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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으로 무림지존-6화 (6/207)

#006. 검마! 살려주십시오!(1)

화운조차 슬슬 긴장하기 시작할 때였다.

가장 먼저 사납게 굽이치는 구간에 진입하는 이가 있었다.

날렵해 보이는 체형의 장한이었는데, 그는 얼어붙은 것처럼 가만히 있더니 갑자기 일어서서는 빙판 바닥을 박차고 훌쩍 신형을 날렸다.

그리고는 굽이쳐 꺾이는 부분만을 징검다리 건너듯 훌쩍 훌쩍 뛰어서 쉽게 돌파해 버렸다.

“억?”

화운이 입을 쩍 벌렸다.

“니미랄! 저런 방법이 있었단 말이야?”

화운이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도 장한을 따라서 훌쩍 훌쩍 건너뛰어서 한 명씩 통과했다.

그러다 경신 공부가 부족한 모양인지 바닥에 제대로 착지를 못하여 벌러덩 뒤로 넘어져 머리가 깨지고 허공으로 튕겨나간 자도 보였다.

“으-악!”

숨넘어가는 비명이 그나마 화운의 억울한 심정을 달래주었다.

이어서 안정적인 구간이 나오자 모두들 한시름 덜었다는 듯 긴 숨을 토해냈다.

이때 화운은 이쪽저쪽을 미친 듯이 검으로 찍어가며 사납던 구간을 간신히 통과하였다.

다른 이들처럼 서서 건너 뛰어볼까도 했지만, 그러다 떨어지기라도 할까봐 자신의 방법대로 통과했다.

쥐 상의 노인 역시 건너뛰지 않았다.

얼음벽을 한 손으로 긁어가며 화운의 뒤를 따랐다.

단숨에 건너갈 능력이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뒤에서 화운을 지켜보겠다는 심산이었다.

“어디 거기선 어떻게 하는지 보자.”

화운은 심술 난 아이처럼 입술을 내밀고 앞서 가는 이들을 지켜봤다.

안정적인 구간이 길게 이어지더니 갑자기 끊긴 구간이 나타나자 앞쪽에서 미끄럼을 타던 이들이 긴장했다.

선두의 날렵한 체형의 장한은 미끄러지면서도 세심하게 살펴보더니 벽을 박차고 달렸다.

“억?”

화운이 인상을 쓴 순간.

퍼버버버벅!

장한이 고슴도치가 되어 떨어졌다.

“디게 아플 건데…….”

경험자 화운이 중얼거리는 가운데 다들 기겁하여 벽을 박차려던 것을 포기하고 끊긴 계단의 끝에서 신형을 날렸다.

하지만 애초에 날렵한 체형의 장한이 벽을 박차고 건너려고 한 이유가 있었다.

끊긴 부분의 간격이 너무 멀었다.

경신술에 조예가 대단한 이가 아니면 쉬이 건널 수 없는 거리였다.

기세 좋게 도약한 이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으아아아악!”

“끝, 끝이다!”

“안 돼!”

비명이 멀어졌다.

“한 사람도 못 건넌단 말이야? 정말 다른 방법이 없어?”

화운의 낯빛이 침중해졌다.

그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앞으로 엎드렸다.

“가자! 가자! 가는 거다! 이대로 단번에 가는 거다!”

화운은 두 손으로 바닥을 힘차게 밀어 탄력을 보태며 외쳤다.

화살처럼 날았다.

하지만 반대편에 안착하기도 전에 그의 신형은 점점 아래로 떨어졌다.

앞서 간 사람들이 빙판을 잘 닦아놓아서일까 조금만 더 가면 반대편에 닿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 수 있어! 가자! 가자! 가자고!”

화운이 미친 듯이 두 팔을 놀려 날갯짓을 했다.

역시나 소용없었다.

“멍청한 놈! 니가 새냐!”

노인이 허공에서 재주를 부리더니 화운의 몸을 밟고는 크게 도약하여 단숨에 건너갔다.

화운은 더욱 빠르게 추락했다.

“개늙은이! 무슨 짓이야!”

화운이 부아를 터트렸다.

손으로는 노인의 발을 잡아버리려고 휘저어 보았으나 걸리지가 않았다.

“멍청아! 아래나 보고 말해!”

“아래고 뭐고 반드시 복수할 거요!”

“……!”

황당해하는 노인의 모습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화운은 이를 갈며 아래쪽에 부딪쳐 튕긴 다음 까마득한 아래로 떨어졌다.

***

“어차피 목숨 걸고 왔다. 이 정도 얼음이 두려워서 주저할 정도면 오지도 않았다. 먼저 갈 거 아니면 비켜라!”

“맞다! 우리가 먼저 가겠다!”

