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단둘이 소주를 같이 한잔하면서 박 이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아직 박 이사가 은퇴를 하기 전의 일이다.
“눈치 보지 말고 올려야 될 사람이다 싶으면 바로바로 올려 줘라.”
“네.”
“내가 말 안 해도 알아서 잘하겠지만, 그냥 혹시나 해서 하는 노파심에 해 주는 말이야. 넌 다 좋은데, 쓸데없는 자기 합리화가 너무 심해. 어차피 할 거잖아. 그런데 거기에 명분이 왜 필요해. 네 마음이 곧 명분인 거야. 그걸 왜 남들에게 설명을 해서 납득을 시키려고 하나.”
“….”
“이 사람, 저 사람 다 챙기려고 하다 보면, 결국엔 진짜 챙겨야 할 네 사람들을 못 챙겨 주게 되는 법이야. 왜? 네 사람이니까. 정작 상대들은 그렇게 생각을 안 할 수도 있는데, 그냥 너 혼자 그 사람들이 네 사람이니까 이해를 해 주겠지… 하는 착각에 계속 그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양보를 부탁하게 되는 거거든. 그거… 바른 거 아니다. 일단 네 사람들 먼저 확실하게 챙겨놓고 여유가 있음 그때 가서 다른 사람들도 같이 챙겨 주는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네 사람들 위주로 편애하듯 챙겨 주다 보면 어느새 그 편애 때문에 네 사람들은 더 많이 생겨나게 될 거다.”
“…?”
“앞으로 네가 가게 될 위치가 그런 위치야. 네가 하게 될 편애에 아무도 쉽사리 불만을 표출하지 못할 거다. 오히려 그런 편애가 네가 가게 될 그 위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거야.”
“…네.”
“넌 잘할 거다, 무조건.”
“감사… 합니다.”
“내가 더 감사하지, 너한테. 내 지난 홍성 생활을 되돌아보면 물론 당시엔 무척이나 지루하고 막연했던 시간들이겠지만, 그걸 추억할 수 있는 자리에 와서 생각해 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모든 순간이 빠르게만 지나갔던 거 같다.”
“….”
“그래서 막상 추억을 하려고 해도 기억이 희미한 시점도 너무 많고, 또 마치 기억 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정말 그랬던 적이 있었나 할 만큼 전혀 기억이 안 나는 사람들, 상황들도 많아. 그런데… 공 이사 널 팀장으로 올리고 지금 이 술자리까지… 정말 거짓말처럼 모든 일들이 바로 어제 있었던 일들처럼 생생하고 소중하기만 하다, 내 입장에선.”
“….”
“이런 가슴 두근거리는 추억들을 만들어 줘서 난 진심으로 공 이사 너한테 고마워.”
“다 이사님 덕분입니다. 이사님께서 잘 이끌어 주셨기 때문에… 저는 그냥 생각 없이 이사님만 믿고 따라왔을 뿐입니다.”
“정말 네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을 해 준다면… 너도 그런 대장이 되어줘라, 네 사람들한테.”
“…!”
“나 사실 지금에 와서야 하는 말인데, 이사 계약 끝내고 영업부 떠날 당시에 말이야.”
“네.”
“내가 너랑 장 대표 데리고 인사부장이랑 같이 식사한 적 있잖아.”
“기억합니다. 그때 영업부 떠나시면서 영업부 맨파워를 지금처럼 확 늘려주고 가셨지 않습니까.”
“나 그때 속으로 걱정 많이 했다.”
“…”
“너희 앞에서 걱정이 된다는 속마음을 들킬 수가 없어서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한 척을 하긴 했지만, 널 차장으로 너무 급하게 올리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너무 앞서는 거야. 뽀록일 수도 있었던 거잖아, 톡 까놓고 말해서. 나크리스부터 시작해 H.I 편집샵, CGM 막아낸 건까지 줄줄이 비슷비슷한 시기에 다 같이 얻어걸려서 터진 거니까.”
“뽀록일 수도 있었던 게 아니라, 정확하게 말하면 타이밍이 만들어진 뽀록이 맞는 거죠.”
“그러니까 말이야. 그런데 또 사람이 그렇거든. 제 혼자 잘나서 그런 성과를 다 만들어낸 줄 착각을 충분히 할 수가 있어. 내 입장에선 걱정이 될 수밖에. 천천히 키워야 되는데, 내 욕심에 너무 급하게 끌어 올려서 괜한 부작용이 나지는 않을까… 아무리 겸손한 사람도 분위기가 점점 자신 중심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면 거기에 취해서 삑사리를 낼 수가 있단 말이야. 갑자기 내가 뭐라도 된 거 같고, 내가 아니면 안 될 거 같다는 오만이 들어차서 딴생각들을 계속 하게 돼.”
