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셋으로 무림지존-16화 (16/207)

#016. 선우세가와 함께!(2)

이전과 마찬가지다.

제천지존릉 입구까지 막혔다.

콰앙!

굉음이 터지며 입구를 막고 있던 돌덩이들의 일부가 안쪽으로 터졌다.

그리고 한 사람이 비척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장신의 흑의인.

검마였다.

비칠거리며 걸어오는 검마의 행색은 처참했다.

옷자락이 온통 찢어져 나풀거렸고 얼굴엔 피칠갑을 한 상태였다.

‘역시 똑같군. 그렇다면……!’

출입구 가까이에 있던 화운은 검마의 뒤쪽을 살폈다.

잔해를 들썩거리는 움직임과 동시에 뭔가가 검마의 등을 향해 날아왔다.

화운은 검을 휘둘러 쳐냈다.

그리고 번개같이 움직여 막 잔해더미에서 몸을 일으키는 낭왕의 목을 쳐버렸다.

“낭, 낭왕입니다!”

낭왕의 얼굴을 확인 한 남궁검가의 무인이 소리치자 모두들 놀란 얼굴로 화운을 바라보았다.

이때 검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마는 이전처럼 자존심을 지키려는 듯 꿋꿋한 자세로 안쪽 석실로 향했다.

“저와는 인연이 있는 분입니다. 잠시 이곳을 지켜주십시오.”

화운은 남궁검가주에게 뒤를 맡기고는 검마가 들어간 석실로 향했다.

화운은 검마와 마주했다.

그리고 그동안의 이야기를 하였다.

검마는 제법 놀랐으나 알겠다며 고개만 끄덕이고는 그 자리에서 내상을 치료하고자 운기행공을 시작하였다.

화운은 혼자 석실 밖으로 나갔다.

“어떻게 되었느냐?”

남궁검가주가 기다리고 있다가 물었다.

“운기요상을 하고 있습니다.”

“다행이구나.”

“부상이 가볍지 않습니다.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걱정 마라.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이곳은 내가 지켜주마.”

남궁검가주가 한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거기엔 천사련 소속의 무인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고수들 중에서는 잔월교주와 혈악주 그리고 흑마갱주 이렇게 셋이 들어와 있었다.

정파 쪽에는 남궁검가주와 선우세가주 그리고 다른 오대세가와 칠대문파에서 합류시킨 고수들이 있어서 전력에서 우위를 보였다.

“검마 선배와 어떤 인연이 있는 것인지 물어도 되겠느냐?”

남궁검가주가 물었다.

“나중에 기회가 있을 겁니다.”

“알겠다.”

“그럼 전 들어가 있겠습니다. 문제가 생기거나 하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운기 중에는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예. 알고 있습니다. 가주님, 혹시 야광석 같은 게 있으면 하나만 부탁드리겠습니다.”

화운의 부탁에 남궁검가주가 남궁검가의 무인을 불러 야광석을 건네주었다.

화운은 감사를 표한 후 선우유성을 손짓해 불렀다.

“별일 없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가주님들 말씀 잘 듣고 있어.”

“형은?”

“난 다시 들어가 봐야 해.”

“알았어. 나중에 봐.”

화운은 일부러 웃어 보인 후 석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석실 문을 닫았다.

석실 안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하지만 내부 구조를 제 집처럼 잘 알고 있는 화운에게는 어둠조차 큰 장애가 되지 못했다.

화운은 검마가 운기요상을 하고 있는 단상 앞으로 갔다.

그리고 남궁검가주가 준 야광석을 단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제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검마의 모습을 흐릿하게나마 볼 수 있게 되었다.

화운은 석실의 중앙으로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운기행공을 시작했다.

지금 화운에게 가장 시급한 건 공력이었다.

혼원여의공(混元如意功).

검마는 검의 고수다.

검마라는 흉명을 만들어준 성명절학은 연혼팔검이다.

스스로의 혼을 불태워야만 익힐 수 있는 연혼팔검은 강검이고 살검이다.

그리고 그 연혼팔검을 받쳐주는 신공이 바로 혼원여의공이다.

화운은 검마에게 혼원여의공을 배웠다.

