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 그래, 씨앙! 다 덤벼!(2)
“흑야(黑夜)……!”
“환사가 나타났어……!”
정파의 군웅들이 두려움에 떠드는 순간.
낭왕이 이때를 놓치지 않고 벼락같이 구환도를 휘둘렀다.
“놈! 날 막아도 환사의 공격은 막지 못할 것이다!”
낭왕이 기세등등 소리쳤다.
양쪽에서 협공을 하고 있으니 결과는 두고 볼 것도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비겁하다!”
때마침 다가오던 남궁검가주가 환사의 공격을 막고자 신형을 날렸다.
하지만 천사련의 흑마갱주가 커다란 도끼를 휘두르며 남궁검가주를 막아섰다.
“비켜라!”
“남궁검가의 검공을 견식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순 없지, 클클!”
그렇게 남궁검가주의 발이 묶이자 함께 온 점창의 일양신수가 일양지를 뻗었다.
그러나 검은 안개 속에서 튀어나온 노을빛 강기가 튀어나와 일양지를 차단했다.
이렇듯 양측의 고수들이 앞다퉈 끼어든 바로 이때.
모두가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화운이 허공에서 세차게 검을 휘두르자 시퍼런 검의 형상이 낭왕을 향해 쏘아간 것이다.
탄강!
단지 검강을 발휘하는 것과 발휘한 검강을 날리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이라 파괴력이 더 강한 것은 물론이고 지금처럼 합격을 받을 땐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쾅!
낭왕이 이를 악물고 화운이 날린 검강을 받아낸 순간 화운은 신형을 빙글 돌려 환사가 날린 한 줄기 시커먼 기운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꽈앙!
천둥 같은 굉음이 연이어 터지는 가운데 땅으로 내려선 화운은 큰소리로 외치며 신형을 쏘았다.
“그래, 씨앙! 다 덤벼!”
공공무영비를 발휘하여 순식간에 날아간 화운은 흑야의 환사가 발휘하고 있는 검은 안개 속으로 뛰어들었다.
쿠앙! 콰앙! 콰콰쾅!
굉음으로 보아 강기의 충돌이 연이어지고 있었다.
공간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격돌마다 검은 안개가 크게 흐트러졌다가 다시 채워지곤 하여 사람들은 좌충우돌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고 있는 화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찢어 죽일 놈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닥치고 이거나 처먹어!
“적성대도문의 신풍대도 사도강이 바로 나다!”
“알아 새꺄!”
콰앙! 콰콰쾅! 콰쾅!
“대도무쌍을 받아내다니! 무명소졸은 아니구나! 대체 누구냐?”
“지옥명왕 화운! 그게 바로 나다!”
“화운?”
“됐고! 구룡태자 북궁무결! 너도 일루와 새꺄!”
“건방지다! 감히 태자께……!”
환사의 고함이 터져 나온 순간이었다.
번-쩍!
느닷없이 폭발한 새하얀 섬광이 검은 안개를 둘로 쪼개고도 힘이 남아 반경 수십 장을 휩쓸었다.
남궁검가주를 비롯한 정파의 고수들이 깜짝 놀라 각자의 절학들을 펼쳐 막아야 할 정도로 강력한 순백의 강기였다.
죽음 같은 정적!
그렇게 모든 게 끝나 버렸다.
***
“내가 검마다. 걸리적거리지 마라!”
화운은 번쩍 눈을 떴다.
“구룡태자 북궁무결!”
화운이 이를 갈았다.
마지막 순간 북궁무결이 펼쳤던 무공은 실로 대단했다.
막고 피하고 할 틈도 없을 정도로 빨랐고,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 빠르고 강력한 공격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제 낭왕 정도는 관심 밖이다.
“으흐흐! 좋아, 좋아!”
이를 갈던 화운이 갑자기 웃으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황의인을 걷어찬 후 머리 위로 검을 뽑아 휘둘렀다.
이후 놀라 멈춘 백나찰과 도살자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암로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두 사람은 이제 화운의 눈길조차 쳐다보지 못했다.
