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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으로 무림지존-24화 (24/207)

#024. 그래, 씨앙! 다 덤벼!(1)

화운이 요란하게 웃어대자 무영투가 힐끔 돌아보았다.

“쯧쯧! 어린놈이 맛이 갔구나! 저러다 이무기한테 먹혀봐야 아, 여기는 놀이터가 아니구나 하겠지!”

무영투의 혀 차는 소리에 웃음을 뚝 그친 화운이 신형을 날렸다.

석조정자 밖으로 튀어나간 화운은 검을 휘둘러 이무기의 머리들을 차례대로 베어버린 후 쏟아지는 녹색의 독액을 피해 다시 석조정자 안으로 돌아왔다.

그 모습이 그렇게 날렵할 수가 없었다.

“너? 너, 너너!”

무영투의 얼굴이 당황으로 일그러졌고 화운을 향한 두 눈은 의혹으로 가득했다.

“어때요? 제 공공무영비도 쓸 만해 보이죠?”

“이노옴!”

무영투가 길길이 날뛰었다.

자신의 독문무공을 난생처음 보는 놈이 펼쳤으니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화운은 그 모습을 히죽 웃으며 바라보다 지금껏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 검마를 향해 말했다.

“전 배운검, 비응삼십이검, 사혼구검까지 익혔고, 연혼팔검은 훗날 제 검이 원혼들로 무거워질 때 배울 생각입니다.”

검마의 두 눈이 놀람으로 커졌다.

화운은 놀라는 검마와 길길이 날뛰는 무영투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전 죽으면 다시 살아납니다.”

화운은 자신이 겪은 일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였지만 검마와 무영투는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화운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자신들의 무공과 비밀을 그가 알고 있는 것이 말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너무 엄청난 이야기라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화운은 놀란 눈만 치뜨고 있는 두 사람을 두고 이무기의 사체로 향했다.

이전에 검마가 그랬던 것처럼 검강을 일으켜 이무기의 배를 갈라 내단을 찾아냈다.

“무영투 영감님은 이 비늘들을 가지십시오. 이거 귀한 겁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무영투가 달려와 이무기의 비늘을 설폈다.

신월비로 그어보고는 깜짝 놀라 화운을 쳐다보았다.

“만족하십니까?”

“정말 이거 다 내가 가져도 되겠느냐?”

“다 가지세요. 그리고 대륙시는 절 주시고요.”

“엇?”

무영투가 깜짝 놀라 다급히 물러나며 경계태세를 취했다.

“네놈이 그걸 어찌 아는 것이냐?”

“이전에 영감님 스스로 제게 주었습니다.”

“그걸 내가 왜 줘?”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

무영투의 얼굴이 황당하다는 듯 일그러졌다.

화운은 그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싫으면 마십시오. 그치만 그걸 아셔야 할 겁니다. 제가 다시 죽었다가 살아나면 그 비늘도 가질 수 없다는 걸요. 단 한 개도 가지지 못하게 될 겁니다.”

화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섰다.

순간 무영투가 다급하게 불러 세웠다.

“이놈! 뭐가 그리 급한 것이냐, 나한테도 고민할 시간을 줘야지.”

“그래서요?”

“대륙시가 뭔지는 알고 있느냐?”

“횟수 제한 없이 대륙전장의 지부에서 맘껏 돈을 받을 수 있담서요?”

“그래? 그것도 말해줬다구?”

무영투는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도 황당한 상황이라 쉽사리 판단이 되질 않았다.

그러나 화운은 단호했다.

“됐습니다. 비늘이나 가지십시오.”

화운이 휙 돌아서자 무영투는 더욱 당황했다.

“어, 어쩌려는 것이냐?”

“뭘 어째요. 지금이야 그거 그냥 가지십시오. 담부턴 단 한 개도 가지지 못할 테니까 지금이라도 맘껏 기뻐하시고요.”

“알았다. 알았어.”

“됐다고요. 담부턴 영감님께서 얻을 건 하나도 없을 겁니다.”

“됐다, 됐어! 나도 됐으니까 이거나 까지고 꺼져라!”

무영투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뭔가를 던졌다.

