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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307화 (307/325)

#307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마크 창의 방문은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컸다.

우선 폭스타운은 홍성이 그들과 손을 잡지 않더라도 CGM이라는 꼬리를 잘라낼 것이라는 걸 공개적으로 업계 관계자들에게 발표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비밀리에 약속을 잡고 방문을 한 것도 아니고, 여러 브랜드의 관계자들이 모일 것이 뻔한 장소에 그것도 대놓고 마크 창이 얼굴을 비칠 이유가 없었으니까.

“아까 그 사람…혹시 폭스타운의 마크 창 아니었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홍성 타워 오프닝 행사에 참석해 준 브랜드 측 관계자들과 점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마크 창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 존재가 식사 자리에 올라오자 모두가 나와 상무님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도 그저 흥미로운 가십거리 정도로만 치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대립 관계에 놓여있는 홍성과 CGM.

그리고 그 CGM과 한 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폭스타운의 실질적 오너가 방문을 한 것이니까.

여기서 나오는 대답에 따라 많은 브랜드들이 노선을 바꾸게 될 게 분명했다.

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상무님께 미뤄 놓고 대수롭지 않은 듯 스테이크를 썰었다.

그리고 상무님은 냅킨으로 입술 주위를 꾹꾹 눌러 닦은 뒤, 그 냅킨을 다시 무릎 위로 올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저희 홍성 쪽으로 러브콜을 보내더군요.”

상무님은 마치 마크 창이 한 제안을 단순 유통 판이 브랜드 업체 쪽으로 자기네 유통 판에 해당 브랜드를 입점시켜 보는 게 어떻겠냐는, 아주 일차원적인 제안 정도로 축소시켜서 대답을 했다.

하지만 상무님이 그 내용을 고의로 축소시킨 건, 누가 봐도 브랜드 관계자들이 실제 오간 이야기보다 더 많은 상상력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고도의 화술이었다.

“러브콜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그리고 결국 인내심이 부족한 어느 누군가가 다른 사람들을 모두 대신해서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현재 CGM이 펼치고 있는 사업 전략이 전반적으로 만족스럽지가 못한 모양입니다. 걱정이 많은 거 같더군요. 특히나 매출적인 부분보다는 폭스타운이라는 유통 판 자체의 이미지가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걱정이 큰 것처럼 보였습니다.”

끝까지 구체적인 이야기는 피해 가는 상무님이었다.

난 그런 상무님의 작전을 속으로만 응원하며 말없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혹시 이제 와서 지금껏 폭스타운이 펼쳐 왔던 일방적인 사업 스타일들을 모두 CGM의 작전이었던 걸로 물타기를 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요?”

“가능성 있는 이야기군요.”

“그렇게 해서라도 현재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만 있다면…”

상무님의 침묵.

그리고 그 침묵이 만들어낸 상상력은 이내 그 추측들이 사실인 것처럼 꾸며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홍성의 입장은 어떤 겁니까?”

그 순간 상무님이 내게 눈빛을 보냈다.

자기도 이제 밥 좀 먹자는 듯한 눈빛이었다.

난 재빨리 탄산수 한 모금으로 입안을 헹궈낸 후 냅킨으로 입 주변을 닦아냈다.

그리고 와인 잔 바닥 부분을 잡고 빙빙 돌려가며 입을 열었다.

“아까 다들 보셨겠지만, 사전에 약속된 만남이 아니었습니다. 저희 역시 그들의 방문에 상당히 당혹스러웠습니다. 만남 자체를 거절할 마땅한 명분도 없었고, 또 저희 역시 그들의 방문에 어떤 목적이 숨어 있을지 궁금해서 함께 자리를 했었죠.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동안 홍성이 한 번도 생각을 안 해봤던, 무척 의외의 제안을 받게 됐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 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사업이라는 게 어떻게 말 몇 마디에 이건 이렇게 바꾸고, 또 이건 이렇게 변경하자… 하는 식으로 노선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자리에 함께 모인 브랜드들 관계자들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런 그들을 향해 테이블 위로 올려져 있던 포크를 들어 보였다.

그리고 그 포크의 밑부분을 엄지와 검지로 잡고 살살 흔드는 시늉을 했다.

