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 신풍대
화운이 서둘러 밖으로 나가보니 정말 백리연이 와 있었다.
“백리 소저.”
“신풍대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전 안 되나요?”
“굳이 들어올 이유가 없잖습니까?”
“있어요.”
“예?”
“들어가고 싶은 이유가 있어요.”
“……!”
화운은 물을 수가 없었다.
들어오고 싶은 이유가 뭔지.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이 ‘나 때문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물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까 봐.
착각은 자유라고 하니 그냥 착각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이어졌다.
“백리세가주님께 허락을 받으셔야 할 겁니다.”
“대주께서 허락을 구해주시면 되잖아요.”
“예?”
“원래 제 일이라는 걸 알아요. 그치만 안 된다면 모를까, 되는 거라면 공평해야지요.”
“공평은 또 무슨……?”
“여기 현이는 남궁검가주님께 허락을 받으러 직접 가신다면서요?”
화운은 할 말이 없었다.
그녀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이때 선우세가주의 목소리가 막사 안에서 들려왔다.
“무력대의 수장이 된다는 건 명령권만 갖는 게 아니다. 대원들의 목숨에 대한 책임도 함께 지는 것이다. 맹주님께서 명을 내리신 게 아니라면 가주님들을 직접 찾아뵙고 허락을 청하는 게 맞다.”
“예.”
화운이 대답할 때 백리연이 막사 입구로 다가가 선우세가주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선우세가주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게 하여 화운은 남궁현을 신풍대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남궁검가주를 찾아갔다.
백리연과 선우유성 그리고 남궁현이 뒤를 따라갔다.
남궁현 다음이 백리연 차례여서고 이미 신풍대원이 된 선우유성은 이제 함께 다녀야 했다.
그런데 남궁검가 진영으로 가보니 백리세가주가 함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자네가 신검룡이라고?”
화운보다 두세 살 많아 보이는 청년이 놀란 표정을 짓더니 불쑥 손을 뻗어 화운의 손부터 잡았다.
“고맙네. 고마워. 나 백리명이네. 아버님과 동생을 구해주어 정말 고맙네.”
백검룡 백리명.
백리세가의 소가주로 백리연의 오빠다.
세가에서 일 년째 폐관수련을 해오다 부친이 구룡태자의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손부터 잡고 고마움을 표하는 모습을 보니 백리세가주와 무척 닮았다.
“어쩌다 보니 도움을 드리게 되었을 뿐입니다.”
“어쩌다 보니? 그런 대답이 어딨나? 죽을힘을 다해서 구해드린 거라고 해야지. 그래야 뭐든 챙길 수 있거든. 본가에 의천검이라고 가주님께서 목숨처럼 아끼시는 신검이 있네. 그 정도는 받을 자격이 넘치니까 달라고 해보게.”
“……!”
“험험!”
백리세가주가 헛기침을 했다.
백리명은 잽싸게 한 걸음 물러났다.
“목숨보다 귀한 건 없는 거라고 아버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니놈이 가장 아낀다는 그까짓 적송 하나 때문에 이렇게 복수를 하려는 것이냐! 이 썩을 놈아!”
“그까짓이라니요? 제가 다섯 살 때 직접 심은 친구란 말입니다.”
“또 저 소리! 세상천지에 나무랑 친구 먹는 썩을 놈은 너뿐일 거다!”
“아버님도 의천검이 마음이 통한다 어쩐다 그러셨잖습니까.”
“의천검이랑 그깟 소나무가 같으냐!”
“다르죠! 죽은 쇳덩이랑 살아 있는 적송이 같을 수가 없죠!”
“뭣! 죽은 쇳덩이?”
“그럼 의천검 걔가 살아 있습니까?”
백리세가의 두 부자가 언쟁을 벌였다.
서로를 못 잡아먹어 목에 핏대를 세울 정도는 아니었으나 서로 자신들이 맞다며 침을 튀기고 있었다.
그 모습에 백리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님이 검을 수련하시다가 연무장 한쪽에 있는 적송을 베어버렸어요. 그 일로 저러는 거예요.”
백리연의 설명에 남궁검가주를 비롯하여 모두들 어찌된 상황인지 파악하게 되었다.
“그래, 넌 무슨 일이냐?”
남궁검가주가 화운을 향해 물었다.
“실은 신풍대주 자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긴 들었다. 맹주님 직속이라지?”
“예.”
“맹주님 직속이 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
“맹주님 명만 따른다는 거잖습니까?”
“반대로 생각해보면 맹주님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것과 같다.”
“…….”
“거기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냐?”
“예.”