“….”
“나도 그랬던 적이 있고, 그랬던 선배들도 많았으며, 또 그런 후배들을 너무 많이 봐 왔거든. 그런데 또 그땐 널 차장으로 올리는 거 말고는 다른 대안도 없었고. 그런데 다행히도 CGM 코리아가 들어와서 너한테 연봉으로 밀어붙인 스카우트 제의를 단번에 거절했단 이야기를 듣고 내가 속으로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게. 다행히 내가 널 제대로 잘 봤다 싶은 마음에 너한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는 거야.”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거절이었습니다.”
“그걸 또 네 사람들에게 강요하지는 말고.”
“물론이죠. 제 사람이라고 어디 다 제 맘 같겠습니까.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각자의 가치관이라는 게 있는데….”
“다행히 홍 이사가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 큰 잡음은 안 나올 거다. 고맙지, 이렇게 양보를 해주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네.”
“그래도 쓸데없는 예의 지킨다고 저자세로 상대해 주지는 마라.”
“…!”
“그냥 네가 이긴 거야. 그냥 네가 좀 더 잘나서 홍 이사 위로 올라가는 거지, 홍 이사의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그 덕에 네가 그 자리에 앉는 게 아니라는 걸 명심하란 뜻이야. 차라리 홍 이사를 끌어안으려거든 굴복을 시켜서 품어줘라. 그게 더 젠틀한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거다. 네 사람들로 단단하게 맨파워 만들어 놓고, 그 맨파워로 회사 장악해라.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이미 내가 판 다 깔아 줘 놓고 나가는데, 설마 우리 공 이사가 그거 하나 못 주워 먹을까. 그럼 홍 이사 스타일상 알아서 안길 거다. 똑똑한 친구니까, 어떻게 해야 자기에게 더 유리한 처신이 될지 정도는 이미 다 계산에 넣어 두고 있을 거야. 근데 또 네가 거기서 어설픈 배려, 답도 없는 자기 합리화하겠다고 버벅거리는 순간 홍 이사와의 관계가 이상하게 정립되어 버릴 수도 있다.”
“네.”
“그래도 사장님, 전무님 은퇴하시고 나면 남아 있는 현역 임원 중 제일 고단수가 바로 홍 이사야.”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박 이사는 홍성을 떠나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사람들에겐 한없이 인자하고 모든 걸 다 퍼주면서도 자신의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에겐 철저한 잣대를 갖다 대는 모습을 내게 보여주고, 또 가르쳐 주고 은퇴를 했다.
그리고 난 그런 박 이사의 조언과 사회생활 노하우를 항시 염두에 두고 홍 이사와의 관계를 유지하다 결국 홍 이사까지 내 사람으로 만드는 데 성공을 했다.
* * *
“그거 이리 내.”
박 이사는 사모님께 조금 전 내가 앞치마 주머니 속으로 억지로 찔러 넣었던 봉투를 다시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봉투를 다시 내게 돌려주었다.
“에이, 참… 그냥….”
“나도 상품권 좋아해.”
“….”
“돈이나 마찬가지인데, 이거 싫어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 홍성에 있을 땐 눈에 밟히는 게 이 백화점 상품권이라 큰 욕심이 없었는데, 이젠 다르지. 하지만… 사장님한테 그렇게 전해 줘. 직접 나 찾아와서 우리 집사람이 대접하는 따뜻한 밥 한 공기 얻어먹으면서 주라고.”
“…!”
“미안할 게 뭐가 있어, 나한테. 내가 그만하고 싶어서 그만하겠다고 말한 건데. 미안해할 거면 그냥 차라리 고마워하라고 전해 줘. 그래야 내가 보람이라도 있지. 이건 뭐 기껏 힘 실어줘 놓고도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이니….”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그렇게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참 어렵게 산다, 그 사람도. 자기 꿈이야 여기저기 구속 안 받고 자기 원하는 대로 속 편하게 살고 싶은 거일지는 몰라도, 정작 자기 성격이 자기 삶을 저렇게 구속하고 있잖아. 나한테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자기 손으로 쳐낸 것도 아니고, 내가 나갈 때 된 거 같아서 나온 건데… 또 나갈 때 역시 회사로부터 많은 배려를 받아서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다 준비해 놓고 나왔는데 뭐가 그렇게 미안한 게 많아? 비즈니스를 하자는 건지, 회사를 애들 놀이터로 만들자는 건지… 쩝. 공 전무 네가 고생이다.”
“저는 오히려 사장님의 그런 모습 때문에 더 마음이 쓰여 계속해서 홍성에 저란 사람을 갈아 넣고 있는 거 같습니다. 하하하… 정말 말 그대로 애 같으시니까.”
