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 신풍대 첫 임무(3)
호북성 의창 장강 강변.
신풍대는 장강 한복판에 집결한 장강수로십팔채 선단을 보고 있었다.
“어렵겠는데요.”
보자마자 든 생각이다.
남궁현이 한 말이지만, 선우유성과 백리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백 명이 탈 수 있을 것 같은 대형선박이 세 척이었고, 사오십 명이 탈 수 있을 것 같은 중형선박이 삼십여 척, 그리고 십여 명 이내에서 승선이 가능한 소형선박이 칠팔십 척은 되어 보이는 엄청난 규모의 대형선단이었다.
‘역시 장강수로십팔채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소형선박들이 바깥쪽을 에워싸고 있어서 일차적으로는 그들의 감시를 피해야 하고, 거길 통과한다 하더라도 중형선박들이 충분한 간격들을 유지하고 있어서 속전속결도 어려워 보입니다.”
남궁현의 말이 이어졌다.
화운은 장강수로십팔채의 선단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남궁현의 분석은 그럴듯했다.
하지만 한 가지가 빠졌다.
바로 이쪽의 공격력이다.
“세 사람은 자신들의 무위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해?”
화운의 갑작스런 물음이었다.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화운이 어떤 의도로 물은 것인지 짐작하지 못해서고, 영약을 복용하고 난 후 자신들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제대로 알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저기 소형선박들 뒤로 첫 번째 중형선박 보여? 돛대에 시커먼 깃발이 내걸려 있는 배.”
“예.”
“보여요.”
“세 사람은 그 배를 점거하도록 해. 아마 수적들이 새까맣게 몰려들 거야. 죽을 때까지 미친 듯이 싸워봐.”
“대주님은요?”
“대형선박, 저것들을 털어야지.”
“네에?”
“그게 무슨……!”
세 사람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 되는 작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화운은 곧장 실행에 옮기겠다며 강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대주님!”
“형! 이건 아닌 것 같아!”
“우리 조금만 시간을 갖고 계획을 세워요.”
세 사람이 따라 붙으며 심각하게 만류했다.
백리연까지 아니라며 붙잡자 화운은 자신 있는 얼굴로 말했다.
“계획은 이미 세워져 있습니다.”
“방금 그건 계획이 아니에요.”
“맞아, 형! 우리 계획 좀 세우자.”
“대주님!”
화운이 걸음을 멈췄다.
“멋지게 해치울 수 있을 거야!”
화운이 씩 웃으며 말했다.
좀 전에 말한 계획을 실행하려는 게 분명했다.
“어차피 배도 구해야 하니까 가면서 생각해 보죠.”
남궁현은 화운을 말리지 못할 것 같아 보이자 작전을 바꿔 강변을 따라 걸으며 말했다.
순간 화운이 그를 붙잡았다.
“배는 필요 없다.”
“예에?”
모두가 의아해 하는 순간 화운이 남궁현과 선우유성의 뒷덜미를 붙잡아 냅다 던져 버렸다.
“으헉?”
“억?”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크게 놀란 두 사람.
두 사람이 날아가는 방향에는 그 시커먼 깃발이 걸려 있는 중형선박이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화운이 당황하는 백리연의 허리를 휘감아 땅을 박차고 신형을 날렸다.
백리연이 피하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워낙 빨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허공으로 솟구치자 공기가 얼굴을 때리는 것 같아 백리연은 깜짝 놀랐다.
순식간에 앞서 던졌던 선우유성과 남궁현을 따라잡을 정도로 빨랐다.
‘정말 대단해!’
백리연이 놀란 얼굴로 화운을 슬쩍 쳐다볼 때다.
“쏘지 마! 우린 새가 아냐!”
남궁현이 소리쳤다.
소형선박에서 사방을 경계하던 수적들이 화살을 재고 있었던 것이다.
쏠지 말지를 망설이던 수적들이 남궁현의 말에 화살을 막 날리려고 할 때였다.
새파란 강기가 날아가 소형선박을 통째로 부숴 버렸다.
화운이 검강을 날린 것이다.
그 요란한 소리에 다른 소형선박에서 화살들을 날리기 시작했다.
“중심을 잡으십시오.”
화운이 외치며 백리연을 가볍게 밀 듯이 던졌다.
이미 목표로 하던 중형선박 가까이 날아가고 있던 터라 백리연은 어렵지 않게 중심을 잡으며 갑판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이후 검을 집어넣은 화운은 날아가고 있던 선우유성과 남궁현의 뒷덜미를 붙잡아 단숨에 갑판 위로 올라섰다.
“후아! 다시는 그러지 마십시오!”
“형, 이건 진짜 아닌 것 같아!”
“미안, 다음부턴 미리 말하마.”
“아뇨! 미리 말하지 말고, 던지지도 마요!”
남궁현이 단단히 삐진 투로 말했다.
그만큼 놀라서다.
화운은 씩 웃으며 앞을 향해 턱짓했다.
“따지는 건 나중에 하자.”
