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 신풍대 첫 임무(1)
무영투 역시 깜짝 놀랐다.
한창 이무기의 비늘들을 해체하고 있는데 바람소리와 함께 난데없는 놈이 나타나니 귀신이라도 본 듯 깜짝 놀랄 수밖에.
“누, 누구냐!”
“아, 날 모르지.”
“당연히 모르지. 너 같은 놈을 어찌 안단 말이냐!”
“됐고요. 그거 제 것입니다.”
“뭔 헛소리냐!”
“그 삼두독각망 죽인 게 저라구요.”
“뭐?”
무영투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경계했다.
싸우고 어쩌고 할 시간이 없는 화운은 검을 뽑았다.
“이놈이 죽으려고 환……!”
소리치던 무영투가 말을 멈추고 두 눈을 있는 대로 치떴다.
화운이 뽑아든 검 끝에 선명하게 맺힌 건 틀림없는 검환이었다.
“도, 도도도대체! 누구냐 넌! 요?”
“화운이구요. 그거 제 거니까 손 떼세요.”
화운이 성큼성큼 다가오자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난 무영투.
그는 곧 퍼뜩 생각난 것이 있었다.
“너였구나! 비동을 무너트리고 혼자 들어간 놈이!”
“아닌데요!”
“거짓말! 너다! 틀림없이 너였어!”
암로 속으로 먼저 뛰어들 때 스쳐지나가는 그 짧은 순간에도 옆얼굴을 보았었는지 무영투가 자리를 옮겨 화운의 옆얼굴을 훔쳐보며 말했다.
“그럼 저였나 보죠.”
“이, 이익!”
무영투는 분했다.
하지만 검환의 경지에 올라선 고수를 상대할 재간이 없는 그로서는 그저 분함을 삭이는 수밖에 없었다.
화운은 예전에 무영투가 했던 것처럼 비늘들을 해체한 후 이무기의 껍질을 통째로 벗겼다.
그리고 그 껍질 안에 비늘들을 쓸어 담았다.
절그럭!
이무기 껍질로 만든 자루를 내려놓으니 묵직한 소리가 났다.
무게가 몇 백 근은 나갈 것 같았지만 화운에겐 상관없었다.
“무영투시죠?”
“억?”
“영감님 사는 게 재미없죠?”
“뭔 헛소리냐?”
“전 다 압니다.”
“……!”
“이 비늘들 다 드릴 테니까 대륙시 주시겠습니까?”
“헉?”
무영투가 잔뜩 경계하며 더 뒤로 물러났다.
“그걸…… 대륙시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아느냐!”
“말했잖습니까. 전 다 안다고요.”
“당가냐?”
“……!”
“당가가 날 잡아오라고 보낸 것이냐!”
“당가가 뭐하는 덴데요?”
“사천당가!”
“아, 사천 땅에 있다는 독과 암기의 가문?”
“그래, 거기. 거기서 보낸 것이냐?”
“사천엔 가본 적도 없습니다.”
“당가가 아니란 말이냐? 그럼 소림이냐? 아직도 대환단을 훔쳐간 게 나라고 하더냐?”
“소림대환단을 훔쳤어요?”
“그랬으면 내가 환골탈태에 반로환동이라도 했지. 여태 이 모양 이 꼴이겠냐!”
소림사의 대환단은 무인들에게 무가지보라 여겨지는 영약 중의 영약이다.
한 알을 복용하면 환골탈태, 세 알을 복용하면 반로환동한다는 소문이 있다.
“당가도 소림도 아닙니다. 영감님을 잡아가거나 대륙시를 강제로 빼앗을 생각이었다면 진즉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럼 원하는 게 뭐냐?”
“정사대전이 일어난 건 아십니까?”
“모른다.”
흙먼지 투성이인 복장을 보니 그럴 것 같았다.
제천마존의 비동에 들어가고 싶어 인근을 샅샅이 수색한 것 같았다. 그러다 우연히 이곳을 발견했을 테고.
“정파무림연합맹이 만들어졌고 천사련이랑 대대적으로 한판 벌이게 되었습니다. 전 정파무림연합맹 신풍대 대주라 그 전쟁에 참여할 겁니다. 해서 말인데 무영투 영감님이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참여해 보시겠습니까? 아마 신나는 싸움이 많이 벌어질 겁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삶이 지루하다 여기고 있는 무영투라면 혹할 제안일 것이다.
