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 소패룡 황보장(2)
“아량 같은 거 바라지 마. 잘난 우문가에는 그런 게 있는지 몰라도 선우세가엔 그런 거 없으니까.”
화운이 우문산을 향해 다가갔다.
자존심이고 뭐고 싸울 엄두조차 나지 않은 우문산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영리한 개새끼는 주인이 몽둥이를 들면 그 자리에 웅크린다. 왜 그러는지 알아?”
우문산은 대답하지 못했다.
처음 들어보는 말이기 때문이다.
“도망치다 맞으면 더 아프거든.”
화운의 말이 끝나는 순간 ‘빡!’ 소리가 터졌다.
십여 보 앞에 있던 화운이 눈 깜짝할 사이에 우문산의 코앞으로 이동하여 몽둥이를 휘두른 것이다.
석상처럼 굳어버린 우문산의 얼굴에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머리통이 깨진 것이다.
“으으으윽!”
우문산이 신음도 비명도 아닌 기이한 소리를 흘렸다.
화운이 몽둥이를 치켜들었다.
우문산의 고개가 몽둥이를 따라 쳐들어졌다.
이윽고 한껏 치켜든 몽둥이가 멈춘다 싶은 순간.
빡!
우문산의 얼굴이 곤죽처럼 짓이겨지며 옆으로 팩 고꾸라졌다.
“이거 너무 간단한 거 보니까 내 위치는 여기보다 더 윗쪽인가 보다.”
화운이 고개를 돌려 우문산 앞쪽에 위치해 있던 자를 바라봤다.
“난, 난 아니오!”
두려움에 떤 자가 도망치듯 뒷걸음질 쳤다.
“뭐, 굳이 자리를 내주겠다면야 사양하지 않겠어.”
화운이 걸었다.
스스로 물러난 자의 앞쪽이다.
“나도 아니오!”
또 한 사람이 뒷걸음질 쳤다.
“맞아. 영리한 개는 주인의 걸음을 방해하지 않지.”
모욕적인 말이다.
하지만 누구도 맞서지 못했다.
무공의 격차가 어느 정도라야 비벼보기라도 하지, 이건 맹수와 강아지만큼이나 차이가 많이 났다.
용기를 내봤자 우문산처럼 곤죽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모욕을 한 건 자신들이 먼저라 따질 수도 없었다.
“내 자리가 어디쯤일까? 여길까? 저길까? 가다보면 나오겠지 뭐.”
화운은 계속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황보장을 향해서.
화운이 다가갈 때마다 황보장과 함께라면 천사련을 향해 당장이라도 쳐들어갈 것만 같던 패룡대가 뒷걸음질 치기에 바빴다.
그렇게 결국 화운은 황보장 앞까지 다가갔다.
“대주 자리는 특별해서 도전하지 못하고 그러는 거 아니지?”
화운이 몽둥이로 가리키며 물었다.
“정체가 뭐냐?”
황보장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귓구멍이 막혔을까? 아까 분명 백리연 소저가 소개해 주었는데……. 아! 맞다. 선우세가라 귀담아 들을 것도 없었겠지. 몰락해 버린 세가 따윈 흑도방파 보다 못한 법이니까.”
“정녕 선우세가란 말이냐!”
“왜 선우세가면 안 돼? 니들만 강하란 법 있어? 너나 구룡태자 같은 새끼들만 천하를 넘볼 수 있냐?”
“……!”
황보장의 눈이 부릅 떠졌다.
화운이 구룡태자를 언급해서다.
“준비해. 넌 특별한 존재니까. 특별히 피를 봐야 끝날 거야. 그것도 아주 많이.”
화운이 쥔 몽둥이에서 새파란 기운이 넘실거렸다.
이 또한 놀라운 일이다.
무인들의 공력은 그 특질 상 검이나 칼 같은 쇠붙이에나 잘 통하기 때문이다.
화운이 쥔 몽둥이에는 선명하게 강기가 맺혀 있었다.
“음…….”
황보장이 침음했다.
그는 싸움을 피할 수 없음을 알았다.
