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셋으로 무림지존-5화 (5/207)

#005. 가자! 가자! 가는 거다!(2)

‘방법이 없는 게 아니야!’

떨어지기 직전에 살펴본 대로라면 방법이 있다.

화운은 이전처럼 엉덩이를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두 무릎을 구부려 바짝 자세를 낮추었다.

잠시 후 계단이 끊긴 끝부분에 다다르자 힘차게 뛰어올랐다.

하지만 정면이 아니었다.

화운은 벽 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벽을 박차고 내달릴 생각인 것이다.

벽 역시 얼음으로 뒤덮여 있어 미끄러울 것이라는 걸 예상하며 벽을 밟았다.

바로 그때.

퍼버버버벅!

벽에서 무언가가 얼음을 부수고 튀어나와 화운의 몸에 틀어박혔다.

한두 개가 아닌 수십 개였다.

“니미……랄!”

수십 개의 쇠화살이 꽂혀 고슴도치가 된 화운은 그대로 절명하여 아래로 추락했다.

“좋아! 여기서 누워보자!”

화운은 사납게 굽이친 구간을 통과하자마자 뒤로 벌러덩 누웠다.

온몸에 힘을 주거 나무토막처럼 전신을 뻣뻣하게 만들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미끄러지는 속도가 빨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화운은 바람의 저항도 없이 빠르게 미끄럼을 탔다.

그리고 나선형의 계단이 끊긴 지점에서 양손으로 바닥을 치며 허공으로 튕겨져 날아올랐다.

“가자! 가자! 가는 거다!”

화운이 외쳤다.

화운은 화살처럼 일직선으로 날았다.

하지만 반대편에 안착하기도 전에 그의 신형은 점점 아래로 떨어졌다.

화운은 고개를 들고 건너편을 봤다.

남은 거리는 어른 걸음으로 네다섯 걸음.

딱 그 정도가 모자랐다.

“좋아! 할 수 있어!”

추락하면서도 결의를 다진 화운은 아래쪽 벽에 부딪쳐 튕긴 다음 까마득한 아래로 떨어져 박살이 났다.

“좋아! 여기서 엎드리는 거다!”

화운은 사납게 굽이친 구간을 통과하자마자 앞으로 엎드렸다.

허공으로 튕겨져 날아갈 때 추가로 탄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였다.

화운은 아랫배와 팔다리에 잔뜩 힘을 주어 전신을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바람의 저항이 거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미끄럼을 탔다.

그리고 나선형의 계단이 끊긴 지점에서 허공으로 튕겨져 솟구친 순간 양손으로 계단의 끊어진 부분을 힘껏 밀어 날아가는 탄력을 보탰다.

“가자! 가자! 가는 거다! 이대로 단번에 가는 거다!”

화운이 외쳤다.

화운은 화살처럼 일직선으로 날았다.

체감상 이전보다 더 빨랐다.

하지만 끝내 반대편에 닿기도 전에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안 돼! 가자! 가자! 가자고!”

화운이 미친 듯이 두 팔을 놀려 날갯짓을 했다.

악착같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의 팔로는 날 수 없다는 걸 증명할 뿐이었다.

날아가던 탄력을 상실한 화운은 점점 더 빠르게 추락했다.

“그래, 난 새가 아냐! 새가 아니지…… 그럼 여길 어떻게 건너냐고!”

떨어지는 중에도 팔짱을 낀 화운은 아래쪽 벽에 부딪쳐 튕긴 다음 까마득한 아래로 한참을 떨어져 박살이 났다.

***

강전이 튀어나오니 벽을 박차고 건널 수도 없고, 떨어지는 속도를 이용하여 단숨에 날 듯이 건너는 것도 어림없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른 방법.

암만 생각해봐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자.

“열셋! 열넷! 여기다!”

화운이 우뚝 멈추었다.

집채만 한 바윗덩이가 굴러오도록 만든 기관을 작동시키는 석판이 바로 앞에 있었다.

화운이 들고 있던 횃불로 석판을 살피고 있자니 쥐 상의 노인이 도착했다.

“쥐새끼! 드디어 잡았다!”

화운의 뒷덜미를 잡으려던 노인은 화운이 빙글 돌아서며 벼락같이 검을 휘두르자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화운은 검을 뻗어 노인을 가리켰다.

“뒤에서 달려들지 마십시오. 내 검은 뒤에도 눈이 있으니까.”

“이, 이놈이!”

노인이 달려들려고 하자 화운은 재빨리 검을 돌려 바닥의 석판을 가리켰다.

“이 석판 보입니까? 이걸 밟으면 기관이 작동하게 되고 저 뒤쪽에서 집채만 한 바위가 굴러올 거고, 그럼 우린 다 죽습니다.”

노인은 뒤를 돌아본 후 눈매를 가늘게 하며 쏘아봤다.

“어찌 그리 잘 아는 것이냐?”

“설명은 나중에 해줄 테니 저 사람들부터 멈추게 하십시오.”