화운은 그렇게 여겼다.
하지만 무영투의 반응은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헛소리 마라.”
“……싫으면 마십시오.”
매달리면 더 의심하고 멀찍이 물러날 무영투다.
화운은 이무기 비늘이 잔뜩 들어 있는 자루를 짊어지고 미련이 없다는 듯 허공으로 솟구쳤다.
“내, 내 비늘! 내 비느-을! 망할 거지발싸개 같은 놈아! 내 비늘 내놔라!”
무영투가 소릴 지르며 허공으로 솟구쳐 뒤를 쫓았다.
단숨에 신형을 뽑아 올려 밖으로 나왔는데 화운이 보이지가 않았다.
“억?”
깜짝 놀란 무영투는 까마득한 아래를 둘러보았다.
“저기다!”
한참 아래 화운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광경이 보였다.
“흥! 이 어르신께서 놓칠 것 같으냐!”
코웃음 친 무영투가 신형을 날렸다.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날다람쥐처럼 뛰어내린 무영투의 신형이 곧 화운을 향해 빠르게 쏘아갔다.
절정의 질풍무영(疾風無影)이었다.
하지만 화운과의 간격을 조금도 줄이지 못했다.
“오냐! 이 어르신의 진짜 경신공부를 보여주마!”
쓔-웅!
무영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희끗한 무언가가 빛줄기처럼 쏘아갔다.
공공무영비 구단공 무영비천(無影飛天)!
아직 이 성 수준에 불과한 무영비천이었지만, 경이로울 정도로 엄청난 빠르기였다.
“놈! 잡았다!”
무영투가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쑤-앙!
화운이 짊어진 자루를 막 움켜잡으려는 순간 화운의 신형이 전방으로 빛줄기가 되어 사라졌다.
“으엑?”
무영투는 너무 놀란 나머지 중심을 잃고 바위에 처박힐 뻔했다.
“저, 저저저저!”
극도로 놀란 무영투는 죽을 힘을 다해 무영비천을 펼쳤다.
쓔-웅!
***
“대주, 말이에요. 얼마나 강할까요?”
남궁현이 물었다.
백리연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모르겠다.”
“왜요? 대주가 구룡태자를 상대할 때 봤을 거 아니에요?”
“제대로 보지 못했거든.”
그날 화운은 백리연 앞에 철탑처럼 서서는 구룡태자 북궁무결을 상대했다.
죽음을 떠올려야 할 정도로 놀랐던 백리연은 살았다는 안도감과 화운의 정체에 대한 의문으로 많은 것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나중에 곰곰이 생각하면서 기억해 낸 게 있다.
화운이 북궁무결을 일방적으로 날려 버렸다는 것이다.
“구룡태자가 아예 상대가 되지 못했던 건 확실해.”
“그럼 구룡태자는 얼마나 강할까요? 알려지기론 무당명검이나 화산기룡과 비슷하다고 하던데.”
구룡태자의 무위를 짐작이라도 해야 화운의 무위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남궁현의 생각에 백리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강기무공의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어. 그날 검환을 발휘하진 않았었으니까.”
“전력을 다한 강기가 아닐 수도 있잖습니까?”
“아버님이 팔 성의 강기로 상대했다고 하셨어. 물론 무공의 종류에 따라 강기도 천차만별이고 그 강함을 분류하는 것도 다 다르겠지만 팔 성 수준의 강기를 발휘한 아버님을 압도할 무위라면 강기의 끝자락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동감입니다. 그럼 대주님은 최소 검환의 경지라는 거겠군요. 검환의 경지……! 검환…… 그게 말이 돼요?”
남궁현이 놀라 눈만 끔뻑거리다 다시 쳐다보며 물었다.
백리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황상으로는 그게 맞는데 현실적으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일이라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이번 일로 깨달은 게 있어.”
백리연이 말했다.
그녀는 남궁현과 선우유성을 한번 번갈아본 후에 말을 이었다.
“세상에 알려진 무위로만 적을 판단하다간 정말 곤란해질 거라는 거야.”
“아!”
“맞는 말 같아요. 황보장 형님만 봐도 그렇잖아요. 아수라파천권을 익히고 계실 줄이야!”