“너 같은 놈이 있었더냐?”
무영투가 화운의 위아래를 쓱 훑어보며 의문을 표했다.
“계속 뒤쪽에만 있었습니다.”
“다 살펴보아서 너처럼 말쑥해 보이는 인물이라면 기억에 있을 텐데…….”
“됐고요. 저 이무기 비늘은 다 가지시고, 그 외에는 탐내지 마십시오.”
“하나 정도는…….”
“절대 안 됩니다! 검마 대협! 전 배운검, 비응삼십이검, 사혼구검까지 익혔고, 연혼팔검은 훗날 제 검이 원혼들로 무거워질 때 배울 생각입니다.”
화운은 공청석유와 인형설삼을 복용한 후 이무기의 내단까지 복용했다.
“더 강해져야겠습니다. 구룡성의 구룡태자 북궁무결! 그 자식보다 더요!”
“강기를 날리면 탄강이다. 넌 탄강까지 익혔으니 이젠 강기의 벽을 배워야 한다.”
화운은 검마에게 방패처럼 쓸 수 있는 강기의 벽을 배웠다.
***
“그래, 다 덤벼!”
화운이 흑야의 환사가 발휘하고 있는 검은 안개 속으로 뛰어들었다.
쿠앙! 콰앙! 콰콰쾅!
강기의 충돌이 연이어 벌어졌다.
화운은 환사와 사도강을 맞아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남아도는 공력으로 강기의 벽을 일으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북궁무결! 싸우자!”
“건방지다! 감히 태자께……!”
환사의 고함이 터져 나온 순간.
번-쩍!
느닷없이 폭발한 새하얀 섬광이 검은 안개를 둘로 쪼개고도 힘이 남아 반경 수십 장을 휩쓸었다.
“막았다!”
화운이 소리쳤다.
바로 그 순간!
번-쩍!
새하얀 섬광이 다시 한번 작렬했다.
그리고 죽음 같은 정적이 찾아왔다.
***
화운은 공청석유와 인형설삼 그리고 이무기의 내단까지 한꺼번에 복용했다.
그리고 검마와 마주했다.
“강기의 벽으로는 부족합니다!”
“강기의 벽을 익혔으니 호신기공을 배워야 한다. 그 기본 원리는 강기의 벽과 같다.”
호신기공은 공력을 전신의 팔만사천 모공을 통해 일시에 발출하는 것이다.
호신기공이 극강의 수준에 도달하면 강기 형태로 발휘할 수도 있다.
“북궁무결! 와라!”
“건방지다! 감히 태자께……!”
환사의 고함이 터져 나온 순간.
번-쩍!
느닷없이 폭발한 새하얀 섬광이 검은 안개를 둘로 쪼개고도 힘이 남아 반경 수십 장을 휩쓸었다.
“한 번 더!”
화운이 소리쳤다.
바로 그 순간!
번-쩍!
새하얀 섬광이 다시 한번 작렬했다.
“이게 다냐!”
화운이 또다시 소리쳤다.
늘어트린 검에는 시퍼런 강기가 완벽한 검의 형상으로 맺혀 있었고 그의 전신에서는 푸르스름한 호신강기가 너울거렸다.
뿐만 아니라 한 뼘 앞에는 푸른 강기의 벽이 마치 방패처럼 전신을 지키고 있었다.
흑야의 환사와 신풍대도 사도강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삼십 이하의 젊은 층에서 북궁무결의 공격을 막는 자가 있을 줄이라고 상상조차 해본 일이 없는 그들이었다.
“누, 누구냐! 정체가 뭐냐?”
“선우세가에서 온 지옥명왕! 그게 바로 나다! 새꺄!”
화운의 정체가 정파임이 확실해지자 천사련은 충격에 휩싸였고, 정파 진영은 화운의 신위에 환호를 질렀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정파의 고수들은 수십 장의 간격을 강기로 갈라버리는 북궁무결의 엄청난 강함에 경각심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일부 우문검가주 같은 이들은 북궁무결보다는 화운을 더 경계했다.
