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셋으로 무림지존-3화 (3/207)

#003. 무한, 그 기연 속으로……(3)

화운은 암로 가까이 다가갔다.

시체들이 보였다.

이전에 자신이 당했던 암로 중앙을 가르는 뭔가에 갈라진 시체들이었다.

그런데 뜻밖인 한 구의 시체가 있었다.

백나찰, 그녀 역시 죽어 있었다.

“그렇게 날 죽여 댈 때는 당신도 죽을 수 있다는 걸 알았어야지. 잘 죽었다!”

혀를 찬 화운은 검마와 군웅들이 앞서간 암로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한쪽 벽으로 찰싹 달라붙었다.

쑤-칵!

전방의 천장에서부터 크게 반원을 그린 커다란 칼날이 통로 중앙을 순식간에 가르고 사라졌다.

화운은 벽을 짚어가며 빠르게 움직였다.

어떤 기관이 작동할지 몰라 적잖이 긴장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그르륵!

손을 짚었던 벽이 쑥 꺼졌다.

“억?”

깜짝 놀란 화운은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확 쏠리는 것을 버텨내고는 벽에서 냉큼 떨어졌다.

바로 이때!

쉬칵!

아래쪽에서 날카로운 무언가가 두 다리를 가르고 지나갔다.

불같은 통증에 절로 비명이 튀어나왔다.

“으헉?”

화운이 기겁한 순간.

쉬칵!

위쪽을 갈라 버리는 기음마저 달려들었다.

결국 또 머리통이 잘렸다.

***

“내가 검마다. 걸리적거리지 마라!”

검마의 목소리가 광장을 뒤흔들었다.

“머저리! 꺼져라!”

“너나 꺼져!”

날아오는 황의인을 슬쩍 피함과 동시에 냅다 걷어찬 화운은 곧바로 신형을 날렸다.

쿵! 쿠웅!

천장에서 커다란 돌덩이가 연이어 떨어졌다.

전방으로 튀어나간 화운은 빙글 돌아서며 검을 뽑아 백나찰을 향해 달려들었다.

채챙! 채채채챙!

숨 가쁘게 백나찰의 협봉검을 상대했다.

“천추정한검!”

“……!”

백나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백가의 비기가 끊기지 않았다는 것을 스승님께서 아신다면 무척 기뻐하실 터인데…….”

백나찰이 놀란 얼굴로 검을 거두자 화운은 최대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서로 시간이 없으니 추후에 그대의 가문과 스승님의 비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비사? 넌 대체 누구이기에……?”

“화운! 그게 내 이름입니다.”

화운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돌아섰다.

그러다 잠깐 멈추며 물었다.

“날 죽여 댄…… 아니 죽이려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

“모든 건 오해에서 비롯된 일일 터, 굳이 따지려는 게 아닙니다.”

“멀쩡한 얼굴로 남을 이용하는 자들은 죽어 마땅하다.”

“……!”

화운이 돌아섰다.

황당하다는 빛이 가득한 얼굴로 백나찰을 바라봤다.

‘뭐라는 거야, 이 미친년이!’

화운은 너무 기가 막혀 일순 머릿속이 다 멍해졌다.

“내가 뭘…… 남을 이용했다는 겁니까? 대체 언제……?”

“다른 사람들 뒤에 숨어서 여기까지 오는 걸 봤다.”

“그게…… 이용한 거라고? 고작 그런 이유라고?”

“남을 이용한 자들은 백해무익하다. 죽여야 한다.”

“뭐라는 거야, 미친년아! 뭐가 백해무익이야! 고작 그런 이유로 수백 번을 죽였단 말이야! 이런 개 같이 빡치는 말이 어딨어!”

화운이 와락 달려들었다.

채채채챙!

화운의 검은 악이 받쳐 사납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아직은 백나찰의 검이 더 날카로웠다.

쉬악!

‘개미친년 같으니……!’

***

“천추정한검!”

“……!”

“스승님께서 천추정한검에 대해 한 말이 있다. 알고 싶다면 끝까지 살아남아라.”

“넌 대체 누구이기에……?”

“화운!”

화운은 당황하는 백나찰을 두고 암로 쪽으로 냅다 뛰었다.