포크 밑부분이 끼워져 있는 엄지와 검지는 그저 꿈틀대듯 작은 움직임을 보일 뿐이었지만, 바닥으로 향해 있는 포크 머리 부분은 좌우로 제법 큰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저희 홍성은 홍성과 홍성에서 컨트롤하는 모든 브랜드들이 한 몸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대 따로 놓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번 일로 가장 먼저 CGM 쪽과 거래를 끊으며 저희 홍성 측에 의리를 보여주신 브랜드들, 그리고 의리를 지켜주기 위해 수많은 계산을 하고 계실 브랜드들, 여전히 홍성과 CGM 사이에서 어떻게든 양쪽 모두를 잡고 있기 위해 애를 쓰시는 브랜드들…. 저희는 모든 브랜드들을 저희 홍성과 한 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홍성이 이 포크를 잡고 있는 제 손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

“보세요. 이 작은 손가락 움직임만으로도 이 포크 끝은 좌우로 크게 왔다 갔다 합니다. 만약 이 포크에 뭔가 음식물이 꽂혀 있다면 무척이나 불안한 모습이 연출되게 될 겁니다. 음식물에 묻은 소스가 제 옷 위로 떨어져 묻을 수도 있을 거고, 이 움직임이 격해지면 심한 경우 음식물 자체가 떨어질 수도 있겠죠. 이 포크를 잡고 있는 손처럼, 저희 홍성이 제대로 중심을 잡고 있지 못한다면, 홍성에 브랜드를 위탁하고 있는 많은 브랜드들이 방향을 못 잡고 계속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해야 할 겁니다. 아무리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새로 나왔어도, 일단 포크에 꽂힌 음식부터 입에 넣어야겠죠.”

그리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미리 잘라놓은 스테이크 한 조각을 포크로 집어 입속으로 넣었다.

“만약 여기서 저희가 폭스타운의 제안을 곧바로 받아들인다면 홍성을 믿고 CGM의 손을 놓은 브랜드들의 입장은 뭐가 되는 걸까요?”

“…”

“결국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어도 되는 거였는데, 괜한 에너지 낭비, 감정 소모만 한 결과가 되지 않겠습니까? 저희 쪽으로 힘을 실어주신 분들께 그런 허무한 결과가 나오게 만들 순 없습니다. 홍성은 반드시 CGM을 잡습니다.”

“…!”

“그리고 폭스타운과의 관계는 CGM을 확실하게 정리한 다음에 홍성이 컨트롤하고 있는 브랜드들과 폭스타운의 관계까지 다 고려해서 고민을 해보겠습니다. 모두를 다 만족시킬 순 없겠지만, 최소한 모두를 다 만족시키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는 건 보여드리겠습니다. 그게… 컨트롤 기업의 책임이라고 홍성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홍성을 보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보입니다.”

“…?”

나와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앉아 있던 사람이 말했다.

버버리 쪽 관계자였는데, 어쩌다 보니 가장 가깝게 자리를 잡고 앉았어야 할 인물과 가장 먼 거리를 두고 앉게 되었다.

“홍성에게 브랜드를 맡기면 안심이 된다던 누군가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야 할 거 같습니다. 투명합니다. 마치 수년 전 코로나 사태 때 전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던 한국의 위상을 다시 보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요. 이 패션 업계가 상당히 보수적이죠. 특히 아시아 마켓은 말 그대로 마켓으로만 간주하고 있지, 지금껏 어느 누가 아시아 기업이 이 업계를 리드할 수 있을 거라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모두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칫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는 내용이었지만,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런 내용과는 분명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간 패션 업계가 가지고 있었던 인식, 그리고 고정관념 등이 이번 홍성과 CGM의 전면전을 통해 완전히 깨어지길 바라고 있는 눈치였다.

참 우습게도 세계 명품 시장의 수요 중 70퍼센트 이상이 아시아 마켓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명품 시장의 유통 중 60퍼센트 이상 역시 유럽권 기업들에 의해 전 세계로 풀리고 있다.

그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기 시작한 홍성 인터내셔널.

홍성은 교과서대로 움직이고 있던 시장에서 새로운 교과서를 만들어내는 기업으로 조금씩 그 이미지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홍성 본사 사장실.

“와우….”

취리히에서 있었던 마크 창과의 만남을 보고하는 자리였다.

이사 총괄, 박 이사와 상무님, 그리고 이문 전무님이 함께한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상무님이 사장님께 마크 창이 제안한 내용을 간략하게 보고했고, 그 보고를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이문 전무님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와우…’ 하고 감탄사를 흘렸다.

