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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으로 무림지존-54화 (54/207)

#054. 합비대혈전(2)

화운은 이화태양종의 깃발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단숨에 던졌다.

부아아아악!

대기가 사납게 찢어졌다.

순식간에 오십여 보의 간격을 날아가 적진을 강타했다.

퍽퍽퍽퍽퍽퍽퍽!

기백이나 되는 적진 한 복판이 뻥 뚫린다.

피의 길이 열렸다.

누구도 막지 못한다.

“비켜라!”

태양성군 바로 뒤에 위치한 중년의 고수가 나선다.

손에 쥔 장창을 일직선으로 뻗었다.

손안에서 회전하는 장창에 천근의 힘이 실렸다.

콰앙!

화운이 던진 깃발이 멈추어졌다.

하지만 중년인을 뒤로 날려버린 후에야 멈췄다.

중년인은 창을 뻗었던 팔이 터져버려 다시는 창을 쥐지 못하게 되었다.

그 광경에 다른 중년인들은 안색이 질려 버렸다.

이때 화운의 묵빛 장검이 대지의 기운과 맞닿았다.

“막아봐! 이것이 지기(地氣)니까.”

화운이 장검을 그었다.

검끝에 맞닿은 지기가 날카로운 기세가 되어 검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 천지간을 아래에서 위로 비스듬하게 쪼갠다.

스-악!

이화태양종의 태양성군 일부가 반토막이 난다.

“으악!”

“크학!”

비명이 터져 나온 순간.

천중을 향해 솟구친 화운의 묵검이 천기(天氣)를 끌어당긴다.

“천기는 무거워지면 아래로 향하지.”

묵검이 아래로 내리 그었다.

허공에서 막대한 기운이 뭉쳐 지상으로 꽂혔다.

쿠웅!

이화태양종의 태양성군 일부가 어육처럼 짓이겨졌다.

흡사 집채만 한 철구가 허공에서 내리 찍은 것처럼 단단한 땅바닥이 깊게 패여 버렸다.

아직 태양성군의 숫자는 기백이다.

하지만 압도적인 무력에 사기가 꺾인다.

슈-악!

귀청을 때리는 파공음.

이화태양종에는 고수가 많다.

그들 중 호전적인 자가 장창을 던졌다.

대기를 관통하는 파공음으로 유추하건데 강력한 패력이 실렸다.

화운이 묵검을 쭉 뻗었다.

새하얀 기운이 검신 한가운데에 일선을 그리며 검끝까지 이어진다.

꽈앙!

장창이 터져버렸다.

화운이 대지를 밟고 도약했다.

잔뜩 치켜든 검신에 맺힌 기운은 새파란 검환이다.

수십 보 거리를 단숨에 건너 태양성군의 대열 한복판으로 내리 꽂혔다.

쿠-웅!

대지가 터져나가면서 십여 명이 피떡이 되어 날아갔다.

화운을 중심으로 태양성군의 대열이 잘린 뱀처럼 반토막이 났다.

“내 앞에 있는 당신들은 내 몫이야.”

화운이 검을 들어 전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화운의 존재는 철벽 그 자체다.

화운의 앞에 선 태양성군들이 느끼기에는 그랬다.

반대로 화운의 뒤에선 자들은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기사회생한 느낌이다.

괴물 같은 화운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니 삼각대형으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세 명을 쓸어버리는 것만 남은 셈이다.

“죽여라!”

“태양성군의 힘을 보여라!”

“와-아!”

함성을 지르며 몰려갔다.

함성을 지르지 않도록 훈련 받은 자들이 목청이 터져라 함성을 지르고 있다.

그만큼 화운의 압도적인 무위에 잔뜩 눌려버렸다는 뜻이다.

“와라! 여긴 대남궁검가다!”

남궁현의 결의가 굳세게 요동쳤다.

단숨에 튀어나가 모조리 난도질 해버리고 싶은 살의를 꾹 눌렀다.

자신이 이탈하면 방어진이 무너질 테고, 한 명씩 저 많은 숫자 앞에 결국 죽게 될 거라는 화운의 경고를 떠올리고 또 떠올렸다.