‘햐! 미친년. 그런 이유로 사람 목을 댕겅하냐!’

화운은 속으로나마 욕설을 내뱉었다.

검마가 앞서 들어간 암로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먼저 갑니다!”

화운은 누군가의 손에서 횃불을 낚아채 암로 속으로 뛰어들었다.

앞쪽에 있던 사람들이 ‘어! 어?’ 하는 사이에 암로 속으로 냅다 뛰어든 화운은 곧바로 우측 암벽에 찰싹 달라붙었다.

이때 군웅들이 화운의 뒤를 따라 우르르 뛰어들었다.

쑤-칵!

전방의 천장에서부터 크게 반원을 그린 커다란 칼날이 통로 중앙을 순식간에 가르고 사라졌다.

“컥!”

화운의 뒤를 따라 암로 속으로 우르르 뛰어들었던 군웅들 중 중앙에 위치한 자들이 한꺼번에 봉변을 당했다.

그 끔찍한 참상이 횃불에 의해 적나라하게 보였다.

살아남은 군중들은 화들짝 놀라 양쪽 벽으로 후다닥 달라붙었다.

이때 화운은 중앙 통로로 냅다 뛰고 있었다.

화운이 앞쪽에 있는 모퉁이를 돌아갈 무렵 벽에 붙어 가던 이들 중의 누군가가 화운이 그랬던 것처럼 벽에 설치된 기관을 발동시켜 몇 사람이 죽었다.

“하나, 둘, 셋, 넷……!”

화운은 모퉁이를 돌자마자 숫자를 세었다.

그 숫자가 일곱일 때였다.

달려가던 화운이 벽을 박차고 허공으로 신형을 날렸다.

양쪽 벽에서 각각 두 개씩 튀어나온 커다란 칼날이 공간을 위아래로 사등분을 내버렸다.

화운이 뛰어올라 눕듯이 사지를 쭉 펴고 있는 천장 쪽의 허공만이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공간이었다.

화운이 떨어질 때쯤엔 칼날들이 벽속으로 돌아간 후였다.

“하나, 둘, 셋…….”

화운은 숫자를 세며 다시 달렸다.

지옥 아가리 속의 기관들은 앞서 간 검마가 태반을 부숴 놓았지만, 몇 군데가 남아 있어 갑작스럽게 화운을 죽이곤 했다.

죽고 죽기를 반복하며 통과할 방법을 악착같이 찾은 덕분에 화운은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한참을 뛰어가던 화운이 이리저리 토끼처럼 폴짝 폴짝 뛰었다.

화운이 그렇게 뛰어다닌 이유는 곧 밝혀졌다.

뒤쪽에서 살아남은 군웅들이 화운을 쫓아 마구 몰려오자 갑자기 땅이 푹 꺼졌다.

칠흑보다 더욱 짙은 어둠이 떨어진 이들을 한 입에 삼켜버렸다.

화운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기관이 작동하지 않는 유일한 곳만을 찾아 토끼처럼 뛰었던 것이다.

그 후로도 화운은 계속 이상한 행동을 했고, 그때마다 그 행동들이 화운의 목숨을 지켜주었다.

죽고 살아나고를 수십 번 반복한 화운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쥐새끼! 드디어 잡았다!”

작은 키의 노인이 화운의 뒷덜미를 잡으며 성질을 부렸다.

염소수염보다 보잘 것 없는 수염을 기르고 있는 데다 하관이 뾰족한 역삼각형이라 얼굴이 쥐 상인 노인이었다.

하지만 틀렸다.

노인이 잡은 게 아니라 화운이 멈추어 선 것이었다.

“내가 지금 뭔가를 잘못 밟은 것 같습니다.”

“뭐?”

“기관을 건드린 것 같단 말입니다.”

화운이 천천히 발을 떼며 한 걸음 물러났다.

그가 밟았던 바닥의 석판이 그르륵 소리를 내며 천천히 제 위치를 찾았다.

쥐 상의 노인 역시 뭔가 사달이 터졌다는 걸 직감하고는 붙잡았던 화운의 뒷덜미를 놓고 주위를 살폈다.

이때 살아남은 군웅들이 뒤쪽에서 몰려왔다.

“멈춰!”

쥐 상의 노인이 소리쳤다.