처음엔 그 감탄사가 폭스타운이 먼저 손을 내민 내용에 대한 감탄사라고 오해를 했었다.

그런데 그 감탄사는 마크 창이 보인 뻔뻔함에 대한 감탄사였다.

“정말 그렇게 말을 했단 말이야?”

이문 전무님이 묻자 상무님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대답했다.

“이야… 진짜 멋진 친구네. 우리 홍성이 설립 당시 홍콩에서 사필로 쪽 선글라스 라이선스를 따내는 데 자기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 줬다고?”

사장님은 그저 웃고만 계셨다.

사장님이 저렇게 어이없는 헛웃음을 흘리시는 모습은 처음 봤다.

“제일 심각하게 방해 공작을 했던 놈들이 인제 와서 그런 소릴 해?”

이사 총괄, 박 이사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 차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사필로 애들이 우리한테 한국 라이선스를 주겠다고 했을 때, 그 당시 한국에 사필로 선글라스를 깔던 놈들이 바로 안창 놈들이었어. 설립 초기 우리같이 보따리상 비슷하게 사입을 하던 한국 업자들 몇 명 깔아 놓고 물건을 줬던 거지. 그걸 회장님이 다이렉트 루트를 알아내서 사필로 쪽과 계약을 따내신 거고.”

“그러게요. 저도 분명 회장님한테 그렇게 들었는데, 그동안 제가 뭘 잘못 알고 있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사람 기억이라는 게 자기들 유리한 쪽으로만 쌓이는 법이니까. 물론 끝에 가서 안창 놈들이 사필로 애들한테 최종 오케이 사인을 준 건 사실이기도 하고.”

“사장님도 참… 그게 어떻게 안창 놈들이 오케이 사인을 준 겁니까? 사필로 애들이 안창 놈들한테 그럼 너네가 직접 한국 시장 차고 들어가라, 그러니까 안창 놈들이 그건 또 막상 들이는 비용 대비 큰돈이 안 될 거 같으니까 주저했던 거잖아요. 그때 사필로 애들이 직접 하지도 않을 거면서 너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냐며 우리 쪽에 라이선스를 준 거지.”

“자네는 그때 홍성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당시 회식만 하면 단골 주제 아니었습니까. 30년 가까이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그 이야기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무튼….”

사장님께서 나와 상무님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셨다.

“내 생각에 폭스타운은… 글쎄… 이건 무조건 해야 한다… 하는 식으로 확 당기지는 않네.”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제법 많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내 말에 사장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물론 폭스타운은 상징적이니까, 그걸 저희가 잡게 되면 말 그대로 단숨에 업계 공룡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그로 인해 기존에 없던 브랜드들까지 함께 따낼 수도 있을 거고요. 하지만 만토바 창고 사장들은 그동안 좋은 파트너십을 유지해 오던 우릴 부담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할 겁니다.”

“그게 포인트지. 지금이 어디 브랜드 춘추 전국 시대였던 2000년대 초반도 아니고, 굳이 브랜드들 싹쓸이를 할 필요도 없잖아.”

“맞습니다. 오히려 브랜드 다이어트에 들어가야 할 때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확장은 좋지만, 그 확장이 브랜드 종류를 늘리는 것으로 방향을 잡아선 안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기존에 있는 브랜드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유통을 시키고 또 폴앤크루 같은 자체 브랜드들을 어떻게 하면 더 공격적으로 마케팅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면 결국 비만이 되는 거지. 이젠 영양가 있는 것들만 추려서 먹어야 할 때가 된 거 같다, 우리 홍성도.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폭스타운 쪽엔 밑밥을 계속 던져줘라.”

“네, CGM 잡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해 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랬다.

CGM의 몰락은 마크 창이 홍성 타워 오프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이미 기정사실이 된 거나 다름이 없었다.

많은 브랜드들이 동요했다.

그리고 또 많은 브랜드들이 기대를 하고 있었다.

홍성이 두게 될 다음 수에 대해…

“홍성 인터내셔널의 공은태입니다.”

사장님의 협상 대리인 자격으로 폭스타운 본사에 연락을 넣었다.

그리고 그곳의 총괄 대표와 통화를 했다.

“발리가 나간 자리에 폴앤크루를 넣어 보고 싶은데….”

-…!

“홍성은 폭스타운과 손을 잡지 않습니다. 다만 그간의 관계 회복을 명목으로 폭스타운에 홍성 자체 브랜드 입점을 희망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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