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검마! 살려주십시오!(2)
“검마! 천리마를 알고 있습니다!”
화운이 외쳤다.
그러자 검마가 불쑥 손을 뻗어 화운을 낚아채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뭐하는 놈이냐!”
검마의 눈빛이 차가웠다.
금방이라도 던져 버릴 것만 같았다.
“당신이 가르쳐 준 것입니다.”
“허튼소리!”
검마가 화운을 불쑥 쳐들었다. 하지만 던지려고 그러는 게 아니었다.
검마는 화운을 빙벽에다 강하게 처박았다.
“크윽!”
고통에 신음하는 화운.
검마는 얼굴을 들이밀며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네놈이로구나! 네놈이었어!”
천리마!
오랫동안 검마가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직접 아들의 몸에 새겨 준 문신이 바로 푸른 초지를 질주하는 검은 갈기의 흑마였다.
천리를 달릴 것 같은 그 흑마처럼 천하를 맘껏 종횡하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아들이 죽은 채 발견되었을 때 그 문신이 뜯겨져 나가고 없었다.
흉수가 살가죽만 도려내 간 것이다.
그리고 함께 사라진 유일한 핏줄인 손자!
며느리마저 처참하게 죽인 흉수가 그 흑마가 새겨진 살가죽을 도려냈다는 건 그걸로 다시 연락을 취할 거라는 뜻.
하지만 그 연락을 기다린 세월이 벌써 십여 년이다.
흉수의 연락은 끝내 없었다.
제천마존의 비동을 찾아온 건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기 위해서였다.
제천마존의 유물이라면 누구라도 탐을 낼 테니까.
자신이 그것을 손에 넣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그 흉수가 접근해 올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천리마를 안다는 놈이 나타났다.
천리마는 자신과 흉수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이놈은 흉수이거나 그자가 보낸 놈이 분명하다.
검마는 금방이라도 피눈물을 흘릴 것처럼 잔뜩 핏발이 선 눈으로 화운을 노려봤다.
“그놈이 보냈느냐?”
살의 가득한 검마의 음성이 무시무시하게 화운을 향했다.
그 음성만으로 심장이 쪼그라들 정도였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거의 없다시피 한 화운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만 지었다.
‘설마 아들이 죽은 것과 천리마가 관련이 있는 거야? 왜 그걸 가르쳐 줘서 자기 스스로 오해하고 지랄이냐고!’
천리마라는 말을 들은 검마는 미쳐 날뛰었다.
팔을 비틀고, 단전을 부수는 등 온갖 고문을 가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빙벽에다 뒤통수를 처박아 죽어버리고서야 그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니 천리마라는 말을 처음부터 꺼내면 안 된다.
기회를 보아 적당한 순간에 꺼내야 한다.
“검마대협! 아들을 죽인 흉수에 대해 할 말이 있습니다!”
떨어지던 화운이 외쳤다.
그러자 검마가 불쑥 손을 뻗어 화운을 낚아채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말하라!”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대협을 만난 게 열두 번째라면 믿겠습니까?”
“……?”
“살려달라고 빌어도 보았고, 여길 안다며 길을 안내하겠다고 거짓말도 해보았습니다. 그 어떤 말을 해도 대협께선 절 던져 버리더군요.”
검마가 인상을 빡 쓰면서 화운을 던져 버리려고 했다.
“대협과 그자만 알고 있는 것. 그걸 대협께서 알려주셨습니다만, 그걸 말하자마자 불같이 진노하시더군요.”
“설, 설마?”
“맞습니다. 지금 생각하고 계시는 거, 바로 그걸 알려주셨습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기가……!”
“놈! 네놈이로구나!”
검마가 화운을 암벽에다 처박으며 날뛰기 시작했다.
“천리마가 대체 뭡니까? 뭐기에 그렇게 미쳐 날뛰고 지랄인 겁니까?”
“놈! 네놈이로구나!”
검마가 화운을 암벽에다 처박으며 날뛰기 시작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대협을 만난 게 열일곱 번째라면 믿겠습니까?”
“……?”
“살려달라고 빌어도 보았고, 여길 안다며 길을 안내하겠다고 거짓말도 해 보았습니다. 그 어떤 말을 해도 대협께선 절 던져 버리더군요.”
검마가 인상을 빡 쓰면서 화운을 던져 버리려고 했다.
“지금 당장 던져 버려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만 가르쳐 주십시오.”
“……?”
“제가 무슨 말을 하면 믿어주시겠습니까? 제발 좀 가르쳐 주십시오.”
검마는 화운의 얼굴을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다 던져 버렸다.
화운은 검마의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간절히 바라보며 외쳤다.