도약하기 직전의 맹수처럼 불타는 살의를 잔뜩 웅크리고 있으니 코앞까지 돌진해온 자들이 불쑥 장창을 뻗었다.

왼팔을 움직여 방패로 막았다.

방패로 막을 수 없는 장창은 검을 휘둘러 쳐냈다.

그러고 나자 훤히 열린 틈.

화운이 보여준 딱 한 걸음.

남궁현은 그 걸음을 내디디며 검을 찔렀다.

육신을 찌르고 들어가는 감각.

헛바람을 들이키며 굳어버리는 적.

손이 떨린다.

더 많은 피를, 더 많은 살육을 달라고.

뒷발이 움찔거리며 튀어나가자고 한다.

“자리를 지켜!”

백리연이 외쳤다.

처음이 중요한 법이다.

처음 한 번을 참아내면 두 번, 세 번 참을 수 있다.

백리연의 외침에 번쩍 정신을 차린 남궁현은 검을 뽑은 다음 벼락같이 그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확인도 하지 않고 내디뎠던 발을 거둬들여 제자리를 지켰다.

백리연과 선우유성 역시 마찬가지다.

막고, 공격하고, 자리를 지키고.

육신이 버텨만 준다면 기백이 아니라 기천의 숫자라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콰쾅! 쾅쾅쾅쾅!

태양성군을 직접 부리는 중년인들은 감히 상대가 안 되자 그 뒤의 노인들이 나섰다.

이화태양종의 십이장로들이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기세 좋게 달려들었으나 한 명씩 날아가기 시작했다.

혼자서 열두 명의 장로들조차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화운의 그 엄청난 무위에 태양소마 명강은 손이 근질거렸다.

‘싸우고 싶어!’

죽어도 좋다.

온몸이 부서지도록 부딪쳐보고 싶다.

몸 안에 들끓는 힘을 어찌 억누르라고만 하는가.

정(正), 사(邪), 마(魔)!

그 따위가 다 뭔가.

무공을 배우고 익혔으면 맘껏 펼쳐보아야 하지 않겠나.

이 땅에 태어난 건 내 뜻이 아니나 이 땅에 살아가는 건 오롯이 내 의지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이 자리에 이렇게 서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명강이 땅을 박차고 신형을 솟구쳤다.

태양존자 명교진의 눈이 흠칫 떠진 순간.

허공으로 높이 솟구친 명강이 지상의 화운을 향해 일직선으로 내리꽂혔다.

“태양소마 명강이다! 성륜태양창(聖輪太陽槍)으로 널 상대해 주마!”

자신감 넘치는 우렁찬 일갈과 함께 수중의 장창을 쭉 뻗는 명강.

창두에 새하얀 강기가 맺혔다.

걸리는 건 그게 무엇이든 태우고 박살을 내버릴 백열의 강기다.

핏!

열두 명의 장로 중 마지막 남은 장로의 목이 떨어진 순간 화운의 검이 명강의 백열하는 장창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었다.

쾅!

굉음과 함께 사나운 충격파가 사방으로 터져가는 가운데 두 사람은 병기를 맞닿은 채 그림처럼 멈추었다.

내력대결을 벌이려는 것인가?

태양존자 명교진이 주먹을 움켜쥔 순간 화운이 검을 거둬들였고 명강이 속절없이 끌려갔다.

뻑!

명강의 얼굴이 짓이겨진다.

화운의 왼 주먹이 틀어박힌 것이다.

그 충격 그대로 튕겨 날아간다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화운이 발휘한 기운에 그의 장창이 붙잡혀 있어 튕겨가지 못했다.

덥석!

주먹을 편 화운의 왼손이 명강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그리고 강한 힘으로 내리찍는다.

밑에서는 무릎이 솟구친다.

뻐억!

명강이 축 늘어졌다.

화운은 그를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그리고 태양존자 명교진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좌우호법들께서는 저 놈이 지키고자 하는 세 놈들을 죽이시오. 팔다리를 뽑은 다음 머리통을 부숴버리시오!”

명령이 아니라 분노다.