문제는 어느 선까지 결착을 지어야 하느냐 인데, 그의 고민은 간단히 해결되었다.
모든 걸 꿰뚫어보고 있는 화운에 의해서.
“개새끼도 지 부모 목은 물지 않는다는데 넌 어떻게 생겨먹은 놈이 그런 짓을 했냐?”
“……!”
황보장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진 순간 화운이 결코 싸움을 피할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탐욕 때문에 아비조차 제물로 바쳐 버린 놈!”
“뭐?”
황보장이 흠칫한 순간 화운의 몽둥이가 벼락같이 공간을 갈랐다.
번-쩍!
눈부신 청광이 찰나에 폭발했다.
그와 동시에 황보장의 육중한 체구가 한 번 휘청했다.
그 짧은 순간 황보장이 화급히 천왕파황권(天王破荒拳)이라는 황보세가의 성명절학을 펼쳤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가슴팍이 박살이 날 뻔했다.
“이놈!”
가슴이 서늘해진 황보장은 참고 참았던 화가 기어코 폭발하고 말았다.
하지만 화를 참고 폭발하고 그럴 새가 어디에 있나.
상대가 화운이거늘.
때로는 정파의 아이처럼 유순하게,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마도의 미친놈처럼 돌변하는 게 지금의 화운이었다.
“놈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이거나 처먹어라!”
화운이 몽둥이를 번쩍 치켜들었다가 그대로 휘둘렀다.
이대로 당할 수 없는 황보장이 천왕파황권을 펼쳤다.
그는 무력 충돌이 발생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했다. 화운이 무얼 아는지는 모르지만 처치해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운이 휘두르고 있는 몽둥이는 그냥 몽둥이가 아니었다.
쾅!
천왕파황권이 박살이 나고 황보장이 크게 휘청이며 뒷걸음질 쳤다.
순간 화운이 이때다 하며 개를 잡듯 마구잡이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빡빡빡빡빡빡! 빠바바바박!
머리며 어깨며 팔 몸통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두들겼다.
황보장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머릿속을 뒤흔드는 고통은 둘째 치고 개처럼 맞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수치스러웠다.
“죽인다! 죽인다! 죽여 버리겠다!”
“개새끼가 아직도 짖네.”
화운은 무자비했다.
제 탐욕 때문에 아비조차 죽음으로 내몬 놈이거늘 무슨 자비를 베풀까.
스스로 짐승보다 못한 짓을 했으니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는 수밖에.
온몸의 뼈가 부서지도록 두들겨 팼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핏발이 서다 터져버렸는지 혈루를 흘리고 있는 황보장은 정신없이 두들겨 맞는 중에도 살의에 찬 말만 중얼거렸다.
뻐억!
마지막으로 가슴팍을 두들기자 육중한 터격음이 터지며 황보장이 쪼개진 장작처럼 날아갔다.
입으로는 굵은 핏줄기를 뿜고 있었으니 치명상을 입은 게 틀림없다.
“무슨 짓이냐!”
“이놈! 멈추지 못할까!”
뒤늦게 노고수들과 세가의 가주들이 엄중한 일갈을 터트리며 달려왔다.
그들은 화운의 몽둥이질에 의해 황보장이 날아가는 광경을 보고는 화운을 향해 쇄도했다.
가장 먼저 매화검주의 검이 강기를 머금고 쏘아져 왔고, 일양신수의 일양지가 날카롭게 뻗었다.
나한당주와 우진궁주 등도 여차하면 화운을 제압할 준비를 하며 달려왔다.
화운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몽둥이를 휘둘렀다.
사혼구검의 절초 사혼망을 몽둥이로 펼친 것인데, 이미 초식의 한계를 벗어나 버린 화운이라 본래의 사혼망과는 사뭇 달라 검마의 검공이라는 걸 알아보는 이가 없었다.
콰콰쾅!
매화검주와 일양신수의 공격이 간단히 막혔다.
그 놀라운 광경에 나한당주와 우진궁주가 나서려는 순간.
“크아아악! 죽여 버리겠다!”
