.

“간자 아니다. 정파 싹 다 망했다는 거 모르냐!”

“이랬든 저랬든 더는 아는 체 하지 말자고. 너 하는 거 보니까 분명 교에서 일 한 번 크게 일으킬 것 같다. 난 거기에 엮이고 싶지 않다.”

마경이 고분고분 아는 대로 말해준 본심이 드러났다.

화운은 피식 웃었다.

“좋다. 적어도 사람들 앞에서만큼은 친한 척 하지 않으마.”

“친한 척? 사람이 있든 없든 우린 찢어 죽여야 할 사이야. 무슨 친한 척!”

“지금 찢어 죽여줄까?”

“말이 그렇다는 거다.”

“사람새끼로 태어나서 어쩜 그렇게 사람 죽이는 걸 좋아하냐?”

“넌 사람 안 죽이는 것처럼 말하지 마라.”

“사람 죽이는 거에 맛 들려서 죽이는 거랑 싸우다 보니 죽이는 거랑 같냐?”

“내가 보기엔 결국 죽이는 거라서 같다. 그리고 내가 사는 방식일 뿐이니까 그거 가지고 지랄 마라.”

“하, 진짜! 하늘은 어쩌다 너 같은 걸 이 땅에 내려 보내셨을까?”

“너 그런 사고방식 가지고는 본교에서 열흘도 못 버틸 거다. 나보다 더 미친놈도 제법 많아.”

“그래, 오늘은 죽일 생각 없으니까 더는 말을 말자.”

다음에 죽이겠다는 말로 들려 마경이 흠칫 쳐다봤다.

‘이 새끼가 진짜! 확 그냥!’

마경은 살심이 일었으나 화운이 입을 열자 순식간에 감추었다.

“근데 마교는 왜 안 움직이는 거냐?”

“······?”

“사황이랑 그 조무래기들이 활개를 치는데, 마교는 왜 가만히 있냐고? 사황만 죽이면 마도천하인데 천마가 왜 꿈쩍도 하지 않는 걸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천마교주님이 살아계시는지도 모르는 판국에.”

“살아 있어. 분명히 살아 있다.”

화운은 확신에 차 있었다.

마경은 그런 화운이 우스웠다.

“그래, 점쟁이 나셨다.”

“멍청아! 사황이 언제 적 사황이냐! 너네 교주랑 동시대에 혈겁을 일으켰다가 검성한테 혼쭐이 났던 그 사황이잖아!”

“혼쭐은 무슨·······.”

“그런 사황이 천하를 뒤집어놓으면서도 마도는 왜 놔두고 있을까?”

“본교의 무서움을 아는 까닭이겠지.”

“맞아. 바로 그거야. 사황은 천마의 무서움을 알기에 여길 쳐들어오지 않은 거야.”

“······!”

“확실해. 천마는 살아 있어. 백 년 전인가, 그때의 그 천마 말이야.”

“······!

화운의 말에 마경이 벌떡 일어났다.

아무래도 화운의 예측이 맞는 것 같다.

신임교주를 옹립하지 않은 것도 그렇고 백 년 전부터 지금까지 천마교주의 서거를 발표하지 않은 것도 그렇고.

마경은 두 눈을 부릅뜨며 화운에게 따지듯 말했다.

“그럼 왜? 대체 왜 천하로 나가지 않은 거야! 피 끓는 우리가 그토록 마도천하를 외쳐도 지금껏 외면하신 거냐고!”

“······!”

“왜? 왜? 대체 왜냐고?”

마경이 목에 핏대를 세울 정도로 잔뜩 흥분하여 침을 튀겨가며 소리쳤다.

“침 튀잖아! 그리고 내가 너네 교주냐? 왜 나한테 지랄인 건데!”

“교주님이 살아계신다며? 살아계시는데 왜 그런 거냐고!”

“그건 너네 교주한테 물으라고!”

“아수라를 모시고, 강함을 숭상하는 게 우리야! 니미랄! 이만큼이나 힘이 있는데 왜 이 땅에만 처박혀 있어야 하는데? 대체 왜!”

“모른다고, 몰라! 너네 교주한테 따지라고!”

빡!

화운이 머리통을 후려치자 고개가 홱 돌아간 마경이 괴소를 터트렸다.

“크크크크큭! 이만큼이나 강한 힘이 있는데······ 모조리 찢어 죽일 수 있는데······ 왜 그 아름다운 피를 보지 못하게 하는 거지? 대체 왜?”

“돌았구나! 미친 새끼한테는 몽둥이가 약이라더라!”

화운이 인상을 쓰며 검자루를 잡았다.

순간 마경이 흠칫 하더니 잽싸게 뒷걸음 쳤다.

“어쭈! 도망치시게?”

“아니! 나 안 돌았고! 너랑 할 말 다했다! 그럼 가도 되잖아!”

“너 일부러 발광한 척 하면서 침 뱉은 거지?”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럴 리가 맞구만! 이리 와!”

마경이 뒤돌아 냅다 뛰었고, 화운이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빡!

“이썅!”

콰앙!

“죽여 버리겠다!”

“너나 죽어라!”

두 사람은 싸웠다.

한쪽의 일방적인 폭행에 가까운 싸움이었다.

***

천종천마교 염마전.

아침이 되자 화운이 염마전에 나타났다.

염마전의 마인들은 어색하게 반겼다. 일부는 모른 척 고개를 돌렸고, 적대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정무맹 신풍대주였던 자.

광마종의 미친놈인 마경을 능가하는 자.

정파인이었다는 과거만 아니라면 어제보다 더 반겼겠지만, 지금쯤이면 한참 신분과 정체에 대해 조사하고 있을 상부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니 조심스럽게 대할 수밖에.

화운은 그런 반응들을 무시하고 염마전주의 집무실로 찾아갔다.

“어, 어서 와.”

“앉아도 됩니까?”

“빈 의자니 앉아도 되겠지.”

화운은 의자에 앉으며 염마전주를 빤히 바라봤다.

염마전주는 얼굴에 곤혹스럽다는 표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전주님.”

“응?”

“저랑 한 약속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 그거. 윗분께 말씀은 드려놓았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요?”

“글쎄······.”

염마전주는 확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첫날 무불통을 만날 수 있는지 북명전에 청해보는 조건으로 살마들을 휘어잡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어차피 피할 일이 아니야······.’

염마전주는 어수룩한 사람이 아니었다.

살다보면 피하려 해도 피해지지 않는 일도 있다는 걸 알았다.

바로 지금이 그와 같았다.

“사실대로 말하지.”

화운은 해보라는 듯 고개만 끄덕이고 염마전주를 응시했다.

“자네는 덥석 손에 쥐기엔 너무 날카로워. 위에서 어떤 판단을 할지 기다려야 하는 게 내 입장이야.”

“정무맹 신풍대주였던 게 그렇게 문제가 됩니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정무맹이고 정파고 간에 쑥대밭이 되었는데도요?”

“내 장담하는데, 정파의 뿌리는 천하 곳곳에 남아 있을 거야.”

“······.”

화운은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이대로 염마전주가 말한 위쪽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인지.

그럴 리가 없다.

길이라는 건 최초의 누군가가 지나갔기에 생긴 것, 길이 없으면 뚫어야 하는 법이다.

화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죠.”

“어딜?”

“전주님의 윗분에게요.”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