‘태극 이전에 혼원이 있으니 유(有)와 무(無)가 혼재하였다. 그 혼란을 하나로 일으키고 다스리니 혼원여의공(混元如意功)이라 한다. 기해는 활짝 열고 심중엔 결의를 세운다. 무(無)는 유(有)의 부재다. 유(有)는 스스로를 드러냄이다. 무(無)는 공허다. 내버려둔다. 유(有)는 실체다. 여의하여 밖으로 내세운다.’

혼원여의공은 거친 신공이다.

몸속을 사납게 누볐다.

때로는 사납다 못해 포악하여 만마라도 찍어 누를 기세다.

화운은 그 사나움에 반했다.

그 사나움이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화운은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혼원여의공의 사납고도 심유한 세계에 푹 빠져들었다.

어둠 속의 시간은 격렬하게 흘러갔다.

“하아!”

눈을 뜬 화운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상당한 시간 동안 몰입한 것 같은 데도 공력이 쌓이질 않았다.

정확히는 하단전이 더 커지지가 않았다.

화운은 마음이 급했다.

쥐 상의 노인과 싸워보고 낭왕 등과 싸워보니 어서 빨리 충분한 공력을 쌓아 그들과도 대등하게 싸우고 싶었다.

‘대공을 이루면 어떤 느낌일까?’

문득 궁금했다.

태산을 부술 듯한 기분일까?

아니면 천하를 단숨에 짓이겨버릴 것 같은 느낌일까?

상상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할 것 같다.

같은 세상을 살고 있어도 대공을 이룬 고수들은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일 거라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보통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느끼며, 보통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것들을 행하며,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헤아릴 것이다.

“정말 그럴까?”

화운은 검마를 바라보았다.

단상 위의 야광석이 은은한 빛을 발하는 가운데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운기요상을 하고 있는 검마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복수에 반평생을 바치고 있는 고수.

그의 삶은 어떤 것일까?

십 중 하나라도 알까만,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황량할 것만 같다.

육신은 극강이라 못하는 것이 없겠지만, 마음은 송두리째 잃어버린 것처럼 피폐할 것이니까.

그러고 보면 자신이 처한 삶과 죽음의 굴레는 생각하기에 따라 큰 복일 것이다.

실의와 상실감에 허우적거릴 정도로 귀중한 것을 잃어버린다면 언제든 잃어버리지 않도록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그렇다고 빈둥거리기만 한다면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다!”

화운은 자리에서 힘차게 일어났다.

그리고 전신의 관절을 천천히 풀어준 후 어둠 가득한 석실 안을 가볍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공무영비를 수련하기 위함이었다.

백나찰에게 배웠던 천추정한검은 이미 자신만의 검이 되었고, 혼자 수련하던 풍검은 바람을 타고 넘나드는 유풍의 경지까지 이해한 상태였다.

유풍 다음으로는 입풍, 무풍, 검풍 그리고 무검무풍의 경지가 있고, 이것이 풍검이라는 말을 할 정도가 되려면 검풍의 경지에는 올라서야 하니 아직 한참 멀었다.

화운은 공공무영비를 수련하느라 어둠 가득한 석실 안을 정신없이 움직였다.

삼 단공의 공공무영비는 확실히 빨랐다.

하지만 만족스럽진 않았다. 여전히 낭왕을 비롯한 천사련의 고수들을 벗어날 수가 없어서다.

‘오 단공이 되어야 해.’

수련을 멈춘 화운은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그 노인이 본다면 놀라자빠지겠지? 푸후후후!”

그렇게 기분전환 삼아 혼자 웃던 화운이 갑자기 흠칫하였다.

“어!”

화운의 입술을 비집고 놀람이 새어 나왔다.

“어? 어, 어어!”

놀람에 의문이 더해져 급기야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화운.

그는 곧 단상 위에 있는 야광석을 집어 들고는 석실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곧 제자리로 돌아와 경악성을 터트렸다.

“없다! 없어!”

화운은 석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검마 대협께서는 괜찮으시냐?”

“아뇨,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가주님,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해주십시오.”

“응? 왜 그러는 것이냐?”

“설명은 나중에 해드리겠습니다.”

남궁검가주는 몹시 궁금하였으나 화운의 모습이 다급하고 진지해 보여 사람들을 둘러보며 위엄찬 음성으로 말했다.

“주목해 주십시오. 잠깐 확인할 것이 있으니 모두 제자리에 머물러 주십시오. 잠깐이면 됩니다.”

남궁검가주의 요구에 천사련쪽에서 반발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석실 밖으로 나온 화운을 보았고 어려운 걸 요구한 게 아니어서 금세 조용해졌다.