“야! 형님은 무슨……. 그냥 황보장이라고 해.”
선우유성의 말에 남궁현이 성을 냈다.
선우유성은 남궁현이 화를 내는 이유를 알기에 뒷머리만 긁적였다.
믿고 동경한 만큼 화가 난 것이다.
선우유성도 제법 우러러보았기에 실망이 컸다.
“근데 말이야. 유성이 니가 보는 대주는 어떤 분이냐?”
“형은…… 진짜 좋은 형이야.”
선우유성이 씩 웃었다.
형을 처음 본 날이 생각났다.
고모님마저 잃고 천애고아가 되어 세가로 찾아온 날.
그날 부친과 세가는 냉대했다.
받아주긴 했지만 따뜻한 말 한 마디 해주지 않았다.
외로움, 절망, 비관으로 주눅이 들거나 불만, 반발심 그리고 미움 같은 감정이 생기기에 충분했다.
그런데도 한쪽에서 어물쩍거리는 선우유성 자신을 향해서 아무도 모르게 웃어주었다.
아주 환하게.
그 웃음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야, 그걸 물은 게 아니잖아! 형이 있다고 자랑하는 거냐? 무위가 어떤지 어떤 무공을 익혔는지 그런 걸 물은 거잖아!”
“아! 그건 나도 몰라. 형이 그렇게 강하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어. 그동안 왜 숨겼을까?”
“검마 대협께 배운 것이라 숨긴 거겠지. 아니면 검마 대협이 숨기라고 했든지.”
그렇게 세 사람이 화운에 대해 한참 이야기하고 있을 때였다.
쑤-앙!
대기를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파공음이 아주 멀리서부터 들리는가 싶더니 느닷없는 돌풍과 함께 한 사람이 나타났다.
“형!”
“대주?”
세 사람이 화들짝 놀라 일어선 순간.
쓔-웅!
또 한 번의 파공음과 함께 무영투가 나타났다.
“영감님 되게 끈질기시네.”
“너, 너 이놈! 정체가 뭐냐? 그 경신술……!”
“제 경신술이 왜요?”
화운은 무영투가 놀라 쫓아온 이유를 알면서도 시치미를 뗐다.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공공무영비를 알고 있느냐고 추궁해야 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싶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와! 영감님 대단하시네. 세상에 절대무영비와 맞먹는 경신술이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절대무영비?”
“예. 제가 익힌 경신술 이름입니다. 자, 그건 그렇고. 여긴 신풍대 대원들입니다. 다들 인사드려. 여기 이분이 바로 천하대도들의 전설이신 무영투 영감님이셔.”
화운의 말에 남궁현이 가장 먼저 꾸뻑 인사했다.
“남궁검가의 남궁현입니다. 대도전설 무영투 어르신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남궁검가 남궁현? 자네가 거기 소가주라고?”
“예.”
“안녕하십니까. 선우세가 선우유성입니다.”
“선우세가……!”
“예.”
“백리연이에요.”
“백봉?”
“과한 별호예요.”
무영투는 세 사람의 신분을 알게 되자 놀람을 금치 못했다.
선우세가야 그렇다 치더라도 남궁검가와 백리세가라니.
그것도 남궁검가의 소가주와 백봉!
“왜 여기에……?”
“그거야 이것 때문에 제가 데려온 거지요.”
화운이 짊어지고 있던 자루를 땅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선우유성과 남궁현이 궁금한 얼굴로 자루를 열고 들여다보았다.
“이게 뭡니까?”
남궁현이 비늘 중 한 개를 꺼내 물었다.
“삼두독각망의 비늘.”
“삼두독각망이 뭔데요?”
“용이 되려다 만 머리 셋 달린 이무기쯤 돼.”
“예에?”
“……!”
화운의 말에 남궁현과 선우유성은 물론이고 백리연까지 놀람을 금치 못했다.
“이게 쇠보다 가볍고 단단해. 어지간한 강기는 한두 번쯤 버텨낼 정도야. 그래서 이걸로 검이랑 방어구를 제작할 생각이야.”
“저희들 주시게요?”
남궁현이 눈치 채고 잽싸게 물었다.
“맞아.”
“으헝! 사랑합니다. 대주님!”
남궁현이 과장스럽게 고마움을 표했다.
