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
회장님 돌아가셨습니다
“엄마, 집사람 지금 분만실 들어갔어요.”
-지금 몇 시고?
자다가 전화를 받은 사람치곤 어머니의 음성은 또렷했다.
-엄마 지금 준비해서 올라갈게.
“뭐 하러. 어차피 늦었잖아요. 급하게 올라오실 필요 없어요.”
-니는 뭐만 하면 다 필요가 없다고 하노.
“…”
-필요 없다, 필요 없다… 그런 말 하는 거 습관 된다이. 사돈은 다 와 계실 거 아이가. 아따, 지 애비 닮아 그런가 성격 한번 급한 놈이네. 첫 놈은 보통 예정일보다 며칠씩 늦게 태어나는데, 뭐가 그래 급해가 며칠 더 일찍 나오겠다고 그래 서두노. 하긴, 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하다는 걸 지가 우찌 벌써 알겠노. 할매, 할배 기차표도 지 나오는 날 맞차서 다 끊어 놨구만… 지금 준비해가 올라갈 테니까 그동안 네가 옆에 딱 붙어 가지고 잘 챙기고 있어라.
“지금 시간이 몇 신데…”
-느그 매형한테 부산역까지만 좀 태워다 달라고 하면 된다. 엄마도 챙길 게 안 있나. 지난주에 느그 매형이랑 같이 기장 시장 가서 미역도 다 사 놨다.
“알았어요. 그럼 내가 나중에 매형이랑 다시 통화 한번 할게.”
어머니와 통화를 끝내고 다시 보호자 대기실로 들어갔을 때였다.
장인어른은 날 보자마자 전화는 드렸냐고 확인을 하셨고, 난 고개를 끄덕이며 장모님 옆자리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금 바로 올라오신답니다.”
“운전은 누가 하고.”
“KTX 타야죠. 매형이 편의점 새벽 시간 보고 있으니까, 누나가 조금 일찍 나가서 매형이랑 교대하고, 매형이 부산역까지 모셔다줄 거예요.”
그 말을 끝으로 침묵이 시작됐다.
그리고 난 그 침묵 속에서 장인어른, 장모님의 모습을 보며 부모가 된다는 건 낳는다고 끝이 아니라, 낳는 순간부터 내가 죽을 때까지 해야 할 평생의 의무라는 걸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분명 처음이 아니실 텐데, 나보다 더 초조해하시는 두 분의 모습에서 난 순간 내가 너무 감정이 메말라 있나? 하는 의심까지 해봤다.
난 아직 잘 모르겠다.
로또를 실제로 만나 보면 그 느낌이 조금 달라질까?
집사람이 분만실로 들어간 지 두 시간 반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뭔가 공기가 달라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미 창밖으로는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분만실 안의 분주함이 대기실까지 전해질 정도로 저 분만실 안에서는 뭔가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잠시 후 분만실 문이 열리며 파란 담요에 싸인 로또를 품에 안은 간호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
간호사가 뭐라고 계속 말을 하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하나도 귀에 안 들어왔다.
아마 몇 시, 몇 분에 로또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의무처럼 보호자들에게 알려주는 절차를 했던 모양이다.
나의 시간은 그 간호사의 의미 없는 설명을 모두 뛰어넘었고, 오로지 이 세상에 나와 로또 둘만 존재하는 거 같았다.
신기했다.
좋다, 행복하다, 세상을 다 가진 거 같다… 그런 감정은 아직 생겨나지 않았고, 그저 두 눈을 꽉 감고 뭐에 그리 화가 났는지 두 주먹을 움켜쥔 채 울고 있는 로또의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한번 안아 봐도… 되나요?”
“아니요, 아버님. 많이 안아 보고 싶으시겠지만, 지금은 그냥 이렇게 보시는 것만 가능합니다. 사진은 찍으셔도 돼요. 제가 이렇게 안고 있을 테니까, 사진 찍으세요.”
장인어른의 반응이 정말 대박이었다.