“되었느냐?”

“예. 저랑 함께 사람들을 전부 확인해 주십시오.”

“무슨 확인을 한단 말이냐?”

“키가 오척단구인 노인을 찾으면 됩니다.”

“오척단구? 그렇게 작은 노인이 있었더냐?”

“가주님, 설명은 나중에 드릴 터이니 확인부터 해주십시오.”

“알겠다.”

고개를 끄덕인 남궁검가주는 화운을 데리고 석실 구석구석까지 살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오 척밖에 안 되는 작은 키의 노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냐? 그쪽의 요구를 들어주었으니 우리도 알아야겠다!”

“맞다! 말하지 않으면 우릴 무시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사생결단을 할 것이다!”

천사련 쪽에서 고수들이 진기를 실어 외쳤다.

남궁검가주는 그들을 향해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화운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하는 뜻은 명확했다.

겁먹지 마라.

저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없는 일이라면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

화운은 남궁검가주가 참 세심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모두를 향해 말했다.

“설명하기에 앞서 누구도 검마께서 운기요상 중인 석실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검마께서 일어나시면 그때 들어가도 되니 지금까지 참아주셨던 대로 그때까지만 더 참아주십시오. 천사련도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정파가 지킨다면 우리도 지킨다.”

“애송아, 대체 무슨 일이냐! 어서 말해라!”

천사련의 고수들이 외치자 남궁검가주를 한 번 돌아본 화운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곳에 가장 먼저 오신 분은 다들 짐작하다시피 검마이십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꽤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들 보다 먼저 이곳으로 향했습니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떨어져 죽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 딱 한 사람만큼은 생사가 불분명합니다.”

불분명한 게 아니다.

분명 이곳에 왔고 제천지존릉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은 보이질 않는다.

이전의 경험상 확실한 일이다.

화운의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느라 석실 안이 시끄러워졌다.

화운은 잠깐 동안 이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천사련의 고수들을 향해 물었다.

“검마대협이랑 싸우기 전에 여기 제천지존릉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누굽니까?”

“낭왕이다. 우린 검마가 나가지 못하도록 지키느라 확인을 못했다.”

“역시.”

화운이 중얼거렸다.

역시 이전과 똑같았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그 쥐 상의 노인은 여기 제천지존릉 안으로 들어왔고, 밖에서 검마와 낭왕이 싸우고 비동이 무너지는 듯 난리가 나는 사이에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화운은 확신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확신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면 자신이 많은 걸 알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검마 대협께서 깨어나시면 그 노인이 이곳에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화운의 말에 다시 한번 시끄러워졌다.

일부는 구석구석을 살피기도 했고, 무너진 입구를 파내고 있던 이들조차 손을 놓고 여기저기를 살폈다.

그렇게 화운이 던져놓은 파문에 사람들이 생기를 되찾았다.

남궁검가주도 다른 정파의 고수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화운은 이전의 기억들을 되살리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어디에 있을까? 검마 대협조차 찾지 못한 곳이니 찾기가 쉽지 않은 곳일 텐데…….’

화운이 혼자 생각하는 사이에 남궁검가주가 다른 정파의 고수들을 데리고 왔다.

“확실한 것이냐?”

남궁검가주가 화운을 붙들고 물었다.

“검마 대협의 뒤를 따르던 사람들 중에서 경신술이 가장 뛰어났고, 선두에서 사람들을 이끌었습니다. 떨어져 죽은 사람들을 살펴보지 않아 그 노인도 죽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만…….”

“경신술을 생각해 보면 죽었을 것 같지가 않다?”

“예.”

화운의 대답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에 한 사람이 말했다.

“그리 중한 이야기를 어찌 공개적으로 한 것이냐?”

천사련까지 알도록 한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화운은 그 사람의 소매에 한 송이 매화꽃이 있는 것을 보았다.

화산파.

정도문파 중 화운이 유일하게 싫어하는 곳이다.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이렇게 다 갇힌 판국에도 정파와 사파를 따져야겠습니까?”

화운이 대들듯 쏘아붙이자 화산파 고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화가 난 것이리라.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자가 또박또박 대드는 것이.

“감히……!”

화산파의 고수가 분개한 순간.

그르르르릉!

석실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모습을 보였다.

장신의 흑의인.

바로 검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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