남궁검가의 소가주로서의 위신과는 거리가 한참 먼 행동이었으나 그 행동 하나로 분위기가 더욱 화기애애해졌다.
화운은 피식 웃어준 후 무영투를 돌아봤다.
“앞장서시죠.”
“잉? 무슨……?”
“천하제일공방 천병가. 그리로 안내해 주십시오. 여기 비늘들 중 일부는 영감님께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 정말인가?”
“영감님, 좋은 분이시잖습니까.”
히죽 웃는 화운.
무영투는 얼떨결에 천병가까지 안내하게 되었다.
***
호남성 장사.
정파무림연맹 맹주부.
열흘의 기한이 다 가기도 전에 화운이 찾아왔다.
“그래, 대원들을 전부 모집했다고?”
“예.”
“누군가?”
“백리세가의 백봉, 남궁검가의 남궁현 그리고 선우세가의 선우유성입니다.”
“흠.”
보고 들은 대로 확실히 뜻밖인 구성이다.
그렇다고 만족스럽다는 건 아니다.
“좀 모자라지 않을까?”
“충분합니다. 한 명 더 접촉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까지 참여한다면 완벽에 가까운 신풍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알겠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두 단계는 더 강한 자네이니 믿어보지.”
“첫 임무는 어찌 되었습니까?”
“급한가?”
“맹의 첫 번째 전공을 신풍대가 올리고 싶습니다.”
“허허! 자네 말대로 우린 생각하는 게 비슷한 모양이군. 그렇잖아도 신풍대를 위한 임무를 준비해 두었네. 좀 어렵긴 하지만 자네라면 해낼 것이라 믿네.”
“말씀만 하십시오.”
“장강수로십팔채라고 아나?”
조극산이 목소리를 낮추기 시작했다.
***
장강.
동서로 흘러 대륙을 위아래로 동강 내고 있는 물줄기다.
대륙의 물질문명은 장강에서 시작되고 장강을 따라 흥망과 성쇠를 거듭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륙인들에겐 젖줄과도 같은 곳이 바로 장강이다.
문물은 섞이고 교류하기 마련이라 남과 북은 물론이고 동과 서 역시 장강을 따라 소통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도적들이 횡행하게 되었는데, 물에서 살고 물길을 따라 출몰하는 자들이라 수적이라 했다.
장강수로십팔채.
수백 년 전 정파인들의 대대적인 토벌에 장강의 수적들이 바다까지 내몰렸다.
그때 홀연히 나타나 살아남은 장강의 수적들을 규합하여 정파인들을 장강에서 내쫓은 고수가 있으니 수적들은 그를 장강수로왕이라 찬양하며 그의 발치에 부복했다.
그때부터 장강의 물줄기를 따라 발호한 수많은 수채들 중 가장 강한 열여덟 개의 수채를 중심으로 장강을 지배하니 장강수로십팔채라 불리게 되었고, 총채주는 대대로 장강수로왕이라 불렸다.
“장강은 정말 넓군요. 언제 봐도 가슴이 탁 트이니 정말 좋구려.”
특이한 형색의 노인이다.
소맷자락이 큰 녹포를 입고 있었는데 깡말라 보이는 얼굴은 잿빛이었고, 퀭하게 자리 잡은 두 눈은 죽은 자처럼 어두웠으나 깊이 자리한 동공은 놀랍게도 녹빛이었다.
거기에 가지런히 묶은 머리칼이 회백색이다 보니 지나가다 스쳐봐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소름끼치도록 인상적인 용모였다.
“장강을 탐내는 것이오? 내 독왕과는 싸우고 싶지 않으니 그저 말씀만 하시오. 장강을 곱게 내어드리리다.”
작은 키의 노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키는 작으나 배포는 장강만큼이나 장대하다고 알려진 장강수로왕이다.
한데 방금 장강수로왕이 상대를 독왕이라고 칭했다.
당금 천하에 독왕이라 불리는 자는 단 한 사람뿐이다.
사천독왕 당후!
독과 암기의 조종이라 일컬어지는 사천당문의 당대문주.
정과 사, 어느 쪽도 아니라고 알려진 그가 장강수로왕과 나란히 앉아 장강을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노부는 물고기 밥이 될 생각이 없소이다.”
괴팍하다고 알려진 독왕이 겸양을 떠는 것으로 보아 한배를 타기로 한 것이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