하지만 이전의 기관에 질겁하여 미친 듯이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이 따를 리가 만무했다.

“멈추라고……!”

재차 소리치던 쥐 상의 노인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들었습니까?”

화운이 물었다.

“들었다.”

쥐 상의 노인이 대답했다.

순간.

쿠-웅!

미친 듯이 달려오는 군중들 바로 뒤로 무언가가 굉음을 터트리며 무너졌다.

아니 그것은 무너진 게 아니었다.

천장 위쪽이 열리면서 커다란 무언가가 떨어진 것이었다.

화운과 쥐 상의 노인은 동시에 목을 길게 빼내고 눈을 부릅뜨며 살펴봤다.

달려오는 군중들 중 뒤쪽에 위치한 횃불에 의해 간신히 윤곽이 보였다.

그것은 크고 둥그런 모양이었다.

“……뭐지?”

화운이 고개를 갸웃했다.

순간 암로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르!

암로를 꽉 채울 정도로 크고 둥그런 모양의 그것이 굴러오기 시작했다.

“뛰어!”

쥐 상의 노인이 먼저 뒤돌아 냅다 뛰었다.

“통로가 기울어져 있는 게 저것 때문이었어?”

화운 역시 미친 듯이 뛰었다.

“으아아아아악!”

“끄악!”

“비켜! 비켜! 비키라고!”

“잡지 마! 우아아아악!”

찢어지는 비명.

숨 넘어 가는 외침들.

서로 앞서가려는 아우성이 통로를 울렸다.

화운이 사력을 다해 뛰면서 돌아보니 구슬 모양의 집채만 한 바윗덩이가 군웅들을 뒤에서부터 깔아뭉갰다.

그러면서도 구르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저걸 어떻게 피하라고!”

화운이 괴성을 지르며 더욱 미친 듯이 달렸다.

하지만 바윗덩이의 속도가 훨씬 빨랐다.

화운이 다시 돌아보니 피가 범벅이 된 바윗덩이가 바로 등 뒤에까지 굴러오고 있었다.

“히이이익?”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란 순간, 바윗덩이에 발이 걸린 화운의 신형이 바닥으로 철푸덕 고꾸라졌다.

쿠르르르르!

바윗덩이가 쓰러진 화운을 뭉개고 지나갔다.

***

“열셋! 열넷! 여기다!”

화운이 우뚝 멈추었다.

집채만 한 바윗덩이가 굴러오도록 만든 기관을 작동시키는 석판이 바로 앞에 있었다.

화운은 그것을 크게 건너뛰며 다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화운이 세는 숫자가 열다섯일 때였다.

쿠르르르르!

암로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화운은 그 소리가 나는 이유를 알았다.

“어떤 새끼가 밟은 거야!”

화운은 미친 듯이 뛰었다.

이전보다는 앞쪽에 있을 때 굴러오기 시작한 것이라 삽시에 깔리지는 않았지만, 소리로 보아 그리 오래 갈 것 같지가 않았다.

“니미라알-!”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칠 때였다.

화운의 곁으로 바람처럼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쥐 상의 노인이었다.

“너 뭐냐? 정체가 대체 뭐야?”

노인이 소리쳤다.

“니미, 이런 판국에 정체는 알아서 뭐하게요?”

화운이 소리쳤다.

순간 노인이 인상을 쓰더니 화운의 뒤통수를 냅다 갈겨 버렸다.

“싸가지 없는 새끼 같으니!”

“어이쿠!”

화운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쥐 상의 노인은 코웃음 한 번 치고는 더욱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기이한 행동을 했다.

바닥이 아닌 벽을 밟고 달렸다.

“니미랄! 이 판국에 뒤통수를 쳐?”

벌떡 일어난 화운이 발악하듯 외치며 노인의 뒤를 따라 전력으로 달렸다.

그러다 곧 노인이 벽을 밟고 달리는 이유를 알았다.

바닥이 미끄러워 화운이 휘청거렸다.

“억?”

횃불을 앞으로 내밀어 살펴보니 바닥이 하얗게 얼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공기도 차가웠다.

“이건 또 왜 이래?”

뒤를 돌아보니 집채만 한 바위가 바로 뒤에까지 굴러오고 있었다.

“으헥?”