‘선우세가에 저런 자가…… 이, 이런 맙소사!’
안절부절못하던 우문검가주는 서둘러 수하를 불렀다.
“서둘러 본가로 돌아가라. 가서 총관한테 선우세가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작업을 멈추라고 하여라.”
수하가 달려가자 우문검가주는 화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때 화운은 흑야의 환사와 신풍대도 사도강 그리고 구룡태자 북궁무결을 상대로 한 치도 밀리지 않는 대등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크하하하하! 구룡태자도 별거 아니구나!”
***
화운은 공청석유와 인형설삼 그리고 이무기의 내단까지 한꺼번에 복용했다.
그리고 검마와 마주했다.
“셋을 상대로도 대등하게 싸웠습니다. 하지만 결국 죽는 건 저였습니다. 더 강한 공격이 필요합니다.”
“강환을 아느냐?”
“강기를 구 형태로 한 번 더 압축시킨 것으로 압니다. 우리 같은 검사들에겐 검환이겠지요.”
“맞다. 강환 또는 검환이라고도 한다. 강기를 압축시키는 것인 만큼 훨씬 더 많은 공력과 깨달음을 요구한다.”
“깨달음이든 뭐든 제게 넘쳐나는 게 시간입니다. 당장 시작하죠!”
“깨달음이라는 게 지금 당장 올 수 도 있지만, 일 년, 이 년, 십 년 후에 올 수도 있는 것이라서 검환을 수련하기엔 이 장소가 적절친 않을 것이다.”
“먹을 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조금 기다리다 보면 무영투 영감님께서 돌아오거든요. 먹는 건 그분께서 조달해 주실 겁니다.”
화운이 씩 웃었다.
이제 슬슬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영약을 네 번째 먹을 때부터 환골탈태는 없었다. 딱 세 번까지. 그나마 영약을 먹어서 증진되는 공력도 모기 눈물 만큼이었다.
남들이 들으면 기가 찰 일이었지만 공청석유 한 병과 인형설삼, 이무기의 내단을 한꺼번에 복용해도 공력이 더 이상 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내공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공력을 무공으로 치환하는 것.
화운에겐 검마라는 애매하면서도 훌륭한 스승이 있었고 시간은 언제나 화운의 편이었다.
***
“흑야(黑夜)……!”
“환사가 나타났어……!”
화운과 낭왕의 싸움에 흑야의 주인 환사가 끼어들어 화운을 공격했다.
낭왕 역시 이때를 놓치지 않고 벼락같이 구환도를 휘둘렀다.
“놈! 날 막아도 환사의 공격은 막지 못할 것이다!”
낭왕이 기세등등했다.
양쪽에서 협공을 하고 있으니 결과는 두고 볼 것도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비겁하다!”
남궁검가주가 환사의 공격을 막고자 신형을 날리는 것을 시작으로 양측의 고수들이 앞다퉈 끼어들었다.
바로 이때 히죽 웃은 화운의 검에 맺혀 있던 검 모양의 강기가 검끝으로 모여 둥근 구체 모양을 만들었다.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검환.
“설마?”
낭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순간.
화운이 휘두른 검에서 검환이 날아갔다.
섬전과도 같은 잔영을 남기고 날아간 검환이 낭왕이 휘두른 구환도에 작렬하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공력을 잔뜩 머금은 낭왕의 구환도가 박살이 났다.
검환은 그러고도 힘이 남아돌아 기겁하는 낭왕의 가슴을 뚫어버렸다.
“크헉……?”
두 눈을 부릅뜬 낭왕.
그의 가슴팍에는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이때 환사를 향해서도 검환을 날린 화운이 한 걸음에 달려와 낭왕의 목을 쳐버렸다.
“악랄한 늙은이! 날 만나게 될 때마다 이 꼴이 될 거야!”
“……!”
낭왕은 알 수 없다는 의문을 품은 채 지독한 암흑 속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환사! 신풍대도! 구룡태자! 셋 다 덤벼랏!”
화운이 위엄차게 외치며 신형을 날렸다.