보물에 눈이 먼 사람들이 빨리 내려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화운은 순순히 비켜줬다.

화운이 비켜서자 사람들이 나선형의 계단으로 몰려가 미끄럼을 타며 내려갔다.

“먼저 가라고 해도 저더러 먼저 가라고 할 거죠?”

쥐 상의 노인이 채근하기 전에 화운이 먼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네놈은 수상쩍어. 먼저 가라!”

쥐 상의 노인이 차가운 빛을 번뜩이며 화운을 압박했다.

화운은 피식 웃으며 계단이 아니라 수직동굴 아래가 보이는 끝부분으로 향했다.

‘우선 검마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해.’

화운은 계단을 타고 가는 걸 포기했다.

대신 터무니없이 황당한 방법을 시도하기로 작정했다.

떨어져 죽는 게 두렵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도 없이 떨어져서 익숙해지기도 했고, 떨어져 죽을 땐 거의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다.

화운은 까마득한 아래를 살펴보다 뒤쪽의 노인을 힐끔 돌아봤다.

노인은 화운이 무얼 하려는 것인지 궁금한 얼굴로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흥! 복수할 거라고 했지?’

화운은 노인의 눈치를 보는 척하다 냅다 뛰어내렸다.

“먼저 갑니다! 크핫하하하!”

통쾌한 척 웃는 것도 잊지 않았다.

화운이 동굴 아래로 갑자기 뛰어내리자 망설이던 쥐 상의 노인이 따라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몸을 무겁게 하는 천근추의 수법을 펼쳐서 아래쪽의 화운을 단박에 따라잡았다.

“아래 뭐가 있는 것이냐?”

귓가를 스치는 바람으로 인해 귀청이 윙윙거리는 가운데 노인의 고함이 들렸다.

화운은 노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바람에 볼 살이 찢어질 것 같았다.

화운은 간신히 고함을 쳤다.

“뭐가…… 있을 것 같습니까?”

“네놈이 뛰어내렸을 땐 그만한 안전장치가 있어서이지 않겠느냐!”

“와우! 그것만 믿고……?”

“내가 그렇게 어수룩해 보이느냐?”

“하긴…… 절 밟고서라도…… 살아나겠지요!”

“잘 아는구나.”

“이번엔…… 다를 겁니다!”

“뭐?”

노인이 의아해할 때 화운은 아래쪽을 주시했다.

뭔가를 찾는 척했다.

노인의 경신공부라면 얼마든지 자신을 박차고 살길을 찾을 것이기에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했다.

화운이 아래쪽을 살펴대니 노인 역시 아래쪽을 예의주시했다.

그렇게 까마득한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바닥이 두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노인의 얼굴에 불안감이 떠올랐다.

“아직 못 찾은 것이냐?”

이때 아래쪽을 살피는 척하던 화운이 노인을 쳐다보며 씩 웃었다.

“제가…… 복수하겠다고 그랬죠!”

“뭐?”

노인이 의아해한 순간 화운이 그의 팔을 꽉 움켜잡았다.

화운은 히죽 웃으며 두 다리로 노인의 몸까지 휘감았다.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린 노인은 자유로운 팔로 화운을 후려쳤다.

어떻게든 화운을 죽이고 위기를 벗어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바닥이 너무 가까웠다.

“영감, 우리 죽는 거야. 그러니까 다신 내 뒤통수를 때리지 마, 혼자만 살겠다고 날 밟지도 말고!”

화운이 노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내가 언제……!”

노인은 말을 다 하지도 못하고 화운과 함께 박살이 났다.

***

미쳤나 보다.

이런 곳에서 뛰어내리다니.

그래도 성공만 한다면 이 방법이 가장 손쉬울 수도 있다.

화운은 군웅들을 이끌고 수직동굴이 보이는 곳까지 오는 속도를 이전보다 많이 늦추었다.

이전에 뛰어내렸을 때 검마의 위치를 확인했기에 그가 움직이는 속도를 계산한 것이다.

“먼저 가지 않겠다면 우리가 먼저 가겠다!”

보물에 눈이 먼 사람들이 빨리 내려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화운은 내버려두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우르르 계단으로 몰려갔다.

화운은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뒤쪽의 노인 역시 화운만 예의주시했다.

‘지금이야!’

이윽고 화운이 노인을 향해 빙글 돌아섰다.

그리고 두 눈에 불을 켜고 웃었다.

“낄낄낄! 여기야. 여기선 날 수 있을 것 같아. 가자. 나는 거다!”

화운은 쥐 상의 노인을 향해 미친놈처럼 말한 후 수직동굴 아래로 뛰어내렸다.

노인이 따라서 뛰어내려 귀찮게 굴까봐 사전에 차단하려 한 것이다.