“맹주님이 직속부대를 따로 만든 건 정치를 하겠다는 뜻이다. 그것도 생각한 것이냐?”
“정치요?”
“그래. 칠대문파와 오대세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아 이권다툼에서 자유로울 분이라 여겨 맹주로 추대했더니, 맹 내의 권력다툼에 끼어들겠다고 하시는 거다.”
“그렇군요.”
“관계없다는 것이냐?”
“저도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선택한 겁니다.”
“그 일에 유성이랑 현이를 끌어들이고 싶은 것이냐?”
“예.”
남궁검가주는 화운이 찾아온 이유를 벌써 짐작하고 있었다.
그만큼 상황판단이 빠르다는 것이고, 이제 막 탄생한 정무맹의 물 위와 아래로 벌어지고 있는 작업들을 살펴보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저 두 녀석들은 너의 동생이다. 아느냐?”
“예. 다치게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정사대전! 전쟁은 재앙이다. 그저 죽이고 죽는 정도가 아니다. 모든 걸 휩쓸고, 모든 걸 집어삼켜 버리는 게 전쟁이라는 재앙이다. 재앙 중에 가장 지독하고 공포스런 것이지. 그 한복판에서 어찌 다치지 않기를 바라겠느냐. 늘 최선을 다하고, 끝까지 책임지겠다면 데려가도 좋다.”
“감사합니다.”
화운은 꾸뻑 인사했다.
남궁검가주의 얼굴을 보니 그거면 족했다.
화운은 이제 백리세가주를 향해 섰다.
“난 왜? 연이도?”
“예.”
“음…….”
무겁게 침음하던 백리세가주.
그가 곧 갑작스럽게 물었다.
“공을 세우는 게 우선인가, 아니면 목숨이 우선인가?”
“목숨입니다.”
“그럼 데려가게.”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늘 무운을 빌어주겠네. 그건 그렇고, 아비로서 강호 선배로써 너희 셋에게도 할 말이 있다.”
백리세가주가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세 사람은 경청하겠다는 자세로 섰다.
“잘 도망치거라.”
“……!”
“……?”
“……!”
뜻밖의 말에 세 사람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적이 너희들이 감당 못할 고수이거든 대주고 뭐고 냅두고 무조건 도망치라는 뜻이다. 그래야 대주가 맘껏 싸울 수 있을 것이고, 니들이 살아야 다음이라는 기회가 생기는 법이다. 알겠느냐?”
어설프게 함께 싸운답시고 화운을 방해하지 말란 뜻이고, 공을 세우겠다는 욕심보다는 우선 살고 보라는 뜻이다.
“옛!”
“예!”
“그럴게요.”
세 사람이 그제야 알아듣고 대답했다.
백리세가주는 흐뭇하게 웃어주었다. 마지막으로 딸자식인 백리연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두 세가주가 허락하자 화운은 거듭 감사를 표한 후 세 사람을 데리고 물러갔다.
“암만 봐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강기 이상이란 말입니까?”
“틀림없네. 소패룡을 상대할 땐 보는 눈이 많아 감춘 것일 거네. 구룡태자를 상대할 때 달랐거든. 그것이 강기인지 검환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네만…… 적어도 강기의 수준은 넘어선 듯 싶네.”
백리세가주의 말에 남궁검가주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남궁검가주 역시 화운이 소패룡 황보장을 여유롭게 상대하는 모습을 눈여겨보았기에 보이는 것보다 더 강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하지만 검강, 즉 강기의 끝자락 가까이일 것으로 보았지, 그 위쪽일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뭡니까? 매제가 검환의 고수라는 겁니까?”
두 가주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백리명이 불쑥 물었다.
그러자 백리세가주가 인상을 썼다.
“누가 매제라는 것이냐?”
“검환의 고수면 매제지요.”
“검환의 고수면…… 그렇구나!”
검환의 고수가 그것도 화운처럼 나이 어린 고수가 세가에 들어온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힘이 될지 깨달은 백리세가주가 눈을 크게 떴다.
“그렇지요. 그럼 저도 갈랍니다.”
“어딜?”
“신풍대요.”
“거긴 왜?”
“검환 배우러요.”
“에라잇! 너는 본가의 소가주씩이나 되는 놈이 한참 어린 동생한테 배우고 싶으냐?”
“그게 어때서요? 불치하문이라고 했는데요.”
“불치하문 같은 소리하고 있네. 이놈아, 세가에 검환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냐! 니놈이 아둔해서 못 배우는 것이지. 제발 생각 좀 하고 말해라. 생각 없이 내뱉는 것도 병이다, 병! 불치병!”