화운이 돌아서 받아보니 번쩍이는 금빛의 열쇠였다.

“첨부터 이러셨으면 좀 좋아요.”

“됐다. 약속이나 지켜라.”

“그럼요. 전 약속은 칼같이 지켜요. 몇 번을 반복해도 이무기 비늘이랑 대륙시는 언제나 교환될 거예요.”

할 말이 없어진 무영투는 신경질을 부리듯 이무기를 걷어찼다.

“뭐가 이리 단단해? 꼭 무쇠기둥을 찬 것 같잖아!”

무영투가 발을 감싸 쥐는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은 화운은 검마에게로 다가갔다.

“이전엔 대협께서 이 세 가지를 전부 다 저더러 복용하라고 하셨습니다. 억겁의 시간은 고통이라고 하시면서요.”

화운이 공청석유, 인형설삼 그리고 이무기의 내단을 보이며 말하자 검마가 궁금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무슨 말인지 이해한 것이냐?”

“예.”

“내가 어디까지 말했더냐?”

“전부 다요.”

“내가…… 그랬단 말이냐?”

“지금의 대협께선 절 만난 지 일각에 불과하지만, 이전엔 저와 꽤 긴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느냐?”

“그럼요.”

화운은 무영투가 듣고 있어 하지 않았던 부분까지 세세하게 말했다.

자신이 말실수를 했고, 그에 대해 검마가 주의를 준 부분까지 다 말했다.

그렇게 화운의 상세한 설명이 끝나자 검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본래의 무표정을 되찾았다.

“이제 그것들을 복용해야겠구나.”

“예. 공력을 더 쌓아서 낭왕이랑 다시 싸워야겠습니다.”

“낭왕?”

“제가 졌습니다.”

화운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낭왕과 싸우게 되고 가슴에 일 장을 맞아 진 부분까지 말했다.

“낭왕을 경계해야 하는 건 그의 무공이 아니라 악랄한 심보다. 그자는 웃으면서 동료의 등에 칼을 박아 넣을 자다.”

“예. 경계하고 또 경계해서 다시는 그렇게 당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 자는 경계할 게 아니라 힘으로 단숨에 제압해 버려야 한다.”

“그러고 싶지만 연혼팔검도 익히지 않은 제가 그렇게까지 할 수 있겠습니까. 참, 연혼팔검을 익히려면 얼마나 많이 죽여야 합니까?”

화운은 자신이 광장에서 천사련을 공격한 일을 말했다.

그 숫자가 이백 정도이니 그들을 쓰러트리다보면 살검을 배울 수 있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런데 검마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싸움으로는 수만 명을 베어도 살검을 익히지 못한다.”

“예에?”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위기 속에서 상대를 악착같이 쓰러트리다 보면 검끝에 살의가 쌓이게 된다. 그런 싸움을 수백 번 하다 보면 차곡차곡 쌓아올린 살의로 인해 검이 스스로 산 자의 피를 취하고자 날 뛴다. 그 검을 네 의지로 다스리는 것이 바로 진짜 살검이고 연혼팔검의 시작이랄 수 있다.”

“……!”

화운이 그걸 어떻게 익힐지 당황하는 사이에 검마가 툭 내뱉었다.

“넌 연혼팔검을 익힐 필요가 없다.”

“예?”

“연혼팔검은 살검이자 감각의 검이다. 공력의 힘이 아닌 찰나의 순간에 생기는 생사의 간극을 찾아 베는 것이다.”

“……?”

“넌 천하제일의 공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느냐?”

“맞습니다.”

“그런 공력을 가지고 굳이 감각의 검을 익힐 필요가 있겠느냐?”

“예에?”

“지금의 네가 익혀야 하는 건 강기를 자유자재로 발휘하는 것이다. 검법은 사혼구검만으로도 충분하다.”

화운의 얼굴이 활짝 밝아졌다.

화운은 공청석유와 인형설삼을 먼저 복용했다.

이전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극심한 고통이 일어났다.

이전의 환골탈태를 통해 미처 완벽하지 못했던 근골이 다시 한번 재구성 된 것이다.

말하자면 이 차 환골탈태를 한 셈이었다.