화운의 말에 세 사람은 갑판 위로 몰려들고 있는 수적들을 향해 검을 뽑았다.
“다들 뒈졌어!”
신경질적으로 외친 남궁현이 가장 먼저 뛰쳐나갔다.
번-쩍!
남궁검가의 소가주답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검세가 펼쳐지자 사납게 달려오던 수적들이 맥없이 고꾸라졌다.
다음은 백리연이다.
그녀는 갑판을 박차고 제비처럼 쏘아간 다음 벼락같이 검을 찔렀다.
“컥!”
“끄억?”
목과 심장에 구멍이 난 수적들이 단말마를 터트리며 돌처럼 굳었다가 쓰러졌다.
“다음은 나다!”
선우유성이 달려갔다.
곱게 생긴 얼굴과는 달리 제법 큼지막한 덩치에서 뻗어 나오는 검세가 힘찼다.
“끄억!”
선우유성의 검을 막던 수적이 어깨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힘에서 완전히 밀린 것이다.
삼두독각망의 내단을 복용하여 공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데다 사지백해의 혈도들이 뻥 뚫려 하단전에서 검신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내력이 빠르고 힘찼다.
“크하하하! 이 몸이 바로 영웅협객 남궁현 님이시다! 꿇어라!”
“선우유성이다! 꿇어라!”
“쓰러져라!”
두 사람은 물론이고 백리연까지, 세 사람은 강해진 자신들의 무위에 신이 났다.
하지만 세 사람의 일방적인 공세는 수적진영에 고수들이 가세하면서 끝이 났다.
그들은 가까운 중형선박에서 건너왔다.
두 선박을 잇고 있는 밧줄을 마치 곡예사처럼 밟고 건넜다.
그것도 상당히 빠른 속도로.
화운은 그들이 건너오는 것을 알았지만 내버려두었다.
그들 정도는 되어야 선우유성 등이 가진 무위를 맘껏 펼쳐볼 수 있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긴장들 해. 진짜가 오니까!”
화운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차례로 갑판 위로 오른 그들이 선우유성 등을 하나씩 맡아 덮쳐갔다.
“이 찢어죽일 놈들!”
“계집! 얼굴을 그어주마!”
큼지막한 낭아봉(몽둥이에 못 같은 걸 박아놓은 무기)을 휘두르며 남궁현을 향해 달려든 자는 지금 타고 있는 선박의 주인인 흑사채주였고, 날의 폭이 좁고 길쭉한 직도를 백리연을 향해 내리친 자는 교룡채주, 그리고 선우유성을 향해 두 자루의 쇠도끼를 휘두른 자는 무하채주였다.
그리고 한 사람 더 화운을 향해 달려든 자도 있었다.
“어머! 잘생긴 얼굴 좀 봐! 이 누나랑 이야기 좀 할까!”
표독스런 인상의 여인이 붉은 입술을 핥으며 화운을 향해 다가왔다.
하지만 화운은 세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느라 여인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뭐야! 이 누님을 두고도 한눈을 팔아? 저 계집년이 그렇게 좋아? 교룡채주님, 그년의 얼굴 가죽을 벗겨 버리세욧!”
여인이 소리친 순간 묵직한 바람소리가 일직선으로 들이닥쳤다.
빠악!
여인은 돌덩이처럼 굳은 채 뒤로 넘어갔다.
화운의 주먹이 얼굴에 꽂힌 것이다.
“집중해! 한 식경만 버텨! 그럼 돌아올 테니까!”
화운이 소리치며 허공으로 솟구쳐 돛대 위로 올라섰다.
우지직-쿵!
돛대가 배의 바닥을 뚫고 강바닥에 박히는 소리였다.
발바닥의 용천혈을 통해 발출된 힘이 돛대를 위에서부터 직격한 것이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 갑판 위의 싸움이 잠깐 멈추었다.
바로 이때 화운이 검을 뽑아 세차게 휘둘렀다.
그러자 새파란 강기 십여 개가 부채꼴로 흩어져 날아갔다.
콰앙! 쾅쾅쾅쾅쾅쾅쾅쾅!
단 한 발의 어긋남이 없이 중형선박들에 모조리 적중했다.
뱃머리가 날아가 버리거나 선박의 옆구리가 박살이 났다.
십여 채의 선박이 운항불가가 된 것이다.
전체 선단의 규모를 보면 극히 일부에 불과했으나 충분히 예봉을 꺾은 것일 수도 있어 이 정도만 해도 상당한 전과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화운은 이 정도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화운이 돛대를 박차고 신형을 날렸다.
세 척의 대형선박을 향해 달려간 것이다.
그러면서도 허공에서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다.
쾅쾅쾅쾅쾅쾅쾅쾅!
십여 척이 더 부서졌다.
“봤냐! 봤어? 저분이 바로 우리 대주님이시다! 푸하하하하!”
남궁현이 호탕하게 외치며 다시 달려들었다.
갑판위의 싸움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때 백리연의 표정이 좋지가 않았다.