뒤쪽에 겁에 질린 군웅들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노인은 이맛살을 찌푸리다 신형을 날렸다.

바닥을 몇 번 박차는 것만으로도 쭉쭉 날 듯이 쏘아져갔다.

“내가 저 정도 실력만 있었어도…….”

화운이 부러워하는 가운데 노인이 군웅들을 냅다 후려갈겼다.

“멈춰! 앞에 함정이다. 멈추란 말이다! 멈추지 않으면 다 죽는단 말이다!”

다 죽는다는 말에 군웅들이 멈추기 시작했다.

노인은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두 사람을 더 날려 버리고는 모두를 둘러보았다.

“다들 정신 차려! 함부로 날뛰면 다 죽는다!”

그렇게 모두를 휘어잡은 노인은 군웅들을 이끌고 화운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위험하니 거기서 멈추고 노인장만 오십시오.”

화운의 말에 노인은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사람들에게 기다리라고 주의를 준 후 다가왔다.

“자, 이제 말해봐라.”

노인이 말했다.

화운의 말이 신통치 않으면 손이라도 쓰겠다는 듯 살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가 여기까지 기관을 잘 알고 있었던 건 장보도가 하나 더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운이 능청스럽게 웃었다.

“……!”

“오랫동안 본가에 전해지던 것이었습니다. 무슨 기관에 대한 설명만 되어 있어서 그게 뭔지 아무도 알아내지 못했지요. 저 역시 그게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는데, 이곳에 오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 제천마존의 비동에 설치되어 있는 기관이라는 것을.”

“기관이 얼마나 더 있느냐?”

쥐 상의 노인이 눈을 치뜨며 물었다.

화운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지입니다.”

“더는 없단 말이냐?”

“본가가 간직하고 있던 장보도에는 딱 이 자리까지의 기관만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이 뒤로는 저도 알지 못합니다.”

뒤에 거대한 수직동굴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거기까지는 다른 기관이 없었다.

하지만 굳이 그것까지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노인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 석판의 크기가 작지 않습니다. 충분히 멀리 건너뛰어야 합니다.”

그렇게 말한 화운이 노인을 바라보았다.

“나더러 먼저 건너라는 것이냐?”

“싫습니까?”

“네놈이 먼저 건너라.”

“뭐, 그러죠.”

화운은 거리낌 없이 건넜다.

어른 한 걸음 보다 조금 더 멀리 뛰었다.

“다들 보셨죠? 제가 뛴 거리보다 적게 뛰면 안 됩니다.”

화운은 그러고도 염려가 되어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검을 뛰어넘으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반대편에서도 누군가가 노인에게 검을 내밀었다.

노인은 석판 바로 앞에 내려놓았다.

“자, 한 사람씩 건너가.”

노인의 말에 앞에서부터 한 사람씩 두 자루의 검을 건너뛰었다.

열일곱 명이었다.

이곳까지 살아남은 숫자가.

화운이 기억하기로 광장까지 도착했던 숫자가 얼추 오십이 넘었었던 걸 생각하면 그 이후로도 꽤나 많은 숫자가 죽은 셈이었다.

마지막에 노인까지 석판을 밟지 않고 건너오자 화운은 검을 집어 들었다.

“자, 가시죠.”

“네놈이 앞장서라.”

“그러지요 뭐.”

사람들이 좌우로 벌려서 길을 열어주었다.

화운은 그 사이로 걸어갔다.

“혹시 장보도를 가지고 있지 않느냐?”

“그게 여기 기관들에 관한 것이라는 걸 알았다면 가지고 왔겠지요.”

노인의 물음에 화운이 대답했다.

“너무 빨리 가는 거 아니냐?”

“검마가 한참 앞서 있잖습니까. 따라잡으려면 서둘러야지요.”

노인은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다만 화운에게서 세 걸음 이상 떨어져서 따라갈 뿐이었다.

그렇게 화운을 선두로 하여 수직동굴이 있는 곳까지 이동하였다.

***

거대한 수직동굴엔 암벽을 빙 둘러가며 아래로 향하는 나선형의 계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사방의 암벽은 물론이고 계단까지 얼음으로 뒤덮였다.

“혹시 동아줄 같은 거 가지고 있는 분 있습니까?”

화운이 사람들을 향해 외쳐 물었다.

하지만 서로를 돌아볼 뿐이었다.

“보시다시피 경사가 심한데다 굉장히 미끄러워 보입니다. 준비 없이 내려가다간 죽을 수도 있습니다.”

화운이 다시 말하며 사람들을 둘러봤다.

모두들 화운을 바라만 볼뿐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화운은 그들 틈에 백나찰이 있는 것을 봤지만 모른 척했다.

‘사람들이 먼저 들어온 날 쫓느라 난리가 나는 바람에 상황이 달라진 모양이군.’