일다경 만에 눈을 뜬 화운은 내단을 복용했다.

내단은 영기가 완성된 형태의 것이라 하단전의 공력과 잘 어우러졌다.

반시진(1시간) 만에 눈을 뜬 화운은 이전보다 배는 더 커진 하단전과 그곳에 가득한 공력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거 엄청난데요?”

“강기의 수발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면 세 살 아이에게 명검을 쥐어준 것이나 마찬가지일 게다.”

“가르쳐만 주십시오. 낭왕이고 뭐고 단숨에 날려 버리겠습니다!”

화운이 가슴을 탁탁 치며 히죽 웃었다.

***

“분명하렷다?”

“예. 확실합니다. 소인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으흘흘! 곳간을 털어간 쥐새끼가 스스로 나타났단 말이지!”

살기를 일으킨 낭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앞장서라! 그 쥐새끼 놈의 껍질을 홀라당 벗겨 버려야겠다!”

“옛!”

낭왕은 수하들을 이끌고 정파진영으로 향했다.

이백에 가까운 숫자가 낭왕의 뒤를 따라 밀물처럼 움직이자 근처에서 사파진영의 동태를 살피던 정파의 눈들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낭왕은 거리낄 게 없다는 듯 성큼성큼 움직였다.

그런데 막 정파진영에 다다를 때였다.

앞쪽에서 휘적휘적 걸어오던 자가 땅을 박차고 허공을 날아와 냅다 일검을 휘둘렀다.

“이런 썅!”

낭왕이 구환도를 휘둘러 막았다.

쾅!

낭왕이 두 눈을 부릅떴다.

얼떨결에 막고 보니 구환도를 통해 전해지는 충격이 보통이 아니었다.

“이, 이놈이!”

낭왕의 분노가 폭발한 순간 두 번째, 세 번째 공격이 계속 이어졌다.

쾅! 쾅! 쾅! 쾅! 쾅!

다섯 번의 충돌 끝에 낭왕이 수 걸음을 밀려버렸다.

낭왕은 기막히고 놀란 눈으로 자신이 밀려난 거리를 본 후 상대를 노려봤다.

바로 이때.

“저자입니다! 분명 저자가 검마 다음으로 들어갔습니다!”

낭왕의 곁에서 굽실거리며 안내하던 자가 상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 모습에 화운이 씩 웃었다.

“그래, 나다. 이 낭왕 븅신아!”

화운은 신이 난 얼굴로 다시 공격했다.

사혼구검의 검초들을 뿌려대는 검신이 새파란 강기로 빛났다.

화운의 어린 외모에 대충 상대하려다 낭패를 본 낭왕은 공력을 있는 대로 발휘했다.

쾅쾅쾅쾅쾅!

천둥 같은 충돌음에 사방 공기가 들썩거렸다.

난데없는 한바탕 소란에 정파진영 곳곳에서 무인들이 대거 몰려왔다.

“뭐야! 천하의 낭왕이 이거밖에 안 돼? 더 해봐. 더 신나게 싸워보자고!”

화운은 신이 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검공을 무차별적으로 난사했다.

넘쳐나는 공력을 과시하듯 검강을 일으켜 숨 돌릴 틈도 없는 맹공을 퍼부었다.

‘멍청한 놈 같으니! 비동에서 무슨 기연을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일갑자에 달하는 본좌의 공력을 능가할 것 같으냐!’

공력의 양을 말하는 단위 중 가장 흔히 쓰이는 게 갑자다.

일갑자는 육십 년이다.

일갑자에 달하는 공력이면 무인이 육십 년 동안 쌓은 공력을 말한다.

그렇다면 나이 칠십이 넘은 낭왕이 일갑자 공력을 과시하는 게 자연스러운 건가.

자연스러운 일이다.

과시할 만하다는 뜻이다.

사파이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심신을 단련하면서 정순한 내공심법을 차곡차곡 익혀온 정파인들은 청년 무렵엔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지만 사십 대쯤 되면 남궁검가주처럼 무위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육십 대쯤 되면 일갑자에 달하는 공력을 쌓는다.