“그러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두 사람 궁합이 찰떡궁합이라는 거야. 그건 그렇고 낙현이는 언제쯤 다시 한국으로 불러들일 거야? 저거 계속 저렇게 혼자 역마살 낀 놈처럼 밖으로만 나돌면 평생 저렇게 산다. 늦게라도 장가는 가야지.”
“본인이 싫다고 하는데 옆에 사람들이 어디 곰 빼는 재주 있겠습니까? 안 그래도 센젠 법인 매출도 안 이사 투입되기 전에 비해 40퍼센트 이상 올라간 상태라 이젠 뺄 때가 된 거 같긴 한데… 마땅한 포지션이 없네요.”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옆에 둬야지. 꼭 필요한 사람을 그렇게 밖으로만 돌게 만드는 거도 회사 입장에선 낭비야.”
“알고는 있는데, 여의치가 않네요. 천천히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 부분은.”
“알았어. 얼른 들어가서 식사 끝내. 다들 기다리겠다.”
“네.”
내가 홍성에 붙어 있는 한 우리 홍성 영업부의 영원한 대장 박 이사.
홍성 영업부는 영업부의 확장을 위해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내려놓은 박 이사의 결단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홍성맨들의 입장에선 회식을 하거나 퇴근 후 가볍게 술을 한잔할 일이 있으면 대장이 우리에게 보여준 성의에 보답을 하기 위해서라도 박 이사의 식당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젠 얼굴도 잘 모르는 후배들을 단골로 두기 시작한 박 이사는 그렇게 홍성을 떠나서도 많은 후배들의 방문과 술김에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먼발치에서나마 꾸준히 홍성을 지켜보고 응원해 주고 있다.
* * *
가을이 짙어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완연해야 할 가을을 훌쩍 건너뛰고 곧바로 겨울이 시작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가을과 겨울의 모호한 경계가 시작되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나와 집사람은 아이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둘째 승애가 더 이상 장거리 운전에 차 멀미를 하지 않게 될 시점부터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데리고 KTX가 아닌 자차를 이용해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 광안리 불꽃 축제가 열리는 날에 맞추기 위해 하루 전날 부산에 내려온 우리 가족.
오랜만에 애들을 부산 부모님께 맡겨 놓고 친구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혁재는 정말 얼마 만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오랜만에 자신의 집사람을 데리고 나왔다.
한창 같이 사네, 못 사네 하며 이혼 이야기까지 나왔던 혁재네 부부.
그런 권태기를 힘겹게 넘겨 오더니 다행히 이젠 서로에 대한 감정이 애틋함에서 안쓰러움, 측은함으로 바뀐 듯 어떻게든 서로가 서로의 옆을 지켜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그나마 긍정적으로 발전을 한 것 같았다.
“저라고 왜 이 모임에 함께 안 나오고 싶었겠어요?”
그리고 그동안 혁재의 입장만 들어 왔던 우리였기에, 제수씨의 입장에선 깊게 생각을 해 보지 못했던 두 사람의 불화에 대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속상하죠. 내 젊음은 다 어디로 갔나… 밖에 나가서 죽을 둥 살 둥 하면서 돈 벌어오는 이 사람 생각하면 같은 말이라도 좀 부드럽게 해줘야겠다, 반찬이라도 하나 더 만들어서 상을 차려줘야겠다… 생각하면서도 몸이 아프니까 그게 제 뜻대로 잘 안 되더라고요.”
“몸이 어디 안 좋았나?”
예림이가 놀란 눈을 하며 묻자 혁재 와이프는 그런 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디가 특별하게 안 좋았던 게 아니라, 애 낳고 몸 관리를 좀 잘못했죠, 저 같은 경우는. 워낙 어렸을 때 임신을 하고, 그 이유로 결혼을 했잖아요. 서른 전엔 몰라요. 근데 딱 서른 넘어가니까 뼈마디가 저려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리고 또 애 초등학교 들어가니까 그때부턴 더 정신이 없어지는 거고. 그때부터 집안 경조사가 계속 겹치는데 너무 정신이 없더라고요. 그거 챙기느라 내 젊음이 다 말라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마침 또 그때 이 사람은 매장 점장 달고 손님들 연결해 주는 프로들 섭외해서 골프 장비 영업하러 다닌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이니… 그냥 그랬던 거 같아요. 분명 이 사람도 하루하루 숨도 못 쉴 정도로 입에 단내가 나도록 뛰어다니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 우울증 비슷한 게 왔던 거 같아요, 딱 그 시기에. 친구들 보면 누구는 이제 막 시집을 간다고 그러고, 또 누구는 이제 막 결혼해서 애 낳고 남편이랑 알콩달콩….”