쥐 상의 노인이 달려와 떨어지는 화운을 내려다보았으나 따라서 뛰어내리지는 않았다.

쥐 상의 노인이 한참 멀어지자 신형을 뒤집은 화운은 아래쪽을 살폈다.

‘최대한 애원하듯 말하면 구해줄지도 몰라.’

화운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동정하고 도우는 게 인지상정인 법이니까.

한참을 떨어지던 화운은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검마가 아래쪽에 보이자마자 큰 소리로 외쳤다.

“검마! 살려주십시오!”

검마가 고개를 들고 쳐다봤다.

그리고 그냥 있었다.

화운은 그의 앞을 지나쳐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전신이 박살이 나 즉사했다.

“검마 대협! 존경합니다. 살려주십시오!”

검마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검마 개새꺄!”

화운의 욕설은 단단한 바닥에 부딪쳐 박살이 났다.

“검마! 당신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검마에겐 감추고 싶은 비밀이 없는 모양이다.

“나쁜 새꺄!”

화운의 욕설은 또다시 박살이 났다.

화운은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검마에게 도움을 받을까.

별의별 말을 다 해보았으나 검마가 손을 내밀지 않았다.

서른 번은 족히 넘은 것 같은데 단 한 번도 손을 내밀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보낸 전갈입니다!”

검마에겐 그분이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그렇지.

“개새꺄! 안 궁금하냐!”

화운의 욕설을 반겨준 건 차갑고 단단한 얼음 바닥뿐이었다.

‘방법을 바꿔야 하나…….’

***

화운은 쥐 상의 노인에게 대뜸 물었다.

“노인장처럼 대단한 분이라면 이것저것 아는 게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화운이 공손히 묻자 노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검마가 가장 싫어하는 게 뭡니까?”

“검마가 싫어하는 거?”

“아니면 검마가 가장 좋아하는 거는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아는 게 있다면 당장 이실직고하여야 할 것이다!”

“이실직고할 테니까, 검마가 싫어하는 거랑 좋아하는 게 뭐냐고요! 그게 아니면 말 못할 사연이든 뭐든 말해 보시라고요!”

“이놈이 감히 내 앞에서 수작질을!!!”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검마는 아들 내외를 죽인 흉수를 찾아 천하를 방황하고 있다.”

화운은 눈을 반짝였다.

그리곤 냅다 뛰어내렸다.

“우하하하하! 검마가 날 부르는구나! 날자! 날아!”

쥐 상의 노인은 화운이 미친놈처럼 뛰어내리자 황당한 표정만 지을 뿐 따라서 뛰어내리지는 않았다.

“검마! 아들 내외를 죽인 범인을 알고 있습니다!”

화운이 외쳤다.

그러자 검마가 불쑥 손을 뻗어 화운을 낚아채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누구냐! 말하라!”

화운은 포권부터 했다.

“죄송합니다. 도움을 받고자…….”

공손히 말하는 화운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던 검마가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냅다 던져 버렸다.

“야, 이! 개새꺄!”

화운의 욕설은 단단한 얼음 바닥으로 떨어졌다.

“검마대협! 아들을 죽인 흉수에 대해 할 말이 있습니다!”

화운이 외쳤다.

그러자 검마가 불쑥 손을 뻗어 화운을 낚아채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말하라!”

화운은 냉정한 눈빛을 하고 있는 검마를 물끄러미 응시하였다.

그러다 검마의 눈썹이 꿈틀거리자 얼른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대협께서 절 구해준 게 열 번째라면 믿겠습니까?”

“……?”

“살려달라고 빌어도 보았고, 여길 안다며 길을 안내하겠다고 거짓말도 해 보았습니다. 그 어떤 말을 해도 대협께서는 절 던져 버리더군요.”

검마의 얼굴이 묘하게 비틀렸다.

“제가 바라는 건 딱 하나, 그저 대협과 동행하는 것뿐입니다.”

검마가 인상을 빡 쓰면서 화운을 던져 버리려고 했다.

“지금 당장 던져 버려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만 가르쳐 주십시오.”

“……?”

“제가 무슨 말을 하면 믿어주시겠습니까? 제발 좀 가르쳐 주십시오.”

검마는 화운의 얼굴을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다 던져 버렸다.

‘이것도 안 통하는 거냐!’

어떻게 하면 그의 믿음을 살 수 있을까.

화운의 고심이 깊어졌다.

검마의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화운의 얼굴에선 죽음에 대한 공포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저 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일 뿐이었다.

그것이 검마의 마음을 움직였다.

잠시 후 화운이 얼음 바닥 위로 떨어져 박살이 나기 직전이었다.

“천리마(千里馬)!”

검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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