“아버님 닮아서 그런 건데 저한테 뭐라 그러시면 섭섭하죠.”
“누가 널 닮아! 재수 없게!”
“자식한테 불치병이 뭡니까. 또 재수 없다뇨? 제발 생각 좀 하십시오. 생각 좀요.”
두 부자가 다시 침을 튀기기 시작했다.
이때 남궁검가주는 무겁게 침음했다.
“검환…… 정말 검환의 고수일까? 흐음…….”
***
신풍대.
맹주는 열흘의 기한을 주었지만 화운은 하루 만에 조직 구성을 마쳤다.
선우유성, 남궁현 그리고 백리연.
대주는 화운.
‘인원은 이 정도면 충분해. 맹주님도 인원은 적을수록 좋다고 하셨으니까 대대적인 인원이 투입되어야 하는 임무를 내리진 않을 거야.’
문제는 세 사람의 무위다.
“강기를 발현할 수 있어?”
화운은 남궁현에게 대놓고 물었다.
남궁현이 당황했다.
화운이 묻는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기에 이해는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묻는 건 실례일 수도 있다.
“간신히요.”
남궁현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화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보다 뛰어났다.
하지만 모자랐다.
화운이 생각하는 수준은 강기를 자유롭게 다루는 것이다.
자신이 없어도 세 사람이 합심하면 천사련 한복판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수준을 원한다.
“백리소저는 어떻습니까?”
“현이가 말한 것보다 조금 나은 정도일 거예요.”
“알겠습니다.”
화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뭔가를 생각했다.
“난 왜 안 물어?”
선우유성이 물었다.
“형한테 무공 가르쳐 준다면서 맨날 떠벌린 게 너야.”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형이야 알고 있지만 동료들이 모르잖아.”
“그래, 형이 실수했다. 넌 어느 정도냐?”
“아직 강기는 꿈도 꾸지 못 하는 정도. 하지만 가는 길 정도는 엿보이려고 해.”
“벌써?”
“어. 제천마존의 비동에서 현이랑 만나서 이것저것 이야기한 게 도움이 됐어. 갑자기 머릿속에 불이 번쩍 켜지는 것처럼 생각이 나더라고.”
선우유성이 말하면서 웃었다.
자부심이다.
남궁현과 백리연은 살짝 놀랐다.
선우세가에 남아 있는 내공심법이 좋지 못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선우세가가 몰락하게 된 근본 원인은 두 가지다.
첫째, 손이 귀하다.
선우유성이 사대독자일 정도로 사내아이가 잘 태어나지 않았다.
둘째, 무량심법(無量心法)의 유실이다.
무량심법은 천애십팔검(天涯十八劍)과 짝을 이뤄 선우세가의 성명절학으로 유명했다.
무량심법을 익히고 있던 선우유성의 고조부가 강호행 도중 객사하는 바람에 후대로 전해지지 못했다.
그 후 대대로 육합단양공을 익혀 천애십팔검의 짝으로 삼았으나 강기를 발휘하는 데도 시일이 걸렸고, 검환의 경지는 누구도 올라서지 못했다.
“확실히 자질이 괜찮은 편이야.”
“내가?”
“어.”
화운의 말에 선우유성의 얼굴이 밝게 펴졌다.
‘녀석.’
화운은 잘했다는 표정을 지어준 후 백리연과 남궁현을 바라봤다.
“세 사람은 더 강해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게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생각해 둔 게 있습니다.”
화운의 말에 세 사람이 진한 관심을 보였다.
“가면서 이야기 하죠.”
“어디로 가는데요?”
“제천마존의 비동이요.”
백리연의 물음에 화운이 대답했다.
세 사람은 왜 그리 가야하는지 몰라 눈먼 멀뚱멀뚱 떴다.
‘삼두독각망의 비늘! 그걸로 신병이기를 만드는 거야. 그거면 제법 도움이 될 거야.’
지금 삼두독각망의 사체는 그곳에 그대로 있을 터였다.
이번 삶을 시작할 땐 무영투와 검마가 암로조차 통과하지 못하도록 앞서가서 천장을 무너트려 버렸으니까.
이틀 후 화운은 세 사람을 데리고 삼두독각망의 사체가 있는 동부의 출구가 있는 기암괴봉으로 올라갔다.
“세 사람은 여기서 기다려.”
화운은 동부 안으로 뛰어내렸다.
돌덩이처럼 빠르게 낙하하다 실바람에 나풀거리는 솜털처럼 가볍게 둥실거리는 화운.
절정의 부풍무영이었다.
하지만 두 발을 땅에 내리기도 전에 깜짝 놀라 소리쳤다.
“영감님이 여기 왜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