이화태양종의 종주가 내리는 분노.

두 호법들이 신형을 날렸다.

“저놈은 본좌가 맡는다. 나머진 저 세 놈을 추살하라!”

다시 한 번 분노가 터졌다.

이화태양종의 모든 무인들이 신형을 날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양존자 명교진이 걸음을 옮겼다.

화운은 자신을 우회하려는 두 호법을 쳐다보며 검을 휘둘렀다.

지기(地氣)가 날카로운 기운이 되어 허공으로 솟구쳤다.

두 호법은 깜짝 놀랐다.

대저 검기나 검강, 검환 같은 기운들은 공력에 파괴적인 힘을 실어 형상화한 것이라 눈에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날카로운 기운은 눈에 보이지가 않았다.

흡사 바람의 칼날이 자신들을 베어오는 것 같았다.

두 호법은 날아가던 것을 멈추고 쌍장을 뻗어 이화태양종의 호법들에게만 전해지는 초극이화장을 펼쳤다.

시뻘건 장력이 화염처럼 뿜어졌다.

콰릉!

바람의 칼날 같은 기운이 사라졌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천중의 기운이 급속도로 무거워지더니 하늘이 무너지듯 일시에 주저앉았다.

쿠-웅!

두 호법은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 놀라운 광경에 화운의 양쪽으로 갈라져 지나쳐가려던 이화태양종의 무인들이 와락 멈추고 말았다.

“당신들은 모조리 내 몫이라고 했을 텐데.”

화운이 말한 순간이었다.

콰앙!

백열의 강기가 작렬했다.

화운의 상체가 크게 뒤로 흔들렸다.

“가라! 가서 본좌의 분노를 보여줘라!”

태양존자 명교진이었다.

그의 분노에 이화태양종의 무인들이 다시 돌진하기 시작했다.

두 호법 역시 정신을 차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숫자가 물경 백오십을 넘어간다.

지금 백리연과 남궁현 그리고 선우유성을 상대하는 숫자가 아직도 백이 넘어가고 있으니 이대로 화운을 지나쳐가게 되면 세 사람은 필히 죽는다고 봐야 한다.

두 호법만 달려가도 끝장이다.

화운은 보낼 수가 없었다.

번쩍!

새파란 빛의 고리가 줄지어 날아갔다.

검멸이라 이름 지은 검환이다.

꽈과과과과광!

태양존자 명교진이 발휘한 백열의 강기와 쉴 새 없이 부딪쳤다.

그러는 사이에 화운의 검이 지상의 표면을 따라 회전하며 대지의 기운을 끌어당겼다.

우-웅!

대지의 기운이 화운의 검을 따라 유동하며 지상에 굴러다니는 것들을 모조리 긁어모아 허공으로 솟구쳤다.

돌멩이들부터 시작해서 전각들의 잔해 그리고 태양성군이었던 자들의 시체까지.

그리고 곧이어 급속도로 무거워진 천중의 기운과 함께 장대비처럼 일시에 쏟아졌다.

콰콰콰콰콰콰콰!

그야말로 맹폭이었다.

두 호법처럼 극강의 고수인 몇몇을 제외하고는 두 다리로 선 자가 없었다.

“이놈!”

화운의 검멸을 간신히 막은 태양존자 명교진이 벼락같이 쏘아왔다.

화운이 그를 향해 묵검을 뻗었다.

그리고 손에서 놓았다.

번쩍!

묵빛의 일섬이 된 검이 태양존자가 발휘하는 백열의 강기를 꿰뚫었다.

“······!”

태양존자가 우뚝 멈췄다.

그는 방금 벌어진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이기어검이 어떻게······!”

화운의 나이에 자신을 상대하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검로의 궁극이라는 심검의 바로 아래인 이기어검까지 등장할 줄이야.

이때 허공을 크게 선회하여 되돌아온 검을 회수한 화운은 백리연을 비롯한 세 사람의 악전고투를 돌아봤다.

아직 오십여 명이나 남았지만 그 중 태반은 방금 화운이 보여준 신위에 놀라 슬금슬금 뒷걸음 치고 있었다.