집사람이 분만실 안에 들어가 있는 동안엔 안절부절못하시던 양반이 아이, 산모 모두 건강하다는 간호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특유의 경상도 남자의 무뚝뚝함을 되찾으셨다.
뒷짐을 지시고는 그저 피식하고 웃음만 흘리셨다.
그리고 장모님은 담요에 폭 싸여 있는 로또의 손가락, 발가락이 모두 다섯 개씩 정상이냐는 질문으로 간호사의 웃음을 자아내셨다.
“사진 다 찍으셨으면 저 로또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잠시만요, 저 한 장만 더….”
“네, 찍으세요.”
“장모님, 장인어른… 애 옆으로 한번 나란히 서 보세요. 제가 같이 한 장 찍어 드릴게요.”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찍어서 뭐 하노? 니가 옆에 서라. 내가 한 장 찍어 줄게.”
그렇게 난 장인어른께 내 스마트폰을 건네주고 로또를 안고 있는 간호사 옆으로 나란히 섰다.
그리고… 그동안 그렇게나 기다려 왔던 로또와의 사진을 처음으로 같이 찍어 봤다.
잠시 후, 로또를 데리고 나왔던 간호사가 다시 혼자 모습을 드러내며 산모와의 면회를 하겠냐고 물어봤다.
“조금 있다가 바로 개인 병실로 옮기시긴 할 건데, 그래도 그 전에 보호자 한 분 들어가셔서 수고했다고 말 한마디 전해 주세요.”
참 기분이 이상해지는 순간이었다.
집사람의 면회가 보호자 한 명에게만 허락되는 순간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뒤로 한 발 물러서셨는데, 집사람의 보호자가 장인어른, 장모님이 아니라 나라는 사실이 날 어색하게 만들었던 거 같다.
평생을 낳아서 키우신 부모님이 아니라, 삼십 년 넘게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살아오다 가정을 꾸리고 고작 몇 년 함께 살아온 게 전부인 나와 집사람이 이젠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라는 사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그 순간 내게 들어가라고 눈빛을 주시는 장인어른, 장모님께 죄송한 마음까지 들었다.
다시 한번 파란 가운을 챙겨 입고 마스크까지 낀 상태로 집사람을 만나러 들어갔다.
“많이 아팠지?”
내 말에 강혜선은 말할 기운도 없을 사람이 애써 고개를 흔들었다.
“로또 봤어?”
집사람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안아 봤어?”
난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안 된대.”
“예뻐? 예쁘지?”
“못 봤어?”
“봤는데… 어두워서 자세히는 못 봤어.”
“예뻐. 예쁜데 좀… 외계인 같아.”
“뭐야… 뭐라는 거야.”
“통통 부었어. 막 그런 거 있잖아. 목욕탕에 너무 오래 있어서 붇기는 부었는데 살이 쭈글쭈글한… 그래. 그런데… 너무 예뻐. 진짜 수고 많았어. 물 좀 갖다줄까?”
강혜선은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일생일대 가장 중요한 일을 성공적으로 끝낸 사람의 모습이었다.
* * *
오전 9시 반.
난 부산에서 올라오시는 부모님을 모시러 서울역으로 향했다.
서울역으로 가는 동안 회사에 전화를 넣어 새벽에 급하게 집사람이 산통을 했고, 로또가 태어나서 오늘은 출근을 못 하게 될 거 같다고 미리 말을 해놨다.
그럼에도 혹시 또 몰라 총괄 이사, 박 이사와 상무님께도 각각 따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상무님.”
-많이 좋으시겠어요?
“네, 하하하… 좋습니다. 그런데 아직 실감은 안 나네요.”
-벌써 나면 안 되죠. 저도 그랬던 거 같아요. 이게 바로 아빠랑 엄마가 다른 부분인 거 같아요. 우린 열 달씩 애를 안 품어 봤잖아요. 그래서 막상 직접 안아 보고 애 이름을 지어 줘도 내가 아빠가 됐다는 게 바로 실감이 나진 않더라고요. 앞으로 하루하루가 달라질 겁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어렴풋이 알 거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오후에 하기로 했던 미팅 말입니다.”