‘왜지? 놀라긴 했지만 두려워하지는 않고 있어! 장강수로왕을 믿는 건가? 검강 십여 개를 한꺼번에 날리는 대단한 무위를 보여주었는데도?’
백리연은 왠지 모를 불안을 느끼며 화운의 신위에도 전혀 놀라지 않고 있는 자신의 상대에게 집중하려 애썼다.
지금은 그저 화운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대형선박에 올라선 화운은 자신을 상대할 만한 고수가 보이지 않자 돛대를 밟아 운항불능으로 만들어 버리고는 다음 대형선박으로 날아갔다.
화운은 그곳에서 두 명의 노인을 만났다.
작은 키의 노인과 소름끼치도록 인상적인 용모의 녹포노인.
화운은 녹포노인을 보며 말했다.
“큰 배에 두 명의 고수라…… 그런데 한 분께선 이 배와 어울려 보이지 않는군요?”
“가장 안 어울리는 건 네놈이다!”
작달막한 키의 노인이 쏘아붙이는데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영감님이 장강수로왕이시군요.”
“그렇다! 네놈이 박살을 낸 저 선박들의 주인이 바로 나다! 네놈은 대체 뭐하는 놈이냐?”
“앞으로 귀가 따갑게 들을 테니까 잘 기억해 두십시오. 신풍대주 화운, 그게 접니다.”
“신풍대는…… 정파에서 온 것이로구나!”
“보자마자 눈치를 채셨어야지, 눈치가 좀 늦으십니다.”
“이런 찢어죽일 놈!”
자신을 놀리는 것에 더욱 부아가 치민 장강수로왕으로부터 시커먼 묵빛의 밧줄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화운이 성큼 물러나면서 살펴보니 마치 묵빛의 구렁이처럼 보이는 묵편이었다.
척혈묵린편(剔血墨鱗鞭)이란 병기로 장강수로왕의 애병이었다.
“멋지군요!”
감탄하는 화운의 검에 새파란 강기가 맺혔다.
단 한 번의 척혈묵린편의 움직임으로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 간파한 화운은 곧장 달려들었다.
“주둥이를 찢어놓으마!”
장강수로왕의 척혈묵린편이 크게 요동치며 편두가 정면의 화운을 찌를 듯 쏘아져왔다.
번쩍!
새파란 일섬이 편두를 때렸다.
사혼구검의 일 초식 사혼섬!
촤-락! 촤촤촤촤!
편두는 튕겼지만 성난 이무기처럼 요동친 척혈묵린편의 중심부가 크게 휘어지며 후려쳐 왔다.
찰나의 순간을 들여다보는 화운의 눈에 척혈묵린편에 뱀의 비늘 같은 것들이 잔뜩 곤두서 있는 것이 보였다.
살이 걸리는 순간 단숨에 찢어버릴 것이다.
“살벌하군!”
화운이 중얼거린 순간 그의 검이 사혼구검의 사 초식 사혼망을 펼쳤다.
뚜다다다당!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격돌음.
장강수로왕의 척혈묵린편이 여지없이 튕겨 버린 순간.
번-쩍!
사혼구검의 일 초식 사혼섬!
그 섬전의 검초가 반호흡의 간극을 갈랐다.
“……!”
장강수로왕이 기함했다.
그는 잔뜩 놀라 굳은 얼굴로 자신의 앞섶을 내려다보았다.
날카롭게 베어져 있었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하고 물러났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가슴이 갈라질 뻔했다.
“안 갈라졌어요? 옷 좀 벌려보십시오.”
화운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에 장강수로왕이 격분하였다.
“이놈!”
장강수로왕이 척혈묵린편을 한차례 크게 휘둘렀다.
새까만 묵빛이 공간을 저미며 번뜩였다.
화운과의 간격은 오 장여(15m).
이미 척혈묵린편의 간격 밖이었다.
그럼에도 날카로운 기운이 공간을 저미며 날아왔다.
화운이 고개를 부리나케 틀었다.
스-악!
귀밑머리칼이 잘렸다.
화운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처음부터 그렇게 하셨어야죠. 어려 보인다고 만만하게 보다간 관 뚜껑이 일찍 열리는 법입니다.”
화운은 장강수로왕을 더욱 도발했다.
그의 진짜 무력을 보고 싶어서다.
물론 화운은 전력을 다할 생각이 없다.
도망치는 한이 있더라도 검멸의 검환을 난사하여 날려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만약 그렇게 압도적인 무위를 드러냈다간 정도무림연합맹에서 자신의 존재를 경계하다 못해 거부할 것 같아서다.
소패룡 황보장을 날려 버렸을 때 우문검가주와 매화검주가 보여준 반응으로 보아 충분히 벌어질 만한 일이었다.
검을 늘어트린 채 태연히 서 있는 화운의 모습.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라고 했다.
화운이 장강수로왕을 도발한 후 이차 격돌을 벌이려는 순간이었다.
스윽!
여태 보고만 있던 녹포노인이 한 걸음 움직였다.
그런데 그 한 걸음에 죽음의 기운이 진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