피를 뿜으며 날아갔던 황보장이 괴성을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머리털을 곤두서게 만드는 살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졌다.
“그래, 뭔가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구룡태자와 마경 같은 놈들과 어울렸겠지.”
화운이 이죽거렸다.
황보장의 두 주먹엔 시뻘건 기운이 요동쳤다.
마치 큼지막한 불덩이를 움켜쥐고 있는 것 같았다.
“아수라파천권!”
멸절신니가 기함하여 소리쳤다.
“진정 아수라파천권이란 말입니까?”
일양신수가 놀라 물었다.
“틀림없다! 빈니가 관에 들어갈 날이 멀지 않았다만 아직 기억력이 쓸 만해서 네놈이 소싯적에 술 처먹고 본파에서 추태부린 걸 어제 본 일처럼 기억한다.”
“별걸 다……!”
“아수라파천권이라면 합공을 해야 하오!”
우진궁주가 소리쳤다.
그 역시 크게 놀란 모습이었다.
대체 아수라파천권이 어떤 무공이기에 이토록 놀라는 것일까?
아수라파천권!
마도십대 절학 중의 하나로 수백 년 전 딱 한 번 천하에 나타난 적이 있는데 아수라혈마황이란 자가 혈혈단신으로 천하를 마구 짓밟았다.
당시에 아미파가 입은 피해가 워낙 커서 아수라혈마황과 아수라파천권에 대한 기록이 세세하게 남아 있다.
아수라파천권의 등장에 노고수들은 화운을 잡으려던 것도 잊어버리고 황보장을 경계했다.
바로 이때!
“그런 살벌한 거나 익히니까 아비를 제물로 삼는 미친 짓을 벌이지!”
화운이 신이 난 얼굴로 말했다.
그에 황보장이 붉은 눈을 번뜩이며 달려들었다.
“죽인다!”
황보장은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게 잘 되어가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놈 때문에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간 감추고 감추어 왔던 아수라파천권이 드러나 버렸으니 이제 그가 걸어갈 길은 하나뿐이었다.
“피의 길! 얼마든지 걸어가 주마! 크핫하하하!”
화운이 몽둥이를 들었다.
“물러나라!”
“아수라파천권은 몽둥이 따위로 상대할 수 없다!”
“아미타불!”
노고수들이 합심하려는 순간.
화운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거나 처먹어라!”
수 장의 간격을 찰나에 돌파해버린 화운이 허공에서 몽둥이를 번쩍 치켜들고 있었다.
새파란 강기가 넘실거리는 몽둥이.
검멸이다.
몽둥이에 수십 개의 검환을 잔뜩 생성한 채 아수라파천권을 펼치는 황보장을 향해 벼락같이 휘둘렀다.
쿠-앙!
무지막지한 충돌.
땅거죽이 수십 장을 뒤집어지는 가운데 무지막지한 굉음이 연이어 터졌다.
쾅! 쾅! 쾅! 쾅! 쾅!
화운이 숨 돌릴 틈도 없이 도끼로 찍듯이 계속 내리 친 것이다.
검멸의 검환을 잔뜩 드리운 채.
한 번 내리칠 때마다 충격의 파장이 땅바닥을 찢어발기며 사방으로 파동쳤다.
“죽어 새꺄! 니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화운이 미친 듯이 두들겨팼다.
황보장이 아수라파천권을 드러내기 전보다 훨씬 더 포악하게 팼다.
쾅! 쾅! 쾅! 쾅! 쾅!
천하를 짓밟았다는 아수라파천권이 그 무시무시한 힘을 과시하지도 못하고 무참히 박살이 났다.
어찌나 일방적이고 무자비하게 두들겨 패는지 아수라파황권의 등장으로 깜짝 놀랐던 고수들이 공력을 풀어버렸다.
쾅! 쾅! 쾅! 쾅! 쾅!
결국 황보장의 너덜거리는 육신이 널브러지자 화운의 몽둥이질이 멈추어졌다.
사방을 넘실거리던 아수라파천권의 살기는 어느새 씻은 듯이 사라지고 난 후였다.