반면 사파인들은 오로지 강해지겠다는 욕심 하에 실용적이고 실전적인 무공을 선호하여 내공심법 또한 그에 맞는 걸 익힌다.

문제는 그런 심공들 대부분이 반갑자 정도의 공력까지는 어찌어찌 도달하지만 그 이상을 쌓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천사련의 다른 수장들 대부분이 반갑자와 일갑자 사이라는 걸 알면 낭왕이 일갑자의 공력을 과시하는 게 충분히 이해가 된다.

물론 사파라 하여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사파에서도 천하에 우뚝 설 만한 초고수들은 또 다른 그들만의 무공 세계가 있는 법이다.

낭왕은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화운 역시 다른 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그 만의 무공세계가 열린 상태라는 걸.

공력으로만 치면 이미 낭왕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그러한 것을 알지 못한 낭왕이기에 시간이 한참 지나도 검강을 멈추지 않고 발휘하는 화운의 공격에 점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놈! 이대론 안 되겠다!’

자존심이 있는 대로 구겨진 낭왕은 어떻게든 화운을 쓰러트려야 했다.

츠아아악!

낭왕의 구환도가 무섭게 소용돌이쳤다.

혈염도의 마지막 초식 용권도참을 펼친 것이다.

순간 화운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그 수법을 쓰겠다는 거겠지!’

회심의 미소를 머금은 화운은 사혼구검의 마지막 검초를 펼쳤다.

사혼종극!

사혼구검의 끝이자 상대방의 끝을 알리는 검초.

화운의 검이 용권도참의 중심을 향해 일직선으로 찔러 들어갔다.

콰-앙!

귀청을 먹먹하게 만드는 굉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

낭왕의 왼손이 불쑥 뻗었다.

큼지막한 돌덩이조차 단박에 부숴 버릴 강한 힘을 머금은 채.

‘왔다!’

이 순간을 기다리던 화운 역시 왼손을 뻗었다.

파앙!

장력의 격돌이 벌어졌다.

회심의 일격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낭왕의 얼굴이 일그러진 찰나.

번-쩍!

시퍼런 검강이 작렬했다.

“크윽!”

낭왕이 수 걸음을 비척거리며 물러났다.

놀랍게도 그의 가슴 옷자락이 쫙 갈라져 있었다.

간발의 차이로 구환도를 들어 막았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가슴팍이 완전히 갈라질 뻔 했다.

“아까워라! 시커먼 속을 볼 수 있었는데!”

화운이 아쉽다는 듯 혀를 날름거렸다.

“이, 이익! 쥐새끼 같은 놈이!”

낭왕이 수치심으로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격분한 순간.

화운이 달려들었다.

“얍삽한 낭왕보다는 용감무쌍한 쥐새끼가 더 낫다!”

섬전처럼 달려들어 검을 휘두르는 화운.

시퍼런 검의 형상이 검날 위로 한 자나 치솟아 있었다.

검마에게 배웠던 검강의 무공을 이제야 본격적으로 발휘한 것이다.

당황한 낭왕이 구환도를 휘둘러보지만 소용없다.

이전보다 배는 더 강력해진 검강이 낭왕을 일격에 저만큼 날려버렸다.

“내가 비동에서 기연을 얻었다 쳐! 그래서 어쩌라고? 보물은 먼저 줍는 자가 임자거늘 힘으로 빼앗겠다는 거야?”

간신히 나가떨어지는 것만큼은 면한 낭왕은 울렁거리는 가슴을 간신히 참아내느라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래, 알아! 힘으로 빼앗는 게 니들 사파라는 거! 그러니까 나도 힘으로 맘껏 상대해 주겠어!”

화운이 땅을 박찼다.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든 그의 검신에 이전보다 한 뼘은 더 길어진 검강이 시퍼런 기세를 날름거렸다.

“어린놈이 날뛰는 걸 보니 오늘을 버티지 못하고 관에 들어가겠구나!”

칼칼한 음성이 갑자기 들렸다.

화운이 고개만 돌려보니 한쪽을 드넓게 차지하고 있는 검은 안개 속에서 한 줄기 시커먼 기운이 일직선으로 뻗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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