“하기사, 한창 꽃다울 나이에 너무 빨리 엄마가 되긴 했다.”
“내가 한 선택이라 이 사람을 원망하면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데, 이상하게 이 사람만 보면 원망을 하고 싶더라고요. 사실 이 사람 말고는 딱히 제가 제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없잖아요, 주변에. 근데 또 이 사람은 밖에서부터 일하면서 받고 들어온 스트레스라는 게 있을 거니까, 제가 조금만 칭얼거려도 그게 제 마음도 좀 알아달란 뜻이었는데, 그걸 계속 이상하게 오해를 해서 제가 불만만 많다고 핀잔이나 주고….”
“그래도 느그는 젊을 때 애를 낳아서 젊은 시절은 그렇게 보냈어도, 이제 다 키아 놨으니까 좀 수월하지 않나?”
“그렇더라고요. 딱 달라붙어서 키울 땐 몰랐는데 인제 고등학교 들어가고 하니까 딱히 손이 가는 것도 없고… 차라리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참 진짜 시간 금방 간다, 금방 가. 벌써 고등학생이가?”
예림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인자는 길 가다 마주치면 못 알아보겠데이. 우와, 진짜 토 나올 거 같다. 맨날천날 보던 사람들만 보고 사니까 내 나이 한 살 더 드는 건 크게 실감이 안 나던데, 한 번씩 이렇게 애들 크는 거 보거나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인자 40대라는 게 실감이 난다니까.”
이야기를 들어 보니 혁재는 그래도 본사 점장 생활을 꾸준히 하다가 최근에 경남지사 관할 임원으로 승진을 해서 출근을 장전동이 아니라 양산 쪽으로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살림살이가 크게 나아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애를 고등학교에 보낼 정도로 키워 놓았으니 어느 정도 부부 관계에 여유도 생겨났고, 무엇보다 제수씨가 네일 하는 기술을 배워 동네에 작은 네일샵을 오픈했는데 취미 생활 삼아 하는 일치고는 수입이 꽤 괜찮은 모양이었다.
승후와 승애….
애들이 크는 건 너무나 아쉽지만, 또 이렇게 막상 애를 다 키워놓은 친구를 만나니 우리는 언제 승후와 승애를 키울까 하는 부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예림이와 광호는 결국 대박을 냈다.
몇 년 전부터 예림이와 광호는 자신들과 공동 투자를 해 오던 지인들과의 불화로 따로 독립을 해서 나왔고, 꾸준히 자기들이 백 퍼센트 투자를 해서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대박이 나버렸다.
‘삼바리’라고 생낙지에 매운 양념을 묻혀서 불판에 구워주는 콘셉트의 술집이었는데, 처음 마린시티 오렌지 상가 1층에 작은 점포를 임대해서 장사를 시작하다가 금방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수영점, 동래점까지 매장을 확장해 나갔다.
그러다 서면 공구상가 쪽까지 진출을 해서 크게 성공을 거두고 이젠 윗지방까지 프랜차이즈 확장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말처럼 안 쉽다. 서울, 수원에 몇 번이나 올라가가 가게 자리를 안 알아봤나. 자리는 좋은데, 믿고 맡길 사람이 없어가 몇 번이나 접었다. 이번에는 서면 공구상가 쪽 가게 관리해 주는 동생이 마침 서울 아가씨랑 결혼을 전제로 연애 중이라서 그라면 이참에 한번 진행해 보자 하고 하는 거다.”
혁재나 예림이 부부와는 달리 지현이 부부는 처음 시작부터 그랬지만, 우리 부부처럼 소리 소문 없이 꾸준하게 가정을 이어가고 있었다.
벌써 첫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다고 한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을 하긴 했지만, 우리보다 고작 몇 달 먼저 결혼을 했던 지현이 부부 사이에 태어난 조카가 벌써 초등학교에 들어갔단 소리에 승후, 승애 크는 걸 옆에서 매일같이 보면서도 실감이 안 났다.
“자, 이제 우리 건배할 때 적시라! 하는 건 그만하자. 우리가 어데 죽을 때까지 마실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그라믄?”
“청바지 어떻노.”
“청바지? 야, 야… 그게 언제 쩍 써먹던 거고?”
“그땐 우리가 그걸 외칠 나이는 아니었지.”
“그래도….”
“자, 자… 다들 잔 한번 채워 봐라.”
예림이의 진행으로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잔에 술을 채우고 잔을 들었다.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청바지!”
“….”
“와 아무도 안 따라 하노.”
“혼자 해라. 우린 고마 우리 하던 거 하자. 적시라!”
“적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