-아, 됐어요. 신경 쓰지 말고 오늘은 그냥 회사 일 다 잊고 가족들이랑 계세요.
“감사합니다.”
상무님과의 통화를 끝으로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부모님을 모시러 역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아영이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신 부모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엄마!”
“할머니, 삼촌 저깄네.”
날 먼저 발견한 아영이.
난 아영이를 보자마자 녀석과 아버지가 들고 온 짐을 건네받으며 농담을 던졌다.
“니는 뭐 한다고 여기까지 따라왔노?”
“따라온 게 아이고,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 데리고 왔다이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가? 기차만 타면 되는데, 여기 하나 못 찾아오구로. 니 학교 개강 안 했나?”
“시간표 정정 기간이거든?”
“꼴랑 대학물 한 학기 먹어 본 게 전부인 게 벌써부터 안 좋은 것만 배워 가지고… 시간표 정정 기간일수록 더 학교에 부지런히 나가 가꼬 니한테 맞는 강의를 체크해야 할 거 아이가.”
“삼촌 대학 졸업 언제 했노?”
“…언제 했지?”
“대학 1학년 단과생이 무슨 내한테 맞는 강의를 체크해가 시간표를 바꾸노. 교양 강의도 다 필수구만.”
“그렇나?”
“모르면 좀 가만히 있어라. 친구들한테 다 부탁해 놓고 오는 길이다.”
“그 친구가 남자가, 여자가.”
“아, 뭐라 하노, 진짜…”
“이거 반응 보이까 딱 남잔데…”
“아, 할머니. 삼촌 좀 봐라. 몇 달 만에 보면서 보자마자 잔소리 시작한다.”
“할매 걸고 얼렁뚱땅 넘어갈라고 하는 거 보이까 이거 백 퍼센트 남잔데…”
“아, 쫌!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고 빨리 가자. 내 로또 보고 싶어 죽긋다.”
“쓰읍… 아무리 봐도 남자 맞는데… 니 막 대학 드갔다고 공부 안 하고 남자 만나고 싸돌아댕기다가 삼촌한테 함 걸리라, 진짜. 죽는다.”
병원엔 이미 처형도 와 있는 상황이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 그리고 처형이 병원 입구까지 마중을 나와 계셨다.
그 앞에서 우리 부모님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집사람이 있는 병실로 직접 안내를 하셨다.
그곳에서 평생 무뚝뚝한 줄만 알았던 내 어머니는 집사람의 손을 꼭 잡고 수고했다고, 근처 살아서 자주 들여다보고 챙겨줄 수 있었음 좋았을 건데 그러지 못해서 항상 미안하단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아이들이 아이를 낳았다며, 장모님을 향해 고개를 연거푸 숙이시며 내 아들 맡겨 놓고 사는 게 바빠서 고맙단 인사 한번 제대로 못 한 거 같으시다며 항상 감사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을 달고 산다고 말씀을 하셨다.
난 내 어머니가 그렇게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모습을 처음 본 거 같았다.
평생을 억척스럽게 사실 수밖에 없었던 내 어머니.
하지만 어느새 어머니의 파마머리엔 백설이 내려앉아 있었고, 집사람의 손을 잡고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주시는 어머니의 모습엔 지금껏 아들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소녀의 모습이 있으셨다.
오전 11시 반.
드디어 신생아실 면회가 허락되는 시간.
이미 우리 가족은 11시부터 먼저 내려가 있었기에 가장 먼저 신생아실 유리 벽 앞으로 설 수 있었다.
어머니와 아영이는 로또의 모습을 한 장이라도 더 스마트폰에 담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내 아버지는 말없이 유리 벽에 검지를 갖다 대시며, 그렇게라도 한번 손주를 만져 보고 싶으셨는지 한참을 가만히 계셨다.
“….”
내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그저 유리 벽에 검지를 붙여놓고, 그 차가운 유리 벽이 로또의 피부인 양 비비고 또 비비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셨다.