기겁한 화운은 미친 듯이 달렸다.

하지만 자꾸만 미끄러져 속도가 나지 않았다.

다급해진 화운은 냅다 신형을 날려 벽을 밟고 뛰었다.

다다다다!

몇 걸음 달리면서 보니 쥐 상의 노인은 천장을 밟고 뛰고 있었다.

그 이유가 금방 드러났다.

벽마저 미끄럽기 시작한 것이다.

화운이 그 사실을 인지했을 땐 발이 미끄러져 바닥으로 처박히듯 굴러버렸다.

그리고 바로 이때.

굴러온 바위가 화운을 덮쳤다.

“이게 뭐냐고!”

***

“열셋! 열넷! 여기다!”

화운은 멈추지 않고 바닥의 석판을 크게 건너뛰었다.

“기관이다! 조심해!”

화운은 뒤쪽에 경고했다.

이게 얼마나 먹힐지는 자신할 수 없다.

다만 한 호흡만이라도 늦게 밟기를 바랄 뿐은 개뿔!

쿠르르르르!

암로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개새꺄! 밟지 말라고!”

화운은 미친 듯이 뛰었다.

이전과 거의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 말은 곧 바위가 금방 덮쳐올 거라는 뜻이다.

“니미라알-!”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칠 때였다.

“너 뭐냐? 정체가 대체 뭐야?”

쥐 상의 노인이 소리쳤다.

“니미 이런 판국에 정체는 알아서 뭐하게요?”

화운이 소리쳤다.

순간 노인이 인상을 쓰며 화운의 뒤통수를 냅다 갈겼다.

하지만 화운이 상체를 숙여 잽싸게 피했다.

“또 맞을 줄 알아?”

약이 오른 노인이 이격을 날리려는 순간 화운이 신형을 날려 벽을 밟고 내달렸다.

그렇게 수십 장을 달릴 수 있다면 신기다.

하지만 화운에겐 그럴 능력이 없다.

벽을 밟고 일곱 걸음 정도를 달리던 화운은 벽을 박차고 신형을 날렸다.

“아-코!!”

화운은 두 다리를 쭉 뻗은 채 엉덩이부터 바닥에 떨어졌다.

엉덩이뼈가 빠개지는 듯 아팠지만 생각대로 빠르게 미끄러졌다.

이때 화운의 머리 위쪽으로 바람처럼 지나가는 이가 있었다.

쥐 상의 노인이었다.

노인은 천장을 밟고 빠르게 달려가며 화운의 뒤통수를 갈겼다.

“아프다고요!”

“닥쳐!”

소리친 노인이 화운의 뒤쪽을 쳐다봤다.

화운 역시 덩달아 돌아보고는 기겁하였다.

집채만 한 바위가 벌써 등 뒤에까지 굴러오고 있었던 것이다.

“으악! 으악!”

화운이 괴성을 지르며 두 손으로 바닥을 마구 때려가며 미끄러지는 속도를 올리려고 발광을 할 때였다.

노인이 화운의 뒷덜미를 붙잡아 앞쪽으로 냅다 던져 버렸다.

“으-아악!”

화운은 짐 더미처럼 날아가 바닥을 몇 바퀴 구르다 빠르게 미끄러졌다.

“니미랄!”

화운이 욕설을 내뱉으며 뒤를 돌아봤다.

노인은 저 뒤에서 무릎을 살짝 굽히고 선 채 미끄럼을 타고 있었다.

그리고 노인의 한참 뒤로 빠르게 굴러오는 바윗덩이가 보였다.

“절 구해준 겁니까?”

“네놈은 정체가 수상해! 저것만 피하고 나면 보자!”

“아주 사악한 노인네는 아닌가 보네. 크흘흘!”

화운이 이죽거릴 때였다.

뒤에서 미끄럼을 타던 노인이 기겁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갈고리처럼 만들어 정신없이 바닥을 긁어댔다.

까가가각!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노인의 속도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본 노인은 바윗덩이가 바로 뒤에까지 굴러오고 있자 다시금 속도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뭐 하는 겁니까?”

“멍청아! 앞을 봐!”

“……!”

화운이 부리나케 고개를 돌렸다.

완만한 굽이에 가려져 있던 암로의 끝이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