“당신이 미쳐 날뛸 만 한 거 말고, 차분히 생각할 만한 딴 걸 가르쳐 주십시오! 천리마 말고 딴 거요, 제발! 제발요!”
간절한 화운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검마는 화운을 잡으려고 화급히 뛰어내리며 소리쳤다.
“네놈이었구나! 가라말을 뜯어간 것이 네놈이었어!”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대협을 만난 게 열여덟 번째라면 믿겠습니까?”
“……?”
“살려달라고 빌어도 보았고, 여길 안다며 길을 안내하겠다고 거짓말도 해 보았습니다. 그 어떤 말을 해도 대협께선 절 던져 버리더군요.”
검마가 인상을 쓰면서 화운을 던져 버리려고 했다.
바로 이때를 기다린 화운이 힘차게 소리쳤다.
“가라말!”
“……!”
“절 믿을 수 있는 말을 알려달라니까,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가라말은 털빛이 검은 말이라는 뜻이다.
한족들은 흑마라 부르지만 푸른 초원의 부족들은 가라말이라고 한다.
검마는 푸른 초원 태생이었고, 오랫동안 한족들의 땅에서 살면서 초원의 말을 일부러 잊었다.
하지만 아들에게 천리를 달릴 것 같은 흑마를 새겨줄 때 가라말이라는 말을 가르쳐주었다.
뿌리를 잊지 말라는 뜻이었다.
검마의 미간이 있는 대로 찌푸려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대협. 죄송합니다. 대협의 가슴 아픈 일을 제가 이용하고 있습니다.”
화운은 진심을 담아 포권했다.
그 진심 어린 모습에 검마가 정신을 추슬렀다.
“말하라.”
검마가 말했다.
평상심을 되찾은 검마의 모습은 무척이나 차가워 보였다.
화운은 다시 한번 포권한 후 입을 열었다.
“저 위쪽에 있던 광장을 기억하십니까? 거기 중앙 바닥에 분화구 같은 구멍이 있었지요. 전 거기에 빠져 죽었습니다. 아니 죽기 직전까지 갔는데…….”
화운은 자신이 겪었던 바를 차분히 이야기했다.
검마는 차가운 얼굴로 듣기만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검마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차가운 얼굴로 뚫어져라 응시할 뿐이었다.
“역시 안 믿으시는군요. 하아, 어떻게 해야…… 맘대로 하십시오. 이전처럼 던져 버려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다시 살아날 테니까 방법을 다시 생각해 보지요. 아니 그 전에 진짜 절 믿을 수 있을 만한 말 좀 알려주십시오. 이젠 죽는 것도 지긋지긋합니다.”
화운이 포기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 검마가 빙글 돌아서 화운을 계단에 내려놓았다.
“믿어 주시는 겁니까?”
화운이 반색하며 물었다.
“내 앞에서 걸리적거리지만 마라.”
검마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
검마가 차갑게 말하며 나선형의 계단을 따라 아래로 향했다.
천천히 걷는 것 같은데 순식간에 화운과의 거리가 벌어졌다.
여전히 빙판인데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경신술을 펼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어쩐지 그사이에 많이도 내려왔다 싶더라니…….’
화운은 검마의 경신술에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보내며 뒤를 따라갔다.
검을 바닥에 박아 미끄러지는 속도를 조절하다 보니 검마와의 간격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거대한 수직동굴의 안쪽 벽을 따라 나선형으로 만들어진 계단이 검마를 단단한 얼음 바닥으로 안내했다.
바닥은 굉장히 넓었다.
수직동굴이 웬만한 산 하나쯤은 통째로 삼킬 정도였다.
바닥에 내려선 검마는 잠시 멈춰 서서는 위쪽을 쳐다봤다.
“으아아아악!”
“끝, 끝이다!”
“안 돼!”
“살려줘!”
숨 넘어 가는 아우성이 허공에서 쏟아졌다.
쥐 상의 노인과 함께 움직이고 있던 군웅들이었다.
그들은 아직 계단에 위치한 화운의 앞을 스쳐 떨어져 얼음 바닥에 처참히 박살이 났다.
그들 중에 도살자의 모습도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새하얀 인영 하나가 떨어졌다.
백나찰이었다.
백나찰은 화운을 발견하고는 그 짧은 순간에 아련한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화운은 멀뚱멀뚱 바라볼 뿐이었다.
자신의 목을 무수히도 베어대던 여인이었다. 구해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퍼퍽!
“히휴! 나도 저 꼴로 죽었겠군!”
화운은 이전의 자신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계단을 빠르게 미끄러져 바닥으로 향했다.
화운이 바닥에 내려섰을 땐 검마가 저만큼 가고 있었다.
화운은 잽싸게 달려갔다.