“구룡제와 적성대도황의 무위는 어느 정도요?”

화운이 물었다.

태양존자는 자신의 가슴팍에 뻥 뚫려있는 구멍을 내려다보다가 화운의 물음에 고개를 들었다.

그는 대답대신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 호법들을 포함하여 몇 명만이 남았으니 이화태양종은 끝났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구나!”

“잊었나 본데 당신들 역시 남궁검가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소.”

“이놈! 감히 남궁검가 따위가 뭐라고! 어차피 끝장이니 육신을 남겨 무엇하랴!”

태양존자가 분노를 터트린 순간 그의 육신에 남아있던 막대한 공력이 대폭발을 일으켰다.

쾅!

태양존자의 육신이 터지면서 그 혈편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그 폭발에 간신히 살아남았던 두 호법을 비롯한 이화태양종의 고수들이 일제히 휩쓸렸다.

강기의 막을 일으켜 막은 화운은 백리연을 비롯한 세 사람에게로 돌아갔다.

태양존자의 자폭과 동시에 그들의 싸움도 끝났다.

남은 자들이 도망친 것이다.

더 이상 상대할 적이 없고, 화운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본 세 사람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헐떡거렸다.

“끝내 오지 않는군.”

정무맹이 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화운은 실망했다.

늦어도 와줄 것이라 여겼다.

자신들을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무맹이 건재하다는 것을 세상 천하에 스스로 보여줄 천금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걸 마다했다는 건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그만큼 위축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도망칠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죠?”

“예.”

“하아, 우릴 너무 극한으로 내모는 거 아닌가요?”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혼자 다해놓고 믿기는 뭘 믿어요?”

화운은 그저 웃었고, 백리연은 자신의 말마따나 혼자 적들의 태반을 상대한 사람을 타박한다는 게 우스워 그만두었다.

“이제 어쩌실 거죠?”

“정무맹이 오지 않았으니 가지 않을 건가요?”

“내가 가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겁니까? 날 따를 겁니까?”

“그럴 수 없다는 거 알잖아요.”

“왜 안 되죠?”

“아무리 자유롭고 싶어도 부모형제를 저버려서는 안 되니까요.”

맞는 말이다.

그 어떤 이유로도 부모형제를 저버려서는 안 되는 법이다.

“따라가요. 따라가겠습니다. 복수만 하게 해주십시오.”

남궁현이다.

그도 안다.

부모형제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걸.

하지만 지금 그에겐 인륜 같은 도리를 지키는 것 보다 남궁검가의 수많은 원혼들을 위한 복수가 먼저였다.

“내 생각엔······.”

선우유성도 한 마디 하려고 했다.

“넌 형만 따라다녀.”

“어.”

선우유성이 힘없이 대답했다.

순간 화운은 흠칫했다.

지금 보고 있는 의기소침한 모습은 선우유성이 선우세가주 앞에서나 보이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멋대로 했구나! 저 녀석도 나름의 생각이 있고, 저 녀석의 삶인데.’

화운은 미안했다.

“네 생각은 뭐냐?”

화운이 묻자 선우유성이 얼른 고개를 들었다.

“형이 실망했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어른들을 만나보고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왜 그래야 하는데?”

“난 형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도통 모르겠어. 그 말도 안 되게 강해진 것도······· 뭐 검성 어르신을 만났다고 하니 무공은 그렇다 치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왜 정무맹에 가야 하냐고? 우린 사파인이 아니니까. 사파천하인 세상이 되어버렸으니까 한데 뭉쳐서 싸워야 하잖아.”

“······.”

“무공이 강하면 약한 사람들을 보호해 주고, 똑똑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가르쳐주고, 가진 사람은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어른은 아이를 이끌어주고,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잖아.”

“······.”

“형은 강해.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가자. 정무맹으로 가자.”

화운이 말했다.

애초 갈 생각이었지만 선우유성의 말을 들으니 더더욱 찾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무맹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만나서 물어보아야겠다.

“정무맹은 지금 어디에 있냐?”

“옥화산(玉化山). 강서성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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