이전까지 ‘건방지다, 감히 태자께……!’ 라고 호통을 치던 환사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
“제가 이겼습니다. 처음으로 셋을 다 죽였습니다. 하지만 한 명만 더 있었다면 결국 죽는 건 저였을 겁니다.”
“……?”
“검환은 공력의 소모가 너무 심합니다. 몇 번 뿌리고 나니 내력의 반 이상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이제 너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하나밖엔 없다. 나조차도 해내지 못한 것이라 결과는 장담할 순 없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혼원여의공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혼원여의공의 완성은 중단전을 여는 걸 의미한다.
배꼽 아래의 하단전과 가슴의 중단전까지 완벽하게 자릴 잡게 되면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내력을 갖추게 된다.
하단전의 내력을 쓰는 동안 중단전을 채우고, 중단전의 내력을 발휘하는 동안은 하단전을 채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화운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맘껏 활용했다.
제천지존릉의 비동에서 무공을 익히며 시간을 보낸 것이다.
바깥세상의 일은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무수한 반복을 통해 얼마인지 모를 시간을 투자했다. 몇 년 혹은 그 보다 훨씬 오래일지도 모를 시간이 흘렀다.
화운에겐 시간의 개념이 없었다.
검마가 떠난 지 여러 해가 지날 때까지 비동에 틀어박혀 혼원여의공만 수련했다.
잊을 만하면 무영투 영감이 먹을 걸 가져다 주곤 했다.
화운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잊을 정도로 집중했다.
그 결과 검마조차 이루지 못한 혼원여의공을 대성하여 중단전을 열었다.
혼원여의공의 대공을 완성한 것이다.
혼원여의공의 완성은 단지 중단전을 여는 것 정도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기경팔맥은 물론이고 전신의 팔만사천 세맥까지 일기관통하여 이기제기의 경지에 올라섰다.
이기제기란 체외로 발출한 공력을 뜻대로 여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화운은 검환을 구체 모양이 아닌 고리형태로 만들어 자신만의 검환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그것을 검멸(劍滅)이라고 이름 지었다.
***
“이름이 무엇이냐?”
구룡태자 북궁무결의 입이 힘겹게 열렸다.
“이제 더 이상 볼 일이 없을 것 같다.”
화운이 거들떠보지도 않고 검을 멋들어진 동작으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의 앞에는 북궁무결이 가슴팍이 갈라진 모습으로 간신히 서 있었고, 그의 좌우 양쪽에는 머리통이 달아난 흑야의 환사와 두 다리가 잘린 신풍대도 사도강이 자신들이 흘린 핏물 속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부탁…….”
북궁무결이 가까스로 말했다.
화운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그러는 것인지 잠자코 기다려 주었다.
“……한다. 이름 정도는…… 알고 가게 해 다오.”
“……화운.”
“조금만 더 훗날 싸웠으면 좋았을 것을…….”
북궁무결은 허무한 웃음을 짓다가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그의 육신은 쓰러지지 않았다.
검날이 새하얀 장검에 기댄 채 죽은 것이다.
“죽는 것까지 넌 다르다는 것이냐!”
못마땅해하는 화운의 말이 끝난 순간 북궁무결의 육신이 핏물이 질펀한 땅바닥으로 철푸덕 쓰러졌다.
화운이 슬쩍 장검을 차버린 것이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그냥 내가 얼마나 늘었나 확인하고 싶어서니까.”
화운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싸우기도 전에 전의를 상실해 버린 천사련과 정파의 무인들이 무슨 괴물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놀라면서도 더없이 기뻐하고 있는 선우유성의 얼굴이 보였다.
“녀석! 언젠간 이런 자리의 주인공이 되게 해주마.”
선우유성을 향해 씩 웃어 보인 화운은 중단전의 공력을 폭 자결로 운용하여 자신의 심장을 스스로 터트렸다.
이젠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할 일이 있다.
내게 벌어진 일과 마주할 때가 된 것이다.
죽어도 다시 살아나고 있는 이 기이한 현상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볼 때다.
광장 바닥의 구멍.
그곳으로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