“이 전에 죽을 때 보니까 쥐처럼 생긴 노인은 혼자 살아서 계속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화운은 쥐 상의 노인이 곧 올 것임을 일러바쳤다.
‘그 늙은이도 분명 보통이 아니야. 실력을 감추고 있는 게 틀림없어!’
화운은 검마보다 쥐 상의 노인을 더 경계했다.
검마는 워낙 대단한 고수라 자잘한 것에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지만, 쥐 상의 노인은 왠지 좀생이 같았다.
“상관없다.”
“하긴…… 검마시니까.”
검마는 수직동굴의 벽면을 따라 성큼성큼 걸었다.
걸리적거리지 말라는 엄포가 있었기에 화운은 그저 뒤만 졸졸 따라갔다.
주변을 암만 두리번거려 봐도 딱히 눈에 띄는 게 없었다.
마치 인간의 발을 허락하지 않은 미지의 공간 같았다.
‘아, 그건 아니지. 걸어서 오라고 계단까지 만들어져 있잖아! 함정 기관이 있긴 하지만서도.’
화운은 고개를 들고 빙벽을 살펴보았다.
빙벽을 따라 나선형으로 파여 있는 길이 보였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만든 것인지는 모르지만 참 대단한 일이다.
‘진짜 제천마존인가?’
장보도에 따르면 이곳으로 들어오게 된 비동의 입구를 포함하여 인근이 제천마궁의 옛 터라고 했다.
근데 이런 곳에 길을 만들어가면서까지 공을 들인 이유는 뭘까?
화운의 의문은 오래지 않아 풀렸다.
검마가 걸음을 멈추고 서 있었다.
화운은 그가 바라보고 있는 앞을 살펴보았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이 역력해 보이는 매끈한 벽이 보였다.
제천지존릉!
석벽 위쪽에 큼직한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힘차고 당당한 필체였다.
“진짜 제천마존의 비동이면 뭐하냐고, 먼저 온 자가 있었구만!”
화운이 성질이 난다는 듯 투덜거렸다.
매끈한 벽 앞쪽 바닥에 부서진 얼음 조각들이 지천이었다.
아마도 석벽을 뒤덮고 있었던 것 같은데 먼저 온 자가 부순 것이 틀림없었다.
쿠웅!
갑자기 검마가 석문을 후려쳤다.
그러자 석문이 진동하면서 틈에 얼어 있던 얼음이 조각이 되어 떨어졌다.
그르르릉!
검마가 개폐장치를 누르자 매끈한 벽면이 한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안쪽에 어둠이 가득한 통로가 나타났다.
검마는 그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래, 먼저 온 놈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게 있을 수도 있잖아!’
화운은 잽싸게 검마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통로는 그리 길지 않았다.
통로 끝에 또 다른 석문이 있었고, 검마가 벽을 만지작거리자 석문이 열렸다.
그 안쪽에 또 다른 석실이 나타났다.
검마의 육안으로도 살펴보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웠다.
스-릉!
맑은 소리가 들렸다.
검이 뽑히는 소리였다.
화운은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곤 곧 피식 웃었다.
‘그렇게 많이 죽었어도 죽음에 대한 경계심은 사라지지 않는군.’
죽음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은 살아 있는 생명이기에 가지는 본능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살아 있는 한 죽음에 대해 완전히 무반응 할 순 없을 것이다.
화운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눈앞이 갑자기 밝아졌다.
검마가 뽑아든 검이 시퍼런 광채를 쏟아낸 것이다.
“검기…… 강? 검강?”
검에 내력을 주입하여 광채를 발하면 검기이고, 지금 검마처럼 광채가 선명한 검의 형상을 하고 있으면 검강이다.
검강이 훨씬 더 고강한 상승의 절예다.
화운이 놀라 중얼거렸으나 검마는 대꾸조차 하지 않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석실은 대청 정도의 크기로 제법 넓었다.
제천마존일 것으로 짐작되는 흉상이 보였고, 제단 같은 것도 보였다.
그리고 가장 안쪽 벽에는 장문의 글이 새겨져 있었다.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고 위대했던 행보를 기리는 추모문이었다.
‘아무것도 없어! 옘병, 아주 탈탈 털어간 모양이네.’
화운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더 이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위대했던 무인의 절학은커녕 병기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먼저 왔던 누군가가 싹 쓸어간 게 틀림없었다.
‘쳇! 그렇게 죽어가면서 여기까지 내려올 필요가 없었잖아!’
화운이 투덜거리며 검마를 돌아보았다.
검마는 꿈쩍도 않고 서서는 추모문을 꼼꼼히 읽고 있었다.
그리고 화운이 하품을 할 때쯤 되자 검을 집어넣고는 밖으로 나갔다.
화운은 검마의 뒤를 따랐다.
“……어?”
밖에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쥐 상의 노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