이전과 달리 살아 있었지만 무참히도 자신을 죽여 댄 여인이라 달가운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저 아래로 떨어져 죽어버려라!’

화운이 악담을 퍼부을 때였다.

“어차피 목숨 걸고 왔다. 이 정도 얼음이 두려워서 주저할 정도면 오지도 않았다. 먼저 갈 거 아니면 비켜라!”

“맞다! 우리가 먼저 가겠다!”

누군가가 소리쳤고, 그에 호응하는 사람들이 소리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천마존의 무학에 눈이 먼 사람들이었다.

정말 뭔가가 있을 것처럼 위대해 보이기까지 한 수직동굴의 거대함에 사람들은 빨리 내려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화운은 도리 없이 비켜 줄 수밖에 없었다.

화운이 비켜서자 사람들이 나선형의 계단으로 몰려가 미끄럼을 타며 내려갔다.

“뭐 하느냐, 어서 내려가지 않고!”

쥐 상의 노인이 채근했다.

“먼저 가십시오.”

“아니, 네놈은 수상쩍어. 먼저 가라!”

쥐 상의 노인이 차가운 빛을 번뜩이며 화운을 압박했다.

화운은 피식 웃었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려고 한 것이라 거칠 게 없었다.

“그럼 먼저 갑니다.”

화운은 나선형의 계단위로 발을 디디며 미끄럼을 탔다.

엉덩이를 깔고 앉아 빠르게 미끄러지는 모습에서 긴장감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어 쥐 상의 노인이 보기엔 의아한 일이었다.

“저놈 확실히 뭔가 있어!”

쥐 상의 노인은 의혹 가득한 눈으로 살펴보며 화운의 뒤를 쫓았다.

“얏호!”

화운이 환호성을 질렀다.

엉덩이를 깔고 앉은 채 나선형의 길을 따라서 빠르게 미끄러졌다.

“한심한 놈! 그러다 어디 부딪치거나 아래로 튕겨나가 봐야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걸 알겠구나!”

쥐 상의 노인이 십여 보 뒤에서 미끄럼을 타며 조소했다.

노인은 무릎을 구부려 언제든 신형을 날릴 수 있는 자세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영감이 날 압니까? 죽음이 나랑 짝짜꿍한 게 골백번이라는 걸 알기나 해요?”

“미친놈!”

“미쳤지. 그럼 이게 정상입니까! 그래도 신난다! 으핫하하하!”

화운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두 사람의 앞쪽에서 미끄럼을 타던 이들이 조용했다.

미끄러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겁을 덜컥 집어 먹은 것이다.

아래로 미끄러지는 속도가 그만큼 빨랐다.

마주 때리는 바람에 얼굴 살이 푸들거릴 정도로 엄청난 빠르기였다.

“엇! 길이 없다!”

“뭐?”

“없어! 없다고! 조심해!”

“뭔 개소리야!”

“멈춰! 멈추라고!”

앞쪽에서 난리가 났다.

방향이 급격히 꺾이는 모퉁이라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사람들은 속도를 줄이고자 발버둥을 쳤다.

날붙이를 꺼내 빙판에 꽂는 이들, 맹수의 발톱처럼 생긴 철조로 얼음바닥을 긁는 이들, 맨손으로 얼음 바닥을 긁어대는가 하면 아래쪽 사람을 걷어차고 위쪽 사람을 붙잡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사달이 난 가운데 모퉁이가 금세 나타났고, 결국 태반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허공으로 튕겼다.

나름 고수들인지 대여섯 명만이 모퉁이를 따라 방향을 틀었다.

그들 틈에 백나찰과 도살자도 보였다.

“그래봤자다.”

화운이 중얼거렸다.

“뭐가 그래봤자라는 거냐?”

언제 간격을 좁혔는지 쥐 상의 노인이 바로 뒤에서 물었다.

“모퉁이를 돌고나면 놀라 자빠질 구간이 나타날 겁니다.”

“그걸 어찌 아는 것이냐?”

“음핫하하! 어떻게 알까요!”

화운은 대충 대꾸한 후 검을 뽑아 빙벽과 바닥이 만나는 모서리를 찍어 모퉁이를 따라 방향을 틀었다.

곧이어 안정적으로 자세를 잡은 화운이 뒤를 돌아보니 노인 역시 한 손으로 벽을 긁어가며 나선형의 길이 꺾인 대로 크게 회전하며 잘도 따라왔다.

“대단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자신은 수십 번을 반복하고서야 겨우 통과했었는데, 노인은 단번에 해내고 있었다.

그것도 처음 하는 노인이 더 안정적으로 보였다.

‘젠장, 제아무리 살아나기를 반복해도 무공의 격차는 어쩔 수 없다는 거냐!’

투덜거린 화운이 전방을 돌아봤다.

한참 아래쪽에 문제의 구간이 보였다.

모퉁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조차 놀라고 있었다.

‘그래, 놀라자빠질 정도겠지. 내가 거길 통과하려고 몇 번을 죽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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