화운이 멈추자 드러난 광경은 처참했다.
육신이 피떡이 되어 널브러진 황보장과 그 앞에 우뚝 서 있는 화운.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모두들 경이와 두려움 사이의 어정쩡한 눈으로 화운을 바라봤다.
황보세가의 무인들조차 반감을 품지 못했다.
화운은 몽둥이를 피를 털듯이 빙글 돌렸다가 검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한쪽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돌아섰다.
“형……!”
선우유성이 자신도 모르게 내뱉었다.
경악, 놀람, 걱정, 염려.
뒤죽박죽으로 뒤섞이던 감정들이 기쁨으로 터져 나왔다.
터벅터벅!
화운은 수백 쌍의 시선을 받으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을 두고 어찌 할지 놀란 눈만 끔벅이고 있는 노고수들을 향해 공손히 포권했다.
이젠 정파의 아이처럼 얌전히 굴 차례인 것이다.
“소란을 떨어 죄송합니다. 저자가 심마에 사로잡혀 황보세가주님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있던 터라 뻔뻔한 작태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흐음…….”
“무량수불!”
“잘했다! 아수라파천권 같은 사악한 마공을 익힌 놈들은 보이는 족족 짓이겨 버려야 한다. 암! 아주 잘했다! 잘했어!”
일양신수는 침음했고, 우진궁주는 도호만 외웠다.
속 시원하게 말한 이는 멸절신니다.
멸절신니만이 화운을 칭찬하고 두둔했다.
“감사합니다.”
화운이 정중히 화답했다.
“그래, 이름은 뭐고, 사문은 어찌 되누?”
“화운입니다. 선우세가가 제 외가입니다.”
“호오! 선우세가!”
선우세가가 외가라는 말에 노고수들의 얼굴이 펴졌다.
확실한 근본이 있으니 참으로 다행하다 여긴 것이다.
하여 고개를 끄덕이며 선우세가주를 돌아봤으나 선우세가주는 맞다는 듯 포권하며 고개만 끄덕여줄 뿐 말이 없었다.
기실 놀라긴 그도 마찬가지라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싶지 다른 이들에게 설명할 말은 없었다.
“이 사람 나한테도 감추다니 살짝 삐치고 싶어지네.”
남궁검가주가 선우세가주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살짝 찌르며 핀잔했다.
“나중에 말함세.”
“술도 함께여야 할 걸세.”
“그럼세.”
이때 화운을 알아본 백리세가주는 화운이 스스로 정체를 밝혔으니 아는 체를 해도 되겠다 싶어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화운의 등장으로 가슴이 철렁한 이가 있었다.
우문검가주였다.
‘어, 어찌 선우세가에 저런 놈이! 분명 저렇게 강한 고수는 없었는데 특히나 저 나이에…… 가만! 외가라고?’
빠르게 염두를 굴리던 우문검가주가 눈을 번쩍이며 선우세가주를 바라봤다.
흐뭇해하거나 기뻐하는 얼굴이 아니다.
뭔가에 놀란 얼굴이다.
‘선우세가주 여동생의 아들놈! 그놈의 무공은 형편없다고 했다. 선우세가의 일반무인들조차 비웃을 정도로. 그런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갑자기 강해지는 무공은 없다. 있다면 사파나 마도의 숭악한 사술뿐. 분명 뭔가 있다!’
다시 화운에게로 시선을 돌리는 우문검가주의 눈에 화운을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는 화산파의 매화검주가 보였다.
‘어쩌면……!’
눈을 빛낸 우문검가주가 큰소리로 외치며 나섰다.
“묻고 싶은 것이 있소!”
모두가 우문검가주를 바라봤다.
헛기침을 한 번 한 우문검가주는 화운을 직시하며 말했다.
“백리세가와 황보세가가 급습을 받은 것도 모자라 아수라파천권이라는 희대의 마공까지 등장했소. 그에 본 가주는 화 소협께 정확한 신분내력과 무공 내력을 밝혀줄 것을 부탁하는 바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