부산에서 새벽 첫차를 타고 올라오셨는데, 내일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셔야 한다며… 그 전에 손주를 한 번만 직접 안아 볼 수 있게 해 드리면 안 되겠냐고 간호사에게 부탁을 해 봤지만, 난처해하는 간호사의 표정에 내가 지금 진상 짓을 하고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더는 무리한 부탁을 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그런 모양이다.
분명 앞으로 언제고 손주를 안아 보실 수 있게 만들어 드릴 수 있는데, 이상하게 내일 바로 부산으로 내려가셔야 하는 상황이나 이 모든 게 안타까웠다.
그날 저녁 처형네 문제의 형님도 병원 퇴근 후 곧바로 가족 식사 자리에 참석을 해서 양가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병원 근처엔 제대로 된 식당이 없어서 안타까웠지만, 그렇다고 집사람을 병실에 혼자 있게 놔놓고 멀리까지 나갈 수가 없어서 그나마 병원 근처에 있는 소고깃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몇 년 만에 만나신 양가 부모님들은 이 좋은 날 술이 빠질 수 있겠냐며 결국 술을 시키셨고, 그렇게 어르신들의 술잔을 채워 주며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
식사를 끝내고 다시 천천히 걸어서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난 용기를 내서 아버지의 손을 잡아봤다.
몇 년 만에 잡아본 아버지의 손일까?
그냥 말없이 아버지 옆에서 나란히 걷다가 문득 투박한 아버지의 손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냥 그 손을 잡아 보고 싶었다.
“…?”
아들의 손이 자신의 거칠고 투박한 손을 감싸자, 아버지는 살짝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 아들을 쳐다봤다.
하지만 이 돈 안 드는 효도를 지금껏 쑥스러움에 제대로 해드리지 못했던 아들은 아버지의 시선이 감사하고 죄송스러워 앞만 보고 걸었다.
생각보다 투박하지 않고 부드러웠으며… 또 살집이 잡히지 않는 손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손이 이번엔 아들의 손에 깍지를 끼기 시작하셨다.
이번엔 아들이 아버지를 쳐다봤다.
그런데 이번엔 아버지가 기분 좋게 미소를 지으시며 아들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아들은 아버지의 손과 깍지를 끼고 있는 반대 손으로 아버지의 손들을 몇 차례 비벼 봤다.
“아버지.”
“….”
아들의 목소리를 못 들으신 아버지.
아들은 아버지의 손등을 툭툭 건드려 아버지가 아들의 입술을 볼 수 있게끔 만들었다.
“아버지.”
“와?”
“고마워요.”
“…뭐가?”
“그냥….”
“…그냥 다. 그냥 다 고마워요.”
“취했나?”
“취하긴.”
“아빠도 고맙다.”
“뭐가?”
“…그냥. 그냥 다 고맙다. 그동안 고생 참 많이 했다, 우리 막내이.”
“뭐라 하노 또.”
“혼자 서울 와가 어떻게든 잘 한번 살아 볼라고 아둥바둥대는 거… 그거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뭐 하나 변변하게 도와줄 수 없어가 아빠 마음이 항시 무거웠는데… 인자는 마 아빠보다 기운도 씨고 키도 크고, 이래 손도 더 넓고… 그래 돼 뿠네.”
아들의 가슴 한쪽이 아릿하게 울려 왔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와 깍지를 끼고 있던 손을 풀어 반대 손으로 아버지의 손을 옮겨 잡으며, 깍지를 끼고 있던 손으로는 아버지의 좁아진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앞으로 잘할게요.”
“여서 뭘 더 얼마나 잘하겠단 말이고?”
“무조건 더 잘할 거니까… 그러니까 아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싱겁구로….”
* * *
그로부터 5년 뒤….
-공 전무님.
이른 새벽.
난 전화를 받기 전 시간부터 확인했다.
새벽 4시 10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전화를 받기 전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발신자 번호로 전화를 건 상대가 사장님이라는 사실에 이미 난 마음의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네, 사장님. 전화받았습니다.”
-조금 전에… 회장님…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고문님한테는….
“제가 지금 바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